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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빌립보서 1:27~3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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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빌립보서 1장 27~30절

서론

1919년 삼일 독립 만세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은 천도교 16, 불교 16명 기독교인 16명입니다. 기독교인구는 20만 명, 조선인구 1600만에 1.3%, 100명당 1명반꼴, 그럼에도 삼일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사랑을 받고 민족을 이끌었던 저력 있는 민족교회였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남한인구가 5천만, 기독교인을 천만으로 본다면 20%가 기독교인입니다. 선교 130년 만에 엄청난 숫자입니다. 역대대통령 열한분 중에서 절반에 해당되는 5명이 기독교라면, 40% 이상 기독교신자입니다. 비기독교국가에서 이런 숫자는 거의 불가능한 통계입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교회가 사회를 이끌고 있나요? 기독교인들이 모범시민으로 살고 있나요? 교회가 사회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나요? 질문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오죽했으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우리 입에서조차 나오겠어요?

 

한국교회가 지탄의 대상, 비판거리가 된 데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한국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에 뜨는 그 목사, 장로들 때문에 교회를 싫어하고 비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목욕탕에, 미용실에 앉아 교회 험담하는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그런 부류만 있는 줄 알아요! 백화점 다니면서 송화시장 천원 2천원 깎으려 갑질하는 신자들, 내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동서, 며느리, 시어머니 때문에 한국교회가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기독교 2천년은 항상 공격과 비난을 받아왔지만 지금처럼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신자들, 예수가 아닌 예수쟁이들이 욕을 먹던 시대는 드믑니다. 한국교회에서 그런 현상이 특히 심합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복음에 대해 전했습니다. 유앙겔리온! 복음은 무엇입니까?

 

1) 복음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기쁜 소식입니다.

성경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나,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했나? 아브라함을 위해 무엇을 했나? 요셉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셨나? 그걸 알면 내게 희망이 생기고 기대가 생기고 사명이 생기는 것이지요!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알게 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자존감이 생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영향력이 생깁니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2) 복음은, 내가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선포하는 은혜의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와 진노에서의 구원이 복음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면 죄로 돌아가려 않으려 죄와 싸웁니다. 복음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삶을 살기위해 죄와 투쟁합니다.

 

3)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로 내가 하나님자녀가 되었다는 신분변화의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되었으면 신분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청량리 588에서 몸을 팔던 여인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 남자는 목사일 수도 잇고 판사-교사일 수도 있습니다. 목사부인으로서의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은 다시 588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어둠의 욕구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인들이 지난날의 나를 보고 쑤군대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고 사랑함으로 복음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27절에서 이렇게 명()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번영신학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신념과 주장, 혈기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소신에 합당한 삶을 명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한국교회 초기에는 이게 잘 되었습니다. 그러니 20만 명의 기독교신자가 1600만 명의 대한민국 백성들에게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서 희망이 되고 대안세력이 된 것입니다.

지금 그게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라!

그러나 한국교회는 구원 받았음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번영신학에 맞게 생활함으로 번영신학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번영신학의 요점은 하나님 믿어 잘되자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성경사상입니다. 구약에서 복에 관한 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복은 믿음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번영신학의 위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와 건강, 형통을 결과가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왜 믿느냐? 복 받기 위해서! 병 낫기 위해서! 위로 받기 위해서! 자식들 잘 되라고! 이러다보니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예수 믿고 돈 많이 벌면 벌지 못한 교인들보다 축복을 더 많이 잘 믿고 병 고치면 예수 잘 믿고 병에 걸리면 예수 제대로 믿지 못한다는 해괴한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만사형통 믿음이 나오다보니 시민의식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 있을 하늘나라 시민으로서의 거룩함과 관대함과 십자가의 희생정신 이런 구원 이후의 행위가 실종되고 마니 교인들은 하나님 빽으로 땅과 천국의 모든 욕심을 거머쥐려는 종교중독자로 보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만 봐도 한국교회가 성경을 번영신학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얼마나 재주가 좋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17세에 꿈을 꿉니다( 37). 형제들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 굳이 해몽 할 것도 없습니다. 요셉이 큰 인물 된다는 징조입니다. 꿈처럼 요셉은 큰 인물, 애굽제국의 총리가 됩니다.

한국교회가 여기에 이 꽂힌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을 꿔라! 꿈을 위해 고생하고 꿈을 위해 하나님을 잘 믿어라! 요셉의 꿈은 비전이다! 총리가 되는 비전으로 공부해라~

 

여기까지는 성경과 궤를 같이합니다. 그러나 성공이후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려는 요셉의 꿈이 정녕 총리인가요? 왜 우리는 총리 이후를 주목하지 못합니까?

 

요셉이 꾸었던 꿈은 총리가 아닙니다. 성공과 출세도 아닙니다. 총리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 꿈을 펼칠 사닥다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주신 꿈은, 사명입니다. ()애굽 사명, 애굽에서 대민족으로 번성하게 하는 사명, 어머니가 넷인 다혈통의 열두 형제를 한 아버지 단일 혈통으로 만들어 내는 사명, 메시아언약의 인프라를 깔아놓은 사명 이것이 요셉에게 주셨던 꿈이고 요셉총리가 해석한 꿈입니다. 그러니 용서가 나오지요!

 

여기서 사명을 없애버리고 총리로서의 요셉의 성공과 출세만을 강조하고 그걸 목적으로 삼으니 실패한 신자대통령들, 실패한 세상 성공자님들 성공한 아무개 아무개 하나님 잘 믿어 성공했던 그 가문은 성공만을 누리며 형식적인 예수집안으로 쫄아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번영신학에 합당하게 살아왔던 결과요 부모들이 만들어낸 자화상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3)에서 보세요! 시민 노릇하라! 시민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로마시민은 로마시민답게! 헬라시민은 헬라시민답게! 하늘나라시민들은 하늘나라시민답게 살아라! 바로 그거에요!

빌립보교인은 하늘나라 시민들입니다. 우리도 거듭날 때 하늘나라 시민입니다. 그러니까 국적이 둘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헌법과 사회법을 지키면서 합당하게 살아라! 하늘나라 시민으로서는 하늘나라 법에 맞추어 하늘나라 시민답게 살아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두 나라 시민으로서 두 법을 지키며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복음에 합당한 행위로 주어진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단순히 율법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가이드이자 매뉴얼입니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달라도 국적이 다르고 피부가 달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지키고 살아야 할 생활지침서입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1계명-경배의 대상(하나님만 섬기라).

2계명-경배의 방법(아무 형상이든지 숭배하지 말라).

3계명-경배의 정신(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계명-경배의 시간(안식일을 지키라).

5계명-하늘아버지 땅의 아버지에게 효도하라(부모에게 효도하라)

6계명-이웃의 생명 보전(살인하지 말라).

7계명-이웃의 순결 보전(간음하지 말라).

8계명-이웃의 재산 보전(도적질하지 말라).

9계명-이웃의 명예보전(거짓 증거하지 말라).

10계명-이웃의 가정 보전(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 얼마나 좋은 생활지침입니까이것이 복음 안에서 수용된다면 우리가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구원만을 중시하고 생활을 놓치지 본의 아니게 우리가 구원파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파는 행위를 무시합니다저들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구원은 영이 받았으므로 육적으로 하는 일은 관계치 않고 육적으로 범죄하면 그 육이 책임진다.”

구원받고 한 번 깨달으면 다시 범죄도 없고 죄를 지어도 구원과는 상관없고 생활 속에 짓는 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십계명은 성경에나 나오는 고문서에 불과하고 현실에는 맞지 않은 불필요한 계명들로 치부해 버립니다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된다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는 행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교리 때문에 믿음은 좋지만 행동은 좋지 않는 기독교 신자들을 양산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0).

 

십계명을 어떻게 복음화하느냐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관건입니다모세방법의 해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으로 십계명을 해석해야 합니다예수님은 계명에 담겨진 의미와 정신적인 해석까지 겸했습니다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놓은 것이 1계명 어김이요 미움 자체가 살인이라는 것입니다영적인 간음뒷담화로 인한 9계명 어김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그러기에 십계명을 형식만 아니라 복음으로 녹아내서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그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삶을 사십시오로 번역합니다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곧 명예로운 삶입니다.

 

육군사관학교 학생들은 비가와도 뛰지 않습니다지하철 표를 잃어버린 육사 생도직원이 올려줄 때가지 꼼짝하지 않고 서서 기다립니다그것은 사관생도들의 신분이자 합당한 행동입니다이렇게 육사생도 신분에 합당한 행동과 긍지가 우리나라 군대를 세계에서 뛰어난 군인들로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육사생도들이 전부 명예로운 행동을 한 것만은 아닙니다동료여학생에게 술을 먹이고 성추행하고 외부로 알려져서 명예를 떨어뜨립니다육사 생도에 합당한 생활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도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명예로운 삶을 살았다면 지금 이 모양이 노릇이 되지는 않았겠지요그러기에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번영신학 기복주의 인본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신자들 너도나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국교회가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지 단순히 교단개혁 교리개혁으로는 한국교회 개혁운동은 자동차의 공회전과 같은 제자리걸음에 불과합니다.

 

복음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복음에 맞는 생활을 해야 신자들에게서 개혁이 일어납니다복음만이 개혁의 중심원입니다복음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복음을 알지 못하고 어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합니까복음을 제대로 모르니 번영신학에 합당하게기복주의에 합당하게인본주의 인권에 합당하게 삽니다그렇게 살면 복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결론

유대인이 되기는 쉬어도 유대인으로 살기는 어렵다!”는 탈무드의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할례 받고 개종하면 유대교인이 됩니다시험 볼 것도 없고 거액 헌금할 것도 없습니다돈 안 들이고 얼마든지 유대인이 됩니다얼마나 쉽습니까그러나 유대인으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유대율법이 굉장히 엄격합니다하루에 세 번 기도일주일에 두 번 금식, 7일에 하루씩 토요안식일로 종일 노동과 생활을 멈추고 예배해야 합니다.

외부로는 유대인이라면 경계대상입니다다신론 세상에서 유일신 신봉자들인 그들은 항상 공공의 단합을 허무는 위험한 존재들입니다그러니 어느 나라에 가서도 감시의 대상이고 핍박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여호와 유일신 신앙심에 합당한 율법에 합당한 생활을 했습니다유대인들이 망했습니까오히려 갈수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외적성장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숫자 떨어진다고 한국교회 쇠퇴라는 자학패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지금은 추수기하나님께서는 알곡을 원하십니다쭉정이를 갈라내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춥고 어두운 감옥번영신학 신자들에게 빌립보 감옥은 복음이 아닙니다빌립보 성도들도 고난과 핍박에 있습니다의심이 들겠지요.

내가 잘 못 믿어서 이런 고난과 시련을 받는가?’

 

바울은 29절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게 바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는 것입니다여기서 흔들리는 것은 하늘나라 시민답지 못한 일이기에 흔들리지 말고 하늘나라 시민답게 견디며 면류관을 쓰라는 것입니다우리가 구원 이후의 삶-복음에 합당한 인격과 생활을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이제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명예로운 생애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그것만이 하나님을 잘 믿고 사는 길입니다.

오늘의 설교가 여러분들의 삶에 영적인 울림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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