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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지파 설교] 잇사갈-건장한 나귀(창세기 49:14, 1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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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중고서적에서

                                                                  

 
[12지파 설교]

잇사갈-건장한 나귀

창세기 49장 14, 15절

 

서론

신바람건강법으로 유명한 황수관 박사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데 아버지는 손에 종이쪽지를 쥐고 계셨습니다. 그 종이쪽지 속에 여러 가지 유언이나 유훈이 있는 줄을 알았습니다. 종이를 내미시기에 그것을 펼쳐보았더니 단어 하나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직!"

정직한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주고 가시는 그 정직이라는 유산은 수억만의 금보다 큰 것이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기에 큰 자산이었습니다. 

정직은 종이에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떠나가는 사람의 한 생애의 요약입니다. 아무나 종이에 찍찍 적어놓았다고 해서 유산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곱은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자녀들에게 유훈도 하고 예언적인 축복도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두 여덟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이제 아홉째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아홉째의 아들 잇사갈. 이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잇사갈은 값을 지불하고 얻은 아들입니다.

레아는 큰 부인이면서도 남편을 잃었습니다. 레아는 동생만큼 얼굴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레아가 안력이 부족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굴의 모양새가 동생만큼 못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사실은 하나님께서 왜 레아를 주셨는가를 야곱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야곱에게는 레아가 훨씬 내조를 잘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식 전 날 하나님께서 라반을 통해 아내를 바꿔치기 해버렸습니다.

 

유다 속담에, "얼굴만 보고 결혼하는 것은 속이 비어있는 데 페인트만 잘 되었다고 해서 집을 사려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미인은 보는 것이지 결혼하는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그 격입니다.

 

어쩠거나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빼앗겼습니다. 그는 사랑의 결핍증에 걸렸습니다. 이 결핍증처럼 무서운 게 없습니다.

오래 전에 고아원 아이들이 비실비실 말라서 죽어갔습니다. 병이 없는 데도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랑의 결핍증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증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사랑의 결핍증처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 결핍증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것에 집착을 합니다. 

레아는 자녀 생산으로 고갈을 채우려 합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다섯째인 잇사갈입니다.

 

르우벤은 어머니가 아이를 더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합환채를 찾아내었습니다. 합환채는 토마토보다 다소 작은 노란색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식물의 뿌리가 사람의 하반신과 같은 모양을 가졌기 때문에 불임여성들이 이것을 먹으면 임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식물은 사람의 성욕을 자극하는 자극성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합환채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이 제 어머니에게 합환채를 주는 것을 보고 라헬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저 합환채만 있으면…"

 

라헬은 합환채를 얻기 위해 남편을 언니에게 임대(?)해 주었습니다.

 

본 부인은 레아입니다. 그런데도 합환채를 주고서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하다니, 얼마나 속 터지는 일입니까? 그러나 레아 역시 사랑의 결핍증에 걸렸기에 자식을 낳고 싶었습니다. 그 굴욕적인 생각을 견디며 그는 남편을 샀습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잇사갈입니다.

 

레아는 아들을 안으며 값을 지불하여 얻은 자식이라 해서 잇사갈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아들이 얻어다 준 귀한 식물 합환채. 그것은 누구나 얻고 싶어 하는 식물입니다. 마치 비싼 인삼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합환채를 얻었을 때 그것을 팔았으면 비싼 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그것을 라헬에게 주었습니다. 굉장한 희생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다시 아들을 주셨습니다.

레아가 얼마나 기쁜지 "하나님은 내 희생에 충분히 보상해 주셨다"는 뜻으로 잇사갈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 뜻은 값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의미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떤 이들입니까? 뭔가를 얻기 위해 큰 값을 치른 사람들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큰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을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잇사갈이 될 것입니다.

 

한 남자가 위험한 파도 속을 헤엄쳐 가서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조했습니다. 얼마 후, 의식을 되찾은 소년이 자기를 구해준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내 생명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남자는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습니다.

"괜찮다, 꼬마야. 다만 너의 생명이 구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앞으로 너의 인생에서 증명해 보이거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우리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잇사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우리 인생을 값지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역시 주님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만한 값을 치루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기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하십니다. 세상에 대한 보상도 기대하고 하늘나라에 대해서 더 좋은 것으로 그 값을 보상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상 주시는 이로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히 11:6). 우리는 그분께서 주시는 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영광에 우리 자신들을 값없이 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잇사갈은 건장한 나귀가 될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아홉 번째 아들을 바라봅니다. 잇사갈은 어떤 아들보다 집안에서 근실하게 노동하며 열심히 일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향하여  "건장한 나귀가 될 것이며 잘 길들여짐으로 쉼을 얻을 것이다" 라는,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같은 아들이지만 르우벤은 물이 끓음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르우벤은 아무 데나 올라섰고 그의 앞날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잇사갈은 고집스러운 나귀처럼 일할 것입니다. 자기의 자리를 지켜가며 열심히 땀을 흘려 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거기에 대한 상당한 보상과 쉼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물론 잇사갈은 영광스러운 지파는 아닙니다. 그들은 집안의 일을 하는 노동의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이런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약속의 땅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게 할 땅입니다. 이런 사명이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그 땅을 개간하고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 가는 나귀와 같은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을 낙원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과 아랍 땅을 비교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아랍 땅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막이요 광야입니다. 광야에는 풀 한 포기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광야가 울창합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입니다. 바로 잇사갈 지파와 같이 노동하며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키부츠를 만들었습니다. 키부츠는 협동농장을 의미합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사용하는 협동농장, 그들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합니다. 이런 이들의 앞장을 서서 일하는 이들이 잇사갈입니다. 그들의 땀 흘림은 결국 사막을 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광야에 꽃이 피고 사막에 물이 흐른다는 예언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땀흘리며 나귀처럼 고집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잇사갈입니다. 그런 이들의 노력을 하나님은 충분히 보상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의 치적을 비교하면서 경제적인 것을 꼽습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좋은 것들을 가져다 준 반면에 더 많은 좋은 것들을 가져갔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투기입니다. 땅을 팔아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투기를 하여 하루아침에 부한 이들….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에 심한 오염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투기가 가져다 준 가장 큰 독소는 땀 흘림이 없이 돈을 벌고 고생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잇사갈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 쉼이 없는 것입니다. 쉼이라는 것은 바르게 땀 흘리고 노동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실한 땀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로 오는 큰 기쁨도 주시지 않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런 것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기도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예배만 드린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기 포기와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씩 하나씩 성실하게 자기에 대한 희생으로, 눈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자기의 신세가 서러워서 우는 눈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그로부터 오는 눈물이 우리들을 성숙하게 만들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잇사갈입니다.

 

그러나 벼락부자가 되는 세상적인 경제원리는 신앙에도 고스란히 침투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희생시켜 나가면서, 성경을 차곡차곡 읽으며 실천하며  믿음을 하나하나 쌓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복 받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국교인들의 의식구조입니다.

가슴에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잇사갈이 아닙니다.

잇사갈은 정당한 값을 치루고 얻어내는 보상입니다. 이런 보상들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잇사갈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황옥입니다.

옛부터 토파즈라는 이 보석은 "아름다움, 지혜, 장수"를 의미했습니다. 그 말 자체는 "계속해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토파즈라는 황옥은 구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주로 옛날에는 홍해의 섬속에 이 보석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보석을 찾아내기에 가장 좋은 날은 안개가 자욱한 날이라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한 날, 선원들이 섬을 향해서 접근해 갑니다. 그러면 안개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선원들이 그것을 찾아내었을 때는 너무도 기쁘고 감격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보석은 잇사갈 지파 자손들의 여정을 너무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잇사갈은 힘든 노동을 하지만 노동의 대가는 매우 큽니다.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인 사무엘 수ㅡ마일즈는 그의 저서 <자조론>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노 스웨트 노 스위트"(No sweat, no sweet)("땀이 없는 사람에게는 행복도 없다")

 

우리들에게 왜 감격이 없고 자원하는 기쁨이 없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재미없다고 합니다.

교회에 성경적인 프로그램이 없어서? 설교가 시원찮아서? 사람들이 그래서?

아닙니다. 뭔가 여러분의 헌신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노동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지 않기에 교회에 대한 사랑도 없고 그만큼 얻어지는 보상도 없기에 우리들은 꺼진 심령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자에게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잇사갈의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바울은 말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하나님 앞에서 값진 보상을 얻기를 원하신다면,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의 결론을 원하신다면 오늘 당신이 심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무엇을 심고 있는가? 땀을 흘리고 있는가? 희생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이 교회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심고 있는가?

대답은 여러분들이 각자 해야 할 것입니다. 평생을 두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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