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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신앙의 귀감(龜鑑) 가이오 장로(요한삼서 1:1~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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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귀감(龜鑑) 가이오 장로

요한삼서 1장 1~4절

서론

본문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편지입니다. 학자들은 가이오가 장로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주교(主敎), 버가모교회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속에 있는 사랑의 친밀함, 가이오 장로님에 대한 신앙적 애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1절, 사랑하는 가이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

2절, 사랑하는 자여…

5절, 사랑하는 자요…

11절, 사랑하는 자요…

 

얼마나 가이오가 사랑스럽던지 2절에서 그 유명한 구절로 팍팍~ 축복을 아끼지 않습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야말로 축복 폭탄! 대박의 축복을 축원하는 것이지요! 

31년 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면서 누구를 사랑하는 자여…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설교 준비를 하면서 내내 사랑의 이름들, 사랑스런 가이오의 얼굴을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오랜 세월을 함께 해주었던 가이오들… 예배당 매입과 리모델링, 수양관 때 헌금해주고 정성 모아주었던 가이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힘이 되었던 가이오들, 지금도 말은 없지만 변함없이 묵묵히 함께 해주는 가이오들… 한두 줄의 핸드폰문자로도 기쁨을 주는 사람들… 모두가 내게는 사랑하는 가이오 장로들이요 이래저래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 가이오 장로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이지요!

 

가이오는 어떤 장로님이고 어떤 일을 했기에 요한에게 그리도 사랑하는 자여… 사랑의 대상, 고마움의 대상, 그리움의 대상… 모두에게 귀감(龜鑑)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요?

1. 가이오는 진리를 ‘아는’ 자였습니다.

4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도 요한에게 가장 기쁜 것이 무엇인가, 요한은 항상 진리 중심으로 목회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가장 기뻐합니다. 그런 요한 사도에게 사람들이 가이오를 만나고 와서는 가이오 장로가 바른 진리를 믿으며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가이오 자신이 말한 것이 아니라 그를 만났던 남들이 말해주기에 더 확실합니다.

 

3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진리가 무엇일까요? 빌라도가 십자가를 지기 전에 고발된 예수님을 심문합니다(18장).

빌라도: “…네가 왕이 아니냐”(37절)

예수님:“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빌라도:“(진리?)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한글사전에서 진리(眞理)는‘참된 이치’‘참된 도리’입니다. 도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할 자세입니다. 학생의 도리, 남편, 아내의 도리… 이건 책임감이겠지요! 종교에서의 진리, 참된 이치는 도덕이고 윤리이고 사회봉사… 등이겠지만 기독교복음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해 빌라도에게는 답하지 않았지만 제자들에게는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진리는‘참’‘진실’이라는 말로 거짓의 반대입니다. 천국 길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영생을 모르면서 영생을 가르침은 참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 그러니 천국 길을 알고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압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압니다. 진짜 방법을 알려주셨기에 진짜이고 참입니다. 참이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른 이치요 참된 도리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혈육을 입었지만 죄가 없습니다(히 4:25). 죄가 없으니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리다! 하실 때는 내가 참 하나님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아직은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만큼 알아들을 수 있는 영성이 없기에 에둘러서 말한 것입니다.

 

가이오 장로는 예수님을‘참’으로 믿었습니다.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통해 보여주는 예수님의 본질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이전에 예수님 자신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神性), 예수님은 참 사람이다(人性), 사도들의 가르침을 믿은 것입니다.

 

이거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에 이단들이 들어왔습니다. 가현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인성(人性), 육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물질인 육신을 입을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가현설은 예수님의 육신을 허깨비, 유령으로 보았습니다. 피도 살도 없는 허깨비 유령, 이런 유령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예수님의 육신이 부정되기에 예수님의 육신적 부활도 부정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해 죽으신 대속의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초대교회에 먹혀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성을 강조하다보니 인성을 부정하는 우(愚)를 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이 완전히 부정되고 인류의 구원사역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단 중에서도 대(大)이단입니다.

율법주의를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로 인한 죄사함과 부활로 인한 칭의의 복음을 버리고 행위구원이라는 인본주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이런 이단적 흐름과 인본주의가 팽배해지고, 사도 요한도 이런 일로 염려하는데 가이오를 만나고 온 사람들로부터 하는 말이…

 

3절, “…진리 안에서 행한다…”

이단적인 가르침에 휘둘리지 않고 예수님을 참 하나님! 참 사람이 되신다는 진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조금도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기에 대단히 기쁘고 좋다, 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역에 치우치거나 육신의 일이 잘되다보면 영혼에 대해 소홀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너무 건강해서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을 마음껏 기원해도 균형을 잘 잡아주는 믿음이었기에 매우 기쁘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고 출세해도, 부모에게 명예와 좋은 옷, 선물을 주어도 인간의 참된 도리, 자식의 참된 도리… 형제의 도리, 그걸 행하는 것이 더 기쁩니다. 크리스천 부모는 어떤 도리보다 진리 안에서 예수님 바로 믿으며 바로 알며 바로 사는 도리가 참 기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바른 이치 바른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인으로 바른 도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그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이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굳게 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른 믿음! 바른 신앙으로 굳게 서서 여러분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목양하는 목사의 기쁨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제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2. 가이오는 진리를 ‘행하는’ 장로였습니다.

가이오는 바른 믿음에 굳게 선 장로님입니다. 거짓교사들이 변질된 복음을 전했고 이단교리가 번졌지만 가이오는 복음을 고수했습니다. 가이오의 믿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3절,“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만이 아니라 그 진리를 행위로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많은 신자들이 있었지요. 그들은 믿음을 수호했지만 예수님의 인품, 삶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활 주님은 믿었지만 부활을 살지 못했습니다. 진리는 알았지만 진리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헉슬리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인생의 위대한 목표는 지식이 아니고 행동이다.” 진리의 능력은 지식이 아니라 행함에서 나오고 실천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만 키워나가지 행위로 그 진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죽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어느 독방에서 죄수가 성경을 100독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외웁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독방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오는 진리를 행동으로 나타냈습니다. 그것은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일이었습니다.

 

5절,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형제와 나그네된 자들… 이들은 순회전도자, 핍박을 받아 마을을 떠나 유랑하는 신자들입니다. 또한 이방 나그네들입니다. 형제와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중요한 사역이요 덕목이었습니다(히13:2). 가이오는 진리로 살기 위해 이들을 대접했습니다. 꾸준한 봉사였고 무조건적인 봉사였습니다.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이단들의 피해를 막으려는 요한의 경고로 나그네들을 경계하고 영접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2:10)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11절)

 

그래서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가이오의 신실한 환대 행위는 일부 지도자들! 사람들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겪게 됩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실력도 있고 지식도 있고 믿음도 있었지만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이오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로 자기가 그 교회의 으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12절, 사도요한이 데메드리오를 보내니까 자기의 영향권이 줄어들까봐 대적한 것입니다.

요한이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9절,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절,“…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절,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같은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으니 가이오 장로도 대접하는 일이 참 힘들었습니다. 인간 본성의 희생, 인간적인 봉사, 으뜸이 되려는 마음으로 했다면 오래가지 못했을 거예요.

가이오는 상급도 칭찬도 자랑도 어떤 반대급부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따르는 심정이었기에 오랜 세월 꾸준하게 말없이… 그의 대접을 받고 왔던 사람들이 정말 그 교회에 귀한 장로님이 계시더라고, 그 이름은 가이오 장로님이더라고… 그런 칭찬이 요한의 귀에까지 들린 것입니다. 그런 소문에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서 요한은 편지를 써서 그를 알아준 것입니다. 

 

3절,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한 늙은 뱃사공이 두 개의 노를 젓는데 노에는 이름이 있었어요. 한 쪽 노에는‘신앙’, 한쪽 노에는‘행위’나그네가 물었어요. 왜 노에 신앙과 행위라는 단어가 쓰여 있습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랬더니 늙은 뱃사공이 답합니다.

“한쪽 노만 저으면 나룻배가 나아가겠습니까? 두 개의 노를 좌우에서 저어야 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에 행위가 따라야 바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행동은 인권운동가요 사회사업가입니다. 진리가 없는 것이지요!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머리만 굵어지고 지식만 쌓으면서 비판의식만 늘어나면 설교자를 맥 빠지게 하지요!

 

<석봉 토스트>의 김석봉 사장은 중학교 졸업자로 대학을 졸업한 유치원 교사와 결혼하고 200만원을 들고 토스트 사업에 뛰어들어 노점상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연간 매출 1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전국 가맹점만도 300여개.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점에도 입점하는 기적의 인생입니다. 어떻게?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축복을 받은 비결도 있습니다.

 

김석봉 사장은 믿음만 아니라 바르게 살고 바르게 사업을 합니다. 노점상 원칙이 있습니다.

 

-첫 손님에게 판 수익은 무조건 선교 예물로 드린다! 손님이 여러 명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날 첫 수익금은 별도로 모았다 극동방송에 전파선교기금으로 보냈습니다.

 

-하루 수익의 십일조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 이 돈으로는 고아원, 독거노인, 노숙인 등 불우이웃을 돕습니다.

 

-장사는 오전까지만 한다! 오후는 주변의 다른 상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단속반이 와서 자리를 빼라면 무조건 뺀다! 그러자 단속반과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돈에 관한 원칙, 이웃들에 대한 배려의 원칙, 준법정신에 대한 원칙! 이게 진리 안에서 행하는 생활신앙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제가 듣는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간증이면 여차저차 하나님을 잘 믿어 부자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보다는 생활에 원칙 있는 이야기,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생활실천의 교인들이 있을 때 목사는 참 사랑스럽고 목회가 보람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기독교기업체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기업체의 요구는 10명의 추천서를 제출하라는 것입니다. 사장과의 면담에서 사장이 말했습니다.

“모든 교인들만의 추천서이다. 이들은 주일에만 예배당에서만 당신을 아는 자들이다. 왜 주중에 만나는 사람들의 추천서는 없는가?”

 

우리 행함이 예배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나요? 예배당 안에서조차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그러면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근심이 되고 근심덩어리가 됩니다.

 

우리는 바른 진리와 진리 안에서 바른 행함이 있는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입니까?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고 행동은 있는데 진리에 서지 못하는 반쪽 믿음은 아닙니까?

결론

가이오 장로님. 그는 한 교회의 귀감(龜鑑)이 되는 장로님입니다. 귀감은, 누군가를 잔뜩 추어줄 때 활용하는 말입니다. 국어대사전은‘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라 풉니다.

 

신사임당은 한국 여성의 귀감이다! 우리교회에서 믿음에 귀감은 누구일까요? 겸손의 귀감은 누구일까요? 봉사의 귀감은? 헌금의 귀감은 누구일까요? 우리교회에서 주의 종을 섬김에 귀감은 누구일까요?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는 일에 귀감이 되는 분은 누구일까요?

 

나는 어떤 일에 귀감이 되고 있는가? 생각해 보세요! 최고의 귀감은 진리를 바로 알고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사는 생활신앙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가이오 장로님, 가이오 성도님입니다. 이런 귀감자들이 많이 있을 때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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