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초대교회 첫 순교자
마가복음 1장 19, 20절
서론
10 년 전 통계에,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 요한이랍니다. 60만 명이 됩니다. 2위가 야고보로 30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이름의 주인공을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요한의 이름이 많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짧은 인생으로 순교한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3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12제자 중 첫 순교자 야고보를 통해 주님의 아름다운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야고보는 제자 중 가장 탁월합니다.
예수님께서 모으신 12제자들은 다양합니다. 어부들, 세관 공무원, 독립운동파, 가룟 유다 같은 엘리트 그룹… 예수님께서는 이들 중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으로 수위 그룹을 형성하셨고 특별 교습들을 하셨습니다. 개인교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 현장 학습을 시켰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 실 때, 변화산상에서 변형된 모습을 보일 때… 예수님은 세 명 혹은 안드레까지 끼워 네 명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 사후에 그들 중에 지도자가 나올 것입니다. 네 명 중 누가 지도자의 자질이 있을까요? 만약에 12제자 그룹 중에서 리더를 뽑는다면 누가 해당될까요? 저는 주저 없이 야고보라고 생각합니다. 12제자 중에 야고보처럼 지도자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 야고보는 좋은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선주(船主)였고 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삯군들을 거느린 부자입니다. 어머니는 신앙심 깊은 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 실 때 예루살렘까지 따라 올라갔던 신앙적인 여인입니다(요 19:25).
지도자들은 가정이 좋아야 합니다. 불우한 가정 때문에 상처가 많으면 상처를 주기가 쉽습니다. 야고보처럼 좋은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야고보는 지도자 자질을 갖춘 사람입니다.
㉡ 야고보에게는 야망적인 기질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여준 야고보의 별명은,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입니다. 천둥과 벼락의 아들입니다. 야고보에게 있었던 열정을 말합니다. 불과 같은 성격을 말합니다.
지도자들에게 최고의 은사는 열정입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열정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열정의 사람입니다. 열심당 시몬도 열정의 사람입니다. 야고보도 불같은 성격-열정의 사람입니다. 열정은 추진력입니다. 열정은 견인력입니다. 열정은 감화력입니다. 뜨거운 가슴이 순교하게 만듭니다.
목회를 잘 하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뜨겁습니다. 목회는 일종의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는 일은 내가 감동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뜨거운 감동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야고보는 매력적인 남자였을 것입니다.
당시 여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아마도 야보고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강력한 힘을 갖고는 있지만, 요즘 말로 가방 끈이 짧습니다. 존경은 해도 인간적인 매력은 없습니다. 야고보에게는 핸섬함과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대중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 야고보는 예수님에 대해 든든한 끈도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마리아와 자매라고 합니다.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예수의 이종 사촌간입니다. (한 기록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를 언급하고, 다른 기록은 그를 “살로메”라고 부른다. 마 27:55, 56; 막 15:40, 41. 요한 19:25에는 살로메 대신 ‘이모’라고 나온다).
살로메는, 몰락한 다윗의 왕손인 자기들의 가문이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분명히 알았던 여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대도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런 여인이었기에 어려서 왕손 교육을 자녀들에게 시켰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야고보는 상당히 좋은 지도자입니다. 만약에 12명의 제자들 중에 리더를 세운다면 누가 해당될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12명의 정탐꾼들을 세웠습니다. 그 중 하나가 모세의 후계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2명 중에 갈렙와 여호수아를 선택했고 둘 중 여호수아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후계자로, 제자들의 리더로 임명하실 까요? 당연히 야고보일 것입니다. 그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됩니다.
야고보는 누가 보더라도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제자그룹을 이끌며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야고보는 12제자 중 가장 먼저 순교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는, 헤롯이 손을 들어 몇 사람을 해하려 하는 중에 야고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헤롯은 예수님 당시의 헤롯왕이 아니라 그 손자-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기회주의자로 소개됩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기독교를 핍박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헤롯의 정치적 술책의 첫 희생자가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칼로 죽임을 당합니다. 첫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왜 첫 순교자가 되었을까? 12제자 중에 가룟 유다의 죽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는 죽어 마땅합니다. 3년 동안 가르쳐 준 스승을 배신하는 제자는 크게 잘못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제자그룹에서 솎아내고 죽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바르게 됩니다.
야고보는 아닙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모든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세움을 받고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꼭 필요한 사람-세상에 대해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사람을 첫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을까요?
㉠ 열정이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야고보는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입니다. 그는 10여 년 동안 열정적으로 영적 사업을 리드했습니다. 그는 어디가든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늙어 죽기보다는 활활 타오르다 죽을 사람입니다. 그의 열정이 헤롯의 귀에 들렸고 그의 열정이 유대인들을 위협했습니다. 그의 열정이 누구를 손 좀 볼까, 찾고 있던 헤롯에게 딱 걸려든 것입니다. 그의 순교는 열정 때문입니다.
㉡ 탁월한 리더십이 순교하게 했습니다.
헤롯이 초대교회를 손보게 된 것은 유대인들에게 아부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죽이겠습니까? 초대교회의 중심 지도자이고 유대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 초대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베드로 중심만이 아닙니다. 성경이 베드로 중심으로 쓰여 졌기에 베드로만이 초대교회 역사에 혼자 뛴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성경 첫 권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베드로의 수행원입니다. 마가의 성경을 참조해서 마태복음을 쓰다보니 베드로에게 치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야고보는, 베드로와 함께 초대교회의 양대(兩大) 산맥입니다. 기독교의 초고속성장의 불길을 끄기 위해 헤롯이 선택한 사람이 야고보이고,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대중성은 있었지만 논리적이고 조직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고보는 대중적이면서도 조직적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를 먼저 노린 것입니다.
㉣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로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야고보의 열정은 자칫 야망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야고보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2인자가 되기에는 너무 출중한 사람입니다. 제자그룹의 수장은 이미 베드로입니다. “한 우물에 두 마리의 용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첫 순교 제물로 받으신 것은 야고보의 야망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첫 순교자로 받으심으로 초대교회에 일어나게 될 분열과 인간 지도자를 지나치게 숭배하는 싹을 사전에 막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얼마나 유익한 지도자입니까? 이런 사람을 첫 순교자로 바칠 때 교인들은 얼마나 낙심했을까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두 아들을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그렇게도 기도했건만 하나를 너무 일찍 데려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잘 모릅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관계될 때, 사역과 관계될 때에 벌어지는 불행, 죽음은 우리를 충분히 낙심하게 만듭니다. “애통하는 자 복이 있나니”라는 동영상을 시청했습니다.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설교 보조 자료로 올려놓을 테니 집에 가셔서 보세요. 카자흐스탄에서 아내를 잃은 젊은 선교사의 애통함, 선교하러 태국으로 갔다 죽은 아들을 회상하는 부모의 애통함, 이라크에 선교하러 갔다가 죽은 김선일 형제, 그 부모의 애통함…
왜 그런 분들이, 제 목숨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의문을 던져줍니다. 살았으면 더 많은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교회에 큰 힘이 되었을 분들인데… 탁월한 지도자 야고보의 죽음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실망이 된 것처럼 열심히 교회 일을 하던 분들이 일찍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고 싶은 주제 역시 “하필이면 왜 내가?” 라는 제목의 고통론입니다. 살로메의 입장에서 책 한 권을 쓴다면 바로 그런 주제였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잘난 우리 아들이 왜 첫 순교의 제물로? 내가 그렇게도 이모라는 친분을 이용해 부탁을 했건만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이런 섭섭한 마음, 배신당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의 일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순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만 믿고 있으면 됩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부흥을 일으킵니다.
야고보의 죽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이 장수해야만 하나님의 은혜이고, 오래 살아야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둬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사역도 중단된다는 걱정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10년 정도의 사역 밖에 못했습니다. 얼마나 아까운 일입니까? 3년을 배워 겨우 10년을 사역한 것입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으면 초대교회에 큰 유익이 될 텐데…. 그럼에도 70세도 모자라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계속 자리에 연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교인들이 원해서? 그건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혹이라도 그런 고정관념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걸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일찍 죽도록 첫 순교자로 삼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 중심의 잘못된 시스템이 조성될까봐, 그를 먼저 불러 가셨을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가 죽으면 교회가 망해? 그런 걱정도 가능합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첫 희생타로 삼은 것은 초대교회 최고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를 죽일 계획을 이미 세워놓았습니다. 두 사람을 죽이면 초대교회 교인들이 위축되고 기독교 전도는 힘들어지고 성장세가 멈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야고보 죽음 이후 초대교회는 긴장했지만 오히려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몫을 위해 더 열심을 품었습니다. 유대인의 사주로 야고보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초대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더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 중 요한을 가장 오래 살게 해서 교회의 부흥을 돕게 하시더니, 형제 야고보는 가장 먼저 죽게 하심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게 하셨습니다. 살아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 더 큰 업적을 남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7)는 인디언 선교에 생애를 바친 미국 식민지 시대의 평범한 선교사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에게 주님을 전하려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폐결핵 등의 병치레와 우울증으로 정작 선교다운 사역은 펼치지 못했습니다.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간보다는 앓아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디안 마을의 방에 누워 기도로 인디언 선교를 도왔습니다. 기도로 숨쉬고 기도로 움직였고 기도로 선교하다 29세의 나이로 "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요절’이라고 합니다.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중단하지 않고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일기가 바로 세계 선교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될 수많은 사람들의 선교사역을 자극하는 불쏘시개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 일기는 미국을 휩쓴 대각성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드의 심장에 깊은 감동을 주었고 감리교운동의 창시자 중의 하나인 존 웨슬리의 마음에 큰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인도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와 헨리 마틴, 짐 올리어트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여서 선교사역에 투신토록 하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세기적인 인물들입니다.
브레이너드는 살아서 보다는 죽어서 더 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선교사의 업적으로 후세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29년의 짧은 경건의 삶 자체가 선교였고 영향력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은 업적으로만 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할까요? 오랜 시간을 기도해야만 기도하는 사람이고 많은 성경의 분량을 읽어야만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하려들까요? 서른 살도 못 되어 세상을 떠나면 아깝다 하고 장수하면 큰일을 하다갔다고 평가하려들까요?
우리는 야고보의 생애 중에서 드러난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는 사실들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살아서 행한 일보다는 죽은 이후에 더 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죽음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남긴 이는 가룟 유다와 야고보밖에 없습니다. 유다는 차라리 죽음의 기록 흔적이 없으면 더 좋았을 뻔한 사람입니다 . 야고보는 자기의 죽음을 분명하게 남겼습니다.
그는 짧은 생애 속에 긴 여운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의 순교의 흔적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결심했을까요? 요한이 100세 가까이 살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였던 것은 형의 못다 산 세월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노령에 밧모섬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형이 보여주었던 그 영웅적인 영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짧은 세월을 탓하지 맙시다! 야고보의 어머니처럼 기도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주님은 야고보를 첫 순교자라는 반열에 두셨습니다. 천국에서 순교자는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는 짧은 세월,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를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야고보처럼 불타는 심정으로 달려가는 열정신자들을 보고 싶습니다. 기도가 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변함없이 충성하는 야고보-당신이 바로 야고보임을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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