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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예수를 얼마나 아십니까?(요한복음 1:29~3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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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예수를 얼마나 아십니까?

요한복음 1장 29~34절

서론     

우리교회에서 피스메이커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열네 명이 수강하는데 참 좋아요. 강의 요지는 갈등이 일어났을 때 세 반응이 있습니다.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 중재해서 화해시키는 사람 그리스도인은 중재자라는 거예요. 모두 이런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한국교회가 너무 성경공부에만 몰두했고 사역중심 교회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교회가 인격적 신앙인이 되는데 부족한 점들이 좀 있습니다. 은사가 있는 것만큼 인품이 없고 열심히 믿는 것만큼 성품이 따라주지 못한 것이지요! 참 아쉬워요!

 

강사 목사님은 기독교중재화해원 사무총장인데 교회 안의 갈등지수, 고소고발 지수가 도()를 넘었답니다. 목사님들끼리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노회사건으로 총회사건으로 고소고발해서 법정에 나오는데 비신자 판사 앞에서 추태를 부려 크리스천 판사들이 교회 나간다는 말을 못하겠다는 거예요. 창피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강사목사님이 물어요!

 

우리가 예수 믿는 거 맞습니까? 도대체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한국교회가 너무 천당신학에 치중합니다. 예수님 믿는 목적을 천국행과 세상축복에 두고 주일에는 교회 나가고 평일에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렇게 삽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부흥했어요! 이게 영적 부흥일까요? 졸부(猝富)한국교회, 졸부(猝富)신자들은 아닐까요?

 

미국에서 12년 살다 온 중학생이 영어시험에서 130등 했습니다. 그것도 한국어 질문을 잘못 이해해서 두 개 틀려 92점 맞았는데 130등입니다. 한국아이들이 얼마나 영어를 잘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대한민국 중고생이 100점 맞았다고 영어를 잘 하고 있을까요?

 

일반인에게 영어의 생명은 생활회화입니다. 단어암기나 문법보다 대화능력, 회화 영어가 중요한데 한국의 영어공부는 외우고 베끼고 시험 보기에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 지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영어공부를 중학교 3, 고등학교 3년 합 6년으로 한국학생들은 날밤 새우고 있습니다. 영어교육에 대한 기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이런 모양은 아닐까요? 신앙은 구원과 함께생활을 위해 있습니다. 성경은 읽음으로 구원을 깨닫고 구원받은 자들의 생활지침인데 성경지식 중심, 성경단어 이해 중심에 머물러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얼마나 삶이 변화되었는가?’것보다는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그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도로얼마나 변화되었는가?’보다얼마나 오래 기도하는가?’‘얼마나 듣기 좋게 유창하게 기도하는가?’그런 면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지식교리중심의 신앙생활과 문법위주의 영어공부! 무엇이 다를 것입니까?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예수님의 인격을 배우고 그 인격을 밖으로 표현하고 선한 인품으로 존경을 받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 이것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입금만 하고 성경대로의 삶이 출금이 안 되면 바리새파 종교생활과 뭐가 다를까요?                      

1. 예수를 몰랐다, 세례 요한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일찍 광야에서 금욕생활을 했습니다. 메시아 메시지의 중심이 예수님인데 정작 예수가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스토리에 예수님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회개는 강요했지만 회개 이후에 오는 용서와 감동이 없었습니다. 물론 선구자라는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교리적으로도 완벽했습니다.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흘러나오지 못했습니다. 왜요? 마음에 예수가 없으니까요. 육신적으로는 알았습니다. 예수와 친척으로 30년을 서로에 대해 알았겠지요. 하지만 육신적으로만 알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영적의 앎이 없었습니다. 30년이 지난 후 말합니다.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너무 뜻밖이지 않습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주님을 알았던 사람,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자신의 고민으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왔을 때 복중에서 뛰었던 아기( 1:41). 그동안에 몇 번 만나기도 했을 텐데 일종의 모태신앙 아닙니까? 그런데,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

 

알지 못했다? 체험을 못했다는 거예요. 껍데기만 알았지 속속들이는 몰랐다는 거예요. 한국교회는 성경을 엄청 잘 압니다. 예수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까? 젊은이들이 예수를 찬미하여 경배찬양을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나요? 알고 있으면 예수가 흘러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내 인격을 보고 진짜 예수쟁이로 압니까?

우리 이웃들은 성경에 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교리로 무장된 딱딱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 부드러움, 사랑, 미소를 통해 예수님을 소개받는 것입니다.

 

이게 왜 안 나올까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육신으로만 알고 있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모르고 있구나 어느 날 그게 마음에 와 닿을 때 비로소 거듭남을 강력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제대로 믿음생활이 나오고 , 나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회개하게 됩니다.

2. 예수를 알았다, 세례 요한

요한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선구자임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신가, 어느 쪽으로 오시는 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름대로 열심히 전하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모르니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처럼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상관없는 것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자신에게 주목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친척 동생 예수를 보는 순간,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 임했던 성령의 역사 30년 만에 다시 한번 성령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제야 눈의 비늘이 벗겨지며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육신의 동생으로만 알았는데 그가 메시아 등잔 밑이 어두운 것입니다.


30
절 하반절,“바로 이 사람이다!”

29,“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34,“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제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남여간의 동침을 통해 상대방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이제 제대로 예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육신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신성의 모습, 메시아의 본성을 알게 되었다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생애가 변합니다.

 

 예수를 고백하는 자가 됩니다. 

말은 진정성이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고백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고백합니다. 요한에게서 드디어 예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비켜서는 삶이 나옵니다. 

나를 보지 말고 저 사람을 보라! 저를 따르라! 예수를 알게 될 때에 비켜섭니다. 제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겸손하신 예수님, 희생하시는 예수님이 흘러나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

 

 더 강해집니다. 

그는 목숨까지도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서른 살 남짓의 나이에 죽습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를 알았기에 자기 사명을 알았고 불꽃으로 활짝 피어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기에 사명을 감당하고 사라진 거십니다. 주님을 체험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와이 미?>라는 책을 쓴 김춘근 박사는 달랑 이백 불, 가방 세 개를 들고 미국에 가서 고생 끝에 박사학위와 페퍼다인대학 교수가 됩니다. 교수 4년 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15세에 주님을 영접하고 집사직도 받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37세에 간경화와 간염으로 1년 안에 죽을 것이라는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됩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김 박사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며 하나님께 묻습니다

와이 미?”(왜 하필 나입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자연식도 해보지만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어차피 죽을 몸 하나님께 매달려보자.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했으니 부르짖어보자.’

 

비장한 결심으로 빅 베어라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몸은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몸에 핏자국이 생기고 배는 만삭된 여인입니다.

 

6일째 되는 날 새벽 1,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숨이 가빠지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담요를 두르고 방에서 나와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한참 기도하는데 자신의 입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네 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네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도 죽어 가는 것을 모르느냐!”

 

자기 입에서 주체할 수 없이 이 말이 터져 나오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해 지은 죄들이 펼쳐졌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울며 울면서 기도하는 중에 세 가지를 깨닫습니다.

 

생명이 소중하다! 사람이 아무리 큰 꿈을 가져도 건강 잃으면 소용없다! 하나님의 물음.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주었는데 너는 22년 동안 나를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

 

그러자 참회의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살려달라는 고백이 아니라 제 마음대로 살아왔던 회개의 기도입니다.

 

하번만 살려주세요! 살려주신다는 사인을 보여주실 때까지 산을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밤새 5,6시간을 사생결단으로 기도하는데 환상이 나타납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얀 옷을 입으신 큰 분의 가슴에 내 얼굴이 깊이 파묻혀 있었고 그 분께서 나를 꼭 껴안으며 아주 신사적으로 내 등을 세 번 두드려 주셨다. 내 등을 두드릴 때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용서한다!(I forgive you, I forgive you, and I forgive you)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환상과 음성을 듣는 순간 외쳤습니다. “나는 살았다!”그는 시편 118:5을 읽으며 기뻐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영어성경-나를 완전히 풀어 자유케 하셨다).

 

그 날은 인생의 분수령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고 예수님이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지금 여기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많은 분들은 예수님의 33년 생애, 복음서의 예수만 압니다. 그러나 그 예수는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에도 교회와 역사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의 예수만을 말합니다. 그 예수만을 연구하며 교리화시킵니다. 그것은 예수를 아주 좁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육체대로 알았기에 핍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후에 고린도후서 5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6,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새로운 피조물로 선언합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친구였습니다. 베다니에서 예수님과 친구로 지냈을 때 예수님은 소개했지만 예수님의 진정한 참 모습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몰랐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해, 일시적인 부활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사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진실함과 요기가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 고백할 때 그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내가 좋아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가씨가 삼겹살을 싫어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남편이 삽겹살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아가씨도 좋아하려고 노력해야지요! 이것이 사랑이지요! 남자는 음악을 싫어했어요! 신부가 음악을 좋아해요. 그러면 남편도 음악을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래서 음악이 흘러나와야지요

 

이럴게 사랑이라는 내 가슴에 품은 사람의 인격이 나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의 보배로운 말씀들이 좋아져야지요! 그렇게 살도록 무진장 애를 써야지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그럴 때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밖으로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요!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2천살의 예수님! 영원부터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들이 나를 통해 흘러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들이 내게 임하고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남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목장을 사기를 원하는 사람이 목장을 찾아왔습니다. 둘러보니 소들은 여러 부류로 나뉘어 져 있었습니다. 흰 소들끼리 발목이 긴 소들끼리 목장을 원하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내가 농장을 산다면 나는 그런 식으로 분류하지 않겠소!”

어떻게 하시게요?”

젖이 잘 나오는 소와 그렇지 않은 소로 분류하겠소!”

 

교회를 사람을 어떻게 분류합니까? 성별로 분류하고 직분으로 분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분류하지 않습니다. 젖이 잘 나오고 있는가, 메마른 사람들인가? 은혜가 흘러나오는 사람인가, 은혜가 마른 사람인가? 그렇게 나누십니다.

 

여삼열 목사님이 물었던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집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거 맞습니까? 도대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교리적인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과 깊이 체험하고 만나고 누리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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