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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우리는 이렇게 형통으로 걸어간다!(여호수아 1:1~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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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형통으로 걸어간다!

여호수아 1장 1~9절

 

서론

(2021년 설교) 음력설로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2021년이면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는데 백신 개발이 성공하고 접종이 시작되려고 하니 이번에는 영국발, 남아공발, 브라질발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 변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닥칠 위기에 놓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작년 12 14일 공식 확인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9일 현재 58일 만에 세계 86국으로 번졌습니다. 한국은 3종 변이 감염자가 모두 나온 세계 11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공식 확인 후 58일 만에 세계 33국으로 확산한 것과 비교하면 전파 속도가 2.6배 빠르고 사망 위험은 35%에 이릅니다. 코로나 터널을 빠져나가는 줄로 알았는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입니다. 그러니 어느 때보다 염려하는 심정으로 설명절을 보내고 오늘 예배로 모였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이들은 불평불만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이적을 모두 목도한 체험적인 세대입니다. 그들에게는 영권이 있었고 체험이 있었습니다.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체험이 있는 사람들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이들은 그만큼 체험자들입니다.

 

여기 여호수아와 함께 한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순수하기는 했지만 체험적인 면에서는 약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불모지에 들어가서 새역사를 하려고 할 때 당연히 두렵습니다.

 

-리더십 이양(移讓)에 대한 두려움.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는 대략 48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같은 선지자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직면하여 아시던 대단한 선지자라고 합니다(34;10). 전임자가 너무 걸출했기에 리더 자리가 너무 버겁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후임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끌게 되었을 때 이영훈 목사님이 얼마나 마음이 눌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그런 면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새 땅 거주민에 대한 두려움. 그곳에는 아낙 자손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인입니다. 40년 전에 그들을 보고 혼비백산했던 거민입니다. 그때는 모세의 그늘에 있었기에 무섭지 않았습니다두 번째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더 무섭다고 40년 전에 그들을 보았기에 지금은 모세의 그늘이 아니라 사령관으로 앞서야 했기에 두렵습니다.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 모세조차 거역하던 백성들입니다. 언제 돌변해서 돌 던질지 모릅니다. 그런 백성들을 뒤로 하니 마치 얼음판을 걷는 조마조마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새로운 시대 앞에 놓여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기원전(B.C.) 기원후(A.D.)로 나뉘었지만 앞으로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된다고 예언합니다. 그래요! 교회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 역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신앙생활 전반이 목회전반이 바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도 불안한 심경입니다. 코로나로 무너지는 다음세대를 보면서는 더욱 불안하고 두려운 심정입니다. 여호수아는 더한 심정이었겠지요.

 

이런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마음을 달랩니다.

9,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과잉된 두려움 과잉된 놀라움, 거품이 많이 들어있는 두려움과 놀라움입니다. 모세라면 열 개 정도 두려울 것을 여호수아는 50 100개의 과잉된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델로프는 두려움, 불안을 두 얼굴의 심리 현상이라 합니다. 헬라어에는 근심, 두려움은 나뉘다는 뜻이 있습니다. 생각이 나뉘고 마음이 나뉘고 믿음이 나뉜 심리가 불안입니다.

 

눈사람은 속에 돌멩이 하나 정도가 들어있습니다. 타버린 연탄재가 있습니다. 그걸 눈에 누르면 구를수록 점점 커집니다. 나중에는 엄청난 눈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나 그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해가 떠오르면 모두 녹아버리고 처음의 작은 돌멩이, 연탄재만 남습니다. 거품눈사람이요 거품형체입니다. 그걸 보고 겁내고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거품 경제, 거품 부동산경기에 너무 놀라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거품에 너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의 거품을 걷어내는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움은 머리에서 시작되지만 두려움의 저장 공간은 마음, 가슴입니다. 가슴은 눈과 귀와 뇌와 감정의 저장 공간입니다. 외부의 두려움들이 모두 집합해서 떨게 하는 장소가 마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다루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세 번을 반복합니다.

 

6, 강하고 담대하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9, (앞에서도 두 번이나 말하지 않았더냐! 삼세 번째이다!) 강하고 담대하라!

 

3번 강조는 완전 강조입니다.

강하게 하라

히브리어로 이는 손에 힘이 있는 상태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의 상징은 손입니다! 권력을 잡았다! 정권을 잡았다! 돈을 잡았다! 명예를 잡았다! 손으로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권능도 능력의 오른팔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팔은 권능입니다.

그러니 손을 강하게 해서 적들의 목덜미를 꽉! 잡으라는 것입니다. 뒷덜미를 꽉! 잡으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거품을 걷어내고 그렇게 손에 힘을 가하고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꼼짝없이 잡히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담대히 하라

히브리어로 무릎에 힘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발에 힘을 주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들을 밟으라는 것입니다. 평지도 밟고 산지도 밟고 비탈길도 밟고 광야도 밟고 밝은 곳마다 네 것이 되니 꽉꽉 밟으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 땅이 위험하고 아낙 자손들이 살고 처음 행진하는 거친 땅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 상대 못 할 적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한 땅입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면 두려움의 거품은 그만큼 걷어내질 것이다손에 무릎에 힘을 주고 발에 힘을 주고 담대히 밟고 걸으면 그 땅이 너희 땅이 된다, 믿음의 배짱으로 두려워하지 말라, 손에 힘을 주고 무릎에 힘을 주고 마음 단단히 먹고 맞서면 거품이 빠진 두려움만 보이고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과잉된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에 힘을 준다고 무릎에 힘을 준다고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손과 발에 힘이 생기는 방법을 하나님은 제시하십니다.

 

7,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치우치지 말라,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말라! 하나님이 항상 판단의 기준! 선택의 기준이 되라는 것입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망한 게 자기소견대로’(21:25) 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준이고 내 생각이 최종 판단의 기준입니다. 그러니 상황에 흔들리고 선택이 잘못됩니다.

 

사사기가 끝나고 사무엘상 왕정시대로 들어가면 부득이하여’(삼상 13;12)로 나갑니다. 내 소견대로 살다가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면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망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들이 상당히 위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내 소견과 사상이 중심입니다. 내 사상과 성경이 같이 가면 성경을 따르지만 성경이 내 사상과 다르면 내 소견대로’ ‘부득이하여, 빠집니다. 그러다보니 신앙(信仰) 위에 신념(信念)이 있고 신권(神權) 위에 인권(人權)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최초, 최종의 기준으로 행동하라! 고 합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길을 열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성공한 군인이 있습니다. 6.25 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입니다. 장군은 전쟁터에서 40년을 지낸 맹장입니다. 텍사스 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매일 아침 8 23분에 성바오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졸업 때까지 4년을 학교 정문에 있는 호텔에 숙박하면서 매일 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장군은 아무리 바빠도 위험한 날도 40년간 하루에 성경 1장씩은 꼭 읽었습니다. 전선에서 죽음의 고비 때마다 요한복음 11 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것이요 살아서 나를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를 암송하며 위기를 넘겼다 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도 매일 저녁 함상에서 기도했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기도로 준비해서 결론을 내렸고 승리는 기도의 응답이었음을 회고록에서 고백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서울을 탈환하고 시청 맞은편에 있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도했고, 뒤따르던 참모들도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우리 부대는 한국의 서울을 해방시켰습니다. 이 거리는 잔학무도한 공산주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으며 시민들은 다시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승리를 우리에게 되찾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서) “우리 다 같이 이런 하나님을 위해 나와 함께 주기도문을 외우도록 합시다.”

그러자 장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흙으로 얼룩진 전투모를 벗고 함께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50여 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노병은 이제 물러갑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가라는 권유에도 정치군인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정치가가 되었더면 정도에서 벗어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되고 있습니다.

 

<이런 아들을 주소서! 주님 약할 때도 강함을 알 수 있는 아이,

두려울 때도 혼자서 용감히 막설 용기가 있는 이런 아들이 되게 하소서,(중략)

폭풍 가운데도 서 있는 법을 알도록 하소서.>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시대의 여호수아 장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앞세우고 살았기에 전쟁에서 승리했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음에도 군인으로 만족했습니다. 치우치지 않는 자세입니다.

잠언 기자는,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16:2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뉴스와 정보, 유튜브보다 말씀에 주의할 때 두려움의 거품을 걷어내고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려움에 빠지지 말고 두려움의 거품을 걷어내고 손과 발에 강력한 힘으로 전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마, 약속하십니다!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가는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려면 하나님이 함께해 주셔야 한다, 그러면 적들은 너희들의 밥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은 셉니다! 그걸 믿고 쫄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모세와 함께 했던 모세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승리를 이미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 도와주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대동해 줄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우리에게는 변이 바이러스의 적들 앞에서도 과잉된 두려움, 거품두려움으로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의 거품을 벗어내고 하나님 더욱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신다, 약속하십니다!

 

결론

역대하 26:5, “하나님이 (웃시야 왕을) 형통케 하셨더라.”고 합니다. ‘형통 앞으로 나아가다” “거침없이 순탄하게 앞으로 쭉쭉 나가다.” 그런데 그 앞에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15) 형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밀어주시고 후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왕의 도움이 되신다면 누가 그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뒤에서 그를 밀어주시는데 누가 그를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웃시야 왕은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웃시야 왕에게 임한 형통! 여호수아에게 임한 형통이 한 해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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