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시편 56장 8~10절
서론
오늘은 11월 첫 주일, 금년에도 열 달을 살았습니다. 날수로 계수하면 300일 정도를 살아낸 것입니다. 300일을 살았다 하지만 천국처럼 살아본 날들이 몇 날이 되겠어요?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박광수씨는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먹고 살만큼 돈도 벌고 유명세를 얻은 분이,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던 분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로마의 시인 버질은 “만물에는 눈물이 있도다”라 말합니다. 삶자체가 눈물인생이라는 거지요!
금년 한 해 우리 늘빛교회에서 눈물이 가장 많았던 분, 이런저런 사정과 사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분은 누구십니까? 많은 분들이 저요~ 속으로 손들고 싶겠지요? 눈물, 하면 아무래도 자식으로 흘린 눈물이 많을 거예요. 암(癌)에 걸린 자식들, 잘 못 살아서⋯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자식을 향한 부모의 눈물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금년에 가장 많이 우신 분은 아들을 잃은 우리 황권사님 같아요! 하나님의 위로를 기원합니다.
구약성경 욥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서를 ‘시가서’라 합니다. 인생지혜를 담은 성경이요 인생지침을 기록한 교훈서입니다. 다섯 권이 특징이 있어요! 욥기는 불행의 기록, 아가서는 사랑의 기록, 전도서는 성공 후의 허무기록, 잠언은 교훈의 기록이요 시편은 고난의 기록입니다.
다섯 권 성경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가 ‘눈물’입니다. 욥기는 얻어터져서 울고, 아가서는 사랑에 겨워 울고, 전도서는 인생이 너무 허무해서 울고, 잠언은 말씀의 교훈에 감동되어 울고⋯ 시편은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파서 웁니다.
시편은 모두 150편인데 저자이름이 기명된 시편은 100편입니다. 그중 다윗이 73편을 지었습니다. 나머지는 아삽, 고라자손, 솔로몬, 모세⋯등이 지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들이 거의 대부분 고난과 역경 속에 하나님께서 호소하고 탄원하는 눈물의 시편들입니다. 그러기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영화카피처럼 눈물이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것이 다윗의 시편들입니다.
오늘도 보세요! 8절, 나의 눈물을⋯. 어떤 눈물입니까? 다윗이 왜 울고 있습니까? 사울의 추적과 감시망을 피한다는 것이 하필이면 블레셋 땅입니다. 블레셋은 골리앗 영토입니다. 가드 왕 아기스와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봅니다(삼상 21장)
“어? 이 놈 누구야? 골리앗을 죽이고 우리 전쟁을 패하게 한 그 놈 다윗이잖아?”
큰일 났어요! 다윗이 영민한 사람입니다. 얼른 꾀를 냈습니다. 미친 척 미치광이 흉내를 냅니다. 침을 흘리고 눈을 뒤집어 까고⋯ 영락없는 또라이입니다. 그러니 가드 왕이 속습니다.
미친놈이잖아? 사울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렸다 판단하고 살려둡니다. 다윗을 살려두어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사울과 백성들 사이를 다윗을 내세워 계속 이간질하기 위한 속셈입니다.
이스라엘의 슈퍼스타 다윗은 미치광이라는 모욕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블레셋 골리앗을 이겨 대스타가 되었는데 이제는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그 수하로 기어들어간 것입니다.
머리를 돌게 하는 일들이 그뿐인가요? 사울이라는 악연을 만나 너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평생 우정을 나누리라던 요나단 왕자는 전쟁터에서 전사했습니다.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들은 죽습니다. 큰아들 암논은 셋째 아들 압살롬에게 죽습니다. 압살롬 왕자의 반역으로 맨발로 도망가야 했고⋯ 후궁들은 백성들 앞에서 아들에게 겁탈당합니다. 첫 부인 미갈과는 평생을 원수로 살았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생애는 고난이고 시련이고 눈물의 파노라마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73개의 시편작품들은 대부분 눈물이요 탄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디 다윗만 그래요! 우리 인생이 그런 거 아닙니까? 태어날 때 울지요? 죽을 때도 웁니다. 태어날 때는 응애~ 내가 울고 사람들은 웃고⋯ 죽을 때는 나는 담담한데 사람들이 웁니다. 나 때문에 누군가 웃고 나 때문에 누군가 울고⋯ 나 때문에 웃는 사람들이 많았나요? 나 때문에 울었던 사람들, 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눈물은 98.5%가 수분-물이고, 소량의 염분 등의 단백질과 식염(食鹽)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눈물 맛은 짭니다. 종류에 따라 농도가 다릅니다. 기쁨이나 슬픔의 눈물은 비슷하지만, 분노의 눈물은 더 짭니다. 분노는 교감신경이 흥분되면서 나트륨 성분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생화학자 빌 프레이는 생물학적 기준에서 눈물을 세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지속적인 눈물. 눈동자를 깜박일 때마다 조금씩 배출되어 눈동자의 표면에 골고루 퍼지는 윤활유 역할을 함으로 외부에서 침입한 박테리아와 세균⋯ 등을 세척해 줍니다.
-자극에 의한 눈물. 양파를 깔 때 양파가 내뿜는 황산⋯ 등이 눈동자를 자극하면 눈(眼)은 자극적인 물질을 희석시키려고 자동으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감정의 눈물. 고단백질 함유로 스트레스 받을 때 생겨나는 나쁜 화학성분을 몸 밖으로 밀어냅니다. 몸의 컨디션을 정상화하고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눈물은 좋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눈물은 약자, 인생패배자, 여성들의 전유물로 치부됩니다. 유교사고를 가진 아버지는 아들에게 “남자는 딱 세 번만 울라” 강요합니다. 태어날 때, 부모가 세상 떠났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이렇게 세 번 울어야 한다는 말로 눈물을 허약한 남자의 상징으로 가르쳤습니다. 울지 않으면 강한 남자요, 울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약한 남자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울고 싶을 때가 일생에 세 번이 아니라 하루에도 세 번, 평생 골백번도 더 됩니다. 눈물은 울라고 주신 것입니다. 울라고 주신 눈물을 남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체면 때문에 울지 않으면 병이됩니다. 그래서 “슬플 때 울지 않으면 몸이 대신 운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보다 7년을 단명합니다. 울지 못하는 것이 쌓여 병이 됩니다. 아버지 눈물은 어머니 눈물농도의 10배입니다. 그래서 피눈물이라 합니다. 아픔을 눈물로 쏟아내지 못하니 속에 소금이 쌓여 간경화가 오고 스트레스가 쌓여 울화병에 질병이 생기면서 단명합니다.
여성도 세 번 웁니다. 태어나면서 울고⋯ 자식이 결혼해서 내 곁을 떠나갈 때(독립) 울고⋯ 여성성(女性性. 폐경기)이 끝날 때에 웁니다. 한국 여성들은 눈물이 많아요. 한(恨)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이 많음에도 장수하고 강인한 것은 눈물을 유용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눈물 많은 여인들이 눈물 없는 남자를 이겨낸 것이 대한민국 여성승리사입니다. 그래서 이철환은 <눈물은 힘이 세다>는 책을 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항상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냉정하지 않도록, 우리 열정이 식어지지 않도록 기도로 울고 묵상으로 울고⋯ 감사함으로 우는 뜨거운 눈물의 신앙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사막이 따로 있습니까? 아랍속담에 “항상 햇빛만 나면 사막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 웃고만 사는 사람들은 성숙되지 않으니 철이 안 든다는 거예요! 제대로 울 줄 알아야 성숙하고 성인이 됩니다. 웃지 못해서 성인이 못 되는 것이 아니라 제때에 울 줄을 몰라 어른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물이 힘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낭비(浪費)되는 눈물이 있습니다. 저수지 물은 농업수(水)입니다. 저수지 물로 한 해 농사를 짓고 동네아이들 수영장이 되고 때로는 식수로도 대용합니다. 그러나 저수지 물도 대홍수에는 흘러넘치거나 의도적으로 방류합니다. 이런 물은 아무런 효과도 이익도 없는 낭비되는 물입니다.
눈물도 그래요, 나쁜 눈물은 원한과 증오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소심함의 눈물은 자신을 나약하게 만들고 비극적인 생애가 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눈물은 남들에게 싱거운 사람으로 보입니다. 모두가 낭비되는 수분일 뿐입니다.
눈물의 사람 다윗! 엄청 많이 울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눈물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자식을 보내고 울 때도, 사울 때문에 울 때도, 블레셋 가드 왕 앞에서 미치광이 노릇을 하고 울 때도, 심지어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맨발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도망가면서 수치스런 눈물을 흘릴 때도 사람들을 향해 울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해 울었습니다.
8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여기서 ‘병’(甁)은 가죽으로 만든 용기(容器)나 가죽 부대입니다.
나의 유리함을⋯ 계수하셨사오니⋯. 표준새번역성경은, “나의 불안함을 주께서 헤아려 주시고⋯”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언제 빼앗길지 모릅니다. 불안합니다.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는 유리하는 인생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 웁니다. 고난을 견디지 못해 웁니다. 격정을 견디지 못해 웁니다. 너무 억울해서 웁니다. 흘러내리는 그 눈물을 하나님의 병에 담아달라고, 내 눈물을 기억해 달라고 탄원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주께서는 아십니다. 내가 잠 못 이루고 뒤척였던 숱한 밤을. 내 모든 눈물이 주님의 장부에, 내 모든 아픔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이 제 눈물을 병에 담아 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눈물 장부에 기록해 달라는 탄원입니다. 내가 왜 울었나? 누구 때문에 울었나? 얼마나 울었나?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얼마나 아프게 울었나? 그걸 일일이, 세심하게 장부에 기록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 눈물이 일시적으로 흘러내리고 말라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그런 눈물로 낭비되지 않고 그 눈물에 값을 찾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앞 편(55편)의 17절도 보세요!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울음을 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울음이 다윗을 성웅으로 만듭니다. 증오와 원한의 눈물이 많으면 사람이 독해지고 악해지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사전을 토하여 울었습니다. 그의 인격은 눈물로 연단되고 다녀진 신앙인격입니다. 그래서 성웅이 된 것입니다.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읍의 불신을 위해 운 것만 아니라 대속의 사역생활에서 울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웃었다는 말씀은 없어도 우셨다는 일화는 몇 번 나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17절)
우리가 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왜 우는가. 우리의 억울함 연약함 비탄, 아픔, 방황⋯ 그로 인해 흘리는 모든 눈물을 일일이 세심하게 기록해 놓으셨다가 눈물에 맞게 보상하고 눈물에 맞게 보복하고⋯ 내가 눈물을 흘린 것보다 더 많이 웃게 하고⋯ 눈물 속에 무지개를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울어도 궁상맞지 않고, 울어도 억울하지 않고, 울어도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그 눈물은 낭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덕기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보험금(1억원)을 남겼는데 새엄마가 몽땅 가져가 버렸습니다. 자식들도 받아야 하는데 아버지가 새엄마의 이야기에 넘어가 친자식에게는 남기지 않고 재혼한지 얼마 안 되는 새엄마에게만 몽땅 주고 갔습니다. 친할머니가 너무 억울하고 너무 속상해서 울자 손자가 말합니다.
“할머니 울지 마요! 눈물이 아까워요~”
눈물이 아까워요~ 아까운 눈물은 아깝게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한 방울도 낭비되지 않았듯이 우리 눈물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흘리는 눈물은 있는데 교회를 위해 흘리는 영혼의 눈물이 없고 하나님 장부에 기록해 달라는 눈물 탄원이 없다면 우리 눈물은 낭비되는 눈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눈물을 하나님 장부에 기록해 달라고, 고개 숙인 머리를 들게 해달라고 하나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눈물로 성숙되는 성화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2007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의 이유가 됐던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임기 말입니다. 대통령은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기대고 울 만한 사람이 있는가.”
임기 말에 인기가 있는 대통령은 거의 없습니다. 믿었던 측근들이 제 살길을 찾아 떠납니다. 그래서 어깨를 기대고 울만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부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 나는 당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내일도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다윗도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 웁니다. 4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의지하였은즉⋯ 10절, 하나님의 의지하여⋯ 하나님의 의지하여⋯ 11절,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그랬더니 치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정신과의사 헨리 모슬리는 눈물을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물”이라 했습니다. 눈물은 신이 내린 묘약이라는 거지요. 슬픔과 노여움을 쌓아두지 말고, 이따금씩 눈물의 쓰나미에 온몸을 맡겨보세요. 그때 인생이 재부팅합니다. 이것이 바로 친정집 효과입니다!
결론
성자(聖者) 같은 생애에는 모두에게 눈물이 있었습니다. 영등포교회 방지일 목사님은 한국 최초의 중국선교사로 <눈물의 병>(품절)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아들을 잃고 유망한 피아니스트 딸을 떠나보내며 그 분은 눈물의 사람이 되고 책에서 이렇게 씁니다.
“난 사람들 앞에서는 대성통곡한 일은 없지만 나 혼자 울 때는 수없이 많다. 눈물은 내게 위로와 힘을 준다. 눈물의 사람이 되어 강퍅한 것이 오지 못하게 한다.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내 기도의 제목임에 틀림없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속마음의 눈물까지 알 수 없는 여러분은 무얼로 울었습니까! 행복한 척 하지만 무엇으로 울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물 병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얼마나 더 울어야 우리 생애는 끝날까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겠지요!
지난 세월에 내가 흘렸던 눈물! 내가 채운 눈물의 병도 누구 못지않을 것입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 많이 울어 지금은 눈물샘이 말라버린 느낌입니다.
그러나 내가 흘렸던 눈물은 하나님의 장부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그때 흘린 눈물, 하나님의 병에 담겨졌던 그 눈물을 주님께서 살피면서 지금은 웃음과 기쁨으로 보상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아무 곳에나 눈물을 흘리고 낭비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눈물의 병에 담아달라고, 그 눈물만큼이나 내 삶이 회복되고 보상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러면 눈물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고 신앙이 회복되면서 인생이 뇌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리셋’(재부팅)하는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을 믿는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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