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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신수성가의 자녀 양육(창세기 49:22~26)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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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신수성가의 자녀 양육

창세기 49장 22~26절

 

서론

무인도에 세 남자가 표류해 왔습니다. 오매불망 구조를 기다릴 때 마법사가 찾아왔습니다.

“섬에서 나가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동안 고생했으니 소원 하나씩 들어주마!”

남자1, 나는 유명한 인기스타가 되고 싶어요!

남자2, 사내로 태어났으니 왕-킹이 되고 싶어요!

남자3은 고민했습니다.

 

남자1은 스타, 남자2는 왕을… 좋은 것은 앞서 차지해 버렸습니다.

네 소원은 무엇이냐? 마법사의 채근에 남자3은 씩~ 웃더니 말했습니다.

스타~킹이 되고 싶습니다~!

스타와 같은 왕이 되고 싶다는 소원이지요.

그래? 못해 줄 것도 없지! 너는 스타킹이 되어라!

세 번째 남자는 스타 같은 왕이 되고 싶었는데 너무 욕심 부리다 스타킹이 된 것입니다.

스타킹을 신을 때마다 생각하세요! 욕심이 과하면 오던 복도 차버린다고요!

우리는 금년에도 “다음세대를 위해 헌신하라”(시즌 2)는 표어를 정했습니다. 이런 주제에 어떤 생각이 드나요? 목사와 교육부서는 부흥되는 주일학교를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해서 우리 아이를 스타나 킹으로 만드는 성공관을 생각합니다.

 

제 생각속의 다음세대는 신수성가 요셉입니다. 야곱은 임종직전에 요셉에게 예언합니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24절)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목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본문 아래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금년도 주제설교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신수성가를 되새겨 보고 진정한 성공은 무엇이고 무엇을 목표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키울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총리 신분은 요셉의 1차 성공입니다.

요셉은 17세에 형들의 배신으로 애굽에 팔려왔고 노예 신분-노예총무신분-죄수신분-죄수총무신분-애굽의 전국총리라는 벼락출세를 했습니다. 인생에서 뒤집기에 성공한 것입니다. 인생의 뒤집기, 멋지잖아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에도 멋지게 뒤집기를 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나쁜 쪽으로의 뒤집기가 아니라 성공적인 뒤집기를 기원합니다!

 

인생의 뒤집기 이전에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합니다. 성추행범. 요셉 인격에는 견디기 힘든 모욕입니다. 차라리 강도가 낮지요? 그러면 뭔가 깡다구라도 있는 남자처럼 보일 것입니다. 주인의 아내를 넘보다 실패한 성추행범. 참 구차스러운 죄목입니다. 마치 목사가 과속에 걸려 봐달라고 사정했더니 나중에 배달된 노상방뇨죄 범칙금 딱지를 교회 사무원이 먼저 보고 온 교회에 퍼졌을 때 느끼는 수치심보다 더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뒤집기에 성공해서 하루아침에 애굽제국의 전국총리가 된 것입니다. 벼락출세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열한 개 볏단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꿈입니다. 두 번째 꿈은 더 굉장합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꿈입니다. 해는 아버지를, 달은 어머니들을, 열한별은 형제들입니다. 아버지가 절할 수 있는 아들은 단 하나, 왕이나 총리밖에 없습니다. 그 꿈은 요셉이 총리나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당찮은 꿈입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언약을 믿는 사람이었기에 그 꿈을 믿었습니다. 아들이 왕이나 총리가 될 줄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귀인(貴人)들이 입은 예복이나 관복과 같은 것입니다.

 

야곱은 거부(巨富)입니다. 모든 아들에게 채색 옷을 입힐 수 있습니다. 막내 베냐민은 더 사랑스럽지만 입히지 않았습니다. 왕이 될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만이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래서 편애라기보다는 왕이 될 관리 차원에서 채색 옷을 입힌 것입니다.

 

형들은 채색 옷을 벗겨버렸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에 대해 세 어머니와 아들들은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라헬이 남편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움을 샀고 그 미움은 요셉에게 대물림되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인 것이 아니라 요셉의 꿈이 더 무서웠습니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져서 아버지 집에서 왕 노릇하고 어머니들이 요셉 어머니를 섬겼듯이 자기들도 요셉을 섬긴다는 것이 기분 나빴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채색 옷을 벗겨버리고 나중에는 장사꾼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아넘깁니다. 꿈을 벗겨버리려 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고생고생하다 요셉은 애굽의 전국총리가 된 것입니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을까요? 이게 요셉의 꿈이었다면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느라 피비린내 났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1차 대상이겠지요? 다음에 보디발… 그에 동조했던 노예들… 꿈을 해몽해 주었지만 까마득히 2년을 잊어버렸던 술관원장도 보복 대상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공식적으로는 누구도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꿈의 목표가 총리가 아니라는 것을 시련과 연단을 통해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총리는 1차 성공이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의 완결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꿈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1차 성공에 머물지 않았고, 보복하느라 꿈을 완성할 기회를 낭비하거나 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자수성가로 1차성공은 이루었지만 성공이후 성공이라는 부수성가의 2차축복은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부수성가(父手成家)를 꿈꿉니다. 부수성가가 무엇입니까? 부모 손(手)의 도움으로 성공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모 손은 돈이고 노력, 희생이 됩니다. 그래서 재벌2세들은 부(富)의 대물림을 통해 부자가 됩니다. 소시민 부모들은 학원에 보내고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 노력과 희생을 다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부모 손이 절반은 될 것입니다. 요즘에는 조부모들의 자금력까지 동원되어야 한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조금 달라요. 믿는 부모는 자녀 신수성가를 위해 신앙적으로 뒷바라지 합니다. 자녀신앙교육세미나도 참석합니다. 열심히 기도로 자녀들을 밉니다. 자녀들이 믿음생활을 하도록 신앙으로 잘 양육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내로라하는 사람이 됩니다. 요셉처럼 총리는 아니어도 성공하고 출세합니다. 신앙적으로 키웠기에 신수성가라 말합니다.

 

문제는 자녀가 성공한 이후에는 비신자나 신자의 생각이 다 같습니다. 비신자들은 내 손으로 자녀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부수성가를 생각하고, 믿는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가르치고 뒷바라지를 해서 자식들이 성공했다고 신수성가라 말은 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이후부터는 꼭 같습니다. 그 성공을 통해 자녀들이 어떻게 2차 성공의 신수성가를 이루어낼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그 신분 그 지위를 잘 지켜나기만을 기도하지 그 신분을 통해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미션까지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실컷 믿음으로 밀어 자녀들을 성공시켜 놓고 정작 믿음의 대물림은 끊어집니다. 무엇이 신수성가이며 무엇이 성공입니까?

 

왜 이럴까요? 자녀들의 꿈의 목표를 세상적인 신분과 명예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원하던 신분을 얻고 명예를 얻으면 하나님의 신수성가 은총으로 성공했다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이런 간증들이 한국교회에 범람하면서 믿음들이 세속화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수성가일까요? 절반의 신수성가일 뿐입니다. 요셉의 신수성가 생애를 총리에만 두었지 총리 이후의 그의 미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내 자녀들의 절반의 신수성가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일종의 성공주의 신학이 된 것이지요.  

총리 사역은 요셉의 2차 성공입니다.

요셉은 총리 직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성경은 총리 이후에 대해서는 함구합니다. 최소 풍년과 흉년 관리총리로서 14년, 아버지가 별세까지는 현직 총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애굽에 들어와서 17년을 더 살고 1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26년 이상 장수총리가 됩니다. 56세까지는 총리 직을 수행한 셈입니다. 요셉이 110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54년이라는 총리 퇴직 이후의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요셉의 미션-사역이 바로 17세에 보았던 꿈, 비전입니다. 이때의 기간이 요셉을 신수성가의 대명사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요셉이 26년 이상의 총리 직을 통해, 총리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110세를 살기까지 54년을 어떤 일을 했을까? 그것이 17세 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준 요셉의 꿈입니다. 그게 꿈인 것을 알았기에 총리라는 권력을 사적으로 보복하는 일에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로, 총리이후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언약 인프라(infra)를 구축하는 일에 생애를 바쳤습니다. 인프라는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조물. 도로, 항만, 철도… 등을 말합니다.

요셉이 총리 지위를 통해 깔아놓은 언약 인프라는 무엇일까요?

 

㈀ 입(入) 애굽의 인프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대민족이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대민족 언약을 이루는 데는 가나안보다는 애굽이 적격입니다. 가나안에는 사나운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공격하면 70명 미만의 야곱 씨족은 멸족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 이주시킨 것입니다.

 

애굽에서 정착한 고센 땅은 기름진 땅입니다. 국경지대이기에 왕의 국경수비대가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에 얼마는 왕실 목축을 관리하는 공무원으로 세웠습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했겠어요? 먹고 놀고… 애를 낳고 쌍둥이 세 쌍둥이… 그러다보니 400년 만에 장정만 60만 명이라는 대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 일을 누가 했는가? 하나님의 손의 도움으로 요셉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수성가입니다.

 

㈁ 血統(혈통)의 단일화 인프라입니다.

야곱은 네 명의 아내에게서 12명의 자식을 보았습니다. 한 아버지로 단일화보다는 네 어머니의 쪽으로 분열됩니다. 서로 시기하고 모함하고 반목과 대립을 일삼습니다. 가나안에서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들은 가해자로, 요셉은 피해자로… 그들은 양식을 구하러 온 소수부족으로 요셉은 애굽제국의 총리신분으로 만나게 합니다. 그들은 죽은 목숨입니다.

 

형제들이 엎드린 모습에서 요셉은 자기 꿈의 계시를 알았습니다. 열 한 개의 볏단들이 절을 하고, 열한별이 절을 하는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 주변으로 모여 한 아버지의 아들로 하나의 민족을 이루라는 꿈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나안 형제들은 죄가 너무 많았습니다. 언약 집안에 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죄들을 짓고 형제를 팔았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형제끼리 반목했고 대립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언약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거룩한 형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토하도록 했습니다. 조건 없이 용서했고 품습니다.

 

아버지는 임종 전에 아들들을 모아놓고 장래를 예언했습니다. 모두 아들들에게 특색 있는 예언들입니다. 요셉은 모든 예언들을 유심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을 하나로 단일화시키고 형제들 후손들의 특성화를 위해서 일일이 돌봐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에게 하라고 보여주신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걸 위해 자기의 피해를 잊은 것입니다.  


㈂ 언약공동체의 인프라를 깔아놓았습니다.

요셉은 총리 이후 50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만약 총리가 꿈의 전부였다면 두 아들과 손자들을 정계에 진출시키고자, 우리말로 하면 아들이나 손자들을 장관 시키고 국회의원을 시키고자 막후에서 동분서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정치적인 일보다는 야곱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도록 언약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장년과 노년의 생애를 헌신합니다. 언약의 요소는 땅과 대민족과 복의 근원입니다. 땅은 성지(聖地)를, 대민족은 국가를, 복의 근원은 혈통을 말합니다. 요셉은 이렇게 민족백성들에게 교육한 것입니다. 너희에게 주어진 땅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이다! 그러니 애굽에 뿌리 내릴 생각을 말라! 너희는 다민족 애굽에 빌붙어 사는 이방인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국가를 형성하고 살아야 할 위대한 민족이다! 그러니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다가 언약할 때가 되면 과감하게 이 땅을 출애굽해야 한다….

이런 가르침과 함께 요셉은 자기 해골을 인질로 잡히게 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죽었을 때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 했지만 요셉은 애굽에 묻었다가 출애굽할 때 메고 가라는 말로 자기의 언약 교육이 확실함을 알려주었고 자기를 애굽 총리가 아니라 언약교육자로서 기억되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왜냐? 이것이 그에게 주신 꿈의 내용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언약중심 자녀교육의 인프라를 깔아놓았습니다.

요셉에게 항상 눌리는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굽 여인, 그것도 애굽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그 여인 사이에 태어난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 아들들에게서 출생하는 손자들에게는 반반의 피들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혈통 히브리인의 피, 어머니의 혈통 애굽인의 피입니다.

 

먼 훗날 출애굽 할 때 11명 형제들은 히브리인 혈통입니다. 내 자식은 절반만 히브리인 혈통입니다. 가나안에 가봐야 왕따라는 생각에 므낫세와 에브라임 자손이 애굽에 잔류해 버리면 아무리 애굽총리로서 민족을 구해내고 형제들을 안전하게 보살폈지만 언약축복에서 제외됩니다. 아무리 남에게 잘하고 업적을 남겨도 내 자식이 언약의 축복에서 제외되면 헛수고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식들에게 언약의 대물림을 하는 일에 노년을 걸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50:23,“에브라임 자손 3대를 보았으며…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는 슬하는 무릎이라는 말입니다. 무릎에 앉혀놓고 어릴 때부터 언약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할 때는 두 아들과 자손들도 일제히 애굽을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 에브라임은 12부족 가운데 가장 큰 지파가 됩니다. 요셉의 자녀교육의 축복입니다.

 

결론

이상이 요셉이 총리를 통해 이루어낸 언약 인프라이자 꿈의 성취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함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기에 신수성가입니다. 진정한 신수성가는 성공 이후 또 하나의 성공을 이루는 생애입니다.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크리스천들이 자기 성공으로 끝나고 부모들이 자기들 기도와 신앙양육으로 이루어 낸 그 성공에 만족하고 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음들이 내 대에서 끊기고 내 자손들이 언약 안에서 대를 이어가도록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내야할 과제입니다.


우리는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다음세대를 위해 헌신하라”는 교육주제를 택했습니다. 단순히 주일학교 부흥을 위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자녀교육 기독교교육의 목표를 말합니다. 우리의 자녀교육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신앙교육은 성공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신앙교육은 신앙의 목표를 이루는 데까지 갈 것인가? 그래서 마더 와이즈에 대한 기대도 큰 것입니다. 모두들 성공 이후의 성공을 이루는 꿈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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