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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지파 설교] 유다 - 찬송이 될지라(창세기 49:8-12)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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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파 설교]

유다 - 찬송이 될지라

창세기 49장 8-12절

 

서론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넷째 아들이라 함은 상속의 특권이 별로 없는 위치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 야곱은 유다에게 이런 예언을 합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들의 찬송이 될지라!"(8)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8)

 

유다가 명실상부 12지파 지도자로 임명되는 순간입니다. 앞의 형들을 모두 제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후 땅과 인구는 요셉의 차남 에브라임이, 영적인 축복, 왕권의 축복은 유다지파 몫이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세 아들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르으벤-아들이다!

시므온-들으셨다!

레위-연합했다.

 

그 세월동안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아내로서의 행복도 없고 여주인의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야곱 집안의 중심에는 라헬입니다. 라헬은 얼굴이 예뻐, 사랑을 받아, 야곱이 유일하게 아내의 자리를 내준 여인입니다.

옆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서글프고 자존심 상하고 견디기가 힘들었겠어요? 조상의 시할머니 하갈의 고통이 전해왔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나름대로의 위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 아들이 태어납니다. 세 아들은 장자권의 담보입니다. 야곱 집안의 상속권은 절대로 라헬에게 넘어갈 수 없습니다. 셋 중의 하나가 이을 텐데

 

야곱도 아들을 보는 재미로 자주 레아의 장막을 출입합니다. 그만하면 남편도 마음까지 주지 않겠나,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계속 출생했지만 남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밉기도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레아는 하나님에게 마음을 쏟니다. 넷째를 낳았을 때 레아의 심정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유다라 합니다.

유다 찬송입니다. 하나님에게 찬송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레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하나님을 향하니 찬송이 나왔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보면 다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저 그런 것이지요. 불평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작정하십시오. 찬송은 여러분들의 생애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하는 마음으로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잃었던 찬송을 회복하는 날, 감사를 되찾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왜 유다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선택하셨을까요?

*르우벤-윤리적으로 깨끗지 못합니다. 그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백성들의 윤리의식이 타락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과 동화될 것입니다.

 

*시므온-호전적입니다. 그가 지도자가 되면 백성들은 칼과 창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평화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유통센터입니다.

 

*레위-종교심은 있으나 아이가 잘못된 연합을 합니다. 이런 부족이 지도적 위치에 있게 되면 백성들도 잘못된 연합을 하게 될 것입니다.

 

*유다는 찬송입니다. 그의 찬송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찬송의 사람이 된 것이지요. 찬송하는 사람, 다른 형제들의 입술에서 찬송을 끌어내는 사람,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로 세움 받은 이유가 되겠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하나님을 위한 경배를 위해 지도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 받았을까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민족이 되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조성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뛰어나야 합니다. 땅을 넓히고 군대의 수를 강하게 하고 백성들의 소득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마음을 쏟게 하고 찬송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유다 지파는 이 일을 감당했습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갈렙은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였습니다.

바벨론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계속했습니다. 바벨론을 위한다면 손목을 끊어버릴 각오를 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지도자가 있었기에 유다인들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을 합니다. 광야에서도 젖과 꿀이 흐를 땅과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소망하며 찬송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예쁜 꽃들 피어나리라"

 

유다인들은 백성들 앞에서 찬송을 선도했습니다. 그의 선도를 좇아 백성들은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유다 지파는 잘 감당했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노래를 주어야 합니다. 밝고 희망차고 아름다운 노래를. 그러나 우리 민족은 밝은 노래들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를 남겼습니다. 백성들은 비탄조의 노래들이 많습니다. 이런 노래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밝은 노래를 주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노래를 주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유다는 형제들을 화목케 하는 직임을 감당할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열 두 부족으로 되어있습니다. 네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기에 원한이 깊습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에는 특별한 비결이 필요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찬송하는 사람들을 택한 것입니다. 백성을 하나로 묶어주는데 찬송, 노래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연합국 간의 대치 상태에서 캐럴이 울려나오니 잠시 휴전하고 하나로 합창했습니다. 찬송의 힘, 노래의 힘입니다.

*형제들이 연합하여 요셉을 죽이려 했을 때 유다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미디안 상인에게 팔도록 제안했습니다.

*형제들이 곡물을 사기위해 애굽으로 갔다가 누명을 쓰고 베냐민이 인질이 되었을 때 그는 울며 자신을 대신하고 그 아이를 돌려보내주기를 호소했습니다.

 

유다는 찬송만 자가 아니라 형제들의 입술에서 찬송을 끌어내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사람입니다. 항상 좋은 쪽을 바라보며 좋은 기회를 발견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형제들의 입술에서 찬송을 머물게 한 것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백성들 앞에서 찬송을 선도했습니다. 찬송을 선도하기 전에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백성들을 화목시켰습니다. 그의 선도를 좇아 백성들은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유다 지파는 잘 감당했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누가 찬송할 수 있습니까?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찬송을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고난이 많은 민족이기에 찬송하는 자를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족의 시련 속에서도 찬양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그들은 찬양을 통해 믿음을 지켰고 승리했습니다. 찬양처럼 힘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기도가 안 될 때에도 찬양은 됩니다. 말씀이 싫어질 때도 찬양은 됩니다.

그들의 노래는 항상 소망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밝음을 노래했고 새로운 세상을 노래했습니다.

 

히틀러의 독가스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은 찬송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신다"(아니 마민)

 

유대인들은 이처럼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그는 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환경을 넘어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어려운 형편에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 때 무자비하게 두들겨 팹니다. 어떤 목적을 확신하는 것들은 그 망치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멋있는 작품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맞으면서, 찔리면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 빚어내려 합니다. 여러 가지 곤란이 있습니다. 이런 곤란과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내 인격을 훈련시키시며 내 성격을 만들어 가시며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빚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자들만이 그분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속담에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노래를 발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찬송하는 자의 것입니다. 찬송하는 자는 찬송을 받게됩니다. 그가 찬송할 때 찬송을 받는 자가 되리라고 야곱은 예언을 했습니다(8).

 

여러분은 존경받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항상 넉넉한 마음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대제사장의 흉배에 유다를 상징하는 보석은 홍보석으로 나와 있습니다. 홍보석의 히브리어 본래의 뜻은, "아주 붉고 풍성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붉은 상태도 붉은 것이 아니라 붉은 것이 아주 화려하게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이 보석을 통해서 상징된 유다 지파의 삶의 풍성함과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센 사자새끼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포도주에 취할 것입니다-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나눠줄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홀(왕권)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계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들은 첫 번째 줄 맨 앞에 있습니다. 찬송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이들이 지도자가 되었기에 유대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늘빛교회를 헛간으로 원하지 않습니다.찬양하는 예배장,경배의 장소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는 누가 되어야 합니까?어떤 이들이 앞줄에 서야합니까?오래 믿은 이들,말빨이 선 이들이 앞줄에 서야 합니까?

아닙니다.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이 서야합니다.하나님을 향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있는 이들이 앞줄에 서야합니다.다른 사람들의 입술에 찬송을 줄 수 있는 자들이 앞에 서야 합니다.그래야 유대인들이 민족의 시련 앞에서도 살아남은 것처럼 우리 한국교회가,우리 늘빛교회가 살아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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