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제자로 살려면?
마태복음 4장 18~22절
서론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요르단-시리아 동맹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이스라엘의 패배를 전망했습니다. 1948년 독립해서 20년도 채 안 되어 망국의 비극을 되풀이하다니… 전쟁은 6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6월 5일 월요일 아침, 이스라엘 폭격기들이 이집트 전투기가 뜨기도 전에 11곳의 활주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23개의 레이더기지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전투기가 출격한 것을 이집트는 물론 미국과 소련도 몰랐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6일전쟁, 3차 중동전쟁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가운데 기자가 라빈 수상에게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 군 장교들은 앞으로 돌격!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당신네 장교들은 어떤 명령을 내립니까?”
“나를 따르라!”
장교가 앞서는데 어느 병사들이 도망갑니까? 진정한 장교는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장교가 앞장을 섭니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습니다.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을 따라오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고 갈릴리바다의 어부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역자를 만들어 주신다는 초청입니다. 그것은 시골촌뜨기 목동에게 나를 따라오면 대장군을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과 같은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1. 버리라!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두 번째 명령입니다. 따라만 가면 제자가 됩니까?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99.9%가 자기 이름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그냥 ‘무리’라고 부릅니다. 무명(無名), 무책임, 무데뽀, 무원칙… 이런 자세로 주님을 오래 따라다니고 교회 다녀도 자기 이름을 걸고 다니는 제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무리였습니다.
왜 무리로 남았을까요? 회개는 했지만 버리지는 못한 것입니다. 무엇을 버릴까요? 베드로 안드레 형제는 무엇을 버렸습니까?
20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야고보 요한 형제는 무엇을 버렸습니까?
22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베드로 형제는 그물밖에 없었기에 그물을 버렸고 야고보 형제는 배가 있었고 선주(船主) 아버지였기에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합니다.
버려두고….‘멀리 내 던지다’‘포기하다’아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세상 욕망을 포기하는 철저한 자세입니다. 베드로와 그 일행이 배와 그물, 부친을 떠났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세계관, 인생관, 뱃사람의 기질, 언어… 등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것은, 본토 친척 아비 집입니다.
본토는 옛사람, 가치관입니다.
친척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인간관계의 끈끈함, 주의 사람들의 압력, 그릇된 전통과 관습, 등 잘못된 문화입니다.
아비는, 개인의 본성, 나의 재능과 자격, 실력, 외모 등을 의지하는 마음… 등입니다.
아비의 집은 이교(異敎)문화의 음침한 숲입니다. 이런 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의 기호, 목표, 우선순위들… 잘못된 취미 습관… 이걸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의 취미생활과 오락, 돈에 대한 욕심… 등을 버리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에서 맴돕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회전이 있기에 은혜가 인격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성령충만을 오래 간직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기질과 취미생활이 그걸 잡아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유대인이 되기는 쉽다, 그러나 유대인으로 살기를 어렵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조차 쉽게 떠나지 못했습니다. 하란에서 여러 해 걸렸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면서도 평생토록 버리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거짓말, 두려움, 물질로 오는 시련-이런 것들은 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죽을 때까지 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그들은 뱃사람적인 기질을 버려야 했습니다. 뱃사람의 기질들-급한 성격, 다듬어지지 않는 기질, 말씨, 고기에 연연하는 것… 이걸 버려야 합니다.
제자들도 오래도록 이걸 버리지 못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항상 충동적이었고 빌립, 도마… 등은 부활 때까지 만성적인 의심 병으로 살았습니다.
부자청년은 돈 때문에 떠나지 못했습니다(마 10:21)
호세아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묵은 땅’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호 10:12).
묵은 땅-비생산적인 땅입니다. 소출도 없고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땅에 심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기경(起耕)하라-뒤엎어라. 깊게 파서 땅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없이 우리가 주님을 따라갑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굳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육신이야 세월이 가면 어찌할까마는, 마음은 날마다 갈아엎어야 한다.
말씀이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되어도 담배 끊지 못하는 분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예 기숙사생활로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자기 곁에서 있게 하려고. 그래야 그들은 하나씩 지적당하고 버리는 훈련으로 점점 제자가 되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내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이런 것들을 제대로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무리가 되고 맙니다. 무명의 인간으로 교회 다니다 갈 것입니까? 내 이름을 걸고 믿음생활 제대로 된 크리스천이 됩니다.
2. 정하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따라나섰지만 조카 롯은 말씀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따라 나왔습니다. 롯은 늘 아브라함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가고 그만큼 가나안행이 더딘 것도 롯의 간청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출애굽 때 잡족들이 따라 나옵니다. 잡족들의 목적지는 굳이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아무데서나 살면 됩니다. 목적이 없기에 40년 계속 불평했고 이스라엘을 오염시켰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도 오염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적지를 잃고 방향을 잃고 광야에서 헤맸습니다. 목표를 잃은 이스라엘이 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길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삶의 방향을 전환. 예수님만을 주, 큐리어스, 황제로 인정하는 삶의 자세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목적, 방향은 무엇인가요?‘고기 낚는 어부’- 영혼구원. 고기는 낚시로, 영혼은 말씀의 그물을 던져서 잡아야 합니다. 명예도 아니고 영광도 아니고 지위와 직분도 아닙니다. 오직 사람이고 영혼구원입니다, 그것 외에는 욕심내지 말아야 하고 관심을 내도 안 됩니다. 오직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그래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사도적 삶을 위해 나를 따라오라 하십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려면 고기를 모아야 합니다. 고기는 그냥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등불을 켜고 빛을 만들어 빛으로 갈릴리의 고기들을 모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고 했습니다(눅 5장). 밤에 고기를 잡았습니다. 불을 비추어 불빛을 보고 고기가 몰려들면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참 빛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사람들을 몰려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물을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버릴 때 빛이 반사됩니다. 매일 우리 행동과 말씨들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빛이 나는 우리를 통해 예수님에게 인도되고 영혼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참 전도는 관계전도요 생활전도요 인격전도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목적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영혼구원의 전도자, 우리 삶의 목표 목적이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만큼 영적 생산력이 떨어집니다. 영혼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전파라는 새 사명자들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3. 베끼라!
따라가려면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를 닮고 싶으면 그 누구를 보면서 베껴야 합니다.
6일 전쟁이 났을 때 미국과 서방에 있던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자원입대했습니다. 이스라엘 입국 비행기들은 만석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 젊은이들은 징집 당할까봐 도피성 출국을 했습니다. 이집트는 출국 비행기는 만석이었습니다. 이집트 젊은이들이 누구를 본받은 것입니까? 부모세대를 본받은 것입니다. 죽어봐야 나만 손해다, 오일머니로 먹고 살만한데 개죽음이다… 그래서 도망 친 것입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 병사들! 장교들이 뒤에 서서 앞으로 돌격! 했으면 총탄이 빗발치는 적진을 향해 달려가겠습니까? 장교들이 앞장서면서 나를 따르라! 총을 들고 달리니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배워도 그들이 더 많이 배우고… 장교들은 가정이 있는 가장입니다. 그럼에도 가정보다 국가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는 장교들의 모습에서 병사들은 용맹스럽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6일전쟁의 이스라엘 대승리는 바로 그런 모델이 만들어 낸 기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말씀이라는 지침서, 지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롯은 말씀보다 아브라함, 즉 인간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기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정착해 버렸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수치스러움과 멸망입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모델로 따라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따라오라는 것은 배우라는 것입니다. 마 11:28 이하에서, “수고하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새내기 황소가 노련한 황소에게서 밭을 가는 법, 수레를 끌고 가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함과 겸손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온유함은 타이어와 같은 것입니다. 배가 다른 배에 부딪쳐도 배 주변을 두룬 타이어로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고 비난해도 내가 온유하면 상처를 받지 않는 마음, 이것이 주님의 온유하심입니다. 이런 마음들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목표입니다.
또 하나의 목표, 겸손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보다 앞서가면 안 됩니다. 늘 예수님과 함께 가며 예수님을 베껴야 합니다. 그래야 흔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만이 절대적인 모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델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나를 닮지 않으면 참 속상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인사도 잘 하고… 남을 배려하고… 그런데 많은 경우, 부끄럽고… 나를 닮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우리가 닮을 분은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은 내 제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를 본받을 것도 없고 본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관찰하십시오! 항상 모두가 하는 이야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럴 경우, 어떻게 하실까… 늘 관찰하고 묵상하고… 그런 예수님을 본받을 때 작은 예수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을 꼭 닮아가는 제자들을 보기 원하십니다. 교회를 통해 지금도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醫)이며 자연의학 주창자 이시형 박사는‘허리둘레 5㎝ 줄이기’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박사는 세로토닌 문화원을 만들어서 건강운동을 합니다. 세로토닌이란 행복감을 주는 신경물질을 말합니다. 80세인데도 얼마나 몸매와 근육을 잘 만들어 냈는지 탄탄하고 허리가 날렵해서 청년 같아요! 운동비결은 무엇일까요? 몇 시간 운동해야 그런 몸짱이 나올까요?
이박사는 운동에 관한 실천계획은 잘 세우되 대충 실천하랍니다. 새로운 생활 습관을 너무 강요하면 오히려 뇌가 지치고 힘들어 습관으로 굳어지는 데 방해가 된답니다. 운동은 대~ 충~ 나는 이게 마음에 들었어요! 하루 두 시간씩 꼬박꼬박! 이러면 우리 같은 사람 스트레스 받아요. 대~충. 그러면 허리둘레 5㎝ 줄이기에 동참하려는 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래요! 제자되기도 단기간에 완성하려고‘필살기’로 하면 힘들어요! 인생 전체를 기간으로 삼고 생활에서 차근차근 하면 됩니다. 주어진 생활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전생애 걸친 제자되기를 목표 삼아 내려놓고… 따라가고… 베끼고…그러면서 예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19절,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제자가 되게 하리라! 주님이 주어(主語)입니다. 내가… 우리들이 자력으로 제자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더 힘들어 집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말씀을 따르면서 맡기세요! 제자되게 해주겠다! 예수님의 약속을 신뢰하세요! 예수님의 인도함을 따라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이것이 성화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주어가 될 때 제자도의 모습이 내게 나타납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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