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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어느 마음 밭입니까?(마태복음 13:1~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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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어느 마음 밭입니까?

마태복음 13장 1~9절

서론

지난 주간은 말씀사경회로 말씀의 외식(外食)을 했습니다. 최고 식당에서 최고 요리로 아홉 끼를 먹었어요! 잘 먹었지요? 이제는 다시 돌아와서 집 밥을 먹어야 합니다. 나도 남이 해 주는 식당 밥 먹다 내 손으로 집 밥을 만들어 여러분을 먹여야 합니다.

 

멋진 남편은 아무리 맛있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와서도 밥상 앞에 앉아서는 역시 집 밥이 최고여~ 하는 남편입니다. 멋진 성도님들 되어 봐요! 집 밥이 최고여~

 

집회 때 강사님이 물었어요?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세요? 남들만큼 있으면서 행복하지 못하면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개척하면서 목회관을 친정집 목회로 두었어요. 친정집 목회의 중심은 징징 우는 거예요?‘행복한 자존감’입니다. 그래서 누가 늘빛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게 뭐냐? 묻거든‘행복한 자존감’이라고 말하세요! 해보세요! 행복한 자존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종류 밭은 현대인의 마음 상태를 보여줍니다. 나를 점검해봅시다.

길가 밭

길바닥 마음 밭이지요! 4절, 길가에 떨어지매…. 길가는 도로가 아니라 지름길 밭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밟아버려 굳어버렸고 딱딱해서 싹이 날 수 없는 땅이 된 것입니다.

마음에도 길바닥이 있습니다. 닫히고 굳은 완고한 마음… 감정이 말라버렸어요. 행복과 즐거움은 지식과 실력, 돈이 아니라 감정에서 나옵니다. 감성이 풍성해야 기쁨, 행복을 누립니다. 감정기관이 고장 나면 길바닥 마음입니다. 영화를 봐도 감성이 풍부하면 쉽게 감동 받습니다. 감정이 마르면 논리를 말하면서 재미없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안 가지요!

 

길바닥 마음은 폐쇄된 마음, 자기중심 자아입니다. 이런 사람을‘성인아이’라고 합니다. 타인의 의견은 무시하고 이기적입니다. 자기 밖에 몰라요.

사람의 마음은 8만 4천 개의 감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짐승들과 달리 감성을 소유하는 것은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아담이 하와를 바라보면서“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원시인이 아니라 시인(詩人)의 감성입니다. 이렇게 감성지수로 창조되었던 남성들이“애들은?”“밥 도오!”“자자!” 왜 이런 멋없는 인생으로 전락해 버릴까요?

이유가 있어요! 유년에 상처받으면 마음이 굳어져 버립니다. 여아(女兒)들이 성적인 상처를 받으면 그때부터 마음의 운전사는 세상 남자들에 대한 편견의 도로로 달려갑니다.

 

유교의 체면문화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남자는 가벼워서는 안 돼! 함부로 표현해서도 안 돼! 울면 안 돼! 이런 전통적 가르침이 한국의 남성들을 목석(木石)으로 만든 것입니다. 

 

죄성이 마음을 굳게 합니다. 인간의 감성은 활달하고 애정적이고 이해심이 많도록 창조되었는데 죄가 들어가면서 굳어집니다. 영성을 침투하면 하나님에 대해 굳어져서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사랑에 무감각합니다. 사람에게 침투하면 질투하고 적대적 관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길바닥 마음은 은혜는 받지만 곧장 새가 먹어버립니다. 그러니 금방 도루묵입니다.

돌밭

5절,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길바닥 길은 너무 밟아서 딱딱했다면 돌밭은 땅은 좋은데 돌에 눌린 밭입니다. 할미꽃이 돌에 눌려 꼬부랑 꽃이 되는 것처럼 인생도 눌립니다.

 

한(恨). 분노의 바윗돌! 누구나 분노하고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성이 멈추면 분노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게 마음에 한이 됩니다.

죄책감 바윗돌. 죄가 들통날까봐 안 좋은 쪽으로 두근거리니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고 즐거움이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죄과를 멀리해 주시고 마음에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질투의 바윗돌. 예일대학 심리학교수 피터 살로비 박사는, 미국 범죄의 20%가 질투에 근거한답니다. 그레고리 화이트는 <질투의 임상학>에서 부부 갈등의 3분의 1이 질투에 근거한 문제라고 합니다. 가정이 깨어지는 30% 이유도 부질없는 질투 때문이라는 보고입니다.

 

호레이스는 “시기에 가득 찬 사람은 친구가 번창하는 것만큼 말라간다.”고 말합니다. 질투의 바윗돌에 눌린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풍성한 행복을 소출할 수 없습니다.

학벌에 눌리고, 가난에 눌리고 장애에 눌리고…눌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게 아름다운 감성을 눌리면, 행복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기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돌을 걷어내야 합니다.

가시밭

7절,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원래 가시밭은 좋은 밭입니다. 가시는 기름진 곳에서 잘 자랍니다. 성품은 좋아서 잘 자라는데 주변을 정리하지 못해 늘 도루묵입니다. 

우리 마음은 굉장한 에너지를 소유합니다. 흙 한 숟갈에 2억 마리 미생물이 있다면 흙덩어리 육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겠어요? 그만큼 기름진 땅입니다. 거기다가 84,000개 감성들이 움직이면 대단하지요! 이런 좋은 행복 에너지를 가졌음에도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행복 에너지, 생명 에너지를 자꾸 다른 쪽으로 뺏기기 때문입니다.

 

22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믿음이 자랄만하면 걱정으로 날려버리고 행복할만하면 염려로 날려버립니다. 염려와 걱정의 가지치기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지요.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진짜로 걱정해야 될 부분은 4%라고 말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평생의 기쁨을 쏟아버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니 젤린스키는“모르고 사는 즐거움”을 말했습니다.

믿음의 교리도 중요하지만 믿음이 잘 자라도록 마음가꾸기도 중요합니다. 같은 은혜 받으면서도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것은 염려의 가시덤불 정리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옥토

네 번째 밭은 옥토입니다. 한문으로 옥토(沃土)는 굉장합니다. 물댈 옥(沃) 기름질 옥(沃)그야말로 물이 잘잘 흐르고 기름이 잘잘 흐르는 밭입니다.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로 가득 찬 마귀할멈 밭에 비해 옥토(沃土), 얼마나 아름다운 천사 밭입니까? 착한 마음 가지면 생산성이 높은 교회공동체가 되지만 유능하고 심뽀 나쁘면 나 잘났네! 우스운 교회가 됩니다.

 

네 밭은 사실은 하나의 밭입니다. 길가밭 눌린 밭 가시밭…이런 심령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치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유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생산성 높은 옥토를 만드는 것! 성령만 받고 흥분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받기는 부(不)전승이지만 옥토 만들기는 전승, 싸워야 합니다. 옥토가 되지 못하는 자기 마음에 싸움을 걸어야 합니다. 

여기에 네 가지 승리원리가 있습니다.  

㈀ 갈아엎어짐의 원리

돌밭과 옥토의 차이점은 갈아엎어진 적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입니다. 뒤집혀 진 땅이 옥토입니다. 좋은 땅도 엎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길가의 굳은 밭. 처음부터 굳었나요? 처음에는 옥토였습니다. 사람들이 먼 길 돌아가기 싫어 지름길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게으름, 이기심이 굳은 땅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동방 백의민족으로 심성이 고운 민족입니다. 유교문화권이 들어오면서 심성이 굳어졌습니다. 유교 문화는 굳은 문화로 웃을 줄도 모르고, 유머도 없고, 남에 대한 이해심도 없습니다. 밥상에서 웃어서 안 돼!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도 안 돼! 학교에서는 입 다물고 있어라! 부모 죽으면 3년을 죽은 듯 살라! 죽은 이의 망령에서 살기를 강요한 것입니다. 양친 부모 네 분을 장사 지내고 18년을 그렇게 사니 그 마음이 옥토가 되겠어요?

 

늘 크레믈린처럼 무장되어 있다면 무장을 해제하세요. 굳은 마음 마사지 해주세요. 유연한 마음 가지세요. 웃으세요. 건강한 교회는 웃음이 많은 교회입니다. 설교를 해도 잘 웃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행복한 교회입니다. 웃는 순간 무장해제 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됩니다.

 

교회 다니면서 엎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층(層)이 생깁니다. 층이 있는 상황에서 교회생활 하는 것은 진정한 교제가 아닙니다.‘유리창의 입맞춤’ 같은 것이지요! 특히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분들 중에서 이런 분들이 있어요!

이런 ‘층’의 교제는 안전하다 생각하지만,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는다고 안심하지만 실은 내 삶을 더욱 조이고 자기에만 집착하는 왜곡된 삶으로 운전합니다. 나중에야 내가 왜 그렇게 살았나? 후회하지만 주어진 생애는 끝나고 맙니다. 이런 층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 수분, 즉 함유의 원리

옥토와 박토(薄土)의 차이점은 물이 있느냐, 없느냐? 로 결정됩니다. 옥토가 되려면 받아들임,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나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건강한 마음입니다.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은 수용성지수가 높습니다. 누구나 수용해내는 사람, 어떤 형편에서나 남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런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이고 옥토가 됩니다. 

 

상담학자 정태기 교수는 책에서 상담 경험을 말합니다. 젊은 부부집사가 찾아왔어요. 13개월 동안 부부싸움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부부입니다. 격렬한 부부싸움은 하찮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갔다 오던 부부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남편이 예쁜 여성에게 눈이 돌아갔다고 사람들이 보던 말든 성경책 든 손으로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이 놈아! 어디에 한 눈 파는 거냐? 나 하나도 제대로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에 한 눈을 팔아! 너 죽고 나 죽자!”

 

그 날 저녁 밥상 앞에서 부인은 다시 시작합니다. 내 앞에서조차 한 눈 파는 이런 인간을 위해 지성정성으로 음식 만들어주고 지금도 남편이라고 밥상 만들어 바친 것이 억울한 것입니다. 실컷 먹여놓으면 또 어느 여자에게 한 눈을 팔까, 그러니 속이 뒤집어지면서 다시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멱살 잡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탄식으로 나옵니다.

 

부인 옆에 두고 미인에게 힐끔거리는 남편도 잘 한 것은 없지만 건강한 아내는 어때요? 남편이 아직도 감정이 살아 있구나? 정 따지려면 시간을 재봐요! 1분 이상 쳐다보고 세 번 이상 힐끔거리면 그건 문제요. 그러나 예쁜 여자 쳐다봤다고 트집 잡으면 그건 자기의 낮은 자존감이지요! 수용력, 이해의 그릇이 넓지 못하면 마음이 삭막해지고 사막이 되는 거지요!

 

바위에 눌린 돌밭. 처음부터 돌밭이 아닙니다. 저쪽 밭에서 자꾸 이쪽으로 돌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옥토에 어떤 일로, 말 한마디로, 사건으로 바윗돌이 굴러 들어와 마음을 눌러버립니다. 이게 한(恨)이 되고 눌림이 됩니다. 열심히 뭔가 하지만 답답합니다. 이것은 상황의 문제도 있지만 마음의 문제입니다.

함유의 원리! 눌린 것에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세요. 그러려면 수용성, 이해의 그릇이 커야합니다. 때로는 두루뭉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잔병이 없고 행복합니다.

 

㈂ 배수의 원리

물 공급이 좋아도 계속 고이면 씨앗도 뿌리도 썩어버립니다. 땅에 물이 어느 정도 고이면 적당량만 놔두고 자꾸 흐르게 해야 합니다. 속을 자꾸 표현해야 해요.

한국 여성들이 왜 강한가요? 잘 울기 때문입니다. 장례식 때 펑펑 우는 것-그동안 쌓인 것을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남의 눈이 무서워 울지 못하던 여인들이 남의 장례식에서 곡(哭)합니다. 곡을 빌어 한을 풀어버립니다. 동네에 많이 죽을수록 한풀이가 됩니다. 지혜지요!

 

3년 새에 아내와 딸을 잃은 의사-대학 2학년 생 딸을 잃었습니다. 딸의 죽음 앞에서 아내는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습니다. 딸이 천당 갔으니 울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교회에서 받은 것입니다. 천당 간 딸에게 누가 될까봐 울음을 참았습니다. 3년 만에 아내도 암(癌)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시신(屍身)을 안고 “시원하게 한 번 울기라도 했다면 이런 식으로 죽지는 않았을 텐데…” 통곡했습니다.

 

한국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8년 짧습니다. 순전히 울지 않아서! 남자는 시시하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우세요! 눌린 것을 풀어버리세요. 그러나 운다고 바윗돌이 다 치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눌린 바윗돌 제치고 돌에 눌렸던 땅을 옥토로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의 사랑도 큰 힘이 되지만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처럼 건강한 자아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나 하나만을 위해서! 나는 그런 대단한 존재인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송이 내 마음의 찬양이 될 때 눌림의 바윗돌에서 나옵니다. 모든 한(恨)들이 녹아내립니다. 마음은 옥토가 됩니다.

 

㈃ 제거의 원리

아무리 땅이 기름진 옥토라 해도 돌이나 쓴 뿌리, 유리 조각, 쇳조각 등이 있으면 옥토일 수 없습니다. 이거 있으면 남을 상처줍니다. 그걸 자꾸 제거해야 합니다.

 

가시덤불은 정리되지 못한 주변으로 생명에너지를 소모해 버립니다. 부질없는 경쟁, 걱정, 욕심… 이게 생명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면 마음에 기(氣)가 없습니다. 유행에 마음 빼앗기고 생명에너지를 낭비합니다. 이런 마음에는 한 눈 파는 운전사가 들어있습니다. 한 눈 팔다보니 믿음의 목표를 놓치고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에너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뿐만이 아니라 삶의 활력소를 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천국이 지금 왔다! 고 했습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마세요! 주님의 힘으로 용서하고 주님의 힘으로 봉사하려고 하세요. 주님의 힘으로 열심을 내려고 하세요. 생명의 에너지가 막 방출됩니다.

결론

내면치유 사역자 주서택 목사는 <내 마음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제목처럼, 사람은‘밖에 있는 나’와‘속에 있는 내’가 달라요.‘남들이 보고 있는 나’와‘내가 아는 나’는 달라요. 남이 볼 때 웃고 있지만 행복해 보이지만 내 속의 나는 자꾸 울고 있고 눌리고 있고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옥토는 밖의 나, 남들이 보는 나를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나’의 문제입니다. 내 속에 있는 내가 행복하지 못하고 울고 있다면 아무리 믿음이 좋고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그건 거짓행복, 위장된 행복입니다. 행복한 척 하는 것이지요!

 

길가밭은 갈아엎고 돌밭은 치우고 가시밭은 제거하고 옥토를 만들어 가면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는데 그런 마음을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헌 후 말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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