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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야곱열전(4) 지독히도 성화가 느리다!(창세기 28:10~22)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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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성화(神手聖化) 야곱열전(4)

지독히도 성화가 느리다!

창세기 28장 10~22절

 

서론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이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는데 식인종에게 붙잡혔어요! 꼼짝없이 죽었구나, 마지막 임종기도를 하는데 분위기가 조용해요! 이상해서 눈을 떴더니… 세상에! 옥스퍼드에서 동문수학한 아프리카추장아들이 서 있어요! 놈도 알아보고 웃어주더니 자기네 말로 기도하고 눈을 뜹니다. 만나서 반갑다고 감사기도를 하는구나… 하나님을 믿는구나… 이젠 살았다 안심하려는데 녀석이 번쩍 칼을 들고 살인내려 합니다.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너 영국에서 예수님을 믿는 교인이잖아? 예수님을 믿으면 식인종도 달라져야 하잖아?”

“나, 달라졌어!”

“뭐가 달라졌는데? 지금도 사람 고기를 먹잖아?”

“식인종은 맞아! 그러나 예수 믿지 않았을 때는 그냥 먹었지만 믿은 후에는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잡아먹어! 예수님을 믿으니까 신령한 식인종이잖아! 많이 달라졌지?”

 

한국교회가 이 모양이에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요!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해요! 그리고 다시 죄를 짓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행동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행동도 하나님께 맡겨버립니다. 비신자들 눈에는 교인들이 참 뻔뻔해요! 구원만 생각했지 구원 이후의 인격과 생활이 없는 거예요! 믿음의 느는 것만큼 성화가 따라주지 못하니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고… 어떤 이들은 본인은 힘들지 않고 남만 힘들게 합니다. 그러니 공동체 교회생활! 공평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랜 세월 성화되지 않는 야곱. 10절, 살고 있던 브엘세바 집에서 떠났습니다. 그는 떠나면 안 됩니다. 떠나도 엄청난 손해를 끼친 형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받고 떠나야 합니다. 그는 형을 속였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형이 알고 펄펄 뛰었습니다. 장남에게 넘어오는 재산을 모두 사기 당했다면 아무리 그 대상이 동생인들 어느 형이 팔팔 뛰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야반도주시킵니다. 형의 화가 풀릴 때까지만 외가댁에 가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줄행랑칩니다. 여기서부터 야곱이 성화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야곱은 집에 눌러 있어야 합니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참회하고 용서구하면서 자존심도 내려놓고 성질도 죽이고… 그렇게 장자신분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성화되지요!

 

그러나 야곱은 장자 명분만을 손에 넣었을 뿐 장자 명분을 취득한 자의 신분에 맞는 성화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린 성화도 문제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을, 그것도 가족들을 괴롭히고 만 것입니다.

오늘도 야곱의 성화되지 않는 길을 따라가 봅시다.

야곱은 집을 떠나 도망가다 약 85km쯤 떨어진 루스에, 3일 정도 걸려 도착합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 주변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명분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명분을 속여 빼앗은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 언약을 소홀히 여기고 영적 가치에 대해 무심한 에서가 더욱 괘씸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에서를 버리고 야곱과 함께 하게 됩니다.

 

야곱은 정처 없는 길이 두려웠고 가책을 느꼈습니다. 쌍둥이 형과의 우정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음에 대해 슬프고 형이 있는 고향에는 다시 올 수 없다는 마음으로 불안했습니다. 

 

평소 야곱은 장막에만 거주하던 내성적입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하루아침에 광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홀로 객지에 나선 야곱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하나님과의 결별성에 대해서도 불안합니다. 지금까지 야곱에게 하나님은 부족신입니다. 조각우상신(神)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상에 조각해서 집안에 모셔두는 정도로 야곱 신관은 부족신 개념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떠나면 하나님과도 결별하고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언약의 축복,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생각하니 불안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상속자로 인정하실까?’  ‘집에서 떠나면 언약에서 떠나고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내가 공연히 형의 심기만 건드리고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은 아닐까….’

 

야곱은 축복의 주도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한 채 하나님 곁을 떠나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합니다.

그런 심정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13절, “… 나는 여호와이니…”

아브라함 이삭… 그 다음에는 네가…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상속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음성 속에서(14, 15절) 야곱은 장자에게로 계대 되는 축복이 자기에게로 넘어왔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 것만도 든든한데 나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장자 명분을 얻었는데도 하나님은 인정하신 것입니다.

 

야곱에게 계승되는 상속권은 할아버지-이삭에게 내려오는 3대 언약축복입니다. 땅과 대민족과 복의 근원이 되는 언약의 계승자이며 상속자 보장을 받은 것입니다. 에서를 제치고 족장의 반열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기쁘고 든든했겠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야곱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야곱은 12절, 꿈에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눈으로 따라 올라가보니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닥다리 오르내림이 네 차례라는 것입니다.

거룩의 DNA를 넣어주었으니 이제는 사닥다리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처럼 거룩해지고 성화의 길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가? 이사야는 상당히 비판력이 센 왕족 엘리트입니다. 이사야는 5장에서 동족들의 불신앙적인 모습에 화있을진저… 여섯 번이나 사용하며 공격합니다.

 

“땅, 부동산에 욕심을 부리는 자들에게…화 있을진저”(8절)

“아침부터 밤이 깊도록 독주에 취하는 자들… 화 있을진저”(11절)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끄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18절)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는… 화 있을진저”(20절)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1절)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2절)

 

이랬던 이사야 선지자가 6장에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가… 당시 웃시야 왕은 친척이고 영웅입니다. 그는 기이한 도우심으로 엄청난 업적을 남긴 선왕입니다. 그런데 교만해서 나병환자로 별궁에서 죽습니다. 거기에 충격을 받고 실망해서 성전을 찾았는데… 거기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스랍천사들도 보았습니다.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섰는데 날개가 각각 여섯입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었고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3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사야 선지지가 이렇게 외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절)

 

이사야의 탄식을 듣고 스랍천사 하나가 핀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숯불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합니다. 그때부터 이사야는 메시야의 희망을 주는 선지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보는 순간, 메시야 전문선지자라는 신분에 맞게 화로다! 저주와 책망의 외침을 버리고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됩니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42:3)

 

죄인들에게 저주와 책망보다는 은혜를 말하는 희망의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되었는데 야곱은 이게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루스까지 따라와 장자의 명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야곱을 장자 신분에 맞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올라가고… 교통하면 성화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는 순간 강하게 성화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같은 반응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장자 명분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장자명분만 얻었지 장자신분에 맞게 살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따라다녔고 야곱이 변하지 않으니 하나님은 그와 다투었고… 누가 힘들어요? 당연히 야곱이 힘들지요.

 

(이런 이야기, 상당히 예민합다만) 여배우 중에 아무개가 있습니다. 톱스타가 되었는데 삼성가(家)(신세계 부회장)의 며느리가 되고 남매를 낳았습니다. 축복 아닙니까? 영화도 좋지만 배우는 늙으면 끝납니다. 대한민국 1등부자 삼성가는 영원합니다. 하루아침에 신분상승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되었으면 여배우 신분으로 살면 안 됩니다. 이건 순전히 삼성패밀리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삼성가(家) 며느리가 되었는데 영화에서 노출이 심하고… 불륜드라마에 나오면 삼성은 형제, 사촌 육촌… 대단한 패밀리입니다. 이제는 삼성며느리, 삼성패밀리 신분으로 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상류층의 기품을 익히면서 점점 삼성가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여배우는 신분에 맞게 변하지 못했고 결국 이혼했고 다시 배우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자유롭게 살고… 인기를 얻지만 남매는 어떻게 됩니까? 본인도 삼성과는 관계없는 사람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조금씩 신분에 맞추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 것입니다. 그게 비극이라면 비극입니다.

(이런 설교를 하니 어떤 여성도님이 싫어하더라고요. 너무 남자 입장에서의 설교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배우의 입장에서는 삼성가와의 결별이 더 자유롭고 행복할 것입니다. 설교의 예화로 고르다보니... 여배우 본인에게는 미안합니다.)

 

야곱도 그게 안 됩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형에게서 빼앗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 오셔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과거야 어떻든 이제는 장자로 살아야 합니다. 언약의 명분을 갖고 있는 굉장한 장자의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장자의 신분대로 살 수 있을지… 자기 입으로 고백을 합니다.

 

21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면 여호와께서 내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십일조를 드리겠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겠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 십일조생활을 하겠다! 3대언약 축복에 대한 3대서원입니다. 이런 약속을 지키며 살았으면 장자 명분에 맞는 신분으로 변할 거예요! 그만큼 성화되고 빨리 에서와 화해하고 밧단아람 외가댁에서 사기행각을 일삼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험악한 세월을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명분만 있고 행동은 없어요! 이사야는 되었는데 야곱은 왜 안 됩니까? 야곱도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보좌를 보며…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여 화로다… 외쳤으면 성화되었을 텐데 야곱은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께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닥다리를 통해 내려오도록 했습니다.

 

21절을 보세요.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면… 조건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아 이용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데 야곱은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화가 안 됩니다. 하나님만을 끌어다 쓰려니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까?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축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힘들어요? 너 때문에 나 지친다! 이젠 네가 나와 동행하자! 언제까지 내가 너를 쫓아다니겠니? 그러면 네가 상처가 너무 많잖니! 네가 이웃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줘! 이젠 네가 나를 따라와야지… 그러면 많이 성화가 될 거야!

 

고아무개는 삼성가의 상류층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삼성가의 옷을 벗어버렸고 삼성가의 신분을 던져버렸습니다. 삼성도 그녀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대통령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은혜가 없고 언약이 없습니다. 굳이 여배우를 끌어 앉으면서 삼성가의 명분을 하향평준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 주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배우는 신분을 버리고 자기소견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태어난 남매들만 어중간하고 엄마 없는 아이들처럼 외롭고 힘들 뿐입니다.

 

이게 성화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내가 성화되지 못하면 내 안의 성령이 탄식하고 속사람인 내 생명이 울고 삽니다. 내가 울어야 성화가 되는데 반대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는 필수적입니다.

 

결론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 특히 목사들이 성자처럼 존경합니다. 그 분 성격이 대단했습니다. 관악구 어느 교회에 부임했는데 교인들과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예배시간에 찬양대원이 대놓고 설교를 거부했습니다. 일부러 옆사람과 잡담하며 목사 약을 올립니다. 급한 혈기에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설교하다말고 성경책을 들고 던졌습니다. 하필이면 애꿎은 옆자리 여학생이 맞았습니다. 설교는 물론 예배도 엉망 되고 고소까지 당했습니다. 피택 장로 부인에게는 고무신으로 뺨을 맞았답니다. 밤중에 전화기만 들면 욕설입니다. 교인들 변하면 정말 무섭습니다. 사명감으로 욕하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1년 3개월 만에 교회를 사임합니다. 분노와 함께 자책, 수치감으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청계산 기도원에서 분노와 혈기를 다스리는 훈련을 쌓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꾸준히 한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들은 대단하구나…. 상대방을 죽으라 하지 말고 내가 죽어야겠구나…. 그게 바로 이목사님의 브랜드 별세목회입니다. 별세(別世), 세상을 이별한다는 말은 세상에 대해 내가 죽는다, 교인들에 대해 내가 죽는다… 는 뜻입니다. 

 

목사님은 그 길로 내려와 한신교회를 개척합니다. 성질과 혈기가 빠지자 모두 목사님을 좋아했습니다. 그야말로 목회궁합이 맞은 것이지요! 좋은 교인들에게서 목회 상처가 치유 받았습니다. 아, 목회는 죽으면 되는구나… 그래서 별세목회는 “나는 매일 죽는다”입니다.

 

어느 분이 내게 그 제목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날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인지… 나는 자기가 죽어야 할 것 같은데… 책도 제목을 잘 보고 선물해야 합니다. 그냥 하는 이야기이고… 성화는 바로 그겁니다. 죽는 거예요! 죽음이 없이 어떻게 성화가 되겠어요?

 

주님도 우리의 성격을 고쳐주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그냥 죽어주셨어요, 베드로의 성질을 고쳐주려 싸웠어요? 베드로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주셨어요! 그래서 은혜입니다!

 

성화의 길, 더 많이 죽고 더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게서 성화의 중간단계가 조금씩이라도 나옵니다. 이게 야곱은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게 살았던 것입니다. 나는 매일 죽는다! 우리를 성화의 체질로 바뀌는 십자가의 은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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