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 - 잔해하는 기계
창세기 49장 5-7절
서론
돈밖에 모르는 한 남자가 임종을 앞두고 감긴 눈으로 가족을 찾습니다.
"여보, 어디 있소?" "여기 있어요" 아내가 손을 잡아줍니다.
"큰 애? 둘째는?"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나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
"다들 여기 있으면 가게는 누가 보나?"
그러고는 꼴깍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먹여 살릴 궁리만 하다 간 아버지의 일생, 그러면서도 마지막 모습이 꼭 그렇게 되야 하나 하는 안스러움을 갖게 하는 일화입니다.
야곱은 평생을 험악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그는 왕처럼 품위있게 처신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불러 놓고 하나하나 예언적인 축복을 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고 장자에게 오는 기업이 있었으나 죄를 범함으로 유다에게 장자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르우벤이 놓친 장자의 명분이 둘째인 시므온에게 넘어가지 않고 넷째인 유다에게 넘어간 것은 그가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기도의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첫 부인 레아는 르우벤을 얻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남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라헬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레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아들 하나를 더 주세요.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고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자식으로 돌려보고자 하는 것은 유대 여인이나 한국 여인네들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둘째를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레아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지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이름의 뜻은 "들으심, 나의 기도를 들으심"입니다.
레아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야곱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고 아들도 얻었습니다.
성경에 그와 같은 여인이 한 사람 더 있습니다. "한나"라는 여인은 엘가나의 아내입니다. 또 다른 아내 브니나는 여러 아들을 가졌지만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하나님 앞에 토로했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는 격동시키는 브닌나를 대적하지 않고 기도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고 귀한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인간의 힘에 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너무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더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비밀 병기입니다. 이 병기를 통해 우리들은 자신들을 컨트롤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시므온을 주실 것입니다.
시므온은 잔해하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남편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애원은 했으나 정작 아들을 위한 기도는 많이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자매간의 질투 때문에 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사실 레아의 촛점은 남편도 라헬도 아닙니다. 미모를 쫓아가는 남편의 마음을 무슨 수로 돌려댈 것이며, 동생이면서 시앗인 라헬을 어떻게 상대할 것입니까?
레아는 하나님께서 주신 두 아들, 르우벤과 시므온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잘 양육해야 옳았습니다. 한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아들에 대한 양육에 힘쓰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공격 무기를 잘못 사용하는 분들을 봅니다. 우리들의 공격 무기는 사단을 위한 것이요, 그리고 우리 육신에 대해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사용해야 할 곳에는 무기를 감추고 아군을 향해 공격을 하다 자신도 어렵고 남도 어렵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레아가 남편과 라헬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경쟁하는 사이에 아들은 갈수록 점점 거칠어졌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디나가 세겜의 추장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시므온은 레위와 함께 세겜의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것도 속임수로. 아버지의 더러운 성질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시므온의 그 혈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어머니의 동생, 그렇잖아도 어머니는 큰 부인이면서도 이모인 라헬에게 눌려 살았습니다. 거기다가 디나까지 성폭행 당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질 일입니까?
그는 형에게 복수를 제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은 맏이기에 함께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는 다음 번 동생인 레위와 모의했습니다.
그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습니다. 정정당당한 명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폭력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제 야곱은 임종 직전에 둘째 아들을 바라봅니다. 둘째 아들 시므온, 그를 낳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사랑스러웠던가요. 그러나 그 아들을 위해 선듯 복을 빌어주지 못합니다. 둘째 아들은 성격이 급했고 무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처리해 버렸습니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시므온은 형의 뒤를 잇지 못했습니다. 그의 복수심과 폭력성 때문에.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입니다. 예수님은 원수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시므온은 잊혀진 지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수와 증오를 가진 사람들을 외면하십니다. 미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교제를 거부하며 증오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의 대가를 하나님은 그 자손들에게서 찾으십니다.
시므온 지파는 둘째 아들 지파라는 막강한 권리가 있었지만 그의 조상의 호전적인 성품 때문에 모든 지위와 특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ㄱ) 작은 땅 차지-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장 아래 쪽의 매우 작은 땅을 차지하는데 그쳤습니다.
ㄴ) 숫자적인 감소-광야에 들어섰을 때에 군대에 나갈 장정의 숫자를 계수해 보았더니 오만 구천 삼백 명이었습니다. 40년이 흐르면서 이만 이천 이백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3만 7천 명 정도가 감소한 것이지요.
ㄷ) 잊혀진 지파-모세가 임종 직전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신명기 33장)는 시므온 지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시므온은 잊혀진 지파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에서 우리들은 증오와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접을 봅니다. 적대적인 사람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갈수록 더 줄어들고 소멸되어 갑니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는 동물원 원장을 초청,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원장은 각 동물들의 특성과 수명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강연이 끝났을 때 미우라가 질문했습니다.
"동물이나 생물 중 어느 것이 빨리 죽는가?"
"호전적이고 성질이 급한 놈, 덩치가 큰 놈들은 빨리 죽는다. 그러나 온유한 동물들은 오래 산다. 또 곤충 가운데서도 투구벌레처럼 등딱지가 딱딱한 놈들이 빨리 죽는다"
느끼는 바가 많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아이큐(I Q)가 아니라 이큐(E Q)가 좋은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을 것이며 번영할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던 사파이어는 질기고 딱딱하며 단단합니다. 그러나 한번 갈라지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성격을 가진 보석으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던 보석입니다.
보석 전문가들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좋은 가능성을 지닌 보석이지만 이것은 쉽게 갈라져 버리고 별로 쓸모없이 끝장이 날 수 있는 보석이라는 데 이 보석의 문제점이 있다"
이것은 시므온 지파의 역사적 운명을 그대로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낳은 아들, 그러나 자신 속에 있는 폭력성, 사기성을 기도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미움과 증오를 삭이지 못하고 인간적인 간교한 수단으로 자신의 분노를 터트림으로 그의 보석에 금이 감으로 그는 축복에서 멀어져 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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