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삼마, 늘빛교회
에스겔 43장 1~5절
서론
오늘 우리교회가 설립 36주년을 맞습니다. 1984년 9월 29일 “한 사람을 위하여 등불을 켜는” 심정으로 촛불을 켰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최고치 100배 열매보다도 더 많은 600배 이상의 열매를 얻게 하시니, 하나님의 은혜요 여러분들의 헌신의 결과이기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 생일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교회도 일종의 한국교회라는 브랜드 하에 프랜차이즈 조직입니다. 한국교회의 가맹점 중의 하나가 우리 늘빛교회입니다.
이번에 몇 교회에서 집단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생김으로 가맹점 전체가 불매(不買)운동에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혐오집단처럼 취급을 받고 예배에 참석하지 말라,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명단을 제출하라, 압력을 가합니다. 알게 모르게 교회는 비난과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조심스럽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예배를 싫어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말라기 1장 10절입니다.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회사로 말하면 폐업하고 싶은 창업주의 마음을 전합니다. 교회가 분쟁에 쌓였어요. 교인들이 예배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싸우러 오는 사람들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요!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교회를 설립했나? 차라리 예배당을 헐어버렸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왜 교회를 폐업하고 싶으셨을까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예배 드렸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임했었는데… 400년을 채우지 못해 헐어버리고 싶다 하셨을까요? 말라기 선지서에도 답이 나오지만 선지서 전체가 답입니다. 에스겔서에도 답이 나와요!
8절,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절,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육신적인 음행과 함께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겁니다.
10절,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죄를 지었음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사와 제물, 예배를 받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 비싼 다이아반지를 선물해도 받고 싶지 않는 아내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그 심정을 토로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뉘우침이 없이 계속해서 제사와 제물을 드립니다. 그게 얼마나 패역한 짓이었는지 환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십니다. 2장을 봅니다.
“패역한 백성…, 3절, 5절, 6절, 7절, 8절 패역한 패역하지 말고…”
4절은,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그들의 패역함이 어느 정도인가, 8장입니다.
6절,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2절,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14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담무스는 근동의 신입니다.
16절,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18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보다 못해서 성전에서 나가버리십니다.
10: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해 머무르니” 그룹들은
19절, 땅에서 올라갑니다. 성전을 나오신 하나님도 자연히 땅에서 올라가십니다.
11:23, “여호와의 영광이…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오래 전, 엘리제사장의 며느리요 비느하스의 아내는 남편형제가 전쟁터에서 죽고 시아버지가 놀라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출산합니다. 죽어가면서 아들 이름을 작명해 놓고 갑니다.
“내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라”(삼상 4:21)
이가봇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22절)
한국교회. 언젠가 오늘 같은 이가봇의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로 온다고는 추후도 생각 않았지만 유럽교회들처럼 하나님이 떠난 것과 같은 황폐한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성전이 성소(聖所)가 되지 못하고 세속(世俗으로 치달았습니다. 교회는 변화의 능력을 상실하였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과 함께 변질이 됩니다.
교회 안이 분쟁으로 가득 찼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신자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이 아니라 빛을 가리고 소금을 뿌리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코로나라 상륙하고 신천지가 몰매를 맞을 때 하나님은 자꾸 한국교회에 말을 걸고 싶어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2월 말부터 예배당 문을 스스로 닫아버렸고 비(非)대면예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예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용어입니다. 모든 예배는 대면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비대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배하면서 대면하지 않겠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등을 돌린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우리라도 이런 교회는 문 닫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2절,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4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절,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왜 다시 성전으로 돌아왔나요? 성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화해의 손을 내미는 장소입니다.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성전이 아니고는 대속의 역할을 수행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성전이 더럽고 음행으로 가득 차도 하나님의 성전은 누가 개혁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정화’하는 자정의 기능과 능력이 있습니다.
계곡에 가서 물놀이 할 때 위에서 밥 찌기도 쏟고 아이들 오줌도 놓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시 깨끗해집니다. 오염물질이 많은 양의 물과 섞이는 희석, 오염물질이 가라앉는 침전, 여과 작용 등에 의해 오염물질 농도가 낮아집니다. 정체된 물보다는 흐름이 활발한 물에서 잘 일어납니다. 여기에 고기떼들, 이끼, 수초… 등이 스스로를 정화(淨化)하는 기능이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썩었다 부패했다 해도 우리가 속상해하고 회개와 각성은 있어야 하지만 교회가 사명이 끝났다고 떠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그런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28대 손(孫) 정도가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다윗과 솔로몬 등… 예수님 육신의 조상들은 족장이요 왕들입니다. 쟁쟁합니다. 예수님은 왕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할머니 쪽은 어떤가요? 현숙한 여인일까요? 사실은 반대입니다.
다말. 시부와 의도적으로 관계를 맺고 쌍둥이를 낳습니다.
라합. 기생입니다. 기생이라는 것은 내놓을만한 명함은 아닙니다.
룻.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은 하나님께서 기피대상 1호 족속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밧세바). 어떻게 보면 의도적으로 다윗 왕을 유혹한 여인입니다.
마리아. 유일하게 하자 없는 여인이지만 몰락한 가난한 왕손입니다. 보잘것없어요.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들어오실 혈통이라면 28대의 조상 할머니들이 모두 사라처럼 정결하고 정숙하고 깨끗한 여성들로 족보가 이루어져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이처럼 추한 여인들, 하자가 있는 비주류들이 족보에 들어오면 혈통이 지저분해지고 죄악으로 가득 찰 텐데도 그들의 혈통과 과거가 메시야의 족보를 더럽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의로운 사람 요셉과 순결한 여인 마리아에게로 순혈(純血)이 되어 예수가 탄생합니다.
이들 여인들의 더러움이 족보를 더럽히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들이 메시아의 혈통 안에서 정결함을 받고 거룩한 조상할머니들이 되었을까요, 혈통 안에 거룩한 물줄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아래로 내려가며 누구는 누구를 낳고… 계속되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위로 올라갑니다. 그 위는… 그 위는 하나님이라….
사람들에게로 내려가는 족보나 단체는 처음에는 순수해도 세월이 지나가면 혼합됩니다. 위안부 단체들을 보세요! 정치가들을 보세요! 지상교회는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거룩한 교회는 달라요! 이리저리 썩었다고 망하고 사라질 것 같은데 망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왜냐? 교회 스스로가 정화(淨化) 작업이 계속됩니다.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올라갑니다. 위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샘입니다. 교회는 시대를 흘러가며 계속 오염되고 타락하지만 하나님에게로 올라가는 상향구조이기에 거룩한 생수를 계속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무너지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에게는 인간을 정결하게 하는 순혈(純血)의 비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피(血)입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로 죽게 되었을 때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수치를 가려줍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겠다, 약속도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요, 십자가에서 흘리는 거룩한 피로 인류의 죄를 씻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주시며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라”하셨습니다.
피는 혈장이라는 유동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혈소판, 적혈구, 백혈구 세포로 나뉩니다.
혈소판. 주로 골수에서 생성되는데 혈액의 응고나 상처가 났을 때 지혈 작용을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응고시키며 죄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혈소판의 역할을 합니다. 적혈구. 몸 안에서 대사 작용을 합니다. 몸 전체를 돌아다니며 고정세포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이지요. 적혈구는 신선한 피와 공기를 공급해 주고 체내의 죽은 세포들 쓰레기 노폐물-이산화탄소를 운반하여 콩팥, 피부, 장(臟)을 통해 내 보낸 후 다시 산소와 결합하고 23초마다 혈액순환을 해줍니다.
백혈구. 적혈구보다는 약간 크지만 숫자상으로는 훨씬 적습니다. 백혈구는 우리 몸의 군대입니다. 백혈구는 나쁜 세균을 죽이고 삼켜버리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가시에 찔려 곱기 시작하면 부어오릅니다. 상처부위로 몰려온 백혈구의 피 때문입니다. 백혈구들은 염증부위를 완전히 포위한 후 말썽을 불러일으킨 박테리아를 끈질기게 포위 공격합니다.
이때 많은 백혈구 군인들이 전사하여 한 곳으로 모이는데 이것이 고름입니다. 고름은 죽은 백혈구 군인들과 백혈구에 먹힌 세균들입니다. 고름이 빠져나오면 깨끗한 피와 적혈구들이 들어와 상처는 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백혈구가 더러운 세균을 삼키면서 죽어가듯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셨고 새로운 백혈구로 모든 상처들을 낫게 하시며 새사람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계시록 12:11은, 어린양의 피가 사탄의 공격을 이겼다고 선언합니다.
피에는 항체(항독소)라는 성분도 있습니다. 항체는 감염이 뿌리 내리지 못하게 몸을 보호해 줍니다. 질병을 방지하는 항체가 없으면 사람은 병에 쉽게 노출되며 치료도 힘듭니다. 항체는 한번 걸린 질병에는 대량으로 생산되어 면역이 생기면서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게 합니다. 이 면역성이 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보세요! 성령 충만한 교회였지만 아나니아 삽비라 같은 신자들, 히브리파와 헬라파의 알력, 바울은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습니다. 베드로는 위선의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들이 초대교회를 더럽히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죄와 함께 사람을 정화시키는 사역을 꾸준히 해왔고 구원의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병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병원은 각종 병자들로 만원입니다. 병은 병균체들을 갖고 있고 병균체들은 감염체입니다. 이런 세균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병원입니다. 이런 병원에 병자들만 모아놓으면 병이 더 심하고 더 사망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병원은 그런 병에 노출되었지만 오히려 환자들을 고칩니다. 병자들에게 감염되어 병의 온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치료해 줍니다. 병원은 치료하는 기능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사실 모두 죄인들입니다. 이걸 모르기에 교회에 나왔다가 실망합니다. 모두 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도 결국은 죄인들이 들락거립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듭니다. 그러면 교회가 더 부패해지고 더 타락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부패하고 죄를 범하기는 해도 교회 자체가 범죄 집단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안 좋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점점 나아지고 거룩해집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나오고 거룩하게 하는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을 짜보라~! 예수의 피가 뚝뚝 떨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어 교회를 정결하게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때로는 빛도 잃어버리고 소금도 맛을 잃어버려 사람들에게 밟힘을 당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에게로 올라가는 물줄기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을 정화시키며 정결하게 하며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더럽히기는 해도 교회가 나를 더럽히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결론
48장 마지막 절로 갑시다.
35절,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동쪽 문으로 들어온 여호와가 영원히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던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2천년 기독교가 죄와 분투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왔던 것처럼 한국교회도 망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것이며 우리교회도 그 가맹점이기에 이 사명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만큼 세상을 섬기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거룩한 공동체가 어디에 있습니까?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유교나 불교가 주류종교였다면 이렇게 역동적인 대한민국이 되었겠어요?
그래서 백범 김구 선생은 “경찰서 100개를 세우는 것보다도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강한 나라는 성경 위에 세워야 한다”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부심으로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고 자랑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37년 동안을 함께 해주신 성도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 모두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2) (1) | 2023.12.15 |
---|---|
생명과 신자와 선악과 신자(창세기 2:7~9) (2) | 2023.12.15 |
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길을 묻다(요한계시록 4:1~4, 11) (2) | 2023.12.12 |
교회가 많이 아프다!(사도행전 2:43~47) (2) | 2023.12.11 |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까?(예레미야애가 3:24~29) (0) | 2023.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