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장 14~23절
서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두 가지 의미를 줍니다. 나는 너희 죄를 대신하여 죽었고 피를 흘렸다! 다른 하나는, 이제 너는 나를 대신해서 살아라~.
예수님께서는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주관하신 후에 19절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명하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기념하라”가 나오지 않으며 본문에만 나타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인들이기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15절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16절,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유월절준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출12장).
14절,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기념하여' ‘지키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유대인이 유월절 규례를 계속 지켜왔던 것처럼 성만찬 규례를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말씀이겠지요.
"성만찬 때, 양의 피로 구원한 것을 기억하는 대신 너희를 구원할 나와 내 희생을 기념하라“
기억이 머리라면 기념은 가슴의 영역입니다. 기념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아니라 마음에 명심하며 사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기억이 일회적이라면 기념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주신 예식을 근거로 성만찬마다 내가 너희를 위해 하신 일을 되새기라는 것입니다. 그걸 바울은 한 문장에 요약합니다(롬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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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성례식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명심해야할까요? 3인3색의 기념하는 방식을 보아야 합니다.
1. 바라바-이제부터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예수님의 십자가는 원래 남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33년 생애는 번영, 부흥, 형통이 없습니다. 아무 소유도 없었으니까요! 모든 것을 빌려 쓰고 사시다 가셨던 무소유의 주님이십니다.
태어날 때도 여인의 태(胎)를 빌렸고, 남의 여인숙을 빌렸고, 짐승의 구유를 빌렸고, 게네사렛 호수에서 말씀 전할 때는 베드로의 배, 예루살렘 입성에는 나귀를 빌려 탔고 성만찬 장소도 빌렸고⋯ 십자가도 빌렸고⋯ 죽은 후에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조차 빌렸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차용(借用) 내지는 임대(賃貸)의 삶을 살았던 빈손입니다.
원래 십자가는 강도 바라바의 몫입니다. 로마제국에서 십자가는 최악의 형벌입니다. 십자가는 죽음 자체를 말합니다.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대신 달리셨고 바라바는 구사일생입니다. 바라바가 제대로 은혜를 알고 인생을 아는 자라면 십자가를 대할 때마다 무엇을 기념해야 합니까?
“나 대신 제대로 살아야 한다! 내가 하려던 일을 네가 계속해야 한다!”
그런 주문입니다. 스웨덴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르 라게르크비스트는 소설 <바라바>에서 바라바 이후를 상상합니다. 풀려난 바라바가 돌아가 보니 아내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아내를 돌로 때려죽여 다시 옥에 갇히고 기독교인으로 개종, 십자가에 처형됩니다. 1962년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오늘 내가 십자가 앞에서 바라바의 심정으로 서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살아야 한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성만찬이 기념이 됩니다.
2. 한쪽 강도-이제부터 나와 함께 있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에 좌우에 두 명의 도적들이 같이 달렸습니다. 둘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그러다 한 강도가 돌변해서 다른 강도를 꾸짖습니다.
“입 닥치지 못해! 우리는 우리 죄로 달렸지만 이 분이 무슨 죄가 있냐? 이제 그만 해!”
그리고, 중앙에 있는 주님에게 자비를 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답하십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생각해 주소서!”
“그래! 오늘밤부터 나와 함께 있자!”
한쪽 강도⋯. 일찍 이렇게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마음 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흉악한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겠지요. 누군가 옆에 있어주었다면 십자가 자리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도 남들처럼 좋은 아들이 되고 누군가에는 좋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이 시간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지 가정에서 아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을 만나지 못해 십자가에서 몸도 마음도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오늘부터 나와 함께 있자~ 그 한 마디 말로 치유되고 힐링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나라 식탁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누구나 있는 십자가! 지치고 힘들고 분노와 억울함⋯ 십자가 강도에게 힐링 주던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세요! 너도 나랑 밥 먹자! 이젠 나와 함께 하자! 우리 마음도 치유될 것입니다.
3. 요한-이제부터 네 책임이다!
요한은 누가 보더라도 사랑으로 뭉쳐진 사랑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대할 때도 살갑게 대했습니다.
최후의 만찬, 바로 오늘 이 시간에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은 재미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3정). 만찬을 진행하던 제자 중의 하나가 배신자의 모습을 감추고 참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아파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십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그럴 수 없다면서도 서로를 의심합니다.
23절,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얼마나 다정한 포즈입니까? 베드로조차도 그런 사랑스러움을 주님에게 보이지 못합니다.
24절,“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이 사람이 요한입니다. 그렇게 애교가 넘치고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은 평생을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예수님과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며 살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은 사랑이 아니라 그에게 책임감을 부여하십니다. 어머니를 맡긴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
그 말은 이제부터 나 대신에 네가 모셔다오! 마리아의 부양은 네 책임이다! 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책임을 부과하신 일을 요한은 잘 감당했습니다. 사랑을 받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책임감! 남의 어머니 모시는 일이 힘들었지만 성만찬 할 때마다 내가 맡겨준 일을 기억하고 있지? 그런 주의 음성을 들었고 더욱 단단히 효도를 다짐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교우들에 대한 사랑의 책임도 다짐했겠지요!
결론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무엇을 기억합니까?
내 고집대로 살아온 바라바 같은 인생들-이제부터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상처와 실패로 얼룩진 강도 같은 인생들-이제부터 나와 함께 있자!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요한과 같은 사람들-이제부터 사랑의 섬김은 네 책임이다!
우리가 성만찬에서 주님의 음성을 가슴에 새기고 항상 기념하며 사는 참제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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