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꿈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창세기 50장 22~26절
서론
설교자들이 요셉을 설교할 때 종종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셉의 꿈(37:5-10)을 성공,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요셉도 처음에는 신분 성공이 꿈의 계시인줄 알았습니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는 것! 그걸 비전으로 알았습니다. 채색 옷이 벗겨지고 고난과 역경을 통해 비전이 달라졌습니다. 고난은 세상적인 비전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야곱집안의 왕자, 가나안의 부족장, 형제들 우두머리… 이런 세속적 꿈에서 고난을 통해 제대로 된 비전을 봅니다. 총리 신분이 아니라 총리를 통한 사명이 진정한 꿈이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비전이 무엇이냐?” 물으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는 법에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일류대학교, 유명한 사람… 그게 아니라 그 신분으로 되어지는 사명의 생애가 하나님의 영광이고 비전입니다.
요셉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내 비전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총리가 되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사명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꿈-입(入) 애굽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큰 민족을 이룬다는 언약은 3대가 지났지만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씨족이 100명 미만입니다. 언제라도 원주민이 공격하면 멸족될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민족으로의 번영을 위해 요셉을 먼저 보내시면서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를 계획하셨습니다. 애굽은 다민족 국가요 대제국입니다. 히브리인의 거주지 고센 땅은 외곽지대로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히브리인들을 격리시킵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엄청 출산력을 높입니다. 부하니까 잘 먹고 건강한 아기를 낳습니다. 400년 만에 100명 미만의 씨족이 장정만 60만 민족으로 줄잡아 200만 명입니다.
애굽은 신전(神殿) 문화가 왕성한 국가입니다. 유목민 출신 히브리인들이 장차 솔로몬의 성전을 지을 때는 애굽의 건축술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강대국 애굽에서 충분히 문명과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사장국가로서의 기본을 다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애굽 이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선민을 번성시키실 계획을 가지셨고 그 주역이 요셉입니다. 출(出)애굽의 중심이 모세였다면 입(入)애굽의 중심은 요셉입니다. 섬세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꿈을 오해했기에 그를 죽이려 했고 요셉은 꿈을 바르게 해석했기에 형제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대민족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언약이고 꿈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드리는 것은 총리보다 더 큰 비전입니다. 사명이 비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드리려 용서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셉의 사명-거룩한 형제공동체 형성
야곱의 아들은 12명, 어머니가 넷입니다. 두 명의 정실부인 두 명은 여종입니다. 그러니 자식들의 심리도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 장남 르으벤은 서모(庶母)의 침소를 더럽혀 리더십을 상실합니다. 둘째 셋째 시므온과 레위는 사납습니다. 넷째 유다는 며느리와 관계를 가져서 쌍둥이를 얻습니다. 정말 콩가루 집안이며 상처투성입니다.
야곱의 형제들은 각자 상처가 있고 죄가 있었지만 위대한 12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12기둥을 근거로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뭉쳐야 합니다. 단합된 힘만이 이스라엘을 제사장국가로 만들고 구세주를 탄생시키는 메시아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부족이 단합되려면 요셉의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용서가 없이 형제들을 엄벌하고 노예처럼 대했다면 요셉 이후에 불신공동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거기에서 실패했습니다. 르으벤이 실수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사기적인 방법으로 세겜 남자들을 죽였을 때 본인의 안위만 걱정했지 자식들의 죄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집안에 불신이 팽배했고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실수를 알았습니다. 제대로 된 용서만이 단합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용서는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회개 없는 용서는 외면적인 봉합에 불과합니다, 요셉은 가나안에서의 죄들이 청산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애굽에서의 화목시대가 열립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을 정탐꾼이라며 무섭게 몰아붙이자 그들은 무너집니다(42:21).
요셉의 의도대로 형제들은 고난을 통해 죄들을 고백하고 자책했습니다. 시기심 없는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게 되고 네 명 어머니의 자식들에서 한 아버지의 아들로 뭉칩니다. 네 명의 어머니를 둔 복잡한 구성원들 속에 있었던 시기심과 반목의 뿌리들이 뽑혀졌습니다.
요셉의 14년 총리로서의 업적보다 형제들을 용서한 것, 형제들을 축복하며 사는 것, 보디발과 아내, 술관원장을 용서하며 사는 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용서했고 축복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용서를 보고 십자가의 용서의 세계를 봅니다.
요셉의 사역-언약세대 양육
고난과 용서는 요셉을 이해하는 키워드입니다. 이스라엘이 대민족으로서의 웅대한 출발은 요셉의 고난으로 가능했습니다. 요셉의 고난이 없었다면 가나안을 휩쓴 기근에서 멸족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용서가 없었다면 야곱 가문은 보복의 피로 더러워졌을 것입니다. 요셉은 용서로 형제들의 허물을 덮었으며 집안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했습니다. 여기에 요셉의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혼자의 성공만을 생각했다면 고난을 견디지도 않았을 것이며 형제들을 용서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소년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진짜 성공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 성공이 끝나버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도 성공할 수 있는 여백(餘白)입니다. 그것은 뭐냐? 요셉의 총리 이후의 사역입니다. 총리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이주시켜 큰 민족이 되는 일이요, 총리 이후에는 히브리민족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며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살도록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이며 죽음 직전에서는 유언으로 훗날 애굽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가겠다는 서약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년시절에 보여주셨던 꿈의 성취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주신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은퇴하고서 손자들을 슬하에서 믿음으로 양육하다(50:23) 110세 나이로 죽음 앞에 선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본인도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갈망하며 가문의 족장들에게 유골을 갖고 가기를 단단히 맹세하게 합니다(50:25)
야곱은 죽었을 때 가나안에 묻어 달라, 유언했지만(49:29) 요셉은 애굽에 묻으라 합니다. 400년 동안 맹세의 인질로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절대로 애굽에 뿌리박지 말라는 것입니다. 후손들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야곱의 죽음행렬은 소수였고 결국 혼자서 갔지만(50:7-9) 요셉은 수백만 명과 함께 갑니다. 그때 요셉의 유해를 모세가 모십니다. 요셉이 유골을 갖고 가라고 단단히 맹세시켰기 때문입니다(출13:19).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었던 꿈이었고 꿈의 완성입니다.
요셉은 후대에 꿈을 전승시킨 사람이고 진짜 성공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총리로서의 성공은 진정한 꿈으로 올라서기 위한 사닥다리에 불과합니다. 요셉도 처음에는 사닥다리에 불과한 총리직을 꿈의 실체로 알았으나 고난과 총리생활을 통해 바르게 꿈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분과 일만 아니라 인격과 믿음에서도 진짜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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