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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마가복음 1:1~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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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

마가복음 1장 1~8절

서론

미국 럿거스대학과 헌터대학 공동연구팀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열매살)에 들어있는 올레오칸탈이 암세포 쓰레기를 저장하는 소포를 파괴해 암세포가 30~1시간 안에 급속히 소멸되었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가 상용화된다면 이거야말로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에 대한 고통과 공포로 삶의 질()이 얼마나 하락됩니까? 암치료제 알약이 나온다면 무조건 노벨의학상, 노벨물리학상, 노벨평화상 감이요, 암환자만 아니라 인류에게 복음입니다.

 

MBC <지방의 누명>이라는 프로에서 고지방 삼겹살을 먹으면 지방이 늘어난다는 상식은 누명이고 오히려 지방을 태우고 비만이 빠진다 주장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어 뱃살지방을 태워버린다면, 삼겹살을 마음대로 먹어도 되고 저처럼 돼지고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희소식입니다.

집사님이 혹이 생겨 병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거예요. 큰 병원 가보라는 말은 큰 병이거나 큰 병으로 의심 간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덜컥~ 인생도 덜커덕~ 그러면 온가족이 근심하고, 교회는 기도합니다. 우리교회는 중보기도팀이 있어 참 좋아요. 교회에 환자가 생기면 제가 문자를 보내고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제가 중보팀을 많이 의지합니다.

병원에 갔는데 괜찮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냥 물혹입니다. 할렐루야! 지옥에서 천당으로 이동한 느낌, 너무도 기쁜 소식이고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소식 할렐루야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어떤 말로 시작할까? 예수님사역을 어떤 단어에 담을까? 숙고합니다. 마가는 이리저리 궁리하다 성령님의 지혜로 한 마디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이 기쁜소식이요, 우리를 위해 해놓으신 일이 복된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

누가복음은,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내는 인사와 함께 예수 탄생을 말합니다.

 

마가는 달라요! 마가는 예수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탄생도 족보도 빼고 직방으로 내가 쓰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선포합니다. 복음이라는 단어가 구약에는 한 번도 없어요! 마가가 이 말을 쓰고 난 이후에야 마태 누가 요한 바울 등이 사용함으로 신약에만 113번이 나옵니다. 113번의 사용은 예수님은 복된소식을 가져오신 복음 자체이고 신약성경 28권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기쁜 내용으로 한 단어로 요약하면 복음-굿뉴스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순으로 배열되었는데 사실은 마가복음이 먼저 쓰였습니다. 시기로 봐서 마태, 누가, 요한은 마가복음을 참조해 가면서 기록한 것입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이 로마옥중에 있을 때 함께 했으며(딤후 4:11), 바울 순교 후에는 로마에서 베드로 사도의 통역을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벧전 5:13). 그렇다면 마가야말로 초대교회 두 영적 거목(巨木)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에 관해 가장 정확한 자료와 해석을 받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서는 예수님의 생애라는 텍스트를, 바울에게서는 예수님의 생애, 교훈, 사건에 관한 해석을 들으면서, ~ 예수님은 이런 분이구나 제대로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듣고 알게 되었을 때, 예수님 생애를 후세에 남기려 글을 쓰려 했을 때 마가는 이 엄청난 사건을 어떤 단어로 압축할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시작이라할까? 그건 아닙니다. 성에 차지 않아요. 그때 성령께서 헬라어의 한 단어를 알려주셨습니다.

 

<유앙겔리온>

 

 앙겔로스의 합성어입니다. ‘는 좋은, 선한, , 행복하게 라는 뜻이고 앙겔로스는 사절, 파송된 자, 두 단어를 합치면 좋은 소식’, ‘기쁜소식 전하는 사절입니다. 원래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자녀가 태어났다 등의 기쁜소식을 이르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기쁜 소식 승전보(勝戰譜)를 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던 보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마가는 이 단어가 떠올랐을 때,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주신 사건이 기쁜 소식 유앙겔리온, 복음이다! 진짜 복음은 전쟁에서의 승리, 기다리던 아기 출생, 일확천금의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주는 예수가 인류역사상 최고의 굿뉴스(good news), 빅뉴스 복음이라 선언한 것입니다. 이후 마가가 사용한 복음 단어는 신약저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복음’( 1:1; 살전 2:2),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20:24), ‘구원의 복음’( 1:14), ‘천국 복음’( 4:23), ‘영광의 복음’(고후 4:4), ‘평안의 복음’( 6:15) 등으로 표현됩니다.

 

마가는 복음을 시작하면서 2,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는데 사실 2절은 출애굽기와 말라기 선지자의 글이고 3절이 이사야 선지자의 글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이 구절은, 23: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입니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이 구절은,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이건 이사야 40:3인용입니다.

 

예수님을 알리는데 왜 출애굽기, 말라기,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먼저 인용할까요? 예수님에 관한 복된소식, 복음을 전한다하면서 마태처럼 예수님의 유대순혈통의 아브라함족보를 먼저, 누가복음처럼 예수님 탄생을 나열하지 않고, 오히려 4, 세례 요한을 왜 먼저 이야기할까요?

 

마가의 인용 글들, 특히 이사야의 예언 글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언급된 구절입니다. 바벨론 유대인들은 어떤 상황, 어떤 입장인가, 노예 신분입니다. 노예는 자유가 없고 자기 권리나 소유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노예이면 아들도 노예이고 그 아들 아들도 노예입니다. 노예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생이 힘들고 수고하고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처참한 형편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신분에서 구해줄 것이다,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 내 사자들이 너희들 앞에서 너를 보호해주고 네 길을 준비해 줄 것이다!

 

얼마나 복된 소식, 복음입니까? 구약에서의 복된소식은, 이처럼 백성을 위험에서 구출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포되는 단어입니다. 유대인은 얼마나 많은 구출을 받았습니까? 그러다보니 정치적 해방이나 독립만을 복된 소식으로 제한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같은 복된 소식의 효력은 얼마가지 못합니다. 기쁜 소식 듣고 왔지만 예루살렘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성읍의 황폐화가 귀환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는 힘들지, 웃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벨론에서 율법은 굉장히 강화된 상태입니다. 저들이 망한 것은 군사력이나 국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율법을 떠났고 버린 결과입니다. 다시는 망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율법을 모으고 교육하고 전승합니다. 여기서 바리새인이 나옵니다. 그들은 율법지상주의자들입니다.

 

율법 강화까지는 좋았는데 또 문제가 발생했어요! 율법이 최고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율법이 어느 정도 최고인가, 완벽하게 지켜내면 의인이 된다! 스스로 의인이 되는 길, 자기 의(), 자력구원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가나안에서의 우상숭배가 물질적 감각적 우상이라면 자기 의로움, 자기의()는 정신적 우상입니다. 그렇게 되니 율법과 유대종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요, 율법을 지켜낸 것은 내 의로움입니다. 율법을 완벽히 지켜내지 못하면서도 된 것처럼 거드름 부리는 것은 바리새인의 위선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놓아버린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순간순간의 기쁜 소식에 불과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이후 예루살렘의 가난한 생활은 너무 힘듭니다. 전쟁에서 승리소식은 복된 소식이지만 패배는 비보입니다. 좋았다 나빴다!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한 번도 복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쁜 소식이라는 말은 23번이 나옵니다.

 

구약은 복음이 아닌가요? 구약도 복음입니다. 창세기 3 15절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예언이 예수님 탄생 이전의 원시복음이지만 구약에는 왜 복음단어가 없는가? 물론, 복음이라는 단어자체가 히브리어에는 없습니다. 복음이라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복을 좋아하지만 사실 복()은 한문이지 우리글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약 유대인들에게 복음단어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유대인은 율법으로 오는 자기 의()에 빠져 정치적 메시아가 강림하는 세속적 기쁜 소식만 기다릴 뿐입니다. 정치적 메시아 왕이 와서 로마제국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만이 기쁜 소식이라 고정시켜 버린 것입니다. 번영신학의 잘못된 소식을 복된 소식, 기쁜 소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희망, 유대종교, 유대신학에 마가는 정면으로 맞섭니다. 진정한 복음-굿 뉴스가 뭔지 아느냐? 그것은 곧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죽음을 각오한 마가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무 뜻없는 상투적 표현이 아니라 철저한 목적을 갖고 첫 머리에 배치시킨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선언과 의미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비롯된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인류에게 구원의 복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성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얼마나 복된 사실인지 아느냐, 애굽에서 해방, 바벨론에서의 해방에도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기쁨 유앙겔리온이다! 예수복음은 죄에서의 구원이며 죄에서의 구원은 자기의()가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복음이라 선포합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구원의 길, 구원의 방법은 다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를 용서하심으로 백성을 구원하셨고 또 구원하실 것입니다. 구약 유대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놓쳤기에 하나님의 복음까지 놓치고 종교는 형식이 되고 짐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복음을 시작하면서 4절에서 세례요한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구약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의 복된 소식이 올 때 그걸 알리는 선구자가 온다, 메시아가 강림할 때 선구자가 와서 예비한다,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복음으로 오시는데 요한이 선구자 역할을 함으로 그 예언이 성취됨을 말하고자 세례 요한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대단해요~

 

마가로 시작되는 복음! 유앙겔리온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1) 복음은, 좋은 교훈이나 충고가 아니라 기쁜 소식입니다. 내가 행하는 무엇으로 오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것이 무엇이며 내가 반응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2) 복음은, 내가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선포하는 기쁜소식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상황은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구원소식입니다(살전1:10),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어디입니까? 당연히 죄입니다. 죄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며 인간구원을 스스로에게 두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구원이 복음입니다.

 

3) 복음은, 하나님과 진노의 대상 나와의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이루셨는가?’ 대한 소식입니다. 그것은 내가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변화를 말해줍니다. 죄에 종노릇하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게 굿 뉴스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복음이란, 내가 행하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위해 행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곧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굿 뉴스,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가 믿은 예수님은 구원의 굿뉴스지만 구원 이후 예수님을 따라는 삶은 굿뉴스만은 아닙니다. 마가복음은 1/3을 예수님의 고난과 박해, 십자가 죽음으로 도배됩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으로 시작되었다는 것, 고난과 죽음이 없이는 부활과 영광도 없다는 것이지요. 당시 로마교인들은 네로 황제의 엄청난 기독교 박해에 직면했던 때입니다. 성도들, 사도들이 하나 둘 순교할 때 두려웠겠지요. 마가는 두려움에 떠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과 십자가죽음을 생각하면서, 예수가 나를 위해 이루어주신 일을 믿으며,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내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았고 구원을 받았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되었다! 장차 마지막 날 햇빛보다 더 밝고 찬란한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 얼마나 기쁜소식, 유앙겔리온 복음이냐? 그 복음을 바라보면서 승리하라!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믿음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무섭지만 하나님나라에 동참하려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복음에 순종해야 하며, 복음대로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 그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건 복음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알려주기 위해 마가는 어떤 성경도 없을 때 가장 먼저 집필을 시작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1차 전도여행에서 도중하차함으로 바울에게 미움을 샀습니다. 영원히 전도자의 길을 포기할 뻔 했는데 로마감옥으로 부름 받아 바울에게 치유를 받으며 바울 순교 이후 베드로의 통역역할을 하며 예수님의 생애를 눈으로 본 듯 알게됩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래서 마가는 하나님에게서 온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 마가복음을 씁니다. 그렇다면, 마가와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복음의 열매입니다.

결론

지난주일 번영신학을 전했습니다. 사실은 복음을 설명하려고 번영신학을 미리 설교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잘 되고 형통하는 풍성한 삶! 성공은 구약의 중요한 축복임에도 번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왜 경계의 대상이 됩니까?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교회에서 출발했기에 위험합니다. 미국은 건국 200년에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대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번영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돈을 벌었으면 돈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커졌으면 국가의 커진 힘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되었다! 여기까지만 있지 하나님의 축복을 사유화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 잘못되게 힘을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 이게 번영신학이 됩니다. 그래서 경고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게 아닙니다. 복음은 내 인생, 내 미래에 걸친 문제입니다. 그것은 살을 빼는 방법이나 약! 암에서 완전치료와 같은 희소식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살을 뺀다고 행복이 늘어날까요? 암치료제가 나왔지만 90노인에게는 희소식이 아닙니다! 진짜 복음은 죄에서의 구원이고 천국영생이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은혜의 가르침이 진정 복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번영하되 죄에 물들지 않고 성공해도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내가 구원받았음을 최고의 복음으로 알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복음 앞에서 그걸 최소화시키며 사는 것이 복음주의 우리들의 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번영과 성공을 번영신학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으로 만들어 내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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