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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광야를 살다!(신명기 8:1~6)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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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살다!

신명기 8장 1~6절

서론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430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다고 하니 얼마나 꿈에 부풀었겠어요? 요셉총리의 후광으로 제법 먹고 사는 히브리인들도 대부분 출애굽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 “너희가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은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이끌었던 동력이 금광(金鑛)이라면 고대근동지방에서 번영을 뜻하는 단어는 젖과 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 외에는 아무런 보장도, 지도 한 장이 없이 출애굽이라는 대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러들인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열하루 길을 놔두고 광야로 이끌어 냅니다. 약속위반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광야로 가자면 따라나서지 않을까봐 젖과 꿀이라는 낚싯줄미끼로 불러냈을까요? 어떻든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죽을 고생만 아니라 60만이 죽었습니다. 얼핏, 하나님께서 사기 친 것처럼 보여요!

 

신앙생활은 말입니다, 하나님께 사기를 당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문득문득, 아니면 인생에서 한두 번은 있을 거예요. 기도를 이루어주신다 했는데 감감무소식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했는데 만사형통이 아니라 되는 일이 없는 만사불통입니다. 인생의 그런 시기를 광야라 해도 좋고, 그런 시절을 광야를 지났다, 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만큼 힘겹고, 위태롭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막막한 시절이 광야입니다.

 

이진희 목사님은 <광야를 읽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1장 소제목이우리 인생에도 잿빛 광야의 시기가 있다”. 잿빛은 회색빛, 기분이 우울해지면 세상 색깔조차 어둡게 보입니다!

어때요? 지금 살만해요? 하늘이 파랗게 보이나요? 초원을 걷고 있네요! 힘겨운가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얼음장 위를 걷고 있나요? 그래서 세상이 잿빛으로 보입니까? 그거 광야입니다.

 

인생은 등산이라고 해요. 사실은 등산보다는 인생은 광야를 사는 것이고 광야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참 힘드네,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문득문득 있어요. 그런 분들은 지금 광야를 걷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중에도 지금 광야를 걷는 분들이 보여요!

1. 광야는?(what)

한문에서 광야(廣野)는 넓을 광() 들 야(), 넓은 들판입니다. 국어사전은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 넓은 들이 풀과 물로 채워졌다면 더 이상 광야가 아니라 초원입니다. 광야는, 넓은데 텅 비어 있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넓고 아득해요. 그래서 더 지치고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런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애굽생활 자체가 광야가 아니었을까요? 이방민족이라 깔보고 왕따 당하고 갑질 당하고 남아(男兒)는 죽임 당하고 성읍을 건축하는 노동에 동원되고 딸은 노예몸종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되니 사는 것이 광야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이들에게 가나안복지로 가자! 라는 모세의 기치(旗幟)는 그야말로 장밋빛 약속이지요!

 

그런데, 막상 홍해바다를 건넜더니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로 인도합니다. 광야에서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광야에 먹을게 있어요, 쉴 곳이 있어요? 나중에는 가나안입성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 사실을 알면서 광야에서 40년을 사니, 죽을 맛이지요

 

광야가 주는 이미지들은 무엇입니까? 

거칠다, 없다, 고생, 피로, 두려움, 배고픔, 위협, 갈증 

그러면서도 걷고 또 걷고 

좋은 이미지는 없어요. 그래서 광야를 건너지 못하고 사람도 죽고 낙타도 죽고 때로는 군대도 죽어요! 이런 광야 길이 40년입니다.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 1:19)라고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광야는 어떤 이미지일까요? 돈 없으면 광야지요! 병 걸리면 광야지요! 늙으면 광야지요! 빽 없고 배움 때문에 차별 당하는 인생이 광야지요! 희망과 기대가 없이 막막하고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면 그게 광야지요. 누구나 한두 번씩은 건너야 하는 광야가 있습니다.

2. 왜 광야?(why)

하나님께서 왜 광야로 보내셨을까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일을 정탐해놓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 못했으니 하루를 1, 40일이니까 40년을 방황하게 하신 거예요( 14). 지나친 처사 아닐까요? 아무리 불신앙에 벌을 내려도 어느 정도해서 그래도 가나안 입성은 보장해 주셔야지 그거 좀 불평하고 불신했다고 60만을 다 죽여요? 정탐꾼 두령 10명만 죽여도 될 텐데요.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정탐보고에 대한 보복으로만 40년 광야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홍해 앞에서 보였던 반응에서 알아봤습니다. 400년 애굽생활에 애굽 마인드가 되어버렸어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 가나안에 가봤자 하나님왕국, 메시아를 유통시키는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교육 갖고도, 훈련 갖고도, 예배 갖고도 안 될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해요? 이들은 가나안에 가면 안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애굽 식민지를 만들어 버릴 기성세대 60, 죽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40. 인류문화학에서 40년은, 이념이 문화가 의식이 바뀔 수 있는 시간이랍니다. 

이걸 아신 하나님께서는 기성세대는 포기하고 출애굽 때 20세 이하, 광야에서 출생한 신세대를 키워 가나안 왕국의 주역들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독하게 훈련시킨 것입니다

 

광야처럼 최적의 훈련 장소는 없습니다.

 

-광야는 단절된 곳입니다. 세상과의 단절, 애굽과의 단절, 가나안 세속문화와의 단절, 오직 하나님문화만이 있는 광야에서 순전하게 하나님을 받아들이라고 불기둥 구름기둥 등으로 인도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했고 만나게 했습니다.

 

-광야는 소음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소음은 잡음입니다. 잡음은 잡스러운 소리요 해로운 소리소문주장들입니다. 홍해 앞에서 하나님께, 모세에게 원망하고 불평했던 소리는 영음(靈音)이 아니라 소음입니다. 그거 정리해야 합니다.

 

-광야는 오직 하나님만 있습니다. 광야는 정착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정을 둘 것이 없고 욕심을 부릴 것도 없습니다. 나그네들은 짐이 없을수록 좋고 가벼울수록 걷기가 편합니다. 광야는 잡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됩니다.

 

-광야는 침묵과 묵상의 최적지입니다. 광야는 세속문화와 인본주의가 단절된 곳! 어떤 소음-잡음도 돌리지 않는 곳, 잡일도 없는 곳! 그러기에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교제를 나누는 곳! 이스라엘은 40년을 오직 하나님의 일과 영음에만 몰두했고 요단강 앞에서 광야를 졸업할 때는 제사장 법궤를 따라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믿습니다! 

 

단강으로 들어섰고 요단강물은 갈라졌고 단 한 명의 익사자도 없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광야를 제대로 건넌 사람들만이 요단강도 제대로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밟는 축제의 날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로 인도한 섭리요 광야가 주는 축복입니다

3. 광야를 어떻게?(how)

인생에서 광야는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광야, 어떻게 받아들이고, 건널 것입니까? 60만처럼 불평하고 잡소리만 듣고 잡음만 내다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성화 단계도 제대로 올라서보지 못하고 그럭저럭 교회다니다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까?  

 

광야는 살라고 주신 것도 아니고 죽으라고 애굽에서 불러낸 것도 아닙니다. 광야는 지나라고 주신 땅이요 기간입니다. 광야는 더 나은 세상, 더 성화된 신앙, 더 나은 축복 인생을 위해 잠시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광야고난이 선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삼키는 괴물이 되고 마는 것은 광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광야(廣野)미드바르입니다. 이는로부터’‘와 함께란 전치사  말씀’ ‘사건이란 다바르란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역사(사건)를 체험하는 시간이자 장소입니다. 육안으로 광야는 나무나 풀 생명이 자라기 힘든 역경의 장소입니다. 60만은 그것만을 보았기에 불평불만 잡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광야는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신앙 성장을 위해 말씀으로 훈련하는 사관학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졸병이 아닙니다.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내고 세계구원사의 역사를 펼치는 무대에서 주역으로 살아야 할 개척자요 모두가 장교들입니다. 그래서 신세대를 광야에서 독하게 40년 훈련시키며 걷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광야입니까? 성경에서 쓰임 받은 인물들은 광야를 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온유함을 배웁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광야에서 담력을 쌓고 메시아시대를 열었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이 보이는 광야로 나가 사역을 재정비합니다. 유대인에게 광야는 하나님의 정기(精氣)를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광야를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은혜로 광야를 살아야 합니다.

2, 이는 너를 낮추시며 3, 너를 낮추시며 나를 죽여야 낮아집니다. 자아가 깨어지는 것만큼만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낮추는 자 겸손한 자에게 흘러내립니다.

 

이런 저런 일이 되지 않아 콧대가 낮아졌습니까? 겸손을 배우는 기회의 광야입니다. 겸손을 배우면서 제발 은혜생활을 하라는 광야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를 벗어나게 해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면서 축복 달라고, 재산이 증식되게 해달라고, 잘살게 해달라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광야는 그런 기도를 하는 기간이 아닙니다. 가나안에 가면 얼마든지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가 중단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은혜를 거두지 마시라고 기도하고 은혜를 사모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 더 낮아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복은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위로부터 내려야 합니다. 복을 받지 못하면 불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불통인생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복을 구하지 말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무섭고도 거친 곳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광야를 살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율법조항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광야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왜 광야에서 살았나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왜 광야로 나갔나요? 요한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함께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배부르면 하나님의 음성이 덜 들리고 그나마 변질됩니다. 힘들면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제대로 들립니다. 그래서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따라온 잡족들이 있습니다( 12:38). 잡족은 잡종입니다. 잡종은 잡스런 소리를 냅니다. 그 말이 아무리 백성들에게 듣기 좋고 그럴듯한 포플리즘 주장이지만 잡소리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영음(靈音)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잡음 좀 내지 말고 영음(靈音) 내면서 사세요! 영음을 들으려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광야는 소리를 내는 곳이 아니라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영음이 나옵니다. 영음을 듣지 못하니 잡족처럼 불평과 불만이라는 잡음이 나온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에서 영음(靈音)을 들을 수 있도록 잡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음이 들립니다.

 

 영적 근력(筋力)으로 광야를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 앞에서 근력이 약했습니다. 장애물에서 금방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 근력을 키웠더니 근력을 키운 세대는 끄떡하지 않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광야가 만들어 준 근력이자 하나님께서 독한 훈련과 침묵의 묵상을 통해 주신 근력입니다

 

광야가 힘들다 칭얼대다가도 이거 아니다 하세요! 지금은 어려운 시절이지만 근력을 키우는 광야! 요셉의 야성은 웅덩이에서 만들어 낸 근육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웅덩이 근육이 애굽 감옥에서 견디어 내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이 우리를 강한 야성(野性)신자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세속화를 거절하는 광야의 요한과 같은 야성(野性)신자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 야성신자만이 가나안복민이 됩니다.

결론

마더 테레사 수녀. 사역을 하다 힘드니까 이런 고백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나에게는 그 침묵과 공허가 너무 큽니다. 나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기도할 동안혀를 움직이려고 해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원합니다.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不在)가 느껴지는 광야가 찾아온 것입니다. 사역에만 열중하고 일만 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제 때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니 에너지가 고갈되고 영적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사막처럼 말라버린 영혼, 광야처럼 갈라져 버린 인생 사방 어느 곳을 봐도 풀도 물도 없고 하나님의 불기둥도 구름기둥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광야 더 이상 만나도 없는 아침의 광야, 메추라기도 없는 막막한 저녁의 광야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부재!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답하십니다. 신명기 1!

 

31,“광야에서도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오래 전에 아내의 중병과 함께 내가 걸었던 그 막막했던 광야! 내 인생에 찾아온 인생의 비극... 그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그래서 외롭고 지치고 힘들고 사역중단까지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참 잘 보여요! 그때의 하나님이 이제는 왜 그리 잘 보이는지 광야의 은혜가 지금의 평지의 은혜보다 훨씬 큽니다. 같이 아파해 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그래서 그 광야에서의 내 고통이 힘듦이 그만했던 것 같아요! 그때 광야에서 주셨던 그 은혜로 지금 평지에서 목회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평생 살면서 고생하라고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광야를 지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광야를 통과하려면 출구방향을 잘 봐야 해요. 아무 데서나 나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출구로 나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단절과 침묵과 묵상 이거 훈련 잘 받아야 해요! 훈련의 광야에서 잡음이나 내면 안 됩니다.

 

이제 광야가 끝나고 있네요! 저기 요단강을 건너면 거칠고 무서웠던 광야도 종점입니다. 광야를 건너고 뒤를 돌아보면 우리 광야에서 안아주시고 만져주시고 앞장서면서 물도 찾아주시고 풀도 찾으면서 쉴 곳을 챙겨주시는 하나님을 더 많이 보게 되고 광야의 은혜로 평지의 행복한 복민(福民)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힘들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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