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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생명과 신자와 선악과 신자(창세기 2:7~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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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신자와 선악과 신자

창세기 2장 7~9절

 

서론

오늘도 50명 단위로 예배합니다. 주일은 예배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배와 성도의 교제, 성도들의 봉사와 활동이 함께 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인 성전과 공동체 교회와의 차이점입니다. 지금 예배가 비정상적입니다. 가정에서 예배한다 하지만 그건 예배드림보다 예배구경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주전선수로 부름을 받았지 구경하라고 관람자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믿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다고는 하지만, 어디 예배당에 나와 예배하며 성도의 교제를 하며 부서에서 봉사생활을 하는 만큼 신앙 유지 내지는 성장이 있겠어요? 주일에 은혜가 되느니 안 되느니 해도 성도들은 주일이 없으면 믿음 유지가 쉽지 않아요. 신앙지수를 재어보면, 지금 한국교회가 가장 낮은 믿음의 지수를 나타낼 것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코로나가 끝나도 한국교회가 옛날의 믿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성경에는 인간 창조와 동물 창조의 재료가 모두 이라 기록합니다.

7,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19,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한글 성경에는 그냥 흙이지만 히브리어에는 의 종류가 다릅니다. 인간 창조의  아파르’-먼지 같이 부드러운 입자입니다. 흙을 갈고 채로 쳐내서 곱게 가루를 만든 흙입니다. 영어성경에는 7절의  ‘dust’입니다. 먼지, 티끌, 가루 분말입니다. 굉장히 세밀한 흙입니다.

 

동물 창조의 흙은 아다마’-거친 입자입니다. 영어로는 ‘ground’, 그냥 땅입니다. 사람의 보살핌이 없는 거친 땅이지요. 이렇게 사람을 만든 흙과 동물을 만든 흙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담의 이름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것은 붉은 흙’, 황토라는 의미입니다. 한 스푼의 황토(黃土)에는 2억 마리의 미생물이 있습니다. 우리 몸 전체를 황토덩어리로 본다면 수백억의 미생물이 들어있습니다. 굉장한 생명체입니다.

 

7,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生靈)은 생물이며 살아 움직이는 영적 생명체를 말합니다. 흙덩이에 하나님의 생기-숨결, 호흡이 공급되니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영적 생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제대로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살려면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계속 공급받을 때 생령이 되고 행복이 나옵니다. 만약 생기를 계속 공급받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령이 아니라 동물 중의 우수한 종()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히브리대학교 교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다양한 인간 종(), 최소한 여섯 종의 인간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영장류의 인종들이 약 7만 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  500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을 통해 점점 진화하면서 여러 종의 인간들은 소멸되고 지금의 인종 호모 사피엔스 단 한 종만이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창조론과는 완전히 배치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구도를 거절해야 합니다. 창조론을 말할 때, “증거가 있어? 증명이 있어?” 따져요,

그러면 진화론에도 물어보지요! “증거가 있어?” 사람이 진화하고 있다면 지금도 문명과 접하지 못하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서는 진화의 중간상태들이 나와야 하지요! 반은 원숭이고 반은 인간이라는 중간상태, 과학이라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뒤집어 집니까?

 

중세기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회전한다는 천동설이 과학이었습니다. 갈릴레오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도 회전운동을 한다는 지동설 이론을 펼치자 그걸 이단이라 내치려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학문적 사항들이 계속 수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과학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론은 지난 6천년동안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어떻든흙으로 창조함을 받은 영장류인간이 인간 구성요소인 지적감정의지는 물론이고 영적상태를 보존하고 계속 성장하려면어떻게 해야 하는가본문에 분명하게 나옵니다그건 당연히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을 때 가능합니다하나님의 생기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숨결을 부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그건 매일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생기를 공급 받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매개체는 9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는 생명의 성장수단입니다먹는다는 것은 교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에서 떡을 떼어주시며 “받아먹어라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살이니라!” 하셨습니다그 이전에가르치심을 통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6:4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6:51) 당신이 곧 생명의 떡이라 하셨습니다.

칼빈은 생명과는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생명과를 먹는다는 것은아담은 이미 어느 정도 성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 중개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생명과라는 것을 믿었습니다그래서 생명과를 따먹는 일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고 생령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생명과와 선악과는 쌍둥이 나무입니다. 생명과가 단순히 생명을 늘려가는 과일나무였다면 선악과나무는 심어놓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모든 생물에는 암수가 있습니다. 음양이 있는 것이지요! ()의지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것은 생기를 공급받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무인도에서 달랑 한 여인만 있어 사랑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되겠어요?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선택할 수 있음에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생명과가 영적 생기를 공급받는 수단이 되도록 선악과를 옆에 두신 것입니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먹으면 선과 악을 모두 아는 존재, 즉 선과 악을 내가 정하고 내가 주관자라 착각하게 만드는 나무입니다. 선과 악의 규명을 내가 정함으로 하나님이 내게서 밀려나고 내가 하나님의 자리, 선과 악을 판단하는 판단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공급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택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남으로 더 이상 생명과는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라는 선악과를 계속 먹으며 죄의 숙주(宿主)가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 열매에는 나는 나다라는 신학적 개념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름을 밝히셨습니다.

 

여호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3:14) 그 말은 나는 나다 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류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나는 나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두 부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다!”하고 생명과를 따먹는 존재와 나는 나다라며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두 종류의 신앙관들이 공존합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생명과를 먹으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으며 점점 생령이 되어갑니다. 짐승의 소재, 땅의 특성이 점점 사라지고 성화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생기를 공급받는 것이 예배요 말씀이요 기도요 찬양이요, 생활에서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건 성령 충만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는 반대의 삶을 삽니다. 항상 내가 주인이다 자아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성경을 읽고 안 읽고 기도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도 나는 나다!” 이런 자아는 생기를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영적 종교적 이산화탄소를 공급받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다니면서도 세속화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화라는 것은 세상에 물들어 세상을 닮아버리는 삶의 스타일입니다.

그러니 어찌해야 합니까? 금해야 할 것과 구하여 할 항목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금해야 할 것은, 선악과 따먹기입니다. 선악과는 입니다. 내 속의 자아, 아집, 고집, 교만들을 죽이고 쫓아내야 합니다. 내가 그것들의 숙주(宿主)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선악과의 악한 기운이 해결되지 않으면 힘듭니다.

 

추구해야 할 것은, 생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정규적으로 말씀을 충분히 먹어주어야 합니다. 말씀이 기본메뉴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예배에 열중해도 말씀을 먹어주지 않으면 기본기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이 성경을 너무 안 읽는 것 같아요!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얻어요! 그러니 믿음이 혼합되고 오래 믿어도 자기중심이 강합니다.

 

엊그제 인도에서 비단구렁이가 커다란 동물을 통째로 집어삼키고는 몸이 무거워 꿈쩍도 못 하자 사람들이 트럭에 실어 인근 숲에 풀어줬습니다. 인도 비단구렁이는 인도왕뱀으로도 불리며, 몸길이 약 6m, 몸무게 3255까지 자랍니다. 배가 차면 1년 가까이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도 성경 없이 1년씩 사는 것은 아닙니까? 예배 없이 여러 달을 사는 것은 아닙니까? 생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하나님의 생기가 아닙니다. 선악과의 악한 기운, 악기(惡氣)입니다.

나는 나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주어(主語) 노릇을 하게 하는 나쁜 기운입니다. 이런 악한 기운을 들이마시면 인간의 죄성이 순간순간 흘러나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선악과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나무에 선악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까?

 

결론

금년 사역주제를 에스겔 37장을 본문으로 마른 뼈가 살아 춤추게 하라!” 로 정했습니다. 부드러운 흙을 소재로 춤추는 인생으로 춤추게 창조되었는데 에스겔이 환상 중에 동족들을 보니 영혼들이 말라 춤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이 마른 뼈가 살겠느냐?”

 

에스겔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대답하자 여호와께서 뼈들에게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라! 이걸 네가 대언하라 에스겔이 대언하니 뼈가 살아나고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군대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생기가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과를 먹을 때 생기가 돌아오는 일입니다. 생명과를 먹어야 생기가 나고 생령이 됩니다. 다시 일어서십시오! 예배를 위해 헌신의 자리로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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