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성화(神手聖化) 야곱(9)
고난이 성화의 길이다
창세기 37장 29~36절
서론
피아노에는 페달이 2개 달린 것과 3개 달린 것이 있습니다. 페달은 피아노의 음(音)에 강약이나 여음(울림의 길이)을 조절하기 위해, 건반 상의 손가락 움직임과 연관되어 움직이면서 조절해 나가는 기능입니다. 그러니까 건반을 움직이는 손놀림만 좋아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페달을 밟는 실력이 좋아야 좋은 음악이 나오게 됩니다.
반주자 집사님, 피아노 페달을 밟을 때 새구두가 좋아요, 헌구두가 좋아요?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는 헌구두를 선호한답니다. 새구두는 발에 익숙하지 않고 페달을 밟을 때 미끄러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구두는 발창이라도 박박 문질러서 어느 정도 페달에 익숙하게 만들어 놓고 편한 신발로 페달을 밟는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도 그래요. 우리가 보기에는 야곱이 이 정도로 성화되면 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더 비비십니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언약계승자가 아니면 그렇게 부서지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12지파의 조상이 될 사람입니다. 더 많이 성화되고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환란을 주시고 더 무너지게 하십니다.
그러면 야곱의 인생 가운데 벌어지는 고통과 어려움은 어떤 성화를 가져 왔을까요?
사랑하는 라헬을 잃으면서 야곱집안에 우상이 제거됩니다.
35장 16절, 벧엘에서 길을 떠나 아버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임신 중이던 라헬이 복통을 일으킵니다. 라헬의 나이는 요셉을 초산(初産)한 이후 약 16, 7년이나 지난 50세 정도이고 임신 만삭의 상태에서 여행했기에 너무 힘들어 둘째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야곱이 하늘이 노랗게 보였을 것입니다. 네 명의 부인 중에 유일하게 사랑했습니다. 객관적 입장에서는 네 부인 중 누가 죽어야겠어요? 누구도 죽으면 안 되지요! 아이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세 부인이 죽어도 라헬이 죽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독이 부인을 데려갔어요. 왜 그랬을까요?
-라헬은 우상을 섬기는 여인입니다. 야곱은 20년 전에 벧엘에서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켰나요? 지키지 못했어요! 라헬을 얻었는데 라헬은 드라빔 우상을 섬깁니다. 드라빔은 치병(治兵)이나 구복(求福)…을 위해 섬기는 가정수호신 우상입니다. 나무나 은으로 만든 인간 형상의 반신상(半身像)입니다.
야곱이 가솔을 데리고 도망가는데 라반이 쫓아와서 왜 내 신(神) 드라빔을 도둑질했느냐, 따집니다. 그때 숨겨가지고 온 드라빔을 라헬이 지금껏 간직했던 거예요. 물론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다 버렸어요. 그러나 우상이 눈에 안 보인다고 사라집니까? 남여 간에 집에서 결혼 반대한다고 헤어졌는데 헤어졌다고 마음속까지 쉽게 정리가 됩니까?
-라헬은 거짓말에 능숙합니다. 아버지가 쫓아와 드라빔을 찾았을 때 낙타 안장 속에 감추고 거짓말을 해요. 경수가 나서 일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도둑질과 거짓말. 야곱 집안의 내력입니다. 야곱이 그랬잖아요. 형의 것을 도둑질하고… 외삼촌을 속이고… 아내들을 속이고… 자식들까지 속입니다.
라헬도 제 아버지에게 거짓말 합니다! 이런 거짓말은 제 아버지 라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와 언니를 첫날밤에 바꿔치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이런 기질인데+라헬까지 더해졌으니 부정직과 거짓말이 야곱 집안의 내력이 된 것입니다. 야곱 집안이 어떤 집안이에요?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흐르는 집안입니다. 약속의 집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특징은 신실하심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가문은 거짓말로 위장된 정직하지 못한 집안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거짓말이 씨앗이 되어 훗날 야곱은 자식들에게 보기 좋게 속고 맙니다. 요셉을 팔아놓고 짐승들에게 잡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내를 놔두면 집안도 야곱도 성화되지 못합니다.
-라헬은 시기심이 많습니다. 네 명 부인과 11명의 아들들은 라헬 때문에 지지고 볶고 싸웁니다. 그냥 놔두면 콩가루집안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라헬을 일찍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만 라헬의 죽음은 야곱에게 크게 성화를 일으킵니다.
라헬을 데려갔을 때 얼마나 큰 충격입니까? 라헬을 위해 14년을 몸으로 때웠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야곱이 미칠 노릇입니다. 친구, 배우자, 자식, 부모가 죽었을 때 누가 정신적 충격, 상실감이 가장 클까요? 생각 같아서는 자식인데 조사내용은 다릅니다. 배우자가 1위이고 다음이 자식 죽음입니다. 그래서 부부관계가 너무 좋은 상황에서 배우자에게 나쁜 일이 닥치면 남겨진 사람은 엄청난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 충동으로 따라 죽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야곱에게 왜 하필 라헬입니까? 다른 여인을 먼저 데려가면 야곱의 성화에… 야곱집안의 성화에 별다른 효과가 없습니다. 레아가 죽어도 여종 출신 부인 빌하와 실바가 죽어도 야곱은 크게 상심하지 않고 잘 살았을 거예요!
그러나 성화 관계에서는 아닙니다. 레아가 빠진 집안은 라헬 때문에 부인들끼리 형제들끼리 더 싸웠을 거예요! 라헬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라헬을 먼저 데려가셔서 기가 죽도록 했고 레아가 명실공이 어머니가 되어 12아들을 잘 살펴줌으로 야곱집안이 성화됩니다.
자식들의 허물에 야곱의 자만심이 무너집니다.
레아부인은 아들 여섯, 딸 디나를 낳습니다. 야곱은 신부를 바꿔치기 당한 레아 때문에 탄식하며 땅을 쳤습니다. 레아의 딸 디나 때문에 다시 땅을 칩니다. 이번에는 레아의 아들 때문에 땅을 칩니다. 맏아들 르으벤이 서모(庶母) 빌하와 불륜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35:22,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라헬이 죽은 지 얼마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빌하는 라헬의 여종 출신입니다. 과묵하고 순종하는 아들이지만 어머니 사랑을 빼앗아버린 라헬이모에 대한 장남의 보복이었을까요?
르으벤이 제 어머니에게 합환채를 갖다드린 적이 있습니다. 합환채는 일종의 임신 촉진제, 정력제 성질 식물입니다. 그걸 라헬이 뺏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남달리 이모어머니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었을까요?(30:14~16). 그래서 이모어머니의 여종을 유린한 것일까요.
야곱의 입장을 상상해 보세요! 장남이 서모(庶母)와 간통을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남자지만 얼마나 창피한 일이고, 무너졌겠어요?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할말이 없는 거예요. 아들 때문에, 부인 때문에… 할말이 없는 거예요! 야코가 죽은 남자가 된 거예요!
자식들의 근친상간의 죄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4남 유다의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엘과 오난이라는 손자를 잃은 것이지요! 부인을 잃은 유다가 친구와 여행 갔다가 몸을 파는 여인을 만납니다. 38:24-26, 그 여인이 쌍둥이를 출산합니다. 며느리가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자기 며느리와 관계를 갖고 쌍둥이를 낳은 것입니다.
집안 꼴이 이게 뭡니까? 사랑하는 아내는 죽고 장남은 서모와 간통하고 손자 두 놈은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천벌 받아 죽고 유다는 몰랐지만 며느리와의 사이에 쌍둥이를 얻습니다. 야곱은 무너집니다. 살 의욕이 없고 돈을 벌 목적이 사라진 것입니다. 야곱은 무너지는 것만큼 성질이 죽고 약해지고 성화가 되어갑니다. 야코가 죽으니 성화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으면서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37:3, 야곱은 열두 아들 중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발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입니다. 야곱 당시에는 귀인 복장이고 나중에는 제사장들이 입던 아마포 옷입니다.
왜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을까요? 요셉은 91세 노년에 얻은 아들입니다. 사랑했던 라헬에게서 뒤늦게 본 아들인데다 생모(生母)마저 죽었기에 애틋한 정이 더 갔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편애에는 나름대로 이유도 있습니다. ‘그를 더 사랑하여’(37:3), 개역성경에는 ‘깊이 사랑하여’, 어느 정도의 기간을 통해 이루어진 선택적 사랑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펴본 결과 신앙적이고 효성스러운 요셉을 아버지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통해 대민족,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기대합니다. 그가 바로 대안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공모해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방문한 착한 동생을 장사꾼들에게 팔아버리고 거짓말을 합니다. 동생의 옷에 피칠 하고 와서 동생의 옷을 들에서 주웠다는 것입니다.
37: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은 아들들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사랑했던 아들 요셉, 엄마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식이 사라졌는데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으니 죽은 것입니다. 야곱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겠어요?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부인도 천국에 가 있고 사랑하는 아들도 천국에 가 있다고 생각하니, 야곱은 세속보다는 하늘나라에 더 마음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성화됩니다.
영국의 문호 루이스는 친구 찰스 윌리엄스가 죽었을 때 조사에서 “멀리 생각되던 천국이 이젠 친구 집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내 친구 찰스가 있으니 얼마나 가까운 곳입니까?"라고 했는데 1년 후에 아내 조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이스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제 천국은 내 집처럼 가까워졌다. 조이가 있고 찰스가 있으니 바로 내 집이 아닌가?"
야곱이 세상 욕심을 놓아버리고 아내, 자식이 있는 천국을 사모함으로 성화되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인질로 보내면서 움켜짐을 펴게 됩니다.
야곱의 시련과 환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아들들을 보냈는데 하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입니다. 그들이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아 베냐민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시므온을 인질로 남겨두고 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뒤집어질 노릇이지요! 42장입니다.
36절,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다 나를 해롭게 하도다…. 적반하장 아니에요? 아버지 때문에 자식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네놈들 때문에 내가 힘들다, 왜 내 주변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놈들만 있느냐… 이러고 있으니 성화가 되겠어요? 그러나 성화가 되고 있습니다. 힘들고 슬프니까 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떠나보내면서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43:14), 라고 움켜쥠의 삶을 내려놓습니다.
나중에 애굽 총리로 살아있는 요셉을 만나게 되고 아들 안내로 애굽왕을 만납니다. 47장!
8절,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험악한 세월… 파란만장한 세월… 그렇게 말할 만도 하지요? 그래요! 야곱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인생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인생의 걸음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고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도 내려놓고… 자식들도 내려놓고… 손자들도 내려놓습니다. 잡으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만이 주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소유욕을 다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성화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야곱의 성화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해나가신 것입니다. 요셉은 옆에서 도와만 주어도 스스로 알아서 성화가 되는데 야곱은 너무 강해요! 자기고집이 너무 세고 아집이 강해요! 하나님께서 야곱의 생애 속에서 성화되지 못하게 하는 암초를 뽑아낸다는 것이 당사자 야곱에게는 아픔, 파란만장한 세월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을 성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야곱의 장자의 명분이라는 신분 때문입니다. 그러니 야곱의 성화는 100% 하나님에게서 왔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리는 손으로 왔기에 그만큼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왔기에 그만큼 성화의 최고봉에 오른 인물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결론
요즘 ‘손톱 밑 가시뽑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업의 활동과 성장을 가로막는 제도적인 장애물들을 뽑아 기업의 생산성을 올리고 복지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 요셉 르으벤 베냐민… 등이 자기 인생에 장미꽃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야곱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특히 편애했던 모든 것이 야곱집안의 가시였어요. 라헬-우상 가시, 요셉-편애 가시, 르으벤-자만 가시, 베냐민-움켜쥠의 가시… 이런 가시를 뽑기 전에는 야곱집안이 성화가 되지 못합니다. 되기는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조상이 될 인물입니다. 시시한 성화(聖化)로는 거룩한 민족-성민(聖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련을 통해서 야곱을 성화시켜 나갑니다. 언약의 집안 야곱의 식구들을 성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아픈 것만큼 성화가 되는 것이고 … 그만큼,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성화가 되려니까 아픈 것이지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서 뽑아내려는‘손톱 밑 가시’는 무엇일까요? 그걸 빼야 성화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빼신다는 사실 앞에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가시는 억지로 빼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저절로 삭아져 버릴 것입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성화(聖化)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화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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