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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꽃은 시든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느헤미야 2:11~2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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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시든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느헤미야 2장 11~20절

서론

오늘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종교개혁은 유럽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했던 교회갱신운동, 교황청개혁운동입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은 면죄부 판매입니다. 16세기 교황청과 가톨릭교회는 부패한 생활 때문에 재정적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베드로 대성당(산피에트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독일의 부호 푸거가()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면죄부 판매담당 사제들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기부금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돈이 상자 속에 짤랑~ 들어가는 순간, 영혼은 지옥 불길에서 튀어 나온다고 설교합니다. 심지어 면죄부를 사면 성모 마리아의 육체를 범한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교황청의 절대 권력의 횡포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속에서 끌탕만 했지 앞장서서 그것이 잘못이다, 경고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황청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죽음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죽음을 각오하고 일어난 사람이 독일사제 마르틴 루터입니다. 루터는 면죄부를 판매하던 교황청에 대항하여 <95개조 의견서>를 재직하던 비텐베르크대학-성당정문에 부칩니다. 1517 10 31일입니다. 당시 루터의 나이 34세입니다.

교회 정문에 붙인 95개항의 의견서는 대자보 수준이었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선풍을 일으켰고, 평소 교황청 권력에 불만이 쌓였던 군주들의 동참과 지지로 종교개혁운동은 유럽 전체로 불길처럼 확산되어 나갑니다.

 

루터는 항의문을 통해 무엇을 주장했는가?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형식이나 권위 같은 외면적인 것은 구원과 관련이 없으며, 오직 회개에 의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주장한 것입니다. 구원이 교황청과 교황의 손에서 쥐락펴락하는 것을 루터 이전의 위클리프가 선구자 역할을 했고, 루터와 동시대 칼빈 츠빙글리, 존 낙스 등이 교황청 개혁을 비판하고 나섭니다. 루터는 물꼬를 튼 셈입니다.

 

교황청이 처음에는 루터를 우습게보았습니다. 그래서 파문하면 잠잠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럽 군주들의 지원을 얻으며 유럽전역으로 개혁운동이 번져나가자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제야 교황청 갱신과 개혁을 약속하며 불길을 잠재우려 합니다. 여러 개혁방안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교황청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며 박해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항거자, 저항자, 이탈자, 구교(로마가톨릭)에서 분리된다는 의미에서 신교를 말합니다.

지금은 어때요?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 교황청은 달라졌을까요? 달라지지 않았어요! 교황청은 개혁자들의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성경적 교리들을 강화했습니다.

 

1870, 바티칸 회의에서 교황의 무오설을 결정했습니다. 교황은 죄가 없다는 거예요! 교황 자체가 무오하다 주장하려니 저들도 낯 뜨겁지요. 그래서 평상시에는 원죄를 지녔지만 어떤 교서를 발표할 때 교황은 무오하다 합니다. 교황의 결정권은 100% 완벽하다는 거예요!

 

교황 무오권을 행사한 첫 작품이 1950년 마리아 승천입니다. 8 15일 마리아가 승천했다 는 선언입니다. 그러자 1900년 동안 죽어있던 마리아가 승천합니다. 대단한 교황의 권위입니다.

 

2013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세계 청년대회 전례(典禮·가톨릭교회의 공적 의식)에 직접 참여하는 신자는 물론 TV·라디오·스마트폰 등을 통해 행사를 시청·청취하거나 교황의 트위터를 팔로하는 신자에게 '전대사'를 주었습니다. 전대사(全大赦)란 죄에 따르는 벌(잠벌)을 모두 사면하는 것을 뜻합니다. 잠벌(暫罰)은 이 세상이나 연옥에서 잠시 받는 벌입니다.

 

교황청은 잘못된 교리를 갱신하고 개혁하는 대신 포장을 합니다. 얼굴은 둔 채 멋진 얼굴로 화장하는 셈입니다. 교황을 상품화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을 이용할 줄 압니다. 교황 전용기에는 언론담당자들이 배석합니다. <타임지>는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며 “70대의 슈퍼스타라 불렀습니다. 교황은 가는 곳마다 부드러운 행동, 서민들에게 다가가는 친절함으로 록스타에 가까운 돌풍을 일으킵니다. 프란체스코는 비즈니스 CEO교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로마가톨릭은 미국과 한국에서만큼은 최고의 부흥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을 앞둔 프로테스탄트교회는 개혁을 완성했나요? 로마교황청의 부조리와 부패가 싫어 뛰쳐나왔는데 교황청과는 다른 교회를 만들어 냈을까요? 특히 한국교회는 교회가 이럴 수 없다, 라고 할 만큼 세속화되고 조롱거리로 주저앉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너나 잘 하세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쉴 새 없이 에러(실수)를 만들어 내고 자살골-자충수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에러 투성이라고 해서 성경과 복음에서 이탈한 로마가톨릭이 정당화되고 개혁가들의 복음주의 정신이 부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의 에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버린 적이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타락해도 다시 회복시키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는 혈통의 파이프로 사용하십니다. 이방강대국들을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 적은 없습니다. 온갖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선민 이스라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동일한 마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내팽개치기도 했지만 마음으로 아예 하나님을 버리거나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상과 함께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도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불리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했고 회복을 기대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 499주년, 한국교회를 향해 지녀야 할 우리의 마음자세입니다.

 

본문은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입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잘못된 관습, 행태를 뜯어고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혁대상을 처음부터 바로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개혁에 앞서 기도합니다.

 

1 6,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내가 잘못했다! 내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자기를 탓하지 않습니다. 누구 때문에 교회가 망신이고 한국교회가 타락하고 있다! 그래서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직분자들의 불신행위, 화려한 대형예배당과 세습, 개교회 이기주의, 목회자들의 권위주위, 위선(僞善), 교회의 세속화, 교단의 부패와 타락, (), , 재산, 소유, 재물, 물질을 절대시하는 맘모니즘(mammonism), 기복주의 굽어진 손들, 오그라진 마음들 천주교신부는 5천명 이내이고 기독교목회자는 15만 명 이상이 되다보니 별 일들이 다 터집니다. 교회답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고 우리 모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그 한국교회에서 제외시킨 채 비판만 일삼는 분들! 일반 언론에 나와 한국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 보면 불편해요! 가만있어도 안티들과 이단들이 기독교 공격거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데 본인들은 한국교회와는 무관한 것처럼 세상 앞에서 부모 같은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의(), 자해(自害)입니다.

 

기독교텔레비전이나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은 달라요! 우리끼리는 별 비판을 왜 못하겠어요? 망가져 가는 한국교회를 두둔만 하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지적도 하고 책망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밖에서 비판하는 것은 공격의 빌미만 제공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비판의 대상에서 나 자신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과 개혁운동을 나부터 시작합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사실 느헤미야가 범죄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바벨론 태생입니다. 이미 죄의 대가로 바벨론에 거주하면서 태어났기에 조국이 망한 것은 그의 죄탓이 아닙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민족의 죄를 나와 아버지의 집의 범죄결과로 해석합니다. 자기에게서부터 근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면서도 느헤미야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이방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있는 동족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죄도 많고 행동이 시원치 않아도 이들은 누구인가? 주님의 구속을 받은 주의 종들이고 주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사사건건 종을 비판하면 주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젠 그만 해라~”

느헤미야가 그걸 말하며 예루살렘 회복운동을 펼칩니다. 회복의 첫 걸음은 무엇입니까?

 

2:15 “성벽을 살펴본 후에

 

참담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에 벽돌이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하고 성문은 불타버렸고 성벽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누가 들어와서 노략질을 해도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읍에 살지 않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아름다운 성읍이 왜 이리 되었나?

느헤미야는 누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비난과 비판은 그의 사명이 아닙니다. 무너진 성읍을 회복하고 재건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미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왕의 술관원이라는 최측근 고위직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는 임시총독이 됩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고 성읍 회복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에 주의 백성들로 북적이고 떠나갔던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고 제대로 선민역할을 하도록 하는게 느헤미야의 꿈이고 개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냅니다. 2장입니다.

 

17,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더 이상 이방인들에게 욕을 먹지 말자!~ 수치 당하지 말자! 왕년의 예루살렘이 보통 성읍이냐! 회복하자! 일으켜 세우자! 그랬더니, 너무도 백성들로부터 좋은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18,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창피하다고 선민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누구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까? 자포자기 상태에서 살자고 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 일어나자! 그래서 다시 무너진 성읍을 건축하자! 회복운동! 이것이 선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만 했나요? 아닙니다! 선한 일에 행동으로 동참합니다. 성벽회복을 위해 모두 동참합니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은혜를 받는 부분입니다.

 

3 1. 대제사장들, 8절 금장색, 향품장사 9절 고위관리들, 12절 딸-여성들, 30절 자기의 방과 (전세방 사는 사람들) 모두 열심을 내었더니 6 15, 52일 만에 성전재건 역사가 끝납니다. 세상에~ 대단한 역사요 기적입니다.

무너진 성벽 앞에서 탄식하며 부끄러워하며 절망하며 앞선 세대들 공격하고 비판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성읍,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읍을 완성할 수 있습니까?

 

유대인의 제2의 경전 <탈무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열 개 분량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려 주셨다. 그중 아홉은 예루살렘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성 예루살렘!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예루살렘! 이제 다시 저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예루살렘 성읍이 제 자리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아름다운 보석 예루살렘이 된 것입니다. 비판하고 낙심만 했다면 그 아름다운 보석을 어찌 볼 수 있었겠어요?

 

한국교회. 한 때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요, 대구는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른신학과 바른교리, 신사참배 반대, 독립운동의 선각자, 금연금주운동, 성경으로 한글 깨우쳐 문맹해결, 여성들의 인권, -고등-대학교를 통한 민족교육 정부가 사회복지에 눈을 뜨기 전에 교회가 고아원 장애인 시설, 노약자 돌봄 등을 교회가 감당했습니다. 일반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어주지 않아 그렇지 지금도 한국교회는 대단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월호로 상권이 무너져버린 안산시의 경제권을 살리기 위해 10차에 걸친 방문에 성도 8,600여명이 약 324,000,000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했습니다.

 

한국천주교는 생색을 내는 일을 많이 하고 그걸 단일창구로 언론을 통해 과시합니다. 우리는 개교회별로 합니다. 당연히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이미지 홍보에 밀리고 일부의 일탈행위로, 안티 악플로 한국교회가 공격당하고 여기에 한국사회가 말려들고 만 것입니다.

 

억울하지만 억울해하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때는 자랑스러웠던 한국교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 신자를 가려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아름다운 한국교회를 회복하려는 교회개혁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말라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할 일입니다.

결론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CBS와 한국조폐공사는 공동으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메달을 출시했습니다. 금메달 250만원, 은메달 11만원, 종교개혁취지에 맞지 않지만 대한민국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가 종교개혁기념메달을 찍었다는 자체가 한국교회의 성도 수와 위상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숫자와 위상에 걸 맞는 한국교회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난날의 한국교회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 책을 읽다 꽃은 시든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는 글귀를 만났습니다. 화려했던 꽃이 시들어 떨어지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든 자리에서 내년에는 다시 피어납니다. 한국교회의 꽃이 시들었지만 시든 자리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처럼 한국교회 성읍을 살펴봅시다. 어디가 무너졌는가? 어디에서부터 재건하고 회복해야 하는가? 3장에서처럼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내 삶에서 생활에서 믿음에서 성격에서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한국교회 전체가 바른성경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로 돌아갈 때 라는 한국교회는 인격신앙으로 빛과 소금이 되고 개혁자의 후예 한국교회는 느헤미야가 왕에게 은혜를 입었듯이(1:1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것이며 대한민국 백성들에게도 은혜를 입어 동양의 예루살렘 성읍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돌아오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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