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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창조 첫날의 축복원리(1)(창세기 1:1~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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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품절. 중고서적에서
품절. 중고서적에서

창조 첫날의 축복원리(1)

창세기 1장 1~5절

 

 <서론>

1월을 영어로 January라 합니다. January는 라틴어 Janus(야누스)에서 나왔습니다. 야누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문(gate)의 신(神), 일종의 문지기신입니다. 야누스 신은 앞-뒤로 얼굴이 두 개입니다! 우리도 얼굴이 앞뒤로 두 개면 어떨까요? 보기는 흉하지만 살아가는 데는 유리할 거예요! 뒤를 보지 못해 교통사고 당하잖아요? 앞 얼굴로 자고 뒤 얼굴은 뜨면 어떨까요? 

 

로마인들은 한 해를 출발하는 1월을 왜 이중인격을 뜻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로 정했을까요?

1월을 지나온 과거와 살아갈 미래를 연결하는 게이트(門)로 이해한 것입니다. 1월은 지나온 해를 바라보며 잘 살았노라고~ 감사하다고…고단도 했지만 괜찮아! 다독거리면서 보내세요!

 

2016년 미래의 새해는 잘 봐 달라고…, 하나님께 길을 구하고 할 수만 있다면 모두와 화목하며 교회에도 힘이 되는 해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게 야누스의 두 얼굴 1월입니다.

 

신년예배에 창세기 1장을 택했습니다. 창세기는 성경을 열고 우주를 여는 문이니까, 새해에 적합한 성경입니다. 새해, 어떤 마음으로 출발할까요? 하나님처럼 시작하면 됩니다. 창세기-시작의 책, 기원의 책… 1장에서 한 해를 살아가는 축복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순종이 축복이다!

 

창세기 1장은 인류에게 처음으로 선보이시는 하나님! 만물 기원, 창조사역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되‘말씀’을 수단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막 창조될 때는 어떤 상태였나요? 텅 빈 공간! 아주 안 좋았어요!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우주는 처음부터 생명체가 살만한 정돈된 질서의 상태가 아닙니다.

 

-땅은 혼돈하고⋯. 무질서⋯ 뒤죽박죽으로 (메시지성경)‘아무 것도 없는 늪’입니다.

 

-공허하며⋯.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 깊은 공허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태양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빛 자체가 없습니다.

 

원시 형태의 지구는 물이나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공허하고 혼돈 흑암 자체입니다. 이렇게 공허했던 공간이 어떻게 4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됩니까?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6일간의 창조 기사에서 이르시되⋯ 10회나 반복됩니다. 6, 9절…, 개역성경은 가라사대~ 이 표현이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감이 와요! 이르시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인격체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명하시니⋯, 우물거리지도 주저할 것도 없습니다! 대기 중에 있다가 잽싸게 움직이는 노예처럼 우주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빛이 생기고, 흘러나왔습니다.

 

3절의 빛은, 해와 달과 별들의 광명체(光明體)가 아닙니다. 광명체는 제4일에 창조됩니다. 첫 창조물 빛은 태양과는 구별되는 에너지원(Energy源)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을 빛나게 하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기, 온기, 열기, 따듯함⋯ 태양과 달과 별의 인프라 구축이라 할까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우주가 그 말을 알아듣고 에너지빛을 생성하면서 우주와 지구에 생명의 기운, 따스한 열기, 만유인력이 작동되면서 혼돈한 세상이 정돈되고 공허한 공간은 다양한 피조물로, 생명의 생물들로 채우십니다. 오랜 세월 우주를 감싸던 칠흑의 어둠은 에너지원(源)이 작동되자 저절로 물러가고 우주가 아름답게 만들어져 갑니다.

 

금년 한 해를 출발하면서 모두 복을 기대합니다. 축복의 원리가 바로 3절에 있습니다. 지나온 우리 생애는 어땠나요? 혼돈, 공허, 칠흑 같은 어두움⋯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었나요?

 

모든 인간에게는 다양한‘빈둥지증후군’공허함이 운명처럼 있습니다. 채우려야 채울 수 없는 허무함…. 결혼으로 아이들 떠나보내고 공허함, 은퇴하면 인생 공허함, 건강을 잃고 육체의 공허함… 돈을 잃고 빈손 공허함… 멍하고 허전한 느낌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이 어둡고 낙심합니다. 빛이 없어 온기를 잃어 냉랭하고 앞길은 보이지 않고… 불안합니다. 빛이 있기 전의 우주 모습이 우리 인생과 심령을 대변해 줍니다. 

 

이런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보기에 좋은 세상이 되고… 아담이 하와를 만나, 우와~ 아름답다! 보기에 좋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합니까?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시고 빛이 작동되기 시작하니 무질서가 질서가 잡히고 혼돈이 정돈이 되고 아름다워지는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 순종하니 빛이 생성되고 빛의 온기로 인프라를 깔아놓고 복 받을 만반준비를 갖추었더니 둘째 날 셋째 날… 각종 복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금년에 잘 되는 한 해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을 때 아멘! 으로 받아들이고 즉각 행동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생각을 주시거든 얼른 행동으로 옮기면서 선한 일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원(源)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순종의 인프라를 따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축복이 나를 중심으로 모이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가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빛을 첫 작품으로 만드셨는지, 이제 알겠지요? 첫째 날의 창조물, 빛은 복의 인프라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이 창조되어도 빛의 인프라가 깔려있지 않으면 태양조차 제 역할을 할 수 없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도 필요하고 식물도 각종 동물도… 바다와 강들, 사람도 필수적이지만 만물 생성의 근원은 빛입니다.


우리에게는 태양이 생명의 근원처럼 보입니다. 태양광선이 있어야 식물도 자라고 빛의 광선, 빛의 에너지로 사람들도 생존하고 성장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열량(熱量)의 태양조차도 에너지원(源) 첫 날의 생명의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태양은 밝히기는 하지만 생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첫 날의 빛의 에너지원(源)이 있어야만 생물은 살 수 있습니다.

 

우주와 지구가 창조되고 작동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려면… 해와 달과 별들의 복을 구하기 전에 빛의 복을 구하고 우리 삶에 빛이 생성되어야 합니다. 해와 달과 별들 이전의 빛, 에너지원(源)입니다. 하나님께서 해달별을 창조하시기 전에, 창조 순서에서 첫날 1번으로 창조하신 빛입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따뜻한 생명의 온기가 땅에 있어 미생물이 온기로 살고 싹을 틔우고 잎과 꽃과 열매를 맺으며 성장합니다. 해가 없는 지하에서도 생물이 자라는 것은 태양의 밝음이 아니라 생명의 에너지원(源)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의 빛은 만유인력의 힘이요 전기를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지구를 공중에 떠 있게 하고 둥근 지구의 바닷물이 우주공간으로 쏟아지지 않는 것도 첫 날 만들어진 에너지원(源)이 서로를 끌어당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주 질서와 작동과 끊임없는 성장은 빛, 에너지원(源)입니다. 모든 생명의 인프라가 되는 빛! 이것이 창조물 1번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축복받는 두 번째 비결! 소우주 우리에게도 빛이 와야 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태양과 달, 별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우주 공간을 장식하는 물체일 뿐입니다. 동식물이 가득한 지구도 생명의 빛이 없으면 1회적 아름다움, 1회적 생명으로 끝납니다. 우주원리에 엄청난 에너지 원(源) 빛이 있기에 해달별이 광명체가 되고 지구의 온기가 되어 각종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빛이 있으라! 빛이 축복의 중심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주만물을 향하신 하나님의 첫 명령!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첫 말씀!

 

“빛이 있으라!”

 

우리는 빛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빛을 초대할 뿐입니다. 빛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 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에 있는 생애에 희망의 빛을 주러 오신 빛의 화신(化身)이지요.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새피조물, 빛의 사람들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항상 좋은 방향으로, 빛나는 생애로 변해갔습니다.

 

-삭개오. 돈이 많은 공직자였지만 공허했습니다. 돈이 채워주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소유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통 큰 남자, 풍성한 남자가 됩니다.

 

-수가성 여인. 남편이 여섯이나 거쳐 가는 동안에 삶이 무질서하게 무너졌고 허전했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들어오니 인종과 신분을 초월하고 행복전도사가 됩니다.

 

-회당장 야이로. 종교지도자였지만 12세 딸이 죽게 되었을 때 삶은 흑암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참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밝음을 회복했습니다. 

 

이렇게 혼돈과 공허와 흑암 중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빛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그 한 마디에 인생은 정돈되고 채워지고 흑암이 걷히고 다시 웃는 행복자들로 거듭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좋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은 이렇게 보시기에 좋은 삶이고 빛나는 생애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금년 한 해 축복된 생애! 행복한 생애가 되려면 해와 달과 별들의 축복보다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빛이신 예수님으로 복의 인프라를 깔아놓을 때 복들이 그 레일을 통해 배달될 줄 믿습니다. 행복을 전하는 행복전도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창조언어가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을 제대로 정돈하고 좋은 것으로 채워 넣고 어둠이 떠나도록 하는 창조력은 언어(言語)-말을 수단으로 합니다. 빛이 있으라! 말로 명하셨고 빛이 오니까 혼란스러움이 해결됩니다. 여기에서 언어의 권세를 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각인력. 대뇌학자들은 뇌세포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뇌세포에 각인됩니다. 누에고치가 입에서 300m 명주실을 뽑아내어 자기 몸을 외부에서 안 보이게 감싸는 것처럼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알게 모르게 감싸집니다. 명주실처럼 좋은 말을 뽑아내면 좋은 말로 감싸고 나쁜 말을 뽑아내면 나쁜 말로 감쌉니다.

긍정언어가 에너지원이 되면 긍정 발상이 나오고 부정 언어가 에너지원이 되면 부정적인 말들이 나를 감싸고 빼딱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언어의 각인력입니다.

 

-견인력. 말(言)은 나를 태우고 달리는 경주마(馬)입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한 말을 타고 갑니다. 긍정언어 사용자는 긍정의 경주마를 타고 부정 언어사용자는 부정의 말을 타고 갑니다. 백마, 흑마? 그보다 긍정언어를 쓰면 싸구려 말도 우승마가 되고 부정 언어를 사용하면 눈처럼 빛나는 백마도 꼴찌가 됩니다. 말은 이처럼 우리를 이끌어 가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몸은 결국 제 말(言)을 따라갑니다. 지금 어떤 말을 타고 있나요?

 

-성취력.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와 15회전 경기에서 1천만 달러, 버그너와의 시합에서는 25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는 시합 때마다 명언(名言)을 남기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같이 해주마!”

 

알리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승리의 반(半)은 주먹이고 반(半)은 말이었다.”

 

현대산업개발 사보는‘실패하는 샐러리맨의 7가지 유형’에서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을 1순위로 뽑았습니다. 과거에는 황소 같은 일꾼이 성공했지만 정보화 시대에서는 황소처럼 일만 하면 골병들거나 과로사(死) 가능성만 커지고 일의 성과가 저조합니다.

 

또 하나는, 웃지 않는 사람을 들었습니다. 웃으면서 일해야 창의력도 더 발휘되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강해지므로 그야말로 ‘웃는 자가 최후까지도 웃는 승자’가 됩니다.

 

이처럼 말에는 각인력, 견인력, 성취력이 있습니다. 성공자로 살려면 적극성 긍정성 소망이 있고 미래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비생산적 말, 죽이는 말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그건 교리에 머물 뿐 결국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의 세계로 끌고 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첫 명령을 보세요! 빛이 있으라! 긍정 언어입니다. 긍정 언어는 생명의 언어요 살리는 말입니다. 땅도 빛이 있으라! 긍정 명령, 생산성이 있는 말에 영향을 받으니까 혼돈과 공허와 흑암상태가 조화를 이루고 정돈이 되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어찌 제 입에서 나오는 말에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교회가 태어나던 날!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 방언-하늘언어가 터진 것입니다. 하늘언어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헐어내는 살리는 언어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생명의 언어였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고 경계했습니다. 네 탓이다, 니 탓이다! 탓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하늘언어-방언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권세 있는 언어였습니다. 그 언어 앞에서 모두 복음을 이해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교회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죽이는 언어가 아니라 살리는 언어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저주언어가 아니라 축복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첫 설교를 요엘서를 인용해서 이렇게 긍정언어를 시작합니다(행 2:17).

 

"하나님께서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겠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하리라!"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노인네들은 늙었다고 하지 마라! 꿈을 꿀 것이다"

 

생명 언어, 하나님의 긍정적인 언어 앞에서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이 사라집니다. 긍정의 명령 언어에 사단의 세력들이 굴복합니다. 빛을 만들어 낸 명령 언어로 초대교회는 부흥했습니다! 긍정언어의 힘으로 우리교회가 성장해야 제대로 된 부흥이며 복민(福民)교회가 됩니다.

 

<결론>

2016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너도나도 복을 구하면서 한 해를 출발합니다. 그런 복의 소망이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해돋이를 보기위해 먼 길을 달려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의 원리는 어디서 해를 보느냐?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복의 인프라를 깔아놓으세요! 예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셔 들이고 그 분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세요!

 

건강한 언어생활로 축복의 문을 여세요. 어둠을 향해 빛이 있으라! 명령하세요! 성령의 능력으로 명령하세요! 기도할 때도 명령하세요! 공허함에 하나님의 충만으로 채워져라! 무질서가 정돈될 찌어다! 세상에 명령하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명령하세요!

 

“빛이 있으라!”

“대한민국에 빛이 있으라!”

“교회에 빛이 있으라!”

“건강에 빛이 있으라!”

“물질에 빛이 있으라!”

“자녀들에 빛이 있으라!”

 

금년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 강해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시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의 원리입니다! 새해, 은혜 많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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