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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감사, 점점 세게! 크레센도(crescendo)(빌립보서 4:10~13)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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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감사, 점점 세게! 크레센도(crescendo)

빌립보서 4장 10~13절

 
서론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목회 40여년에 이리도 썰렁한 감사주일은 처음입니다. 수십 명에서 200명을 넘나드는 코로나 확진자, 구청에 날라 오는 재난문자 그러다보니 심리적으로 불안과 두려움, 우울증, 무기력증이 쌓여 코로나불루 코로나우울증이 생깁니다. 감염 위험에 대한 우려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일상생활 제약이 커지면서 나타난 코로나19 현상들입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33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은 친구, 직장동료 등 지인들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답했습니다.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다는 답변은 0.9%에 불과했습니다. 사이가 멀어졌다는 사람들의 절반은 우울함이 가중됐다고 답변했습니다.

 

우울증은 목회자들에게도 찾아옵니다. 국민일보에 목회자 10명 중 7명 정도는 우울증을 호소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텅빈 의자를 보면서 영상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 허공에 대고 설교한 느낌이었고 예배 후엔 허탈감이 큽니다. 예배, 소모임에서 중심이 돼 성도들을 이끌었는데 이게 안 되니 무력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마음을 헤아리고 격려하는 자리라 정작 본인의 어려움은 보지 못합니다. 의사나 간호사와 꼭 같습니다. 남의 아픔을 살피다보니 정작 자신들의 아픔은 돌아보지 못하기에 더욱 외로운 늑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코로나가 가져온 우울한 시대에 추수감사절을 맞습니다. 지금 상황에 가장 맞지 않는 예배입니다. 감사절은 대체로 감사거리를 전제하기에 코로나 상황에서는 감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내가 욥으로 살았는가, 욥의 세 친구들처럼 살았는가? 결정 납니다. 세 친구는 인과응보론을 믿어요! 내가 선해서 복을 받고 악해서 벌을 받는다. 상선벌악을 주장합니다. 이런 이들은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은 일 없으면 불평이나 내 탓이라 자책합니다.

 

욥은 달라요! 사람이 살다보면 황당한 일이나 불행도 당하는데 그게 꼭 죄로부터 원인이 되고 또한 하나님의 처벌은 아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불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찾아온 엄청난 불행에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힘들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합니다. 경배는 감사가 수반됩니다.

 

욥의 신학은 하박국으로 이어집니다. 하박국이 뭐라고 합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 18)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같은 신학을 보여줍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3:17, 18) 신상에 절하지도 않겠다"는 선포입니다. 대단한 신앙고백 믿음입니다.

 

한국교회 초대교회 성도들도 오직 예수님에게만 충성한다는 일편단심의 믿음, 순교를 각오하는 일사각오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감사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 우울증으로 힘들다, 한다면 뭐라고 할까요?

바울은 그 유명한 살전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범사에 감사만아니라 에베소서 5:20에서는 범사를 인해 감사하라고 합니다. 전천후 감사입니다. 이런 전천후 감사신앙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바울이 본문에서 그 비결을 알려줍니다.

 

12, (옥에 있는 나를 걱정마라)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에 감사 단어를 하나 첨가시켜 보았더니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감사) 할 수 있느니라

 

그러면 12, 나는 비천에 처할 때에도 감사하고 풍부에 처할 때에도 감사하고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때에도 감사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했다!

그러니까 감사도 그냥 조건에서 오는 감사 이를테면 뭐가 잘 되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고 그런 일에 감사하면 본능이거나 좋은 인격이지만 불행한 상황인데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건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이런 감사능력이 믿음의 자질 중에 가장 큰 것입니다. 상황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탄식을 찬양으로 만들어 내는 대단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릭 워렌 새들백교회 목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이자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입니다. 이번에 사랑의교회 특별새벽부흥예배에 고난을 어떻게 소망 가운데 통과할 것인가’( 8:28)라는 영상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정신병과 우울증을 앓던 27세 아들 매튜가 자살한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상실의 6단계를 경험합니다. 1단계는 충격’, 2단계는 슬픔으로 이어집니다. 다음은 몸부림 단계로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답은 얻지 못하겠지만, 질문하는 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믿음의 시험대가 됩니다.

 

4단계는 몸부림에서 벗어나면 평안’(내려놓음)으로 진입합니다. 더 이상 라고 묻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5단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 섬김’, 감사가 있는 섬김입니다. 상실의 결론은 감사입니다.

 

엄청난 일이 아닙니까? 죽은 아들을 두고 감사한다면 셋 중의 하나입니다. 충격으로 미쳤거나 버린 자식이거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오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능력인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골로새서와 함께 바울이 감옥에서 집필한 것입니다. 감옥의 생활은 얼마나 암담합니까? 그럼에도 바울은 기뻐하라고 합니다. “기뻐하라는 말이 18회 나옵니다. 대표적인 구절 4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10절에서도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기쁨에 대한 바울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범위-“항상...”, 는 모든 면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쁨의 표현-“...기뻐하라”, 는 것은 숨을 쉬듯 기쁨을 일상화, 체질화하라는 것입니다.

*기쁨의 크기-“크게...이라는 말은 기쁨의 최고 수치를 말합니다.

기뻐해도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기쁨입니다. 기쁨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어디에서나 어떤 경우에서나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쁨과 자족은 쌍둥입니다. 자족이 바로 감사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부리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면 모든 게 만족스럽고 이런 성숙된 믿음이 자족하는 믿음입니다. 자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느 남편이 잠보 아내 때문에 늘 불만합니다. 어떻게 된 여자인지 눕기만 하면 코를 골면서 잡니다. 그래서 늘 불만입니다. 그러나 동료아내가 불면증 때문에 입원했다는 소리를 듣고 잠보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자족하면 감사가 나오고 만족함이 나옵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는 아들의 천국환송예배에서 10가지 감사기도를 소개했습니다.

1. 아들이 암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2. 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입성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3. 유머가 있던 아들로 인해 부부가 기쁨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한 순간도 불평 없던 그의 아내와 손자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5.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회사 변호사가 된 것도 감사합니다.

6.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7. 수많은 암환자들과 연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8. 자식을 잃은 수많은 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 감사합니다.

9. 전세계 수많은 중보기도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10.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건 능력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궁핍에도 풍부에도 감사할 수 있음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감사) 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있기에 모든 상황을 넉넉함으로 다스릴 수 있다(13)! 참으로 값진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만족 감사는 한 세트입니다. 하나라도 없으면 불량품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족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성공이냐, 소유냐,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목적 삼아 사셨습니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는 감사의 고백! 위대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자족의 삶을 살았기에 삶은 빛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항상 감사가 있는 능력의 생애입니다.

 

결론

오늘 공연히 멋을 부리는 설교제목을 잡았습니다.

감사, 점점 세게! 크레센도(crescendo)”

우리교회가 포용성이 있는 교회이기에 이런 제목을 내걸 수 있습니다.

 

크레센도는 악보에 사용하는 음악부호로 점점 세게입니다. 피아노를 치던지 악기를 연주하면서 그 부분에서는 점점 세게! 연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호가 또 나오지요!

데크레센도(decrescendo). 점점 여리게 연주하라! 조금 여리게, 매우 여리게, 가장 여리게 다시 크레센더가 나옵니다. 세게, 조금 세게, 매우 세게, 가장 세게, 그 음을 특히 세게 아니면 보통 빠르기로, 경건하게

 

우리의 믿음생활은 감사주택, 감사아파트에서 살아야 합니다. 항상 크레센도 점점 세게 감사 삶은 상황은 유동적입니다. 때로는 여리게 감사 매우 여리게 감사 그래도 감사의 온도는 평균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에게 꽉 붙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코로나시대이지만 제가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음은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에도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 보면 감사 크레센도! 방역하는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을 보면 감사 크레센도, 찬양대원들을 보면 감사 크레센도! 교육부서들도 기죽지 않으려 해서 크레센도! 코로나기간에도 정말 좋은 분들이 등록해서 감사가 점점 세게 크레센도!

 

오늘은 매우 세게(ff. fortissimo) 점점 세게! 가장 세게!(fff. fortississimo). 감사의 건반을 강하게 내리칩시다. 왜냐? 추수감사절이니까요! 1년 동안 제 설교를 들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크레센도! 점점 세게!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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