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성화(神手聖化) 야곱열전(3)
성화와 성격의 관계
창세기 25장 27~34절
서론
‘신수성화 야곱’ 세번째 설교입니다. 성화설교를 하니까 다양한 반응들이 나와요! 제1반응, 이번 여름에는 설교시간이 지루하겠군…, 성화에 대해 관심 없는 분들입니다. 제2반응, 기질이 강한 분들, 성화설교가 나를 건드리겠군… 마음에 중무장 합니다. 제3반응, 이 젊은 나이에 성화가 되면 무슨 재미로 살아… 은혜 받으면 안 돼! 설교로 듣고 끝나야 돼… 이래요.
감사하게도 더 많은 분들이 제4반응을 보입니다. 그래, 그렇게 못 살아서 그렇지… 성화의 중간 단계가 내게도 나타나야 해… 나를 거듭나게 하신 성령님께서 아직도 영적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나를 보면 얼마나 근심하실까? 이만큼 믿었으면 성령님의 기쁨이 되어야지 성령님의 근심덩어리가 되면 안 되잖아… 이번 성화설교로 달라져야 해… 은혜 받자! 그런 마음으로 설교듣기에 올인합니다. 설교자들은 이런 분들이 있어서 설교가 기쁩니다.
저는 성화설교를 통해, 아직도 성화되지 않는다고 꾸짖으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을 돕고 싶어요! 성화가 무엇인지, 성화의 주체는 누구인지, 어느 영역에 성화가 되어야 하는지… 여러분의 성화를 돕고 싶어요! 여러분은 그만하면 선하고… 참 괜찮은 분들임을 알아요!
그러나 우리는 일반인들과는 노는 물이 다르다고 했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세속의 물에서 놀기에 적당히 살아 성공하고 출세하면 됩니다. 아무도 욕할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성(聖)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은 물에서 놀아요! 성부 성자 성령! 성씨 돌림이잖아요? 그 성씨는 성공(成功)할 때 성(成), 이룰 성이 아니라 거룩할 성(聖), 구별될 성(聖)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어 성공하라는 것이 제1미션이 아닙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라는 성화가 제1미션입니다.
성화는 나와 내가 구별되어야 합니다. 교회 다니기 전 나와 지금의 나! 거듭나기 전 종교인으로서의 나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았던 나와 하나님을 목표로 삼는 나… 이런 구분이 뚜렷해질수록 성화의 중간단계들이 나타납니다.
다음에는 남과 나를 구별해야 합니다. 저들은 세속에 속했으니까 세속화되고 나는 거룩에 속했으니 거룩해 가는 것, 성령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화는 평생의 사역입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안 보이게 달라집니다.
성화(聖化)는 몸과 같은 변형단계를 거칩니다! 몸이 하루아침에 달라집니까? 30년 전의 저를 보신 분, 해맑지 않았나요? 살이 찌니까 순수함도 총명기도 없지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아가씨 같은 미시들은 다 어디가고 아줌마몸매들만 남은 거예요. 처음에 수줍어하던 모습들은 어디로 흘려보내고 지금은 날 잡아잡슈! 배짱만 남았어요? 수십 년을 조금씩조금씩 몸이 변하는 것을 몰랐지만 어느새 우리 몸매가 변했습니다.
성화(聖化)도 몸처럼 성장하고 변해요! 하루아침에 완전한 100% 성화?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내가 천사가 되고 우리교회가 천국생활이 될 거예요! 내가 천사가 되었나요? 한국교회가 천국인가요? 그렇지 않잖아요? 성화의 수준, 성화의 단계가 500명이면 500명, 700명이면 700명 다른 거예요! 그러니 말도 많고 섭섭도 하고… 그런데요, 우리는 낙심하지 않아요. 지금 알듯 모를 듯 성화가 되어가는 중이에요! 답답하지만 희미하게 나아지는 중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우리끼리는 기다려 준다 해도 비신자들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너들은 나보다 나아야 한다! 언어생활에, 처신에, 준법정신에… 투명성에, 돈거래에, 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에서 그래도 믿는 사람들이 다르긴 다르더라, 저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까지는 가지 못해도 예수쟁이! 나쁜 째끼들(새끼들) 욕을 먹는 수준은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교회 안에서 오래 믿는 분들, 교회 중직자들… 성화의 중간 단계들이 많이 보여야 하는데 성화 봉오리도 없고 변형되는 중간단계가 안 보이니까 실망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성화가 바로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오늘은 성화와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야곱은 성격 때문에 성화가 힘들었습니다. 60년, 70년 성화되지 않았어요! 지독한 사람이지요? 지독할 것 없어요! 우리 신앙햇수도 얼추 그 정도 분들이 많아요! 야곱에게 60,70년은 인생에서 가장 잘 나가던 성공의 시기입니다. 맨손으로 야반도주한 사람이 대성공을 거두어 20년에 거부(巨富), 재벌(財閥)이 된 거예요!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집구석은 맨날 네 명 부인들이 지지고 볶고 바람 잘 날이 없어요! 12명 이복자식들은 증오심으로 무장했어요! 이런 콩가루상황에서 성공한 남자 야곱은 계속 얻어터집니다. 누구에게 얻어터져요? 3대언약을 약속하신 하나님에게! 사업을 못해서? 실력이 없어서? 성공을 못해서? 다 잘했어요! 그런데 왜 터져요? 성화되지 못해 터집니다!
무엇이 야곱을 성화되지 못하게 막았을까요? 집안 내력의 성격입니다. 부모에게 좋은 성격과 안 좋은 성격을 함께 물려받았어요! 안 좋은 쪽에 더 힘을 실어주니 성화는 젬병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온유하고 평화주의자입니다. 원주민들과 거의 한 번을 다투지 않을만큼 사람이 좋아요! 성화된 아버지, 성화된 남편이었나요? 그냥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 성화가 되면서 좋은 인품이 있고 믿음은 없는데 바탕이 좋아 좋은 사람이 있어요! 후자가 예수님을 믿기도 좋고 믿음은 없어도 좋은 사람이라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다듬어지지 않는 성화는 좋은 사람일뿐 성화된 사람이라 말할 수 없어요! 한 눈에 보면 보이지 않나요?
성화가 느린 이삭의 약점은 바로 좋은 인간성입니다. 이삭에게 영적 열정이 없어요! 장자의 명분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면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물려주어야지요!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교육시켜야지요! 죽 한 그릇에는 팔지 못하게 ‘단도리’ 해야지요!
이삭은 장자권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에서가 사냥해서 갖다 주는 사냥감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에서가 믿음생활이 엉망이고 장자명분을 소홀히 여기면 책망해야지요! 신앙심이 없어도 잘 되니까 아들이 갖다 주는 성공의 먹잇감에 희희낙락했어요!
이삭은 제대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했어요! 아브라함이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이삭! 훌륭하지요? 예수님의 순종의 예표가 될 정도니까요! 그러나 그 순종에서 이삭이 칭찬 들은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건 사람은 이삭인데 아버지가 칭찬 듣습니다. 결혼은 자기 문제잖아요? 그럼에도 아버지가 구해주니 가타부타 않고 그냥 받아들입니다. 자기의견이 없이 그냥 흘러갑니다. 이런 기질이 성화에서도 느려 터집니다.
그런 기질이 에서에게로 갑니다. 에서 역시 관대한 사람입니다. 인물로 보면 매력남입니다. 성격도 활달합니다. 27절,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능력 있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욕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물에서 놀지 않고 언약과 놀지 않고 세상 물에서 먹고 놀고 활개치고 다니는 한량 기질… 그러니 성화가 안 되지요!
어머니 리브가. 영적인 열망이 큰 여인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와서 이삭의 신붓감으로 리브가를 지목했습니다. 당사자 의견이 중요하다며 의견을 물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스! 합니다. 열흘만 있다 가라니까 리브가가 지금 가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아브라함의 3대 축복 언약에 욕심이 큰 여인입니까? 그러자 오라버니가 축복합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23:60)
리브가는 믿음에 욕심이 많습니다.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겠다는 욕심! 그럼에도 리브가에게 단점이 있어요! 너무 성급해요! 모든 면에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기보다는 자기가 응답을 만들어 갑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축복에도 욕심이 많아요! 기도에도 열심이지만 그만큼 물질에도 욕심이 많습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여인들이 믿음은 굉장한데 성화가 안 되어요! 그래서 남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야곱은 이런 기질 유전자, 가정환경에서 성장합니다. 형은 활달한 외향성, 야곱은 내향적입니다.
27절,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어머니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어머니는 영적 욕심이 많은 여인, 야곱은 어머니에게서 3대축복, 아브라함-이삭-야곱이라는 언약계승자가 되려면 장자명분을 얻어야 하고 속이는 길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기를 칩니다. 성공했어요! 여기에서 재미를 보고 아버지를 상대로 사기꾼이 됩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오래도록 성화되지 못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살아야 했나요? 사기꾼 기질을 버리기! 성화의 길을 가야합니다.
아버지는 너무 물러서 성화가 안 되고 어머니는 너무 강해서 성화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성화할 생각은 없이 먹는 일에 급급하고 어머니 역시 성화에 관계없이 축복에만 욕심을 냅니다.
야곱은 이걸 본 받으면 안 됩니다. 어머니의 거룩한 꿈은 본받고 배우고 받아들이되 방법은 아버지처럼 온유함으로 형과 이웃들과 화평으로 얻어야 합니다. 좋은 목적이라면 방법도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중에 형이 제대로 살지 못하면 아버지 선에서 재조정되던지 형이 집을 떠나든지… 사기꾼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언약을 얻을 텐데 어머니의 방법을 배우고야 만 것입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영적 열망과 거룩한 욕심에다 아버지 이삭의 온유한 성품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면 요셉처럼 맞지 않고도 ‘스므스’하게 성화가 되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의 욕심 사나운 성급한 성품에 영적인 것에 대해 무관심한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자기의 신분을 잊어버립니다. 언약의 장자권을 가진 사람은 에서가 아니라 나, 야곱입니다. 그러면 야곱처럼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야곱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사기꾼 야곱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야곱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에게 장자 명분을 도둑질하고 자기가 에서인줄 알고 에서처럼 삽니다. 들판에서 살던 형처럼 야곱도 객지생활에서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버렸습니다.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으면 요셉의 성화처럼 만사형통하고 존경 받으며 성화가 되는데 하나님께 매를 맞으며 성화의 길로 가려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겠어요? 오죽했으면, 자식들에게조차 “너희들이 다 나를 해롭게 하도다…” 원망했겠어요? 적반하장 아니에요? 아버지 때문에 자식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네놈들 때문에 내가 힘들다, 왜 내 주변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놈들만 있느냐… 이러고 있으니 성화가 되겠어요? 성화의 삶을 살지 않으니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성격순입니다!
성격이 뭘까요?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는 어떤 힘, 본성이에요. 이런 힘을 점차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머리로 아무리 은혜 받고 가슴으로 은혜 받아도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아요!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 장애자, 전도왕(王)… 등을 초청해 은혜를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면 그게 성화가 되는 것으로 압니다. 일시적인 감정입니다.
이건 성화가 아닙니다. 성화는 성격을 겨냥합니다. 그러기에 성화는 감정이나 지식에 관한 영역이 아니라 의지의 영역입니다. 가고 싶어도 참고 먹고 싶어도 참고 말하고 싶어도 참고… 내 안에 남의 성화를 방해하고 나의 성화를 훼방하는 것들이 나올 때마다 참고 누르고 힘을 빼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포기, 희생의 의지가 없이는 성화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서정은 모두 삼위일체의 영역입니다.
특히 거듭남, 믿게 하는 일, 칭의, 양자의 신분… 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내가 거들 것은 1%도 없습니다. 성화는 성령과 나의 협동사역입니다. 오히려 성화에서는 내가 주도적이고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성화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주여! 나를 성화시켜 주소서…"
백 날 기도해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술 먹지 않게 해주세요… 술 맛이 없게 해주세요… 술친구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술집이 오늘 문 닫게 해주세요… 술을 마시는 순간 오바이트 하게 해주세요…"
기도를 했는데도 오히려 술맛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하나님 탓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난들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성화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성화는 내가 주도적입니다. 성령님은 도와주기만 할 뿐입니다. 내 의지로 싸우고 포기하고 희생하고 술친구들 끊고, 신자의 삶이 너무 아파서 외로워서 눈물 흘릴 때 성령께서 성화를 도와주시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주여 성화를 도우소서… 그렇게 해서 되는 성화는 없습니다. 성화는 부전승이 아니라 승전,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성화를 원하신다면 성격에 드라이브(drive)를 걸어야 합니다. 드라이브는 기분전환을 위한 운전만이 아니라 테니스… 등에서 공을 깎아서 세게 치는 행동입니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내 성격에 걸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성격은 죽을 때까지 나를 주장하고 믿는 흉내만 내다 끝납니다. 승려가 머리를 빡빡 깎는다고 승려입니까? 승려답게 수행하고 살아야 승려이지요! 우리 성격이 십자가에서 계속 수술을 받지 않고 수리되지 않고 입으로만의 성화, 교리로서의 성화는, 토저의 말을 빌린다면 ‘종교적 소꿉놀이’에 불과합니다.
결론
이번 성화설교를 통해 강조되는 성화는 인격에서의 성화가 아닙니다. 심령의 성화도 아닙니다. 그건 성령님께 맡기고 세월이 지나면서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성화의 모습을 우리는 보일 것입니다. 이번 성화설교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화입니다. 내 기본성격이 있지만 너무 느린 분들은 서두르기, 급한 분들은 느리게 말하고 행동하기, 약한 분들은 믿음으로 강해지기, 너무 강한 분들은 부드럽게 표정을 보이고 따뜻하게 말해주기… 모두들 옆에 앉은 사람들에게 친절히 웃으며 인사하고 손 잡아주기… 애찬실에서 밥을 남기지 말고 내가 앉았던 자리 정돈하기… 끼어들고 손 흔들어 주기, 이런 실제적인 생활에서의 성화입니다.
프로이드 심리학의 핵심 포인트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 같아도 심리 속에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50대 이상의 상담은 쓸데없다고 합니다. 50년을 살아온 사람을 상담하려면 50년을 상담해야 하는데 100살까지 살지도 못하니 소용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내 성격대로 살다 갈래… 이제 와서 어떻게 고쳐? 그렇게 마음먹으면 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노는 물이 다릅니다. 우리가 노는 물은 하나님의 물입니다. 우리가 성격이 나오지 않게 무지무지하게 참고 노력하고 애를 쓰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내가 할 일을 성령님께 맡겨버리는 것은 성화의 길이 아닙니다. 내가 할 일을 힘들게 노력하면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성화의 길은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수월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성화되기 시작하면 내 주변의 모두가 선한 영향을 받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길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 이후의 미션입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곱열전(5) 성화는 가정 상황에서 영향을 받는다(창세기 29:21~30) (1) | 2024.01.13 |
---|---|
야곱열전(4) 지독히도 성화가 느리다!(창세기 28:10~22) (2) | 2024.01.13 |
야곱열전(2) 성화가 미션이다!(창세기 25:27~34) (2) | 2024.01.11 |
야곱열전(1) 너, 언제 성화될래?(창세기 25:19~26) (2) | 2024.01.11 |
감사, 점점 세게! 크레센도(crescendo)(빌립보서 4:10~13) (2) | 2024.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