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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야곱열전(10) 성화와 고난의 관계(창세기 47:7~1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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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성화(神手聖化) 야곱(10)

성화와 고난의 관계

창세기 47장 7~10절

 

서론

엊그제 경부선을 타고 가다보니 멋진 예배당이 보이고 대형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고난이 보석이다” 고난은 조개 속에 들어온 이물질과 같은 것입니다. 조개가 보드라운 맨살에 이물질로 상처가 나고 아프지만 뱉어버리지 않고 품고 있으면 그 상처가 변하여 진주가 됩니다.

 

저는, “고난이 보석이다”라는 대형현수막을 보면서 “고난이 성화다!” 라는 말로 읽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요즘 내 눈에는 성화만 보이고 머리 속은 성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엄청 성화가 된 사람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성화 단계에 오르면 아예 성화에 대해 연연하지 않습니다. 삶 자체가 성화가 되니까요! 성화를 잊고 성화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진짜 성화가 아니겠어요? 성화가 안 되니까 성화에 대한 중압감에 눌려, 보는 것마다 성화되어야지! 생각마다 성화! 성화!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수성화(神手聖化) 야곱, 열 번째 시간으로 성화와 고난의 관계입니다. 우리에게서 성화를 일으키는 최고의 도우미는 고난입니다. 고난을 통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인격이 깨끗해지고 성화가 됩니다. 성화에서 고난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성화는 인기가 없습니다. 왜? 도구가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원인

누구나 고난을 만나지만 고난이 주는 원인과 결과는 다릅니다. 고난을 당했다고 모두 성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고난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면서 더 깨끗해지고 성화의 단계가 오르지만 누구는 고난을 통해 더 독해지고 인격이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역경이 왔을 때 믿음의 눈으로 고난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이 고난이 왜 나에게 온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환란의 풍랑을 잠재울 수 있을까?’

 

성경에서 고난의 3대인물을 들라면 야곱-요셉-욥입니다.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야곱은 파란만장(波瀾萬丈)이고 요셉은 파란반장(波瀾半丈)이고 욥은 파란막장(波瀾幕丈)입니다. 이렇게 3대인물은 고난의 길이, 고난의 상태가 다르고 고난의 이유도 각기 달랐습니다.

 

야곱의 고난은 자신에게서 시작됩니다. 자기 죄와 기질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았습니다. 욕심, 거짓, 교활함, 경쟁심, 고집… 지나친 욕심이 없었다면 왜 야반도주를 하며 오늘 고백처럼 왜 험악한 세월을 보냈겠어요? 험악한 세월은 자신의 삶의 방식, 기질 때문에 온 것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습니다. 내 죄로 오는 고난이고 환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셉의 고난은 자기 죄가 아니라 남의 죄로 왔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편애가 부른 희생자입니다. 그래서 더욱 형들의 미움을 받고 배신당합니다. 감옥행도 여주인 농간으로 인한 오해였습니다. 감옥에서도 술관원장의 배은망덕으로 2년을 보냅니다. 모두 주변 모함과 오해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내 죄가 아니라 남의 탓으로 억울한 고난을 당했던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원인이 무엇일까요? 사단의 욕심에서 왔습니다. 사단이 욥을 탐낸 것입니다. 욥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는지 사단이 시기가 날 정도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하나님에게 욥을 중상모략 합니다. 저 사람, 조건부 믿음이고 헌신이다, 복을 주시니까 잘 믿는 것이지 고난이 생기면 하나님을 싫어하고 멀리할 것이라는 말로 중상 모략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감싸고 사단은 시험해보자고 합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흔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욥을 흔들어보면 조건부 신앙인가, 무조건적 신앙인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자신 있게 욥에게 시험을 허락했고 욥에게 고난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입니까? 내 죄로 온 것인가요? 남 때문에 온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요? 원인을 빨리 알아야 고난이 성화의 도우미가 됩니다. 내 죄인데 남에게 미루어버리고 남의 죄인데 내가 공연히 회개한다고 밤낮 울고 다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왔는데 재수 없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불평하면 고난은 성화도우미가 아니라 인격을 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고난의 원인을 빨리 파악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고난의 해결방법

고난에 대한 원인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다릅니다. 야곱의 고난은 적당하게 때우고 넘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야곱의 고난은 어디에서 왔나요? 오로지 자기에게서 왔습니다. 장자의 명분, 언약의 계승자라는 축복의 신분을 받았으면 그에 맞는 인격을 갖추고 성품을 지녀야 하는데 사기꾼 기질로 여전합니다. 그렇게 해서 엄청 두들겨 맞으며 파란만장을 살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빨리 회개하고 성질을 고쳐야 합니다. 못된 기질이 남아있는 한 계속 몽둥이감입니다. 자기 기질을 놓아둔 채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낸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요나를 태우고 다시스로 가던 배의 승객들은 왜 풍랑을 만났습니까? 요나의 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선장은 선원들을 닦달했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짐으로 고난을 피하려 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나요? 계속되는 풍랑으로 배 안의 생명들이 죽게 됩니다. 요나는 이 환란이 어디에서 온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 불순종 때문에 만난 풍랑이라고 자백합니다.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라. 나를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잠잠해 질 것이다”(욘 1:12)

 

선장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요나 때문에 힘들었던 배안의 승객들이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내 죄 때문에 모두 힘들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3일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이번에는 요나도 살고 니느웨 백성도 살았습니다.

 

야곱의 고난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자기에게서 왔습니다. 고난이 끝나고 성화되려면 나로부터 시작된 환란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야곱은 “너희가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남 탓을 했습니다. 그러니 시련도 그치지 않았고 성화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다독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내 자아가 깨어지고 내 중심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에 풍랑이 잔잔해지고 성화가 나타납니다.

 

요셉의 고난은 누구 때문에 왔는가요? 내 죄가 아니라 남들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고난은 회개로 풀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자기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남들 원망도 할 것 없습니다. 애굽에 팔려가 종이 되어서도, 여주인에게 농락당하면서도, 감옥에 들어가 앉아서도 인내합니다. 참는 것처럼 힘든 게 없습니다.

 

그래도 참으면 해결됩니다. 고난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힘든 일이고 높은 인격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골병듭니다. 골병이 안 들려고 하니까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화가 수용력을 높입니다.

 

요셉의 생애는 인고(忍苦)의 세월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해를 풀어주시고 그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닥을 드러내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난은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욥의 고난은 내 죄도 아니고 남들 탓도 아닙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야곱처럼 회개하면 됩니까? 친구들이 그랬어요, 회개할 죄도 없는데 자꾸 회개하라니까 성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 욥에게는 회개가 방법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꾹꾹 참고 있으면 됩니까? 일곱 아들과 세 딸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동시에 죽고… 사업은 파탄 나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몸은 말기암 판정을 받았는데 꾹꾹 참고 있으면 됩니까? 참고 있던 욥은 성화가 아니라 오히려 성질만 버립니다. 처음에는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 섭섭한 말을 해댑니다. 이러면 성화가 아니라 더 나빠집니다. 인내로 풀어낼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가 없으니 회개하지도 마라! 꾹꾹 참고 있지도 마라!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욥은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고난입니다. 그러니 내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의 이유를 알아야 성화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어때요? 고난은 성화다! 라고 했는데 모든 고난이 성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난은 있던 믿음까지 버리게 만들고 괜찮던 사람을 거친 사람으로 신경질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왜 그래요? 고난의 원인을 파악하고 제대로 처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입니까? 야곱의 환란인가요? 내 죄로 온 것인가요? 방법이 없어요. 회개해야 합니다. 성화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 기질을 다스려 달라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사람 이스라엘! 내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의 환란인가요? 남들 때문에 환란이 온 것인가요? 부모 때문에…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그건 공연히 회개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더 비참해지고 사람이 우스워집니다. 성화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참고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처럼 참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환란의 바람도 잠잠해지고 그만큼 성화가 됩니다.

 

욥의 고난인가요?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솟아올라야 합니다. 왜 이런 시련과 환란을 주시는가,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솟아오르다보면 하나님의 오묘한 비밀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아는 날 우리는 진정 하나님이십니다!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제대로 된 성화로 오르는 것입니다.  

고난의 결과

야곱-요셉-욥의 고난을 그치게 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고집쟁이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누구도 그를 다스릴 수 없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참 의사되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방식대로 고쳐나갔습니다.

 

야곱에게는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아버지가 될 그릇인데 매사에 쪼잔 하게 행동합니다. 야곱을 회개시키려면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들겨 팹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회개의 눈물을 짜내십니다. 야반도주, 강적 라반, 아내의 죽음, 아들들에게 속임 당함, 외동딸의 불행… 결국에는 얍복강에서 환도뼈까지 두들겨 맞는 고난을 당합니다. 계속 버티다가는 다른 자식들 치고 내 생명까지도 치겠다 싶으니까 겁이 났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시켜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요셉의 일로 스스로 반성합니다.

 

이런 사람이 회개하면 무섭습니다. 독한 기질, 모진 기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 삶을 살아야겠다 싶으니까 엄청나게 매달립니다. 축복의 매달림이 아니라 살려 달라! 는 회개의 매달림입니다. 이런 모진 기질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에서를 젖히시고 야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회개의 결과는 성화입니다. 성화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때리던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노인, 하나님에게 핸들링되는 인자한 노인이 됩니다. 고난이 야곱을 그렇게 성화의 성자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요셉은 환란에서 참고 참았습니다. 별의별 말에도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영화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는 총리가 되고 가나안 부족을 세계부족으로 만들어 냅니다. 세계제국의 총리, 보통의 영광이 아닙니다. 참으니까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성화까지 지닌 영화의 자리에 오르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참으니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옵니다. 향수제조자는 한밤중의 장미를 땁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12시~2시 사이입니다. 어둠 속의 장미는 그 사이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발산합니다. 낮에는 오히려 향기의 40%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요셉의 인격과 신앙의 향기는 고난의 밤, 절망과 아픔의 밤에 인내로 만들어 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고난의 아픔을 통해 인내를 통해 향을 만들었습니다. 온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총리로서 향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와 성화를 동시에 이룩한 것입니다.

 

욥은 시련의 터널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솟아오릅니다. 욥과 세 친구들 사이에 논쟁이 생기면서 서로 부딪칩니다. 세 친구들은 인본주의로 내려가고 욥은 신본주의로 솟아오릅니다. 그랬더니 자수성의(成義), 자기 스스로 얻어내는 의로움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의 손으로 입혀주시는 신수성의(神手成義) 의로움을 알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계열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누렸던 신수성의를 아는 이방인이 됩니다. 비(非) 아브라함계열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사상을 소유하게 됩니다. 고난이라는 폭풍을 통해 하나님께 솟아오르고 얻은 은혜입니다. 세 사람 모두 고난으로 성화되고, 영화를 얻고 의로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성화의 도우미라고 설교 초반에 말한 것입니다.

      

결론

기상용어에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체로는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태풍과 합쳐지거나 자연현상, 폭우… 등과 동시에 발생할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자연재해로 발전하는 현상입니다. 환경 문제 외에도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두 가지 이상 악재(惡材)가 동시에 발생해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야곱, 그의 인생에 엄청난 퍼펙트스톰이 일어났습니다, 대형 악재들입니다. 회개하면서 폭풍을 다스려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후려치셨습니다. 결과 성화됩니다.

 

요셉도 배신을 당하고 성폭행범으로 몰리고 죄수로… 엄청난 퍼펙트스톰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참고 머리를 숙이니 하나님께서 꼭 손 붙잡고 걸어주시니 저절로 성화가 된 것입니다.

 

욥도 자식의 몰사, 가축의 몰사, 온 몸에 악창… 이중삼중의 고난 퍼펙트스톰이 일어납니다. 그는 시련에서도 하나님께 솟아올랐습니다. 그랬더니 욥도 신수성의로 성화됩니다. 

 

고난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화의 영성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고난은 자기 백성을 성화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훈련방법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아름다운 성화의 향기를 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세시대에 불행을 당했던 한 무명(無名)의 그리스도인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를 일러주지 마시고 다만 당신을 위하여 제가 고통을 받고 있음을 확신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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