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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길을 묻다(요한계시록 4:1~4, 11)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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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길을 묻다

요한계시록 4장 1~4절, 11절

 

서론

정부는 수도권의 경우 ‘2.5단계 적용 기간을 1주일 연장했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한 주간을 연장하게 되었습니다공동체예배가 없으니 내 영이 궁핍하고 목회가 없고 하는 일이 없으니 오히려 더 지치고 힘듭니다.

 

-예배가 사라진 예배당을 보는 게 힘듭니다. 학생이 없는 교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심정입니다. 10명 미만의 공동체예배, 가정에서 드리는 영상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될까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40년 전 신학생 시절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안양지교회와 화상예배(영상예배)를 드리자 난리가 났습니다. 이단이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신학적 논쟁도 수정도 없이 전국교회가 영상예배를 드립니다. 그때에는 아닌 것을 지금은 왜 괜찮다고 하는 것인지, 사울처럼 '부득이하여'(삼상13:12) 번제를 드린 것처럼 한국교회도 그런 전철(前轍)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저는 신학적인 답을 얻지 못하고 있기에 영상예배도 겸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예배가 없는 무()예배의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걱정입니다. 수시로 근무상황을 확인하는 재택근무도 효율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집에서 딱 한 번 드리는 재택(財宅) 예배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성도의 교제가 없는 것도 힘듭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사랑과 격려에 힘입어 삽니다. 그래서 코로나블루(Corona Blue), 코로나로 오는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앞에서 목회대안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갈팡질팡입니다. 누구는, 아무개교회와 아무개 목사를 비난합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망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한국교회가 망한다면 그것은 우리교회 때문에 망하는 것이요 바른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해 온 나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정부를 비난합니다. 정부가 코로나 정치를 하느라 종교의 자유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정명령을 동원한다는 겁니다. 이런 항의도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아무개교회 확진자가 1천명을 넘었고 여러 교회에서 무더기로 확진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예배 중단이 뭐 어떠냐? 예배는 어디서 드리는 것보다 어떻게 드리냐, 그게 중요하다 합니다. 그러면서도 영상예배, 소위 비대면예배가 예배의 형식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진정성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코로나시대의 성도들이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중단이라는 영적 쓰나미 앞에서 정작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앞에서처럼 누구는 교회만 탓하고 누구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면서 걱정합니다. 목사들은 우리교회에 확진자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 그래서 일찍이 2월부터 정부가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예배당을 닫았습니다. 예배 포기를 통해 코로나를 피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첫 대응을 잘못한 겁니다.

 

어느 집사님에게서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였는지를 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현실. 지금 내가 과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세상의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세상의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게 코로나시대 메뉴얼인데 이걸 놓친 것입니다. 성경인물들은 위기 가운데 어떻게 했나요?

 

다니엘:“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다윗:“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요셉:”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9)

다니엘은 행정명령권 앞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다윗은 백성들의 여론과 비난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요셉은 하나님 면전에서 살기에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위기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전면으로 내세웁니다. 이게 신앙생활에서 길을 잃지 않는 메뉴얼입니다.

 

한국교회 136년의 역사는 안 그런가요? 일제 신사참배에서, 6,26 전쟁속 공산주의자들의 박해에서도 오로지 하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예배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의 도움과 간섭과 하나님의 심판을 구했습니다. 위기상황에서 하나님께 올인하는 메뉴얼대로 살아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코로나구름에 가려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면예배 비대면예배라는 말로 예배드렸나 못드렸냐, 예배당에서 드렸냐 가정에서 드렸느냐 여기에 관심이 집중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 교회를 공격하는 자해를 하고 한국교회가 숫자가 줄어들면 어쩌나, 확진자가 생기면 어쩌나 거기에만 신경을 씁니다.

오늘 제목을, “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길을 묻다로 정했습니다.

밧모 섬. 암석으로 이루어져 불모지입니다. 로마제국시대에 종교·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악명 높은 유배지입니다. 기독교 박해가 제국전역으로 확대되었던 도미티아누스(81-96년경) 황제 때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사도 요한은 체포-유배되어 광산(혹은 채석장)에서 약 18개월 동안 강제 노동을 하던 때로 봅니다. 얼마나 삭막하며 답답하겠어요? 여긴 법이고 뭐고 없습니다. 재판 없이도 죽이면 그냥 죽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소망이 있고 힘이 나겠습니까? 밧모섬은 위기의 섬이요 위기상황입니다. 밧모 섬은 행정명령 앞에 다니엘이 있던 위기의 장소요, 골리앗 앞에 다윗이 처했던 형편이요, 요셉이 갇혀있던 옥입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요한도 로마당국을 비난하거나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망했다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요한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무엇입니까?

1, “이리로 올라오라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2, 성령에 감동이 됩니다, 그의 눈에 비늘이 벗어지면서 하늘의 신령한 예배 광경을 봅니다. 예배의 보좌에 누가 앉아계시는가?

2,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하나님입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대면예배냐, 비대면예배냐, 그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걸 놓치고 있습니다.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은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로마 황제의 공권력도! 황량한 밧모섬의 상황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시작이기에 끝입니다!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헬라제국 들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했습니다. 왕도 영웅호걸도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영존하시고 홀로 존재하십니다. 천하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세상권력이 하찮은 것입니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 그런 상황을 보았고 하나님의 절대적 권력과 능력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니 밧모 섬이라는 두려운 환경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수련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은 밧모 섬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물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 “이리로 올라오라”.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면 게임 오버! 요한은 스스로 올라갔습니까? 무슨 힘으로 올라갑니까? 상황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그를 일으켜 세워 천국으로 올라오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음성을 듣고 올라가니 하나님보좌에 이르고 하늘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세상을 절대적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본 것입니다.

요한이 하늘예배자로 세워지던 날은,

 

1:9, “밧모라는 섬에 있었더니

1:10, “주의 날에 주일입니다. 당연히 주일을 지키며 예배했을 것입니다. 눈물도 나고 외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그래도 주일이기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에

10,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다시 4장에서 이리로 올라오라 할 때 환상 가운데 하늘로 들리우고 하늘예배에 참석하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닙니다. 그 예배에서 4:10,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보고 듣게 됩니다. 이후에 될 일의 중심은 항상 하나님께서 인간역사, 세상만사를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광경과 말씀과 에배참석을 통해 요한은 새 힘을 얻은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비대면예배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말로 포장을 해도 비대면예배는 예배자가 되기 힘듭니다. 그건 예배구경꾼입니다. 지금 찬송은 제대로 했나요? 복장은 제대로 갖추었나요? 예배에 올인하고 있나요? 음식으로 말하면 이건 어쩌다 한 두 번 하는 외식입니다. 예배당예배가 가정식입니다. 함께 모일 때 집중력이 있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됩니다. 공동체 예배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늘예배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세상의 문제는 작게 보입니다.

 

비행기가 바퀴로 구르면 세상이 큽니다. 비행기가 날개로 솟아오르면 오를수록 세상이 작게 보입니다. 우리가 예배라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오르면 세상 문제들은 작게 보입니다. 예배는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비행기는 이륙하는 그 몇 분이 기름을 상당히 많이 소용합니다. 그만큼 비행기를 띄우는 이륙이 힘든 것입니다. 정상궤도에 오르면 쉽고도 안심하게 비행합니다. 주일예배는 한 주간을 솟아오르는 힘입니다. 예배가 힘을 받아야 한 주간 동안 정상적인 믿음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대면예배에 만족함으로 하나님을 향해 솟아오르지 못하고 그만큼 성령충만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말씀보다는 세상뉴스에 촉각을 세웁니다. 하나님에게 오는 위로보다 질병관리본부자들의 말에 더 무게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대면예배 비대면예배를 드려야 소용없습니다.

 

예배에 집중하고 하나님에게 올인해야 합니다. 공동체예배 회복을 위해 간절히 사모해야 할 것이며 영상예배로 예배를 대체하려는 나태함과 유혹을 속히 뿌리쳐야 합니다. 그건 지금 약()이 되는 것 같지만 우리 심령에, 다음세대에 크게 독()이 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서로간에 힘을 얻는 공동체예배가 살아나고 온전한 주일성수가 이루어져야 한국교회의 소망이 하늘로 오게 될 것입니다.

 

2006년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3위 교회(노스포인트커뮤니티교회) 담임이요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13위에 선정되었던 앤디 스탠리 목사는 목회의 어려움으로 낙심에 빠졌습니다. 그때 할머니 성도가 심방을 왔다가 벽에 루벤스의 <사자굴의 다니엘>이라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저 그림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사자 몇 마리와 굴 안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그리고 다니엘이 보입니다.”

더 자세히 보십시오. 중요한 것을 보십시오.”

끝까지 앤디는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나이든 성도가 말했습니다.

다니엘의 눈빛을 보십시오. 그의 눈이 사자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것을 보십시오.”

 

앤디는 목회자였지만 상황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자와 감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를 사자 굴에 넣은 공권력의 힘을 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성도의 말을 듣고 그제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다시 믿음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아주 좋은 책을 씁니다.

교우 여러분! 코로나라는 사자에게 눈길을 주지 마세요! 한국교회가 망한다는 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마세요! 오히려 무시하고, 하나님의 눈길을 바라보세요

 

0권사님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우리 교회를, 예배를 그리워해야 하는 이 상황들이 정말 믿겨지지 않지만 현실인 것을~~~ 불확실한 마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께서 언제 판을 바꾸실지? 알 수 없지만 믿고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불확실한 마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께서 언제 판을 바꾸실지?”

 

그래요! 이번 태풍 하이선의 경로를 보세요! 태풍의 중심이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갑자기 진로를 점차 서쪽으로 틀면서 피해를 속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판을 바꾸시면 한국교회는 다시 회복되며 구원의 역사를 감당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의 많은 허물에도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를 잘해서 함께 하고 사랑합니까? 허물도 있기에 지킬만한 가치가 있어 지키고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이 없어 대한민국을 지키고 사랑합니까? 대한민국은 내년 말로 국가채무가 1,000조가 이르는 부채덩어리 공화국입니다. 미래세대가 짊어질 나랏빚은 40년 뒤 1인당 1억입니다. 빚잔치를 할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빚잔치가 무서워 모두 조국을 떠날 것입니까?

 

정부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통해 복음이 북한-중국-인도로 전해지면서 세상을 구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련을 이겨내는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를 대하는 마음도 그래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고, 때로는 대통령의 언행이 싫어도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한국교회가 비난받는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숨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교회를 버리고 간들 생명의 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의 모진 비판을 받아 상처투성이가 되고 아픈 한국교회이지만 우리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아프기에 우리는 더욱 한국교회를 아끼고 보호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정직과 진실함으로 교회 회복의 길을 닦아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밧모 섬에서 길을 물었던 요한처럼 우리도 코로나19라는 밧모 섬에서 주님에게 길을 물읍시다! 한국교회는 잠시 비틀거리지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핏값으로 세우신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2천년을 견디어 낸 끈질긴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를 지키며 사랑하며 상처를 싸매주며 이 시련을 견디어 냅시다! 부활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

다 함께 주만 바라볼찌라를 부르면서 오늘의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 닮아가는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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