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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지파 설교] 스불론-해외로 나가는 자(창세기 49:13)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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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중고서적에서

                                                                            품절. 중고서적에

스불론-해외로 나가는 자

창세기 49장 13절

 

서론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가족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아버지가 눈을 떠서 가족들을 휙 둘러보시더니 장남을 향해 "남은 내보내거라!" 하십니다.

장남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여기 남은 없습니다. 우리들 7남매와 어머니가 계실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네 어미가 남이란다."

왜요? 성씨가 다르니까요.

 

야곱은 임종 직전에 온 가족을 다 모았습니다. 이미 두 여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이라고 하면서 물리칠 부인들은 없습니다. 그 자녀들만이 아버지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홉째까지 축복했습니다. 물론 저의 설교 순서는 야곱의 축복 순서와는 다릅니다. 이제 열번째 아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열 번째 아들 스불론. 레아가 낳은 아들입니다.

스불론은 거주를 의미합니다.

레아는 네 아들을 낳고 한참 쉬었다가 합환채 사건 이후로 잇사갈을 잉태하고 출산했습니다. 사람이 몇 살까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미국 엘에이의 알셀리 케 할머니는 63세의 나이에 여아를 출산. 2.9Kg의 아이.

 

여섯 째 아들을 낳은 레아,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창 30:19,20)

"이제는 남편이 나와 함께 거하리라"는 기대로 스불론이라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스불론은 의미는 거주, 거함입니다.

 

사실 이 이름은 남녀의 삼각관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언제나 동생인 라헬에게 남편을 빼앗긴 레아, 이제는 여섯 째 아들을 낳았으니 더 이상 라헬은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며 남편도 자기와 함께 거하리라는 극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출발했지만 이 "거함"이라는 단어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지낼 때 장막을 가지고 여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장막을 가운데 두고 사방을 세 지파씩 나누어서 쉬게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장막은 매우 신성하고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장막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막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막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옷에 방울을 달았습니다. 방울소리가 그들에게는 복된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있다는 증거이고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사실로 큰 희망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잘 거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부부가 한 집안에 서로 거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레아는 스불론을 낳으면서 이제는 남편이 나와 함께 거할 것이라는 기대를 잔득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의 사소한 소원, 이 소원은 역사가 흘러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높은 차원의 열망으로 승화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인간들끼리의 거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해주시기를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사상입니다. 메시아 도래는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그들의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임마누엘,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우리는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세상 끝날 때가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앞에 서는 날, 그분은 우리에게 장막이 되시며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눈물과 괴로움을 다 없애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스불론 신앙의 기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해외로 나가는 복을 예언합니다.

야곱은 이 아들을 향해 이렇게 예언적인 축복을 합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해변에 거하며 왕성한 무역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스블론의 바로 앞의 형은 잇사갈입니다. 잇사갈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잇사갈은 집안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노동을 하고 땅을 일구고 사막을 낙원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이스라엘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됩니다. 그들은 안에서만 꾸물거리다가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완고성, 지나친 보수성은 그것이 교회를 쇠락시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스블론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스블론은 이와는 반대로 해변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해변은 밖으로 진출하는 곳입니다. 그들은 밖으로 뻗어나가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들의 지경은 시돈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손들이 있기에 지금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면서도 세계를 움직이는 강한 민족이 되어 있고 세계적인 민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세 역시도 예언적인 축복을 합니다.

 

"스불론에 대해서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그들이 열국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신33:18,19)

 

여기에 잇사갈과 스불론을 같이 묶어놓고 있습니다. 잇사갈은 안을 지키고 스불론은 밖으로 나가는 공동노력을 통하여 그들이 열국의 백성인 천하백성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스불론은 안에 거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스블론이 점령했던 지역은 요단 강가로, 그리고 지중해로 나가는 데 용이했습니다. 그들은 해변을 통하여 밖으로 뻗어나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종교를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스블론이 사는 지역은 단순히 아름다운 해변가가 아닙니다. 그곳은 배가 정박해 있는 곳입니다. 그 배는 언제라도 출항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배입니다. 이들은 지중해 연안으로 나가서 무역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잇사갈과 스블론의 아름다운 공동사역을 생각해야 합니다. 안에는 잇사갈이 있습니다. 잇사갈은 안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스불론은 밖으로 나가서 수입을 올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요 전도입니다. 아울러, 이런 일이 우리 교회와 가정에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내들은 잇사갈이 되어 안에서 잘 내조하고 남편들은 스불론이 되어 밖으로 힘 있게 나가서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블론은 빛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녹주옥입니다. 녹주옥의 본래의 뜻은 "반짝반짝 빛난다."는 뜻입니다.

이 보석은 등대 불빛과 같은 보석입니다. 등대불빛은 뱃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폭풍에 시달린 여행자들에게는 위로의 빛입니다. 스불론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큰 소망의 빛을 보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스블론의 역할은 바로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왜 늘빛교회를 세우셨습니까?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사역을 담당하라고 여기 스불론으로 우리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빛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의 희생이 없이는 빛이 날 수가 없습니다. 소금이 그렇고 촛불이 그렇습니다.

 

몇 해 전 네덜란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나운 폭풍이 고깃배를 감쌌습니다. 마을에서는 구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구조대는 한 남자를 남겨두고 왔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지쳐있기에 다른 남자를 찾았습니다. 16세 난 한스가 자원했습니다. 그 엄마가 말렸습니다.

"제발 가지마라. 너의 아버지도 10여 년 전에 바다에서 죽었고 네 형 한스도 며칠 전에 바다에서 실종했다. 내게 남은 것은 한스 너 하나뿐이다"

 

그러나 한스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전 가야해요.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누구나 그 부름에 응해야 해요"

한스는 구조대와 합류했습니다. 5시간에 지났습니다. 구조대가 돌아왔습니다. 뱃머리에 한스가 서 있었습니다.

"구출했나?"

"네. 구조했어요, 엄마에게 말해주세요. 실종자가 바로 우리 형 파울이었다고요."

 

희생이 없으면 빛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빛이 없는 것은 희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교회는 이것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빛이 없는 원인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교회에는 잇사갈과 스불론이 다 필요합니다.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런 아름다운 조화가 우리 교회를 더 빛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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