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부흥회가 되려면?
누가복음 5장 1~11절
서론
인류 역사에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컴퓨터가 아닐까요? 컴퓨터가 없었다면 인터넷 자체가 안 되니 컴퓨터야 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입니다. 인류 문명은 컴퓨터 이전과 이후,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분류해도 지나친 주장은 아닐 것입니다.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 만들어 낸 애플 컴퓨터는 창업주 스티븐 잡스의 비전으로 시작됩니다. 그의 비전은 간단합니다.
“모든 학생들 책상 위에 컴퓨터 한 대씩 올려놓겠다!"
애플사는 심각한 경영난으로 도산위기에 처합니다. 잡스는 경영의 귀재(鬼才) 펩시콜라의 존 스컬리 회장을 찾아가 펩시를 그만 두고 애플컴퓨터를 맡아 달라 간청합니다. 최고의 연봉을 주겠다! 노우! 집과 모든 것을 주겠다! 노우! 절박한 스티브 잡스는 최후로 선언합니다.
“스컬리 회장! 남은 생애를 설탕물 만드는 데 보낼 거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거요?”
그 한 마디에 스컬리는 펩시를 떠나 애플사로 옮깁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애플컴퓨터는 재기(再起)에 성공하면서 세계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인생에서 어쩌다 듣게 되는 한마디 말은 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합니다. 스컬리가 애플컴퓨터와 스티브 잡스를 못 만났다면 돈은 벌겠지만 세계를 바꾸는 주역은 될 수 없었겠지요.
주님도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고기 잡다 갈래? 사람 구하다 갈래?”
베드로는 사람 쪽을 택했고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으며 교황청의 주장대로라면 1대교황이 된 것입니다.
오늘 저녁부터 부흥회를 갖습니다. 부흥회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킨 효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흥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은혜를 받아 죄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부흥회에서 결단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부흥회는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본문도 어떻게 보면 부흥회입니다! 강사는 예수님, 장소는 갈릴리 작은 고깃배… 참석자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람들…. 그물을 정리하며 대충 말씀을 듣던 베드로가 이 날 엄청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은혜였나요? 변화의 은혜입니다. 이 날 이후 다른 인생이 된 것입니다.
1. 베드로의 변화는 참석에서 출발합니다.
부흥회에 누가 은혜를 받는가? 참석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는 첫 비결은 참석하는 거예요! 많이 참석하면 은혜를 받을 기회와 비율이 그만큼 많은 것입니다.
부흥회를 열어놓고 가장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담임목사입니다. 지금까지는 계속 퍼주는 설교만 하다 10시간을 다른 분의 설교를 듣는 것은 비어있는 심령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석률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강사에 대한 최고의 대접은 참석률입니다. 그래서 노심초사 은혜를 받는데 지장이 많습니다.
다른 때는 저녁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부흥회는 꼭 나오세요! 강사님들은 최고의 명설교만 갖고 다닙니다. 그러니 시간마다 말씀이 모두 좋습니다. 제 설교야 동네 설교지만 부흥강사들은 전국적인 설교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듣는 설교와는 또 달라요! 사실 설교는 육성으로 들어야 해요! 인격대 인격으로 만나야 그게 진짜 설교거든요! 텔레비전 설교에 맛을 들이면 자꾸 인스턴트 신앙체질이 됩니다. 지식중심의 믿음이 된다는 거예요! 위험합니다.
부흥회 강사는 부흥회가 전문이기에 우리 실정을 알고 한국교회의 형편을 압니다. 교인들마다 교회마다 사정이 다 비슷합니다. 저는 부흥회 때나 헌신예배 때 강사들과 한번도 사전에 조율해 본적이 없어요! 교회 리모델링이나 강화도 자연생활체험관 건축 때도 부흥사를 초청해서 건축헌금 작정이나… 이런 거 해 본 적이 없어요. 내가 할 일을 왜 다른 분에게 부탁해요? 내가 못할 일이라면 하지를 말아야지요! 그냥 사심 없이 말씀만 전해주기를 원해요!
부흥회 강사님들은 교회생활, 신앙생활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전달하기에 모두에게 은혜가 됩니다. 열 시간 계속하니까 은혜가 고이고 쌓이면서 은혜의 댐에 가득가득 채워집니다. 그래서 은혜가 풍성하게 되고 은혜가 무르익으면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말콤 글레드웰은 <아웃 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했습니다. 하루 세시간, 10년을 뭔가에 시간을 투자하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견디면 <티핑 포인트>가 일어납니다. 티핑 포인트는 ‘갑자기 뒤집히는 꼭짓점’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여섯 번까지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일곱 번째에 온 몸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티핑 포인트입니다.
베드로는 부흥회에 참석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응답의 비결이 기도해야 받는 것처럼 부흥회도 일단은 참석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모두들 꼭 와서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베드로는 말씀대로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 달인(達人)입니다. 물때를 알았고 고기떼의 흐름을 알았습니다. 어느 곳에 고기가 많다는 것을 훤히 꿰고 있는 1등 어부입니다. 공부는 1등을 못하지만 고기 잡는 것, 회 뜨고 생선요리는 최고입니다. 바다는 생업이고 부(富)와 명예와 노동의 대가를 가져다 준 희망의 장소입니다. 육지에서는 자신 없지만 바다에만 나가면 자신감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그물을 던졌지만 5절 ‘잡은 것’이 없어요. 뭔가 불길해요. 고기 씨가 말랐는가, 실력이 다했는가… 1인자 자리를 내주어야 할 때인가…. 침울한 마음으로 2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사전포석입니다. 베드로가 실패자가 아니면 계속 ‘시건방’을 떨었겠지요. 그래서 주님에게 고분고분하도록 베드로에게 실패의 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잘 나가던 일에서 실패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다른 무엇을 탓합니다. 그 사람 때문이야… 정부 때문이야… 그리고 베드로처럼 고기를 못 잡은 것은 내 탓이 아니라 그물 탓이라며 바다 탓이라며 쭈그리고 앉아 쓸쓸해합니다.
베드로의 실패, 그물을 깁는 초라한 모습, 희망이 사라지는 불길한 예감…, 이런 외로움이 주님께서 접근하기 쉬운 마음입니다. 그걸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패 중에서 성공적인 삶으로 터닝-유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지라”고 했습니다. 갈릴리바다 1인자 베드로에게는 웃기는 일입니다. 이 양반 목수 일만 하더니 바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네…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날 밤의 실수가 복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5절 “밤새도록 던졌다”는 토를 달면서도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6절, 고기를 잡은 것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9절 “고기를 잡힌 것을 보고 놀라고”-경악,
10절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하루 만에 역전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역전이 일어났을까요? 말씀대로 했어요! 내 생각을 버렸습니다. 내 생각은 왼쪽 같았지만 예수님이 오른 쪽이라니까 오른 쪽으로 던졌어요! 내 생각에는 깊은 데로 갈 필요가 없어요! 갈릴리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에요! 그러니 그 고기들이 호수 전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이것이 바다의 상식이고 지식입니다.
그런데 목수선생이 깊은 데로 가자는 거예요! 말이 안 됩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깊은 곳으로 갑니다. 지금은 예수 선생이 바다에서도 선생님입니다. 그러니 자기 지식! 상식을 버리고 깊은 곳으로 노를 저었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은혜를 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제 설교에 익숙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처음 한두 시간은 강사님에게 집중하지 못합니다. 강사들은 담임이 하지 못하는 말씀도 해요! 그러다보니 책망도 나오고 헌금 이야기도 나오고… 때로는 귀에 거슬립니다. 마음속으로 자꾸 따져요!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처럼 밤새도록 한 마디도 잡지 못한 곳이고 방법이지만 당신이 하라니까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 순종과 신뢰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고 사랑해요! 목사님들이 오셔서 우리교회를 좋아해요! 두 가지를 말해요! 밝은 에너지와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가 아주 좋다는 거예요! 이번에 하나 더 부탁할게요! 세게 반응들 하세요! 아멘! 아멘! 으로 화답하세요! 아멘! 풍년이 들면 강사는 당신 자신에 대한 신뢰로 알고 더 편안하게 마음 놓고 설교합니다. 그러면 모두에게 은혜가 되지요! 아멘 풍년이 은혜풍년이 될 줄 믿습니다! 끄덕끄덕 풍년이 축복 풍년이 될 줄 믿습니다.
3. 베드로는 회개의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기적의 고기’를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가 잡았던 어떤 고기보다 최상품입니다. 어째 이런 고기들이 갈릴리 바다에 있었을까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이 잡혔으니 1년 수입액을 한방에 올려버린 것입니다. 대박입니다!
놀라지 않으면 이상하지요? 그래서 베드로도 놀라고 동업자들도 놀랐습니다. 그러나 진짜 놀램은 이제부터입니다. 8절, 베드로가 털썩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런 경우를 ‘생뚱맞다’고 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이럴 때는 회를 뜨고 초장을 발라 “잡숴보세요. 갈릴리바다 회맛이 최고입니다!” 다음에 술을 권하고 마음을 떠봅니다.
“동업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나는 배와 그물과 노동력을 대고 당신은 고기가 어디에 있다는 정보를 주고 지금처럼 고기를 잡으면 4:6 비율로 나눕시다. 내가 배와 그물을 댔으니 6입니다.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5대 5로 합시다. 그것도 안 되면 에잇 썅! 3대 7입니다.”
이게 베드로에게 어울리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흥정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술기운도 아니고 제 정신에서 또렷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
왜 이랬을까요? 예수님과는 오늘이 첫 대면이 아닙니다. 요 1장에, 동생의 안내를 받아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몬! 앞으로 네 이름은 게바다”라고 했습니다. 게바는 베드로-반석입니다. 시몬이 조약돌이라면 베드로는 반석입니다.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시큰둥했습니다. 내가 무슨 반석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이런 예언자를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왔는데 지금 나를 찾아온 예수는 갈릴리바다의 바닥까지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기가 떼로 몰려다니는 바닷길은 알았지만 예수님은 그 고기들을 몰고 다니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분을 ‘하시’하고 내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을 몰라보았다니….
그러니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엎드린 것입니다. 널뛰는 갈릴리의 풍랑조차 베드로를 무릎 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라는 목수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자기를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성경이건 기독교 역사이건 나를 알고 내 죄성을 고백하는 이들이 구원은 물론 위대한 사역자가 되고 성화의 삶을 살았습니다.
길선주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
주기철 “이 놈이 주님의 차지하여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
베드로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무엇입니까?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몰라서! 당신의 마음을 몰라서! 당신의 부르심을 거절해서! 당신을 내 마음에서 배척했던 것을 정말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6절, 그물이 찢어졌으면 고기가 도망 갈 줄을 알고 거기에 연연해야 하는데 그의 관심은 더 이상 고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무시! 깔봄! 영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 자기의 형편없음에 대해 그는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부흥회의 맛은 여기에 있습니다. 설교가 자꾸 귀로만 갑니다. 설교는 귀가 아니라 가슴이고 눈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성의 눈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고백처럼 나는 86년 묵은 죄인입니다.”묵은 죄인이라고! 잘못 살았노라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으로 일어냐 합니다. 이것이 부흥회가 주는 변화입니다.
결론
부흥회는 마음을 튜닝! 믿음을 튜닝하는 것입니다. 튜닝(tuning)은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수신기나 수상기의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동조(同調)하여 특정한 방송국을 선택하는 일,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르는 조율을 뜻하는 음악용어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부흥회에서 막 살았던 20년의 인생을 튜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족장으로 살기 전에 야곱의 인생을 튜닝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3년 후에 다시 이 바닷가 부흥회에서 튜닝합니다.. 비록 예수님을 부인한 실패자였지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튜닝하시면서 사역자로 세우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튜닝해야 할까요? 너무 오랜 믿은 것이 죄일까요? 나는 86년 묵은 죄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모든 설교 내용을 다 안다고… 우리는 그렇게 자만했던 사람들은 아닐까요? 알고 있는 것과 사는 것은 다릅니다.
이번 부흥회를 통해 우리 믿음을 튜닝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는 백성들이 됩니다. 설탕물만 만들다 인생을 그만 둘 수 없었던 스컬리 회장! 컴퓨터를 통해 세계의 위인이 된 것처럼 그냥저냥 누구에게도 감동 한 번 못 주고 믿음생활을 마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신앙생활의 공회전만 하다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나이 값! 밥값은 하다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을 리모델링하는 2015년의 영성부흥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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