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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하찮은 것은 없다!(민수기 21:4~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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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하찮은 것은 없다!

민수기 21장 4~9절

서론

유대 전설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왜 쓸데없는 것들을 만드셨을까, 늘 궁금했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거미. 하는 일도 없이 거미줄이나 쳐놓고 저보다 약한 것들, 나비나 파리… 등이 걸리면 잡아먹고 사는, 자연에 해로운 해충(害蟲) 정도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미 같이 무익한 해충을 왜 만드셨을까? WHY? 그게 늘 궁금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영웅이 됩니다. 이게 사울 왕의 시기심을 자극해서 오랜 세월 쫓기는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윗을 체포하려고 수색 나온 사울 왕의 군대를 피해 동굴 속에 숨어들었습니다. 깊지 않는 동굴이기에 체포당할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꼼짝없이 붙잡혔구나… 포기하고 체념했는데 동굴 밖에서 병사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 동굴에는 없어…. 거미줄이 쳐 있잖아!”

 

거미줄이 쳐있다는 것은 조금 전에 사람 출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찮은 거미를 통해 나를 살리셨구나… 그때부터 다윗은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하찮은 것에서 어려움 당하고 하찮은 것 때문에 국가위기를 겪습니다. 걷다 넘어지는 것도 태산이 아니라 돌부리입니다. 비행기가 추락, 승객들이 죽고 인공위성이 폭발해서 고철덩어리가 되는 것은 나사 하나, 볼트 하나 때문일 때가 있습니다. 원전가동이 중지되고 국가적 블랙아웃 위기에 마음 졸이는 것도 작은 부속품 하나가 문제 원인입니다.

마음이 상하는 것도 그래요. 큰 일로 고통당하기도 하지만 하찮은 말로 마음 상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부부싸움에도 하찮은 것으로 출발해서 사느니 마느니… 싸움판이 커집니다.

 

대체적으로 성공비율은 다혈질이나 외향성보다는 내성적, 내향적 기질이 성공률이 높습니다. 외향적 기질은 작은 것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다 큰 것을 놓치고 맙니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도 하찮게 여기지 않게 꼼꼼하게 살피기에 성공비율이 높습니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심지어는 악인조차 쓸데가 있답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만나는 사람들, 내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 내 안의 어떤 하찮은 소질로도 성공의 도구, 하나님의 축복수단으로 만들어 낼 때 2014년 새 땅에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지 40여년, 떠돌이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을 목전에 도착합니다. 이때 에돔 족속이 앞을 막아섭니다. 하나님께서는 싸우지 말라고 지름길을 놔두고 광야 길로 돌립니다. 지름길 놔두고 다시 광야 길로 돌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열 받게 생겼습니다. 

4절,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이 다시 고역스런 광야로 나서야 했기에 참지 못하고 분노합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고생 시키는 거야? 40년 고생시키면 되었지… 또 이렇게… 왜 이러십니까? 왜 우리에게 억하심정(抑何心情)이십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름길을 두고 우회하라는 하나님의 인도에 낙심도 되고 성질도 나고… 분노를 터트린 것입니다.


2014년의 땅, 20일 정도 걸었습니다. 금년 어떤 길이 있을지 모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내 계획대로 나오지 않는 길이 있고 걷지 못하는 길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들 문제가 그래요! 부모로서 자녀들 학업, 시험, 결혼, 취업 문제… 등등 계획과 바람이 있는데 그 길이 나타나지 않아요! 그러면 때로는 섭섭도 하고 실망도 됩니다. 이게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입니다.

 

길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해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길을 주시는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십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일어나서 앞서가면 따라갔고… 마음은 급하지만 구름기둥 불기둥이 꼼짝하지 않으면 한 달도 석 달도 머물러야 합니다.

 

그런 입장이기에 지름길 놓고 돌아가는 길로 구름기둥 불기둥이 앞서자 하나님에게 화가 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상하니 매사가 귀찮고 짜증이 납니다. 그랬더니 대번에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5절, 없고… 없고… 없는 것만 보입니다. 그야말로 시험 든 것입니다.

마음이 시험 드니까 매사가 다 싫어요! 지금까지 먹고 살았던 만나와 메추라기를 가리켜… 이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해버립니다.

5절,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지겹고 꼴도 보기 싫고 냄새조차 싫다는 것입니다. 질색할 테니, 당장 치워버리라는 말입니다.

 

처음 만나를 먹던 날, 그“…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 16:31)라고 환호했습니다. 그런 신비의 음식을 어떤 백성이 40년 먹어본 적이 있나요? 매일 공급되는 메추라기로 40년을 살아낸 민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늘이 주는 신비의 음식입니다.

 

브루스 페일러는 <워킹 더 바이블>에서 만나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해요. 만나는 먹는 사람마다, 생각 따라, 상상 따라 맛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호떡 생각하면 호떡 맛, 호박떡 생각하면 호박 맛, 피자 상상하면 피자 맛! 사실과 관계없이, 기가 막힌 상상력입니다.

이런 음식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합니다.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만나 주신 출애굽의 하나님을 하찮은 하나님으로 여기고 출애굽 자체를 하찮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찮은 분이십니까?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고 40년을 밤에는 불기둥으로 찜질방을 만들어 주셔서 노근한 몸을 녹이고 풀어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가이드 삼아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찮은 분이 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그냥 있다면 노예민족으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며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노예 신분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 나쁜 부모세대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430년 노예의 멍에 벗어버리고 자유인이 되게 한 출애굽이 어떻게 하찮은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너무 힘들고,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하다보니 눈이 뒤집히고 만 것입니다. 눈이 뒤집히니 하나님이 안 보이거나 광야로 데려다가 고생이나 시키는 나쁜 하나님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삐딱 선을 탄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엄청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불평하면 다 들어주셨어요! 물이 없다면 물주시고… 쓰다면 단물 주시고… 먹을 것 없다 불평하면 만나 주시고 애굽의 고기 가마가 그립다면 식용 메추라기도 주시면서 달래주셨어요! 화가 났다가도 모세가 한번만 봐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노를 푸셨어요! 이번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던지 6절,“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불 뱀들. 문자적으로는 불붙은 뱀입니다. 이스라엘이 진행하던 광야지역에 서식하던 독사(毒蛇)로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뱀입니다. 맹독성(猛毒性)이 얼마나 강한지 물리면 즉시 온몸에 높은 열이 생기며 죽어가기 때문에 불뱀이라고도 했을 것입니다. 이 불 뱀에 물려 사람들이 얼굴이 벌게지고 온 몸이 벌게지며 죽어갔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귀한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다가…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하찮게 여기다가… 하나님께서 생각해서 주신 길을 하찮게 여기다가….

 

2014년,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하찮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공급을 끊어버리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하찮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날 하찮게 여기십니다. 그러면 억지신앙이 되고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까… 시험에 들 것만 살핍니다. 믿음의 역기능들이 독버섯처럼 일어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용하실 때 대단해서 부르고 선택하고 사용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찮으니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찮으니까 자기 실력, 자기 능력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니까 그것 보고 싶어서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인데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는 것을 우리가 세상눈으로 하찮게 여기면 주신 하나님도 하찮은 하나님! 나도 하찮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왕은 자기 갑옷을 벗어주었습니다. 칼과 투구… 다윗이 입어보고 몇 번 걸어보니 너무 거추장스럽습니다. 그래서 벗어버렸어요. 남들 피아노 보낸다고 덩달아 보내지 말아요! 남들 영어 보낸다고 조기 영어교육하지 말아요! 유대인 교육이 뭐예요? 남들보다 잘해라? 아니에요! 남들보다 달라라! 그래서 자기 블루오션을 찾으라는 거예요!  

 

다윗은 물매와 돌멩이 다섯 개를 들고 갔어요! 얼마나 초라해요! 골리앗이 웃었어요! 장난하냐? 그러나 장난도 아니었어요! 그 하찮은 것으로 나라를 구했습니다. 골리앗도 다윗의 형들도 사울 왕도 다윗을 하찮게 보고 돌멩이전법을 하찮게 보았다가 골리앗은 죽고 다른 사람들은 무색해 졌습니다. 하찮은 것을 하찮게 조롱하던 사람과 하찮은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모세가 중보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측은지심이 또 발동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8절,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나님께서 또 하찮은 방법을 보여주십니다. 성령바람이라도 불어오던지, 해독제 약초 물을 들이키도록 해야 하는데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고 바라보기만 하면! 살리라!

 

놋뱀!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하찮은 것! 그걸 본다고 어떻게 해독이 됩니까? 거의 죽게되었는 데… 그래도 하찮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하찮으신 분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방법을 귀하게 여기고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잘될 줄 믿습니다! 쳐다보았더니…

 

9절,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우리의 구원은 대단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목수 예수. 흠모할만한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십자가! 황금 십자가도 아니고 나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 달렸을까요? 중죄인들만 달렸습니다. 얼마나 보잘것없는 나무십자가입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찮은 예수라고 놀렸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찮은 십자가라고 무시했습니다. 그것을 하찮게 보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지만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 구원의 능력으로 바라보고, 나을 줄 믿습니다!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잘될 줄 믿습니다! 바라보았더니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찮은 것을 통해서 이루어가십니다. 그러기에 내게 있는 어떤 것도 하찮은 것이라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내가 하찮은 것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것도 하찮은 것이라 생각해서 안 됩니다. 하찮게 보이더라도 귀하게 보면 귀한 교회가 되고, 예배당이 되고, 귀한 예배당에서 목회하는 귀한 목사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예배당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언제는,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건축상을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눈이 없나요, 분별력이 없나요? 엊그제도 목동에 있는 교회 설교하러 갔는데, 대지가 850평이에요! 예배당도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그래도 내 눈에는 우리 예배당이 최고예요! 왜? 남의 예배당은 그림의 떡이니까! 내가 목회할 예배당도 아니고 내게 주신 양들도 아니니까 나는 우리 예배당이 가장 아름답고 우리 교인들이 가장 잘 나고 가장 멋있고 가장 행복하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하찮은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 길에 만나게 해주시고… 내 목회 길에 만나게 해주시니 하찮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고맙고 귀한 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로 인해 마음 상할 것도 없고 내게 주신 사람들을 하찮게 여길 일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하찮은 사람들이 많아요.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들만을 들어 사용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1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무디를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 역시 학벌이 없는 주일학교 교사 킴벌 선생입니다. 스펄젼. 빌리그래함-학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로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두란노. 품절)을 쓴 애드리언 로저스 목사는 유명스타들의 간증을 듣는 <챔피언주간>이라는 집회를 체육관에서 가졌습니다. 당시 최고스타는 축구선수 폴 앤더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간증했습니다.

“나처럼 힘센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필요합니다.”

 

그 날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이 심방하고 물었습니다.

“앤더슨의 어떤 내용이 당신의 가슴에 와 닿던가요?”

젊은이는 고개를 저으며“저는 앤더슨 때문에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조지 윌슨의 간증으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지 윌슨? 누구였더라?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식모임이 끝나고 자유롭게 나눔을 갖는 시간에 간증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전신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순서에도 들어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정오의 햇빛같이 빛나는 얼굴로 주님의 기쁨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 젊은 학생이 말했습니다.

 

“조지 윌슨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내게도 분명 굉장한 일을 하시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약함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아주 적당한 사람들입니다.

결론

도시에 엄청난 대형 고층건물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에 인부들이 다 내려온 줄 알고 크레인을 철수했습니다. 다른 공사장으로 급히 이동해야 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100층 높이 건물이 아직은 건축 중이기에 크레인이 없으면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겨울인데, 옥상 건물에 있다가는 얼어 죽을 것입니다. 큰 일이 났어요. 그때 아래에서 건축소장이 외쳤습니다.

“양말 실을 풀어서 내려 보내게”

공사장 인부니까 양말이 얼마나 두툼합니까? 옥상의 인부가 양말 실을 내려 보냈더니 아래서 밧줄을 묶습니다. 끌어올리게! 실로 살살 당기자 굵은 끈이 올라오고 인부는 무사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것! 때로는 실오라기 하나가 목숨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금년에 무엇이든 하찮은 것이라 무시하지 맙시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고 하찮게 여기는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내게 주신 것! 갖고 있는 것!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나를 살리고 나를 성공시키고 하나님 사역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됩니다! 2014년! 내 길로 인해 마음 상하고 국가로, 교회로 마음이 상할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길로 국가로 교회로 감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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