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문의 뿌리는?
창세기 4장 1~8절
서론
오늘은 추석 당일입니다. 한가위명절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추석에 2천만 명 이상의 대이동 행렬이 있습니다. 물론 중국에선 춘절-음력 정월 초하루,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휴가에 전국민들이 이동합니다.
한국인에게 고향을 찾는 명절문화는 고향보다는 부모에게 인사하는 수준 정도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도시생활을 하신다면 고향은 추억에나 남는 것이지 별 의미는 없습니다. 사는 곳이 정들면 고향이기에 성인 대부분이 실향민인 셈입니다.
유대인은 달라요. 유대에는 명절이 많아요. 우리 명절은 1년에 설날과 추석이지만 유대인은 대표적 명절만 해도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첫 곡식 거두고 오순절, 한 해 농사를 거둬들이고 감사하는 수장절⋯ 우리로 말하면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렇게 3대 명절이 있고⋯ 그 외 명절이 여럿됩니다. 이스라엘은 명절 국가, 유대교는 절기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명절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우리 명절은 부모님 중심입니다. 대개 고향으로 가지만 꼭 고향은 아닙니다. 뿌리 개념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니까 가고, 모입니다.
유대인 명절은 고향이 아니라 성전입니다. 부모도 아들도 손자들도⋯ 12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명절에 성전을 찾아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처소로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명절뿌리는 고향⋯ 부모님⋯ 형제이고 명절 기쁨과 즐거움이 사람이고 집안 중심입니다. 그러다보니 명절 뒤끝이 안 좋아요. 이걸 명절증후군이라 하는데 지난날에는 며느리증후군이라는 말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시어머니 명절증후군 사위명절증후군 동서명절증후군⋯ 증후군이라는 말은 스트레스이고 스트레스 수치가 팍팍~ 올라가는 명절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명절은 성전에서 드리기에 국가명절이요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민족공동체 명절입니다. 명절에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신경 쓰면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도보과정이 힘들뿐이지 음식 만드는 가사노동이나 시댁가고 친정가고⋯ 눈치 보기가 없습니다. 누구 선물⋯ 이런 부담 없어요. 오직 하나님을 상대합니다. 그러니 스트레스 요인이 없습니다!
유대인 명절은 축제(祝祭)~ 페스티벌입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춤추며 푸짐한 음식으로 파티합니다. 그래서 명절축제 끝에는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새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전국민 명절이기에 국가, 마을이 새 에너지를 공급받고 새 활기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명절을 기다립니다. 에너지를 공급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 명절의 의미인 것 같아요!
한국인의 명절이 에너지를 공급받은 페스티벌이 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되는 까닭은 제사문화 때문입니다. 제사가 들어가니 과도한 음식이 필요하고⋯ 기독교인은 가족과 마찰이 생깁니다. 좋은 얼굴로 만났다가 불평하며 헤어집니다. 그러니 씁쓸하고 서로에게 미안합니다.
왜 명절문화가 스트레스 증후군이 되어버리고 말았을까요? 제가 요즘 리처드 니스벳이라는 예일대학교 심리학교수의 <생각의 지도>를 읽고 있어요! 동양을 대표하는 고대중국과 서양을 대표하는 고대그리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생각, 시선을 다룬 내용입니다. 중국 공자의 후손들과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손들의 다른 시선을 해부하는 책입니다. 동양과 서양이 같은 물질, 사건⋯을 보고 왜 다르게 해석하는가? 생각이 다른 지도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한국인은 증후군문화-기(氣)가 꺾이는 명절로, 유대인은 기(氣)를 세우는 페스티벌명절로 달라지는 것은 서로 다른‘생각의 지도’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절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지도는 어디로 가나요? 민족의 뿌리, 제사 대상이 부모, 고향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조상이 됩니다.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순간 조상은 본의 아니게 우상(偶像)이 됩니다. 우상의 성경적 의미는‘아무것도 아닌 것’‘허무하고 무가치한 것’‘보잘것없는 것’… 그러니까 헛것, 인간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헛된 존재’란 뜻입니다(사 2:20). 한문은‘우’가 짝 우(偶)입니다. 인형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조상제사는 선조부모를 대체하는 부모이름, 부모사진⋯ 등의 우상-인형을 앞에 놓고 조상 은덕에 감사하고 그 은덕으로 복(福) 받아 잘 살게 해달라는 거예요!
유대인은 달라요! 유대인에게 인간은 흙덩이 이상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신체는 맞지만 육체 속에 하나님의 형상-영(靈)과 하나님의 지혜라는 신적지식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흙덩이 속에 생기도 불어넣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뿌리는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함께 하시며 사랑, 치유, 회복⋯ 보호⋯ 공급해 주시는 만복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한국인의 조상제사는 돌아가신 부모나 선조에게 있기에 그 뿌리는 사람이며 흙입니다. 그래서 조상제사를 드려도 활력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부모에게 잘했느니, 못했으니⋯ 죽으신 부모들은 가만히 있고 고마워하다 갔는데 조상을 위한다, 부모를 위한다, 모여 놓고 싸워요! 뿌리가 부모이고 생각의 지도가 죽음의 세계, 알 수 없는 내세기에 명절은 허전하고 피곤해요. 죽은 이에게는 에너지가 나오지 않기에 에너지 공급받지 못하니 당연합니다.
조상제사가 없는 서양인들은 다를까요? 그들의 뿌리, 생각의 지도는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인간의 뿌리를 미생물로 동물로⋯ 원숭이과(科)로 뿌리와 생각을 내리기에, 그 생각의 지도에는 내가 하나님이고 내가 인생의 주인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될 때는 활력이 넘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는 벌벌 떨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낍니다. 잘못된 생각의 지도로 내비게이션을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뿌리, 생각의 지도는 하나님이고 창조론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누가 나를 보호합니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줍니다. 누가 내 자녀를 낳았나요? 자녀는 내가 낳았지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누가 내 자녀를 보호합니까? 우리 자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살아있을 때나 사후에도 우리 자녀를 보호해 줍니다.
우리 생각의 지도가 어디로 가야겠어요? 죽어서 제삿밥 얻어먹으려고 조상제사 대물림해서 내 사후(死後)에 제삿밥 잘 얻어먹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그 아이들이 명절에 유럽으로 가면 유럽으로 따라가고 일본으로 가면 일본으로 따라가서 제삿밥 얻어먹으려 합니까? 우리 앞선 선대가 얼마나 많은데 조상제사가 없으면 그들은 맨날 굶어서 구천을 떠돌아다닙니까?
진화론도 그래요! 진화론을 믿는다면 우리의 뿌리가 미생물이고 원숭이라고 믿고 살고⋯ 곰에서 시작되었다는 단군신화의 생각의 지도를 따라서 살라고 할까요? 진화론에 뿌리를 내려 동물의 DNA가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면 이런 인생이 풍성하고 품위가 있을까요?
우리의 뿌리, 생각의 지도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이 고상하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시작되는 생각의 지도를 가져야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고 날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네 사람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부부, 가인과 아벨형제입니다. 저들은 모두 하나님께 뿌리가 있어요! 생각의 지도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1절, “하와가 임신하여⋯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었다!
선악과를 먹어도 출산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담부부는 에덴에서 추방되었지만 하나님에게서 추방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에덴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고 어느 날엔가는 에덴으로 귀향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100% 누릴 날을 소원합니다.
아담과 하와, 물론 사는 것이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해산의 고통에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담은 땀을 흘리며 노동해야 하고 비바람과 맞서야 하고 짐승들과는 적대적인 관계가 되니, 늘 두렵습니다. 아내를 두고 집밖을 나서면 서로 간에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뿌리를 두었고 하나님에게로 자랐습니다. 생각의 지도가 하나님에게 있어⋯ 언제 에덴으로 돌아갈까? 여자의 후손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가인이 여자의 후손, 아벨이 여자의 후손⋯? 이 아이들로 에덴으로 회귀할 수 있을까? 하나님에게로 이어지는 생각의 지도로 버티었습니다.
부부는 생각의 지도를 아들 형제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자식들도 부모를 닮아 인생의 뿌리, 생각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도 뿌리의 대물림을 받아 하나님에게로 뿌리를 내렸고 생각지도의 대물림을 건네받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들보다 일찍 죽었다 해도 가인과 아벨은 부모에게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육신의 뿌리이지 영생의 뿌리는 아닙니다. 에덴은 땅의 천국이지 하늘의 천국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생의 뿌리가 되고 천국이 영생하는 나라임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제사드렸습니다. 제사의 대물림, 뿌리의 대물림, 생각지도의 대물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계절이 지나 추수 때에, 라는 말이지만 어떤 주석가는 의역합니다. 턱에 파릇파릇 수염이 나기 시작했을 때⋯ 일종의 사춘기이지요! 가인이 사춘기에 신앙이 흔들렸어요! 생각의 지도가 부모님의 지도와 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절,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결과는?
4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제사-예배에 관해 하나님과 가인의 생각이 달라서 가인의 제사는 외면당하고 아벨의 생각지도는 같아서 하나님에게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이⋯ 사람입니까? 제물입니까? 사람과 제물 모두입니다.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받으시는 제사나 거절되는 제사는 모두 마음정성과 제물입니다. 가인의 제사의식에는 정성이 없이 대출 드렸습니다. 제사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것입니다. 왜 꼭 피의 제사이냐? 하나님이 직접 받지도 않는데 이게 정성을 다해야하나⋯ 대충의 짐승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아벨의 생각은 반대였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생각지도가 다르듯이 가인과 아벨의 생각의 지도가 서로 간에 다른 것입니다.
그 결과, 가인의 생각은 처음에는 아벨의 제사는 왜 받으시고 내 제사는 안 받지? 근심으로 시작하고 좋은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생각이 멀리 갈수록 두 사람의 생각의 지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 놈 때문에 내 제사는 거절되었다는 그릇된 생각을 품게 되고 이걸 행동으로 나타내서 아벨을 돌려 쳐서 죽입니다.
8절, ⋯쳐 죽이니라.
원문은, 돌을 쳐들었을 때부터 아예 죽일 의도를 갖고 짓이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지도가 인류에 첫 살인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도 형제간에!
생각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우리가 생각의 지도를 잘 그려야 합니다. 항상 좋은 생각을 그려야 합니다. 내 머리,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내게서 나오는 생각은 죽이는‘사(死)각’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생각은 살리는 생(生)각입니다. 죽이는 사각이 아니라 살리는 생각으로 살고 긍정의 생각을 자녀에게 대물림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자 가인의 뿌리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뻗어나가고 생각지도가 달라졌습니다.
16절,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납니다. 뿌리를 여호와에게서 스스로 뽑아버린 것입니다. 여호와에게 둔 호적을 뽑아버린 셈입니다. 그의 뿌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고 생각의 지도도 하나님 성향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에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인간자신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14~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인간 해방운동이 르네상스Renaissance)입니다. 르네상스는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서의 해방, 종교에서, 신에서, 로마교황청에서 해방을 선언한 운동입니다. 인간의 뿌리를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두겠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르네상스의 원조라고 할까요? 가인은 아버지의 신앙에서 자유함을 누렸을 것입니다. 제사의 대물림에서 자유함을 누렸겠지요? 그의 자손들에게서 엄청난 예술이 꽃핍니다. 19절, 성(性)에서의 자유 일부다처제⋯ 21절, 인본주의 음악과 예술, 22절, 농사를 위한 기구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기구⋯ 이런 것들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도구가 됩니다. 얼마나 풍성하고 활기가 찼을까요? 아담도 누려보지 못한 창조자의 희열을 느꼈겠지요! 성(性)의 무절제, 전쟁문화, 23절 24절은 악인들이 오히려 더 득세하고 갑질을 합니다.
그 결과는,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인간에게 뿌리 내리고 사람의 생각지도로 살아 문명과 문화와 업적은 남겼지만 결과는 대홍수 재앙이요 인류 종말이었습니다. 그건 퇴폐문명이요 타락의 문화, 멸망의 페스티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생각지도로 살다 죽임 당했습니다.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는 후손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예배제사 드리는 사람이 조상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핍박과 모욕을 당합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대대로 축복을 받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다 억울하게 죽임 당했지만 대(代)가 이어집니다.
4장 26절, 셋의 아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공적인 제사와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뿌리로 하는 예배입니다. 이런 뿌리가 이어진 사람이 노아입니다. 이런 뿌리를 유지했기에 나오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았고
8장 19절, 방주에서 나왔더라⋯
20절,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죽으심으로 제사는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는 폐하고 영적인 예배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생각지도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에게 뿌리를 둔 것입니다. 우리 예배제사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행복한 예배가 되고 에너지가 발산될 것입니다.
결론
유대인은 인류 역사상 흥망성쇠(興亡盛衰) 세계역사에서 쇠(衰)까지는 갔지만 망할 망(亡)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독일… 온 유럽이 말살하려 했지만 오히려 저들 문명들이 쇠퇴해갈 뿐 유대문명은 갈수록 성장합니다. 비결은 제사입니다. 유대인의 제사는 하나님에게로 가는 생각의 지도이기에 하나님께 예배하여 살아남고 번영하고… 조상제사의 뿌리는 사람이요 귀신이기에 제사문화의 집안은 우울하고 어두운 에너지가 파생됩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원한 제사! 산 제사! 단 번에 드림으로 인류의 구속을 이루신 예수님을 중보로 예배의 제사를 통해 더욱 번영하고 축복하는 하나님 제사집안, 예배집안으로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추석에 행복하세요~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드온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기드온(사사기 6:11~14) (0) | 2023.08.10 |
---|---|
바락의 낙담(落膽)(예레미야 45:1~5) (0) | 2023.08.10 |
광야를 살다!(신명기 8:1~6) (0) | 2023.08.10 |
통 큰 감사를 하라!(골로새서 2:6, 7) (0) | 2023.08.10 |
동성애(同性愛), 부끄러운 욕심 (0) | 2023.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