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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코로나 바벨론 포로에서(요엘 2:21~2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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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벨론 포로에서

요엘 2장 21~27절

 

서론

[2021년 설교이기에 다시 다듬었지만 상황에 맞게 고쳐서 사용하세요.]

2019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호흡기 감염질환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한국교회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코로나로 피해가 큰 분야는 항공업, 여행업, 관광업, 운수업, 학원, 음식점 등등입니다. 교회 도 피해가 큽니다. 예배가 축소되고 중단되고 5인 이상 모임 금지명령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멈추었으며 집회가 올스톱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교회생활입니다.

 

자연으로 오는 대재앙은 오래전 이스라엘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25절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메뚜기, 느치, 황충, 팥중이는 모두 메뚜기를 가리키는 각기 다른 히브리어들입니다.(가잠, 아립베, 얄레크, 하실). 네 곤충은 다른 어원으로 메뚜기의 특성을 잘 나타냅니다. 자르다, 많은 떼, 급하게 갉아먹는 모습, 끝장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노벨문학상 작가 펄벅의 장편 대지를 보면 중국 농촌에 메뚜기 떼가 새카맣게 지나가는데 겁나요! 논밭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한 이런 재앙이 얼마나 대단한지, 요엘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1 2, “늙은 자들아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사태를 설명하는 문장 같지 않습니까?

 

교회는 예배 등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며 교회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코로나 감염과 확진의 진원지가 되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사실 5만개 이상의 교회가 매주일 예배드려도 교회의 확진자 비율은 10% 미만입니다. 강서구는 500개 교회가 되는데 확진자가 나온 교회가 10개교회나 될까요. 전국교회로 볼 때 1%도 안 나올 만큼 방역에 모범적이지만 100명 이상의 대단위 확진은 거의 교회나 선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사랑제일교회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인터콥 선교회 수백 명, 거기다 im선교회 학생들 340명의 확진자가 발생해서 마치 교회가 진원지의 주범처럼 보여 교회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코로나 위기도 지나갔지만 이제 코로나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때가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가져온 교회 상황

코로나 감염체를 보면 단순한 바이러스, ()이 아니라 AI인공지능을 지닌 인격체 같습니다. 교회를 주 타킷으로 사탄이 총공세를 하는 느낌입니다. 코로나가 교회를 너무 잘 알고 교회생활에 대해 어디가 강점이고 어디가 취약점인가,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1) 교회는 예배가 생명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위해 모인 것인데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좌석수 30% 이내20명 제한지금은 좌석수 10% 이내입니다. 두 달 가까이는 아예 예배 자체가 행정명령에 의해 중단되었습니다. 교회는 대안으로 소위 비()대면예배, 영상예배를 드렸습니다

 

공동체예배 효능이 100이라면 영상예배는 20도 안 됩니다. 비대면예배가 제대로 되려면 사실 두 가정이나 세 가정이 한 곳에 모여 예배하면 그래도 50까지는 끌어낼 수 있습니다. 구역원들끼리 한 곳에 모여 예배하면 훨씬 예배다움을 갖추게 되고 은혜와 친교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한국 교회가 코로나 초기에 이걸 못한 것입니다. 초등대응에 실패한 것이지요!

지금은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었기에 이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리고 저녁예배나 수요예배는 포기해 버립니다. 발 빠른 교회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사울이 핑계했던 것처럼 자꾸 부득이하여’(삼상13:12) 이게 나오면 한국 교회에서 부득이하여는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것입니다.

 

2) 기독교의 부흥은 찬송과 기도의 힘입니다. 그러나 찬양대가 서지 못하고 찬송은 입속에서만 맴돌고 기도는 머리에만 있습니다. 이건 열정과 야성이 죽어버린 찬송과 기도가 됩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는 120, 130km가 되어야 하는데 20, 30km로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일이 있는 것입니다. 평일에는 혼자 하는 찬송과 기도가 20정도라면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회로 주여~ 부르짖는 기도는 100도 되고 130도 되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니 믿음이 약화되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 골리앗 앞에서 사울과 그의 군사들처럼 떨고 있습니다.

 

3) 교회는 공동체 모입니다. 서로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식사하고 그러면서 더욱 단합되고 구역이 살고 전도회가 활성화가 되어야 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교회와 거리두기를 하니 교인들과도 거리두기, 알게 모르게 비대면을 통해 하나님과도 멀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4) 코로나 장기전은 교회 출석률을 떨어뜨리고 작은 교회들은 재정 압박에 작은 교회 성도들은 이참에 교회를 옮겨버립니다. 부담이 안 되고 봉사하지 않을 교회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참에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납니다. 기회가 참 좋은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코로나가 끝나면 10% 정도는 감소세를 보이지 않을까, 예측됩니다. 주일학교는 20% 이상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가나안교인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적을 두지만 영상으로만 예배하는 비대면교인들이 생길 것입니다. 간섭받지 않고 갈등관계를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1) 교회는 방역과 예방에 힘써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모르는 깜깜이 확진자들이 많았습니다. 지하철이나 대중들이 많은 곳에서 감염되었겠지요. 열도 나지 않고 기침도 없으니 확진자인 줄 모르고 교회 예배에 출석합니다. 확진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고 대화를 절제하고 식사를 하지 않으면 한두 명으로 끝납니다. 이걸 무시하고 너무 믿음을 강조하고 이번에 im선교회 지도자처럼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 이러다가 낭패를 당해 교회 위신을 떨어뜨리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도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르면서 예배도 지켜내려고 힘을 모아야 합니다.

 

2) 코로나 기간에 신앙체질 개선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선교 130 수년 만에 숫자적으로 1위 종교, 주류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천만 명이 넘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때 선민 히브리인만 아니라 잡족이 있었고 그들이 불평불만의 원인이 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도 하자품이 생깁니다. 인가난 신학대학교나 무인가신학교에서 목회자를 남발하다보니 함량미달의 목회자들이 종종 사고를 쳤습니다. 설익은 상태에서 직분을 받았고 직분에 맞는 신앙인격자들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쓰나미가 많은 종교, 많은 단체 가운데 특히 한국 교회를 쓸고 가며 동네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가 쓸고간 쓰나미에서 우리 자신들을 성찰하며 기독교가 정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화를 위해 바벨론으로 보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우상 숭배 문제가 완전히 청산되었습니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선지자들이 나섰지만 이스라엘은 우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웃시야 히스기야 요시야 왕 등이 대대적으로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우상은 끊지 못했습니다.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걸 아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 시작했고 회당이 생기고 율법을 체계화해서 생활종교로 거듭났고 유대인 상술과 랍비들이 세워지면서 유대인의 교육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 유대인들의 눈부신 활약입니다. 바벨론포로생활의 고난이 가져다준 선물이었습니다.

 

3) 코로나의 고난에서 많은 감사와 간증이 나와야 합니다. 무섭다하고 피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서 감사의 간증들로 알곡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온 것입니다. 이 찬송들이 언제 작사 작곡이 되었는가? 1618년부터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30년 전쟁-여기에는 파괴, 약탈과 죽음과 황폐함 등등 그야말로 원망, 불평, 자학, 절망의 세월이었는데 이때 가장 은혜스럽고 감사가 넘치는 찬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7세기말에 환켄 나우어가 찬송가를 수집해 보았더니 32,712곡이 되었고 몇 년 후에 다른 작곡가(웨첼)가 수집했더니 55,000곡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4) 코로나는 인격체와 성질이 같은 느낌이라 했습니다. 코로나는 기독교를 없애기 위한 사탄의 쓰나미 같습니다. 우리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백신만이 해답이라고 합니다. 백신은, ‘사람이나 동물을 자동적으로 면역하기 위하여 쓰이는 항원입니다. 코로나는 육신을 죽이지만 죄는 영혼까지 죽입니다. 그 백신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통해 더욱 십자가의 보혈의 속죄성과 소중성을 확신해야 합니다.

 

5) 이제 하나님 안에서 다시 희망을 기대해야 합니다. 너무 패배주의에 물들어선 안 됩니다. 모두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 교회를 비난하지 교인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어느 종교보다 가까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날이 옵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도 얼마나 좋습니까?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19,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꿀 같은 약속의 말씀들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도 이런 축복의 약속이 도래할 줄 믿습니다!

 

결론

요엘 선지자는 자연재앙으로 인해 크게 황폐화가 되고 기쁨이 떠난 상태를 탄식합니다

1:12,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1:16,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요엘은 그런 절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땅이 다시 회복된다는 엄청난 사실,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은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지고 남녀노소 성령으로 충만해서 신앙생활이 기쁠 것이라 합니다. 에스겔은 사람보다는 성전에 성령이 충만하게 부어진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생수가 터져 나와 대지들을 살리며 사람들은 갈한 목을 생수로 축이면서 노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를 위한 소망의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대안이요 희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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