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보다 귀한 믿음
베드로전서 1장 3~9절
서론
여론조사연구소 <갤럽>이 1500명을 대상으로‘한국인의 종교보고서’를 금년 2월에 냈습니다. 1984~2014년 동안 10년의 종교상황을 리서치하고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 분포 비율은 비종교인(무교)이 50%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은 2명 중 1명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종교별 분포는 불교가 22%, 기독교 21%, 천주교7%⋯입니다. 10년 전 통계와 비교하면 불교는 2% 줄었고, 기독교와 천주교는 같은 비율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천주교는 부흥하고 기독교는 침체라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도 에러(실수)를 많이 범하고 자충수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층(層)이 견고해서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오늘부터 있을 인구센서스입니다. 목회자 칼부림 사건이 생생한 시점이기에 상당히 기독교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교회에 실망한 신자들이 타종교나 무종교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이후 종교 관심도가 떨어지는 추세라고 했는데⋯ 종교인구의 감소원인이 있겠지요?
-국민소득 3만 불 진입을 눈앞에 두니 먹고살만하니까 종교에 크게 의지할 것이 없다?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 불편하게 종교생활을 하나? 젊은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10년 전 조사에서 종교를 믿는 20대 비율은 45%였지만, 지난해 31%로 14%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30대 종교인 비율도 49%에서 38%로 감소했습니다.
무종교인에게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관심이 없어서(45%),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19%),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18%), 내 자신을 믿기 때문(15%)⋯. 무교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종교들이 위로와 치유, 회복⋯ 등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필요 없는 것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정치적 동물'이라 했고 두류케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은 말을 했는데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 사회적동물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을 종교적 존재라고 합니다(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이것이 종교심이요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짐승들에게는 영원에 대한 사모함이 없습니다. 짐승들이 천국과 지옥, 이승과 저승을 생각하겠어요? 그런 DMA가 아예 없습니다. 그러니 눈앞의 것에만 연연하다 가면 그만입니다. 자기가 죽는지조차 모르고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니 무슨 종교나 영생이 필요하겠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어머니에게서 왔기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하나님에게서 왔기에 인간은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고 찾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높은 자아상을 버리고 살겠다는 것이요, 동물적 삶으로 끝나겠다는 고백입니다.
종교는 관심이 없다고⋯, 제 역할을 못한다고⋯ 헌금을 강조한다고⋯ 위선이 싫다고⋯ 목회자들의 행동 때문에 무종교로 돌아서고⋯ 그렇게 버리거나 선택할 사항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제 노릇 못한다고 나도 사람 노릇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짐승처럼 살아야 합니까?
아니지요! 그런 사람들이 있을수록 나는 저리 살아서는 안 된다! 더 분발하고 인격을 다듬으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종교인답지 않는 사람이 보일수록 종교를 떠날 것이 아니라 종교를 통해 몸과 마음을 더 많이 수양하고 인품을 가꾸어야 합니다. 어느 신자가 잘못해서, 어느 교회가 잘못해서 언론에서 비난 대상이 될수록 나는 더 좋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지⋯ 우리교회는 더 좋은 교회가 되어야지⋯ 결심하고 다짐하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 종교인의 모습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적 자세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로마제국에서 박해가 제국전역으로 번질 때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여 믿음의 승리를 이루고 고난 너머의 영화로운 구원을 보게 할 목적으로 기록된 소망의 서신, 격려의 서신입니다. 베드로는 박해 앞에서 믿음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믿음을 금에다 비합니다.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1. 믿음은 금처럼 절대적입니다.
금은 어떤 금속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지닙니다. 금은 구리와 함께 인류가 맨 처음 발견하고 사용한 원자번호 79번의 원소입니다. 아름다운 색채와 희귀성, 불변성으로 문명의 발상 시작과 같이 할 정도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부귀(富貴)의 상징. 금의 가치는 인류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화폐가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소금이나 식량⋯도 화폐 역할을 했지만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지금 소금이나 식량이 많다고 부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금과 쌀이 창고 하나 가득 있어도 금 한 덩이 가치만 못합니다. 금(金)이 금화로 사용되면서 금의 확보는 곧 부(富)를 확보하는 것이 되었고, 인류는 더 많은 금을 얻기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값 싼 금속으로부터 인공적으로 금을 만들고자 연금술이 아랍 및 중세 유럽에서 유행하게 되었고⋯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여행이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도 동방의 금(金)을 구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금은 현대사회에서 최고의 돈이요 자본입니다.
-신(神)의 영광이나 형상에 대한 상징.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였으며, 금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귀히 여겼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송아지우상을 금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금으로 만들수록 더 절대적 가치를 보입니다.
-권력. 21세기의 권력은 총부리가 아니라 경제력에서 나옵니다. 미국이 왜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게 절절 매고 맨날 끌려 다닙니까? 유대인의 금, 경제력 때문에 유대인편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상당히 많은 액수의 정치자금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후세계 장식용품. 금이 왕들의 사후세계 무덤을 꾸미는 장식물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불변성 때문입니다. 신라시대 왕관은 지금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합니다. 왕관을 은, 철, 동으로 만들었다면 변색되고 부식되어 볼품없지요. 녹슬어 너덜너덜한데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금으로 만들었기에 지금도 빛나는 아름다움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금은 자연 상태의 공기와 물속에서도 영구적으로 색상이나 성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독성이 없어서 먹어도 부작용이 없습니다. 게다가 찬란한 금색광택은 인간을 매료시킵니다. 매장량이 많지 않고 제련도 까다로워서 희귀성 때문에 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베드로가 굳이 믿음을 금에 비교한 이유를 알겠지요? 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처럼 믿음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갖습니다. 믿음의 가치를 베드로는 말합니다.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은, 믿음의 목적이요 믿음의 결과를 말합니다. 우리가 왜 믿는가? 영혼구원입니다. 병원이 왜 귀합니까? 의사들이 왜 귀합니까? 아픈 곳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죽을 육체를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정말 귀한 일이지요! 치통이나 눈이나⋯ 통증을 치료해 주는 일에서 암(癌)에서 심장이식수술을 통해 10년 20년을 더 살게 해주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나 고쳐준다고 다시 아프지 않습니까? 살려준다고 다시 죽지 않습니까? 다시 아프고 죽습니다. 그래도 병원의 목적, 의사들로부터 오는 어느 정도의 목표달성⋯ 그래서 우리는 병원을 가고 의사에게 불만이 있다하여 병원을 끊어버린다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영혼구원은 얼마나 귀한 가치입니까? 인생 100년을 살기위해서도 모든 것을 지불하는데 영생을 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영생이 얼마나 비싸겠어요? 영생을 10억! 100억 준다고 해도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돈으로 영생을 살 수 있다면 별 살인사건이 다 나올 것입니다.
그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 그 믿음은 10억, 100억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요 세상의 금(金)을 다 모은들 믿음의 가치만 하겠어요? 금으로는 영생을! 구원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을 금보다 귀한 것이라 말합니다. 박해를 받아 생활터전도 돈도 잃고 건강과 모든 이생의 것을 빼앗긴다 해도 믿음을 놓치지 말라 합니다.
왜? 믿음의 결국이 영혼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만큼 소중하고 귀합니다. 이제야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교회를 떠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사정이나 시험으로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지 마세요! 그것은 믿음이 소실되는 것이며 믿음의 소실은 영혼구원이라는 목표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금이 없다 한탄하지 말고 믿음이 없다고 한탄하세요! 금이 작다 탄식 말고 믿음이 작음을 탄식하세요! 믿음만 있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 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합니다.
2. 믿음은 제련으로 순전한 믿음이 됩니다.
금은 좋지만 어떤 제련과정을 통과했느냐에 따라 금의 가치, 가격이 달라집니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는 순금을 24K(캐럿)이라고 합니다. 순금이 어떤 물건이 되려면 다른 금속과 합금을 해야 합니다. 합금한 금에서 순금 함량이 75% 이하면 18K, 58.5%이면 14k⋯ 커플링이나 주얼리를 만들 때는 순금이 비싸서 다른 금속을 합금합니다.
순금이 따로 있나요? 처음부터 순금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흙 속에 묻혀있기에 불순물들 찌꺼기들이 많습니다. 이걸 불에 넣고 반복적으로 녹이면서 불순물을 계속 제거하는데 14번 제련하면 14캐럿이요 18번 제련하면 18캐럿이요, 24번 제련하면 24K(캐럿)이 순금입니다. 이런 제련과정이 없으면 순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금이 되려면 고난의 불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강한 믿음을 연단된 금으로 비유합니다.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베드로는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고난은 불입니다.‘나’라는 금에 붙어있는 찌꺼기를 태우고 없애는 불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시작하지만 버리지 못한 자아, 잘못된 습관, 죄성⋯들이 많습니다. 그냥은 쉽게 벗겨지지 않습니다. 성경공부, 학습세례, 예배, 기도⋯ 등을 통해 녹여낼 죄들이 있는가하면 불같은 시련을 통해 벗겨내야 할 도금된 비은혜 비종교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걸 벗겨내는 길은 시련, 연단입니다. 질병을 통해 교만을 버립니다. 경제적 고난을 통해 순금과 같은 믿음이 됩니다. 욥이 그런 고백을 합니다. 23장 10절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의 시련이 끝날 때에 용광로에서 연단 받은 금처럼 내가 깨끗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다~ 욥이 자신의 시련을 금 제련에 비유한 것은 불같은 시련으로 인격이 정금처럼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시련을 기뻐할 것을 주문합니다.
6절, “⋯여러 가지 시험으로⋯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우리 믿음도 정금 믿음이 되려면 연단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배교하거나 원망하면 매는 매대로 맞고 유익이 없습니다. 시련과 연단을 통해 금과 같은 믿음으로 정금과 같은 믿음의 99.99⋯의 순금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단 12:10)
베드로가 굳이 믿음을 금에 비유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당신은 몇 캐럿짜리 금신앙입니까? 아직도 14캐럿도 되지 못한 세속화 신앙은 아닙니까? 더 구워져야 합니다! 고난 뒤에 하나님이 주시는 활주로가 열려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성화의 순금신앙을 만들어 냅니다.
3. 믿음은 금처럼 쓰임 용도가 많습니다.
인류는 후기 석기시대부터 금으로 다양한 장식품과 예술품을 만들었는데, 기원전 5000년경에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3000년경에 금투구를 사용했고, 기원전 650년경 소아시아 반도 리디아왕국에서는 최초의 금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재산증식용:20%가 재산증식용입니다. 지난 35년 동안(1975년 5월~2010년 5월) 한국의 소비자물가는 9.2배로 뛰었습니다. 35년 전 1만원에 살 수 있던 걸 지금은 9만2,000원을 줘야 살 수 있습니다. 화폐가치가 그만큼 떨어진 것입니다. 자장면 값은 28.8배로 뛰었고, 남성용 구두는 6.7배로 올랐습니다. 금반지 값은 15.3배가 됐습니다. 35년 전 100만 원어치 금반지를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쓰면 1,530만 원어치를 삽니다. 금은 갈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장신구:전체 생산량의 60%가 장신구로 쓰입니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보석장신구입니다.
-산업용:전기전자 계통으로 카메라 핸드폰 세탁기 계산기 컴퓨터 프린트 자동차⋯ 반도체 기술⋯ 이외에도 의료 진단 및 치료⋯등 치과에도 세라믹이 나와 덜 사용하지만 사용량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밥에도 금가루가 들어갑니다. 100만 원짜리 도시락이 있답니다. 밥 위에 살짝 금가루를 뿌린답니다. 저도 100만 원짜리 먹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화장품에도 금이 들어가고 우황청심환은 금으로 포장합니다. 건축물에도 도금한 유리들이 들어갑니다. 곳곳에 금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금의 용도가 이렇게 다양합니다.
믿음의 용도가 이와 같습니다. 본문에만도 보세요! 가장 중요한 영혼의 구원을 전제로⋯
3절, 산 소망, 4절,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 5절,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 7절, 재림 때에 칭찬과 영광…,
8절, 믿음이 있어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신앙인을 만듭니다.
이렇게 좋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80%, 무종교자들이 국민 절반이니 우리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두류케임은 <자살론>을 썼는데, 어떤 나라가 자살을 잘하는가? 종교가 없는 나라, 부자나라입니다.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상실했기에 자살합니다. 시련과 시험을 당했을 때 견디는 힘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엄청난 타력이 있으니 믿으려면 이런 종교를 믿어야지요! 죽은 사람보다 살아있는 존재를 믿어야지요! 그래서 기독교신앙은 산 소망입니다.
결론
혹시라도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나쁜 일을 하고 졸업생들이 나쁜 행동을 했다고 서울대학교가 나쁜 학교입니까? 그 학교가 나쁘다고 자퇴합니까? 그러면 바보입니다. 기독교신앙도 그래요! 교회 누가 나쁜 행동을 하고 교회지도자들이 그릇된 행동을 했다고 믿음을 버리는 것은 금을 버리는 일이요, 믿음으로 얻는 좋은 것들을 버리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에 100% 완전한 순도의 금은 없습니다. 99.99⋯입니다. 정제된 금이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모든 금은 0.01%가 자동적으로 산화됩니다. 그래서 99.99%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이걸 ‘포나인’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99.99⋯이지만 100순금으로 인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에는 100%순도를 가진 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인도 교회도 없습니다. 우리는 조금 부족해도 금의 용도가 너무 많기에 계속 제련하면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금과 같은 믿음으로 구원도 얻고 힘도 얻고 보호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을 더욱 키워내고 큰 믿음으로 큰일 감당하고 하늘상급으로 가득 채우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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