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갈, 하나님 앞에서 울다!
창세기 21장 14~21절
서론
오늘은 마지막 주일이니까 즐겁고 편하게 영화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정치나 경제는 혼돈과 위기의 해였지만 영화계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관객 동원 천만 명을 넘긴 국내영화가 세편이나 나왔습니다. 황정민 김윤진이 주연한 ‘국제시장’,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이 주연한 ‘베테랑’,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이 주연한 ‘암살’⋯ 모두 천만 관객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러면 올해 최고배우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천만 명 이상을 동원한 3편 영화 중에서, 그것도 주인공에서 나와야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유아인-황정민-하정우를 최고스타로 뽑습니다. 배우협회는 ‘내부자들’ 이병헌, ‘사도’의 유아인, ‘뷰티 인사이드’ 한효주를 뽑았습니다.
그러나 금년도 최고스타는 주인공급(級)이 아니라 조연급에서 나왔습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 ‘베테랑’, ‘암살’에 모두 나온 사람, 아시지요? 오달수입니다. 오달수는 조연으로 천만 명을 동원한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변호인’까지 합하면 6개, 목소리로 출연한 ‘괴물’까지 하면 7개입니다. 그가 동원한 영화 관객은 누적수 1억 명, 한국에서 최초일 것입니다. 지금 충무로 영화가는 그야말로 ‘달수시대’입니다.
충무로 영화가에서 조연급은 늘 서럽습니다. 주인공에게만 너무 치중하기에 조연급의 맛깔 나는 연기들은 소설 속의 삽화처럼 제대로 배우다운 배우, 인기스타로서의 배우로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들은 주인공을 돋보이는 역할이나 하고 웃음거리나 제공하는 양념노릇이나 합니다. 그 자체가 연기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금년도 오달수는 조연급으로 영화마다 눈부시게 활약하면서 그가 출연 했다하면 천만 명은 거뜬히 올라서는 주연급 조연스타가 된 것입니다.
오달수는 고등학교 출신이며 연극배우 출신입니다. 얼짱-몸짱-학벌⋯ 중심의 영화계에서 작달막한 키와 캐릭터가 없어 보이는 얼굴은 대중스타로서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서럽고 배고프고 자존심 상하고⋯ 그런 날들이었겠어요? 그때마다 그가 흘린 눈물을 1.5리터짜리 패트병에 담으면 조금 과장해서 1.5톤 트럭은 채울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오달수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조연급도 스타배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눈에도 루저로 보이는 슬픈 듯한 그의 눈에서 나온 눈물이 오늘의 대중스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눈물은 약자들이 흘리는 것 같지만 눈물은 약자를 강하게 하고 성숙시키고 꿈을 이루는 힘입니다.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눈물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면 눈물은 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주연급 스타이야기가 아닙니다. 조연에 불과했던 하갈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의 대부분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주인공입니다. 부부로서 멋지고 아름다운 남여주인공입니다. 일단 두 사람은 혈통이 우수합니다. 이스라엘 남녀들은 동양적 신비한 분위기에 서양적인 시원스러움이 결합되어 잘 생겼습니다. 거기다 아브라함은 유력한 남자입니다. 대민족 조상이라는 비전이 있고 318명 사병들을 거느릴 정도이니 대부호입니다. 경건미까지 갖춘 사람이니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모든 여성들이 흠모할만한 주인공 스타입니다.
사라는 여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90이 되어도 임신 경험이 없기에 화사하게 물이 오른 중년여성의 몸매와 얼굴, 거기에다 현숙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얼마나 우아한지⋯ 왕들이 탐내기에 아브라함도 부인간수가 쉽지 않았지요.
그러나 완벽한 사람이 없고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물건이나 완벽함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완전한 존재나 물건이 없습니다. 어딘가에 하자(瑕疵)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는 것이지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자(瑕疵), 흠이 뭘까요?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입니다. 슬하에 자식이 없다고 꼭 흠이랄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 부부에게는 사정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났는데 대민족 꿈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없는데 어떻게 대민족이 될까요? 자식이 없다는 것은 비전에 하자가 생기고 부부사이에 하자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이지만 하자가 있는 주인공! 뭔가 2% 부족한 행복입니다.
이런 2% 하자에 하갈이 들어옵니다. 사실 하갈은 스타급 주인공들과 삼각관계를 이룰 위인이 못됩니다. 애굽 여인으로(창 16:1) 여종입니다. 하갈이라는 이름이 ‘이주’ ‘도망’으로 보아 애굽노예 신분에서 도망 나와 여종이 되었기에 ‘도망 나온 여자’ 하갈이 된 것일까요?
하갈은 피붙이가 없는 여인이고 히브리혈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부부의 하자, 특히 여주인 사라의 하자를 메꾸기 위한 역할로 아브라함의 첩이 됩니다. 노예 신분에서 일약 주인의 첩이 되었으니 엄청난 신분상승이지요! 같은 노예들의 눈에는 신데렐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임신이 되자 여자의 마음이 달라졌어요! 여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사라는 이런 상황을 남편에게 하갈에게 모욕을 받았다 호소합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신앙적으로 인격자였지만 하갈은 일종의 씨받이-대리모(代理母)입니다. 하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나쁘고 하갈은 원래 사라의 여종이기도 해서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여주인 사라가 되게 구박합니다. 보복이지요! 그러니 하갈이 견디지 못해서 도망갑니다. 자식이 생겼고 여기에 있으면 어차피 내 자식이 될 수도 없으니 이참에 도망을 친 것입니다.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는 법! 여기에 맞는 속담이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송충이는 징그럽고 못 생긴 자신은 생각하지 못하고⋯ 솔잎은 다른 나뭇잎들보다 맛이 없어 보여서 단풍잎에 타오른다면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하갈이 그 짝입니다.
하갈이 임신한 몸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길을 막아서며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 합니다. 이때 하갈은 울지 않았어요. 고통은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집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려야 아이가 크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갑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이스마엘입니다. 여기까지만 좋아요! 그리 크게 울 일이 없어요!
본문은 그로부터 15,6년이 흐른 것입니다. 전 해에 사라도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못된 것을 먼저 배운다더니 15,6년 전에는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더니 이번에는 17세가 된 이스마엘이 막 젖을 뗀 이삭을 희롱합니다. 이걸 보고 사라가 뚜껑이 열려버립니다. 오래전 하갈에게서 받았던 모욕 트라우마가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남편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귀여워하는 모습에 시샘도 많이 했겠지요! 이건 신앙심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母子)를 당장 추방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조금 망설입니다. 전에는 하갈이 임신했을 때였고 지금은 17년 동안 아버지로서의 정이 깊이 들었는데 추방하라니⋯ 11절,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주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통정리를 해 주십니다.
12절, 사라의 말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먹을 물과 양식을 주며 멀리 떠나라 합니다. 뒷모습 보니 가슴이 쨘~ 합니다. 아버지로서 반쪽남편으로서 못할 일을 한 것이지요!
아들을 데리고 정처 없이 길을 나선 하갈! 친정이 있나요, 동족이 있나요! 아들을 데리고 갈 데가 없어요! 아들도 17세니 제 앞가림이야 하겠지만 아버지에게 추방당한 신세니 맨붕이 생겨서 젊은 혈기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며칠 견디니 물도 양식도 떨어졌습니다.
갑(甲)질을 당한 하갈! 주인부부는 인격자들이잖아요? 그분들이 그럴 줄은 몰랐어요! 처음부터 부부가 작당해서 대리모로 이용해 놓고 추방하다니! 어떻게 해야겠어요?
억하심정으로 17세 아들을 앞세우고 돌아가 동네방네 까발리고 불 지르고⋯ 그럴 수도 있어요! 자신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망가짐으로 아브라함의 명예에 손상을 끼치고 정신적인 압박을 줄 수 있습니다. 자살을 통해 평생 아브라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살아남아 원수를 갚으려는 독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갑(甲)질 앞에 어떻게 해야 아브라함 집안과의 악연(惡緣)을 끊을 수 있을까요?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무런 권리도 주장하지 않고 말없이 여종으로 만족할 테니 살게 해 달라고 구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억지도 부리지 않고 자살하지도 않고 아브라함에게 매달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16절, 아들을 그늘덤불에 있게 하고 50미터쯤에서 아들을 보면서 하갈은 소리를 내어 웁니다.
개역성경에는 방성대곡하니⋯ 방성대곡(放聲大哭), 목을 놓아 크게 우는 것입니다. 목과 눈이 아니라 온몸으로 우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저렇게 굉장한 울음소리가 나오는지⋯.
오늘의 설교 포인트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갈의 방성대곡! 그가 왜 목을 놓아 웁니까? 서러워서! 왜 웁니까? 억울해서! 왜 웁니까? 무서워서! 왜 웁니까? 아이가 불쌍해서! 왜 웁니까? 그동안의 주인이 고마워서! 왜 웁니까? 해결방법이 없어서⋯ 인생의 막막함 앞에서 내가 힘이 없어서⋯ 내 심정을 알아주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어서⋯ 방성대곡하는 것입니다.
15, 6년 전 그때⋯
16장 11절,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3절,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내가 어떻게 여기에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그런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이라도 들으시라고 목을 놓아 웁니다.
그때처럼 8절, 하갈아 어디로 가느냐⋯ 그렇게 찾아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갈은 웁니다. 하나님의 귀에 들리라고 웁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하나님은 들으시라고… 내 억울함을 들으시라고⋯ 내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고 있습니다. 눈물, 그건 화려한 아브라함 부부스타의 드라마에서 조연급도 못되는 역할을 맡은 하갈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자 위로이자 숨통입니다.
교우 여러분! 한 해의 끝에 있습니다. 주인공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눈물이 있었다면 조연으로, 무명 엑스트라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모욕과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까? 갑(甲)질한 것은 생각나지 않고 갑(甲)질 당한 것만 생각나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울어야지요! 누구처럼? 하갈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속상해서 울고! 무서워 울고! 서러워 울고! 억울해 울고! 무서워서 울고! 아이가 불쌍해서 울고! 부모가 불쌍해서 울고! 해결방법이 없어서 울고⋯ 인생의 막막함 앞에서 힘이 없어서 울고⋯ 내 심정을 알아주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어서⋯ 방성대곡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울던지 기도원에서 울던지⋯ 혼자 남아 방안에서 울던지⋯ 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 하갈, 하나님 앞에서 울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울면 창피당합니다. 소문만 납니다.
여배우 황신혜 어머니는 방송에서 아들이 20년 전 교통사고로 목이 다쳤고, 신경이 목 이하로 끊겨 움직이지 못하고 구족화가로 살아간다며 한증막을 찾아 남몰래 울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황신혜도 동생이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울지도 않으면 아들을 위해 동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이 안 되는 울음은 공허합니다!
그리스의 비극작가 유리피데스는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 때나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막막함 앞에서 하갈처럼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하갈아~! 왜 우느냐? 아들 때문에 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런데요, 참 희한한 일입니다.
21장 16절, 울기는 분명 하갈이 방성대곡했는데 하나님께서 들은 것은
17절, 어린 아이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어머니는 울고 있는데⋯ 어머니는 우느라 아들 음성을 못 들었는데 어린아이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관목 덤불 아래에 숨어서 어머니처럼 방성대곡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애굽여인이지만 이스마엘은 경건한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언약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비록 서자 출신이기는 해도 언약집의 떡고물은 있는 맏아들입니다.
아버지에게서 큰 어머니에게서 믿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우는 자의 하나님! 우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이 기도합니다. 우리를 살펴달라고… 어머니의 눈물을 거두어 달라고… 내가 어서 자라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게 달라고…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눈물은 받으시고 응답은 아들의 소원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하는 하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걱정하지 마라! 네 아들이 기특하지 않느냐? 네 아들이 다 컸다! 일으켜 네 손으로 불들라!
어떤 손입니까? 기도하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들던 엄마의 손입니다. 눈물의 기도가 그 떨어진 그 손으로 네 아이를 붙들면… 네 아들은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 말을 듣는 순간
19절,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하갈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눈물이 마를 때 무지개가 보이는 것처럼 눈이 밝아지며 아들의 앞날의 환!하게 아들과 하갈 자신의 길도 환!~하게 열립니다. 내 아들 이스마엘! 멋진 남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 그러자 아들은 더 이상 제 엄마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이며 불쌍한 내 새끼가 아니라 위대한 아브라함의 또 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이슬람 30개국 이상. 2070년 이슬람종교가 세계 최대의 종교? 미국 조사 기관 퓨 리서치 센터 예측). 그때까지 엄마가 붙들어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갈은 아멘! 하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하갈의 눈물로 이스마엘은 잘 자랐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삭과 함께 나란히 장례식을 치르는 효도와 형제애를 보였습니다(창 25:9). 하나님 앞에서 우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면 됩니다.
결론
앨빈 바클리(Alben W. Barkley) 미국 부대통령(33대)이 9세 때 화재를 당했습니다. 강한 아버지가 나무에 기대서 “끝났다!” “모든 게 끝났다!" 서럽게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이 집을 지어주고 식량을 도와주니 기대어 울던 바로 그 나무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울더라는 것입니다. 브레클리가 추억하기를,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웃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우셨다는 말씀은 있습니다(요11:35). 예수님도 힘들 때 우셨습니다. 사람들이 안타까울 때 우셨습니다.
2015년 금년 웃는 날이 많았습니까? 우는 날이 많았습니까? 왜 우셨습니까? 우리의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우는 눈물이었다면 그 눈물이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의 이슬비가 될 줄 믿습니다. 그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우는 눈물이었다면 새해 축복의 이슬비가 될 줄 믿습니다.
한 해 동안 제 설교를 들어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로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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