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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제자 설교] 안드레, 조용한 인도자(요한복음 1:35~42)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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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조용한 인도자
요한복음 1장 3542절

서론

우리 교회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항목 중에 <인물탐험>이라는 난을 만들었습니다. 주간 단위로 제가 집필할 것인데, 우리 교회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교우들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씩 저의 느낌을 기록해 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려다보니, 우리 교회 제직만도 220명 정도 됩니다. 2년 반이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주간에 두 명씩이 되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고 합니다. 기대가 되지요? 제가 이런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은 홈페이지에 많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결국 교회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에 대한 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스스로 찾아와 제자가 된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제자그룹에서 제자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불러서 사용하셨을까? 예수님의 사람 쓰시는 법을 보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깁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얼마든지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안드레부터 시작해볼까요?

안드레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12제자 중 안드레를 좋아합니다. 제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요한이지만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가 제 성향과 기질과 참 맞습니다. 아무래도 안드레의 혈액형은 AB형일 것이며 기질은 점액질에 해당될 것입니다. 1진 중심의 생활이 아니라  언제나 2진 중심의 성실한 삶은 제 스타일과 비슷해서 안드레를 좋아합니다.  

안드레는 제자들 중에 단연 수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공식적으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과 함께 1호 제자나 마찬가지입니다.


1호라는 것, 순번이 앞쪽에 있다는 것은 조직사회에서 중요합니다. 수석목사, 수석장로 (물론 저는 이런 표현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리는 때로는 특권이 될 수도 있고 가문의 영광이 되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지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 그룹에서 그의 비중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두 그룹에 서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의 앞에는 베드로의 형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특별한 이적을 행한 적도 없고 예수님 사후에 초대교회에서 내놓을만한 사역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의 저자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의 사건들, 내용들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중심이고, 안드레는 그런 면에서도 배제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그의 사역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 외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이름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만날 때, 남들에게 소개할 때 흔히 쓰는 말 베드로의 동생이라는 말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본문에서조차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말합니다.


이런 식의 대접에 안드레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가 자기 명예에,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에 전혀 개의치 않는 덤덤함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입니다.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무 크기에 그 분 앞에 자기 명함을 내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통한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확장되면 그걸로 기쁨이 되고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이름이 어떻고, 자기가 한 일이 어디에 기록되고 새겨졌는가?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안드레의 이런 가치관은 스승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의 첫 스승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얼마든지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였지만 주님께서 오셨을 때 비켜섰습니다. 주님은 큰 빛이고 자기는 작은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운동화 끈을 풀러줄만한 위인도 못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에게 가라고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스승 요한에게서 안드레는 자기를 가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구만 높여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이름이 없어도, 형의 그늘에 항상 머물러 있어도 속상해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업적 따위는 찾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기 이름에 연연합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자기 이름을 의식하려 하지 않습니까? 내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름 뒤에 있을 때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까? 내 이름이 빠졌다고 흥분하지는 않습니까?

 

안드레에게 물어보십시오! 내 이름이 이렇게 구박받아도 되냐고? 누구누구 때문에 내가 늘 가려져서 기분이 나쁘다고? 그때 안드레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가? 주님의 이름만 나타나면 되는 걸 너무 소동을 피우고 있지 않는가? 하기는 나도 그런 적이 있었네. 내 이름이 특출한 형의 이름 그늘에서 취급을 당할 때는 분한 때도 있었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났더니 그게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네.”

 

예수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은 누구 뒤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주던 말든 예수님의 이름만 바라보며 살아간 제자입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할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에 관심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할까,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안드레의 초관심사였습니다

 

그에게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보다 특출한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자리도 내주고 일도 내주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만 잘 되면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만 확장되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뒤쳐지지 않고 부지런히 활동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영웅들이 많습니다. 영웅주의가 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어떻게 섬길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까? 어떻게 하면 내 일을 할까? 내 사역을 할까? 주님보다는 사역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 나 자신의 일에 더 열심 해주는 사람-교회에서 목회자의 마음속에 남는 사람들은 특출한 사역자들이 아닙니다. 안드레처럼 목회자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이 마음에 더 남아있습니다. 바로 안드레 같은 사람입니다. 안드레와 같은 늘빛가족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드레는 안내자였습니다.

성경에서 안드레는 리더는 아닙니다. 리더의 자리는 언제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돌아갑니다. 안드레는 지시하고 활동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늘 그늘에서 다른 제자들을 어떻게 도울까?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축구로 말하면, 공격수가 아니라 공격수들에게 득점하도록 골을 연결시켜주는 어시스트(assist)입니다.   

 

어시스트를 해 주는 선수들을 보면 참 훌륭한 선수처럼 보입니다. 현실은 골을 넣은 사람만이 영웅이 됩니다. 골을 차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영광의 길에서 한 발자국 빗나갑니다. 열 개의 어시스트를 해 주는 것보다는 한 골을 넣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떻든 자기만 골을 넣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위신과 명예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이름, 명예, 영광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로 축구는 실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에게 골을 어시스트해 주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골을 차 넣어도 들어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래도 팀의 승리를 위해 자기보다 더 안전하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에게 골을 패스해줍니다. 대단한 선수라고 봅니다.

일반대중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골을 넣은 선수에게만 환호하지만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독은 알아줍니다. 그 골의 주인공은 어시스트를 해 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어시스트를 해 준 사람에게 점수를 주고 보너스를 줍니다.    


성경에서 안드레는 줄곧 어시스트입니다. 그가 안내한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베드로를 주님에게로 안내했습니다. 

사실 형() 베드로는 그에게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형은 너무 활달했고 유능했기에 형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심에서는 안드레가 항상 앞섰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된 것도 그였습니다. 이번만큼은 형보다 앞 설 수 있는 기회, 형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서 떠올린 사람은 베드로 형입니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예수님에게 형() 만한 인재는 없었습니다. 형을 소개하면 형은 또 다시 자기를 앞설 것입니다. 모처럼 자기가 앞설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안드레는 상대방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누구 필요한 사람인가, 누가 유익한 사람인가? 안드레는 그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안드레가 한 일보다 베드로는 열 배 스무 배 더 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자기 사역 중에서 베드로를 주님에게로 인도한 것이 최고의 업적이 된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는 소년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했습니다. 

벳새다 들녘에서 주님은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빌립은 이만한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시간에 안드레는 사람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무슨 일을 시킬 때면, 조건을 따지고 계산하고 머리부터 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해답부터 찾아나서는 사람입니다. 그도 이성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습니다. 설령 답이 없어도 보리떡이 없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렇게 찾아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전설의고향 같은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머니가 과일을 먹고 싶다고 백 눈 위에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은 효도입니다. 사랑은 계산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좋고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계산을 초월합니다.

 

안드레가 그렇습니다. 결국 안드레는 소년을 찾아서 주님에게로 인도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이적은 나타납니다. 이적을 보이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이적의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어시스트 해 준 이는 안드레입니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났습니다. 안드레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굉장한 일을 한 것입니다.


 헬라인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마지막 유월절에 헬라인들이 주님을 찾아뵙기 원하여 빌립을 찾았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 안내합니다. 그들을 예수님에게로 안내해 준 사람이 바로 안드레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십자가 사역을 말씀하셨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위대한 진리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한 번도 알리지 않는 십자가의 사역을 헬라인들에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안드레라는 사람의 어시스트에 의해 드러난 비밀입니다.


이처럼 안드레는 안내자입니다. 어시스트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시스트는 결정적인 골을 드러냈습니다. 장차 초대교회의 반석과 같은 지도자가 되는 베드로를 안내했습니다. 소년을 안내했습니다. 주님의 신성이 드러났습니다. 헬라인들을 안내했습니다.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메시아성이 드러났습니다.

자기보다 자기가 안내한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큰일을 함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그것이 바로 안드레의 안내사역입니다. 안드레의 안내사역은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도 안내해 놓고 자기는 슬그머니 그 뒤로 숨어버립니다.

 

그는 어부입니다.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는 방법을 그는 터득하고 있습니다. 어부는 자기를 숨겨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고기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겨야 고기가 몰려듭니다. 낚시꾼들이 자기를 노출시키면 고기들이 경계심을 갖게 되고 낚을 수 없습니다. 어부들이 고기에게 자기를 숨기는 것처럼 안드레는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고 자기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이적보다 능력보다 위대합니다.

안드레는 한 사람의 소중성을 아는 사람입니다.

안드레가 언제나 2진에 머물렀다고 그의 능력과 결부시키면 안 됩니다. 능력이 없어서 골을 넣지 못하는 것과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더 좋은 기회를 갖고 있는 동료에게 골을 패스해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초대교회 문서에 보면, 안드레에게 먼저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안드레라는 이름의 뜻이 남자입니다. 안드레라는 이름 속에는 사람다운 사람” “남자다운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진정한 남자입니까? 베드로처럼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대중설교를 하고 그 설교에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그만이 진짜 남자입니까? 그렇다면 잘못 본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상당히 여성적인 사람입니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잘 삐지고 토라지고 충성도 잘 하지만 모르겠다고 잡아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첫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삶을 단칼에 결단한 사람입니다. 그날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남자다운 충성심만이 있었습니다.

남자다움은 영적인 데서 비롯됩니다. 체구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남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가, 남에게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가? 거기에서 결정됩니다.

 

이 엠 바운즈는 그의 책에서 남자들은 하나님의 도구들이다. 남자들은 보다 나은 방편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욱 충성된 남자들을 찾으신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안드레는 충성된 남자입니다. 남들이 알아줄 때, 충성함으로 인기를 얻을 때 충성할 수는 있습니다. 회장으로, 교회의 드러난 직분자로 충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처럼 뒤에서, 숨어서, 남들의 박수가 없이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평생을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안드레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성경에 그의 사역, 업적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도 그는 군소리 없이 충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남자다운 남자였습니다.     


안드레는 한 사람을 위해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대중이 관심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한 사람 베드로, 한 사람 벳새다의 소년, 소수인 헬라인-그는 항상 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천 명을 회개시킬 수 있는 베드로 한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의 물고기와 떡을 내놓음으로 5천명을 먹일 수 있는 소년 한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헬라 세상에 널리 전파한 바로 그 소수의 헬라인들입니다.  

안드레가 남긴 최대의 교훈은 한 사람 비전입니다. 그가 한 사람 베드로를 인도했기에 오늘의 기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매일 저녁 예수 믿을 사람을 초청했는데 한 사람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사흘 째 저녁, 어린 소년 하나가 결신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실망이 컸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야 목사님은 그 부흥회가 실패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 한 아이가 바로 데이빗 리빙스턴입니다.    


무디는 1백만 명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 무디를 인도한 사람은 킴벨 선생입니다. 구두를 수선하고 있던 국졸의 무디에게 찾아와서 기도해주던 킴벨 선생-그는 평생에 한 사람  만을 전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은 1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도했고 무디성경학교를 통해 미국의 복음주의교회 50%의 목회자가 나왔습니다.   


스펄젼을 거듭나게 한 사람은 시골 무명의 전도자였습니다. 그의 복음적인 설교는 영국사회는 물론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설교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풍랑이 있는 배위에서 요한 웨슬레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알게 해 준 이는 무명의 모라비안 형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이름은 없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시원치 않았지만 그들이 인도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큰 인물로 등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나만 하나님의 일을 독점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내가 인도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안드레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영웅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정상이 아닙니다.

결론

유세비우스라는 쓴 사람이 쓴 <교회사>에 안드레의 마지막이 나옵니다. 그는 소아시아의 에베소를 중심으로 선교했다고 합니다. 그는 러시아의 남부까지 찾아갔고 희랍에서도 선교했다고 합니다. <안드레행전>이라는 책에는 ×자형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오 그리스도 예수님이여 나를 받아주소서 내가 본 그 분, 내가 사랑한 그 분, 그분 안에서 나는 내가 되었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평안 가운데 이제 나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라는 유명한 기도문을 남긴 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화가 머릴로는 <성 안드레의 순교> 그림을 그렸습니다. 안드레가 ×형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데 옆에서 소년 하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바로 오병이어의 주인공인 그 아이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 고마워하는 사람, 내가 죽을 때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그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늘빛교회의 안드레입니다. 자기의 일이 남에게 넘어가면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남들에게 가려서 자신이 잘 안 보여도 꾸준히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당신이 안드레입니다. 우리 교회가 안드레 중심의 교회가 될 때 건강한 제자그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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