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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깨어지기 쉬운 반석(마태복음 16:13~2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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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품절. 중고서적에서

 

깨어지기 쉬운 반석

마태복음 16장 13~20절

 서론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거목(巨木)입니다. 베드로가 없는 초대교회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12제자 중 자타공인 1번이고 교회가 세워질 때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천명, 5천 명씩 주님을 영접했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초대교회의 중심 리더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사도들은 교회를 이루는 초석(礎石)-주춧돌입니다. 이스라엘이 야곱의 12아들-12지파로 구성되듯 교회도 12사도의 믿음의 주춧돌 위에 세워진 고백공동체입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로마가톨릭 주장처럼 교회의 수장(首長)은 아니어도 12사도를 대표하는 수위직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문제는, 주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하셨을 때 이 반석이… 무엇을. 누구를 뜻하느냐? 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로마가톨릭과 개혁교회가 갈라집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반석을 베드로 자체로 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 수장(首長)으로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수장은 교황이고 교황은 왕이지요! 그러면 프란체스카 1세는 266대 교회 왕입니다. 주후 300년 넘게 교황제도가 없었는데 갑자기 왕이 등장합니다. 교황청은 베드로 후계자가 되어 교회에 관한 열쇠를 받았다… 그러니 신(神)의 대리자입니다.

 

개혁주의교회는 베드로가 반석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반석이고, 베드로를 대표로 12사도의 신앙고백이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교황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을 닮아 영원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구원할 때 교회의 권세는 누구도 굴복시킬 수 없고 무너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합니다.

 

문제는 교회를 바치고 있는 주춧돌-반석입니다. 18절, 너는 베드로라…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란 헬라어 '페트로스', 돌조각, 반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돌멩이, 돌덩이를 말합니다. 아직은 엄청난 바윗덩이는 아닙니다. 오늘의 제목처럼 ‘깨어지기 쉬운’ 반석입니다. 교회라는 건물을 세우기에는 아직은 기초가 약한 반석이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16절입니다.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본문성경의 상황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하신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헤롯대왕의 아들 분봉왕 헤롯 빌립(눅 3:1)은 신도시를 건설해 놓고 로마황제 디베료 가이사를 기념하여 도시 명(名)을 황제의 이름 '가이사랴'와 자기 이름 빌립을 추가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가이사 아우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해 황제 숭배신전을 건립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엄청난 황제의 동상을 배경으로 묻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대표합니다. 주는…. 여기 주(主)는,  you당신은… 선생님은… 그 뜻이지만 헬라어로는 ‘큐리어스’로 주인, 황제를 말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여기 빌립보사람들은 로마황제를 주인으로 모시지만 내게는 당신이 영원한 나의 황제가 되십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메시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죽을 수밖에 없는 황제와 하나님의 영원성을 대비시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황제를 신의 아들로 황제숭배가 성행했던 도시에서 황제동상을 배경으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목숨을 건 대단한 용기입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다! 왜냐?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다! 왜냐? 하나님께서는 다른 구원자를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리의 반석입니다.

 

그런데 이 반석은 깨어지기 쉬운 반석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시몬아 너는 베드로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헬라어로 반석… 그러나 아직 베드로반석은 큰 건물을 건축하기에는 자갈돌이요 반석에서 깨어져 나온 부스러기 돌멩이요 언제라도 깨어지기 쉬운 반석입니다. 베드로가 반석 같은 고백을 한 후에 금방 깨어지고 말았던 것으로 증명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아주 흡족하셨습니다. 100점짜리 고백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이라면 한 단계 더 놓은 진리를 가르쳐도 되겠다, 생각하시고

 

21절, “이때로부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행(行)을 말리고 나선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지식으로는 완벽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代贖)의 죽음을 통해 자기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했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야단칩니까? 23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베드로는 지금 어떤 반석입니까? 깨어진 반석입니다. 아직은 완전한 반석이 아닙니다.

 

오늘 왜 이런 설교를 하는가?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세계 교회올림픽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대통령이 참석해서 축사를 해야 합니다. 그게 전통이고 예의였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우습게 알고서?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이 대회를 놓고 한국교회가 양분된 것입니다.

우리교단을 비롯한 고신… 등의 교회들은 반대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애매합니다. 어느 한 쪽을 편드는 격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대통령이 참석했으면 좋았을 법은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단을 비롯한 복음주의 교회들은 왜 WCC운동을 거부하는가? WCC를 종교혼합운동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진리통합과 종교통합은 다릅니다. 진리통합은 성경중심의 통합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고백하고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교회들의 통합입니다. 그러나 종교혼합운동은 모든 다양한 종교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복음의 본질들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이것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WCC는 이런 면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아버렸습니다.   

 

WCC 제7차 호주 캔버라 총회에서 이화여대 정현경 교수는 하얀 소복을 입고 죽은 혼령들의 혼을 불러낸다며 초혼제 굿을 했습니다.

 

“오소서! 흑인 노예여자 이집트인 하갈의 영이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착취당하고 버림받은 하갈의 영이여… 아버지의 약속 때문에 불태워 죽은 입다의 딸의 영혼이여.”

 

“오소서! 예수 탄생 시 헤롯왕의 군인들에 의하여 살해된 어린 아기들의 영이여. 오소서! …중세기에 화형으로 살해된 무당들의 영이여… 오소서! 토착민의 영이여. 식민지시대와 위대한 기독교 선교시대에 죽어간 영혼들이여. 오소서!”

 

“오소서! 인간들의 금전욕에 의해서 고문당하고 착취당한 흙, 공기, 물의 영들이여. 오소서! 걸프전에서 죽어가는 군인들, 민간인들, 해양생물의 영들이여.”

 

WCC에서 정현경 교수는 신성한 예배의 현장에 온갖 죽은 이들의 영을 부르고 흙과 물, 공기와 짐승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무당의 영을 불러내 무얼하겠다는 건지…

 

이후에 정교수는 히말라야에 들어가서 힌두교도들과 1년간 수행했고, 계룡산 신원사에서는 머리 깎고 승려들과 살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의 다처주의도 옹호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요 14:6)라는 질문에 “예수님이 실수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물론 정현경씨 주장이 WCC 전체주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WCC의 기본주장은 다원주의입니다. 우리의 일원주의가 예수님 외에는 구세주가 없다는 가르침이라면 다원주의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현경 교수는 신(神)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WCC는 다른 종교에서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주장은 독선이라 합니다.

 

그러다보니 개종금지조항이 나옵니다. 다른 종교인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교개념은 다른 나라에 선교사로 가면 그 나라 백성들의 인권과 환경과 삶의 질(質) 향상을 위해 힘써야지 종교 개종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교단들이 이건 아니다, 라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집회 열고 예배를 반대하고… 이런 것도 옳은 것은 아닙니다. 목적이 바르면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우리가 반대성명서 정도로 끝나고 우리 교단, 내 교회 신자들을 단속하고 끝날 일을 남의 잔칫집에 가서 집회열고 소위 깽판 벌이는 것은 국민들에게는 종교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두 종교집단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입니다. 사두개파는 모세오경만 받아들이고 이를 자유롭게 해석하는 자유주의 교단이고 친(親)로마파입니다. 천국을 믿지 않고 천사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들이 많았기에 성전제사를 중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형식에 치중했습니다.   

 

바리새파는 반대되는 종교사상입니다. 모세 오경을 비롯해서 모든 성경의 가르침을 따랐고 문자 하나하나를 철두철미하게 지켰습니다. 저들은 반(反) 로마파입니다. 조금이라도 부정하고 율법을 어기면 상종하지 아니했고 분리시켰습니다. 너무 꼼꼼한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너무 열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속화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너무 좁혀버렸습니다. 내 식대로 믿지 않으면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종교 자폐증 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속주의와 종교자폐증!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동시에 상영되는 모양새입니다.

 

WCC가 기독교 진리를 포기해 버리고 종교 문호를 열어 모두를 받아들이고 혼합종교를 만드는 세속화가 되고 있다면 복음주의 보수교단들은 진리를 담은 포장지까지도 지난 2천년 기독교식으로 가야한다는 종교자폐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종교세속화-종교자폐증! 양자 모두 ‘깨어진 반석’과 같은 반쪽짜리 진리입니다. 교회가 시대를 무시할 수 없고 한 국가의 문화를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포기하며 얻는 문화수용 종교수용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종교의 교회입니다.

 

베드로는 최고의 신앙고백을 하고서도 깨어진 반석이 됩니다. 인본주의 종교를 만들려 한 것입니다.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그리하지 말라, 십자가에 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왕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한 자리씩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주장을 하면 제자들이 더 떠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는 기독교! 부활이 없는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등 뒤에 소름 끼칠 정도로 엄청나게 큰 로마황제의 신상(神像) 앞에서 나의 주-나의 황제는 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입니다! 라며 목숨을 걸었던 베드로 반석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일사각오 반석 같은 믿음은 어디로 가고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권력층에 올라서고… 세력을 얻는 인본주의 초라한 자갈돌이 되고 있는 것입니까? 세속화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베드로는 아직은 굳건한 반석이 아니라 반석 흉내를 내는 돌조각에 불과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반석과 같은 믿음을 보이다가도 여지없이 무너지는 깨어진 반석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새벽기도도 하고 헌신도 하고 대단한 믿음처럼 보이지만 지금 내 안에는 소리 소문 없이 믿음의 반석들이 쪼개지고 깨어지고…

 

그래서 깨어진 반석이 되어 100점짜리 고백이 0점짜리로 야단맞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가르침보다는 세상 인권과 잣대에 복음의 빗장을 다 열어 세속화가 되어버린 깨어진 자갈돌은 아닙니까? 내 잣대만 재단하는 종교자폐증 환자가 되어버린 깨어진 돌조각은 아닙니까?  

 

네덜란드가 낳은 천재화가 반 고흐는 목사의 아들입니다. 자신도 전도사로서 벨기에 탄광에서 일을 하며 그림을 그리며 전도도 했습니다. 어느 날 동료광부의 색다른 옷에 눈이 끌렸습니다. 광부는 물건을 포장했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깨어지기 쉬운 물건이오니 취급에 주의할 것"

 

순간 고흐는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날의 일기에 고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이란 깨어지기 쉬운 물건이다. 나는 전도사라고 하지만 얼마나 많이 깨어지는가? 하나님의 은혜에 나를 맡겨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깨어집니까? 교회 안에서 말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이 깨어집니까? 세상이 주는 성공에 얼마나 많이 믿음이 깨어져 버립니까? 그래서 아직도 작은 자갈돌입니까?

 

우리 주님은 돌조각 위에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수천 평짜리 바윗덩이 위에 세우려 합니다. 만석반석에 세우려 하십니다. 그러니 나의 믿음의 바윗돌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믿음 위에 큰 교회가 세워집니다. 

결론

18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너는 베드로라… 작은 돌조각이지만 앞으로 더 단단해 질 것이다, 그리고 반석이 될 것이다… 이 반석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리라… 베드로와 제자들이 수없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넘어지겠지만 성령이 임하면 자갈들이 뭉치고! 성령이 임하면 조각돌이 뭉치고! 성령이 임하면 모래알 같은! 믿음들이 뭉쳐 엄청난 바윗덩이가 되고 그 단단한! 제대로 된! 복음적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바로 그런 선언입니다.

 

여기에 우리 소망이 있고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성령 충만을 받은 이후의 사역을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갈돌 베드로가 엄청난 거목 반석이 된 것입니다!

 

늘 깨어지기 쉬운 자갈 같은 우리 믿음들… 인격들… 교회생활들… 남들 때문에 핍박 때문에… 세상의 유혹에 그냥 조약돌로 흩어지지 마세요! 성령으로 기도로 말씀의 콘크리트가 들어가면 지금 어려움과 시험은 더 큰 바윗덩이가 되고 깨어지기 쉬운 자갈돌 반석이 비바람에 끄떡없는 큰반석이 되고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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