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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야곱의 뺄셈인생, 요셉의 덧셈인생(창세기 30:22~2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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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야곱의 뺄셈인생, 요셉의 덧셈인생  

창세기 30장 22~24절

서론

내일은 10 3일 개천절, 우리 민족 최초 국가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개천절은 하늘님의 뜻을 받들어 그 아들 환웅이 태백산(백두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神檀樹)로 내려옵니다. 신단수 동굴에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곰과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이것을 백일 동안 먹고,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 일러줍니다. 호랑이는 수행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지만, 곰은 100일을 채워 마침내 인간 여성이 되고 환웅과 결혼하여 한국인의 시조 단군이 출생합니다. 고래 충열왕 때 승려 일연이 편집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화입니다.

 

단군신화는 역사가 아니라 전설이요 말 그대로 신화지만 성경과 참 비슷하고 그만큼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역사가 동일한 점들이 많습니다. 단군신화는, 하늘님의 아들 환웅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 인간세상에 내려와 개천(開川), 하늘을 엽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육신 사상입니다.

 

환웅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함이며 이스라엘을 조성하신 것은 제사장나라로 세우사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온 세상에 널리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법대로 세상을 다스리려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일찍이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있었고 이것이 변질되는 과정에서 단군신화로 둔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떻든, 내일이 개천절이기에 오늘은 홍익인간(弘益人間)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야곱의 둘째 부인 라헬은 결혼한 지 대략 7년 만에 어렵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언니이자 경쟁자 레아부인은 벌써 아들만 4명이나 쑥쑥 낳았습니다. 남편에게 사랑 받는 여인은 아무리 잠자리를 많이 해도 자식이 없고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은 잠자리만 했다면 임신입니다. 불임증 라헬이 그 일로 부럽기도 하면서도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그러다 드디어 아들을 낳자 이름을 요셉이라 합니다. 요셉의 뜻이 더함입니다. ‘더함은 플러스, 첨가, 증가, 욕심쟁이 라헬은 이왕 태가 열렸으니 둘째 셋째 계속 첨가시켜 달라 요셉’ ‘더함이라 작명한 것입니다. 32주년을 넘어서면서 우리교회가 요셉-더함들이 많기를 기원합니다. 숫자들이 더함 되고 사랑의 부흥이 더함, 요셉이 되고 여러분의 삶에 건강에 사업장에 자녀들에게 좋은 더함, 요셉과 같은 소산물들이 열매들이 많이 더해지기를 기원합니다!

 

라헬은 이왕에 태()가 열렸으니 숫자적 개념으로 아들을 더해 달라 요셉이라, 자식을 더해 달라 더함 요셉이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소원과는 달리 요셉이라는 더함의 생애를 만들어 가십니다. ‘더함은 남에게 이익이 되게 하거나 도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모두에게 은혜와 축복과 부흥을 더해주는 진정한 더함! 플러스! 이런 의미의 요셉은 어머니 소원과는 달리 어머니에게 베냐민 동생 하나 밖에 더해주지 못했지만 아브라함 가문-야곱 족장 가문에게는 엄청나게 좋은 것들을 더해준 덧셈인생이 됩니다.

 

덧셈은 1개의 수()에 또 하나의 수()를 첨가하는 계산법입니다. 덧셈기호가 +(플러스)입니다. 얹으면 얹을수록 수가 늘고 보태면 보탤수록 양이 늡니다. 돈을 만지는 사업가, 점수를 바라는 학생들, 사랑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함-더하기-플러스는 환상적인 숫자입니다. 행복더하기, 성공더하기, 건강더하기, 점수더하기, 월급더하기 이렇게 좋은 +(플러스) 기호가 세상에 몇 개나 되겠어요?

 

그만큼 요셉은 모두에게 유익을 더해주는 더함의 생애입니다. 어머니가 이름은 제대로 지은 거예요! 어머니가 주신 이름으로 요셉은 플러스의 인생이 된 거지요! 그러니 유대인은 이름 지을 때 부르기 쉽거나 혈통을 따지기보다 의미를 생각합니다. 이름과 생애는 같이 간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헬은 의도와는 관계없이 아들 이름은 참 잘 지은 것입니다.

요셉의 더함의 생애, 덧셈의 인생은 아버지 야곱과는 완전히 다르고 반대편의 인생입니다

1. 야곱-뺄셈인생

야곱의 이름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 25:26. 누구의 발꿈치를 잡았나요? 쌍둥이 형보다 먼저 태어나기 위해 발꿈치를 잡은 것입니다.

 

25:22,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먼저 나오려 태중의 쌍둥이가 싸운 것입니다. 하나가 먼저 나가려 하니 다른 쌍둥이가 못 나가게 발꿈치를 잡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제때 출산 못하면 셋이 죽어요. 쌍둥이와 산모, 그래도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놓지 않습니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죽고 엄마 죽자~입니다. 결국은 엄마생명에 뺄셈(-) 되고 모두에게 뺄셈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뺄셈은 어떤 수에서 하나의 수를 빼고 어떤 양에서 또 하나의 양을 빼는 것입니다. 덧셈에 대한 역산(逆算)입니다. 기호는 마이너스(-)입니다.

 

뺄셈, 빼기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안 좋은 것들 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마이너스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남에게 손해 끼치고 회사에 손실 끼치고 성장에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재정이 마이너스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이다, 저 사람이 내 인생에 마이너스다, 하면 뺄셈은 남들에게 환영 받는 좋은 기호, 선한 인생은 아닙니다.

 

발꿈치를 잡은 사람 야곱, 이건 남을 넘어뜨리는 사람, 사기꾼입니다. 이런 사람들 만나면 내 인생에 손해가 막심하고 마이너스 인생, 악연입니다. 야곱의 뺄셈인생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보세요! 야곱 주변의 모두가 야곱이라는 인간 때문에 손해를 봅니다.

 

아버지 이삭-아들 야곱에게 사기 당해 축복을 잘못 전달합니다. 우스운 아버지가 된 거지요!

형 에서-축복을 빼앗기고 민족의 비주류로 전락합니다. 억울한 인생이 된 거지요!

어머니 리브가-어머니가 동기를 제공했지만 야곱이 한 일 때문에 아들과 평생 이별합니다.

 

야곱 하나 때문에 부부간의 뺄셈, 부자지간의 뺄셈, 형제간의 뺄셈, 부자지간의 뺄셈, 집안 화목에서 크게 뺄셈이 되고 행복의 뺄셈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어릴 때 뺄셈인생으로 살았던 사람이 성인이 되면서 쉽게 개과천선(改過遷善)이 됩니까?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뺄셈 인생은 쉽게 극복이 안 됩니다.

야곱이 결혼해서 네 명의 부인을 둡니다. 둘은 자매요 둘은 여종입니다. 그들 애증이 얼마나 치사하고 지독했겠어요? 행복했던 자매사이가 이 남자 개입으로 인생마이너스가 됩니다!

여종들-여주인에게 순종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야곱부인이 되면서 치정관계로 얽힙니다.

 

12명의 자식들을 보세요! 여인들의 시기질투로 대책 없이 자식을 생산하고 아버지로서의 부성애가 없습니다. 철저히 요셉 중심, 베냐민 중심으로 편애합니다. 그 사이에서 자식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으면서 불행했을까요? 아버지라는 남자는 그들 집안에서 마이너스 존재입니다.

 

처갓집과는 어때요? 장인을 속입니다. 처남들을 속입니다. 부인들을 친정과 아주 원수되게 만듭니다. 사위 하나, 처남 하나가 잘못 들어와서 집안의 행복과 화목이 깨어지고 맙니다.

 

야곱은 만나는 인연마다 손해를 끼치는 뺄셈인생, 마이너스인생입니다. 한마디로, 천덕꾸러기 인생입니다! 천덕꾸러기는 천할 천()+데기, 부엌에서 일하면 부엌데기, 새침 많으면 새침데기, 심술데기, 바리데기 천덕꾸러기는 남에게 천대를 받는 사람입니다. 왜 천대를 받아요? 누구에게나 손해만 끼치고 플러스-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요!

2. 요셉-덧셈인생

야곱이 이런 사람입니다. 라헬이 야곱을 자기 인생의 천덕꾸러기로, 불행을 얹어주고 손해 끼쳐주는 뺄셈인생으로 보지는 않았겠지요! 그녀는 단순히 아들을 더해주세요”, 라는 소원을 담아 너는 더함이다 요셉, 너는 증가(增加)다 요셉, 너는 다른 동생을 첨가해 주는 생산파이프다, 그런 염원을 담아 더하기, 더함, 플러스 요셉이라 이름을 지은 거예요!

 

그랬더니 이 아이가 정말 복덩이 플러스가 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머니 라헬에게 자식-아들을 얻은 엄마의 행복을 더해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행복을 플러스, 얹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손해와 불행을 가져오는 마이너스 인생이라면 요셉은 가는 곳마다 축복과 번영을 플러스해줍니다.

39:5, 주인에게 복을 더해줍니다.

39:20,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더니, 세상에~ 그 옥에서도 복을 플러스해줍니다.

40:21, 거기서 죄수 술관원장을 만납니다. 그에게 좋은 해몽으로 희망을 플러스해줍니다.

 

바로 왕을 만나 꿈을 해몽함으로 총리가 되어 7년 풍년에서도 흥청만청 먹고 마심으로 끝내지 않고 7년 흉년을 잘 대비해서 자연재해 위기에서 오히려 애굽을 제국으로 만들어 줍니다.

46:5, 7년 흉년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버지에게 황제의 수레로 애굽으로 모십니다.

50:20, 21. 네 엄마 소생의 형제들을 한 아버지 소생으로 단합시킵니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3대 언약 성취가 요셉을 통해 비로소 가시권에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 번째 언약,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요셉은 출애굽 때에 자기해골을 가나안으로 메고 가라 합니다(50:25). 그 땅이 약속의 땅 성지임을 주지시킨 거지요!

두 번째 언약, 대민족을 이루리라는 약속이 애굽거류 400년 만에 이루어집니다.

세 번째 언약, 아브라함 혈통을 애굽에서도 잘 보존해서 그 혈통에서 다윗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조상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됩니다.

 

이렇게 요셉은 더함, 플러스생애입니다. 그는 당대 모두에게 플러스, 더함이 되고 죽은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더함 요셉이 되고, 하나님에게도 당신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요셉이 성취의 인프라(基盤)를 깔아놓은 진정한 더함의 생애, 덧셈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더함의 생애

요셉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흠이 없는 요셉, 부당한 대접에도 인내하며 침묵하는 요셉, 형제들 때문에 대속의 고난을 당하는 요셉, 형제들을 조건 없이 용서하는 요셉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가라! 죽음 앞에서도 언약을 믿고 그 약속에 죽음 이후를 맡기는 삶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생애입니다.

 

우리는 더함의 요셉을 통해 예수님께서 내에게 무엇을 더해주시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의인의 신분을 더해주셨습니다. 창조주가 일시적으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을 더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자녀의 신분을 더해주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놓으심으로 하늘나라의 유산을 우리에게 얹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더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하셨고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위로와 용기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태주셨고 얹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플러스, 더함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더함(+)의 종교입니다. 속죄의 은혜를 더해주고 기쁨을 더해주고 희망을 더해주고 영생의 천국을 더해주는 플러스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덧셈의 생애로 나가야 합니다. 좋은 것들을 공급해주는 파이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더하심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뺄셈도 잘 해야 합니다. 건강한 몸매를 만들려면 뺄셈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행복플러스가 되려면 행복을 저해하는 방해물들을 자꾸 뺄셈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에게 행복을 얹어주고 더해주고 토스해주는 플러스인생이 됩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요셉, 더함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원 이후 우리가 가야할 방향입니다.

결론

적십자의 표식은 더하기(+)입니다. 적십자가 그보다 훨씬 좋은 부호도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더하기(+)를 엠블럼으로 정했을까요?

당신에 있는 피 한 방울!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삽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에게 더해주면 한 사람의 생명이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작은 정성을 플러스(+) 해주면 누군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 간절함의 호소가 그 표식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들이 모여 국제적십자를 이루고 엄청나게 인류를 위해 살리는 운동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작은 더하기(+)였지만 누군가에는 정말로 큰 더함입니다. 작은 더하기(+)들이 모여 세계의 건강과 평화를 위한 엄청난 더하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더하기 정신입니다.

 

지난 주일을 비롯, 지난 33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을 플러스-더해주었습니다. 장로님들이 교인들에게 웃음을 플러스-더해주었고, 여러분들이 저와 장로님들에게 즐거움을 플러스-더해주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덧셈신자였고 덧셈인생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좋은 것들을 더해주며 덧셈신자들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웃들에게도 좋은 것들을 더해주며 덧셈인생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많이 우리 모두에게 더하기 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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