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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성탄 아기의 이름(3)-그리스도(마태복음 2:1~6)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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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아기의 이름(3)-그리스도

마태복음 2장 1~6절

서론

천사는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뉴스는 없습니다. 동서양관계 없이, 흑백관계 없이, 남녀노소 관계없이 내가 좋으면 안 좋은 사람이 있는 법~ 모두에게 환영 받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베들레헴 아기의 탄생을 기뻐해야할 이유를 이름을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계시된 이름, 예수! 하나님의 속죄사역을 말해줍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아기는 죄에서 건져줄 구세주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21절,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해주고 온 세상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구세주! 그래서 인류는 기뻐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계시된 이름, 23절,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해서 모든 시대에 존재하시는 하나님, 하늘에서부터 지구곳곳에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에 이런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도 떠나고 부부도 떠나고⋯ 자식들도 결혼하면 떠납니다. 그래도 세상 끝까지 항상 함께 하마, 보장해주신 임마누엘 하나님, 그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은, 성탄 아기의 세 번째 이름입니다. 세 번째로 계시된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1:16,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17절,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래서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도 묻습니다.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성탄아기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이름은 그가 하신 일, 임마누엘 이름은 그의 존재 양식,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의 신분과 직무에 관한 계시성 네임(name)-이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메시야’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당연히 구약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헬라어 그리스도, 히브리어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란 뜻입니다. 기름은 하나님의 신적 능력, 카리스마가 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주권, 통치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제사장이나 왕, 선지자⋯ 세 직분이 임직하면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메시야라는 것은 예수님은 선지자요, 왕이며, 제사장이라는 세 직분(삼중직)을 모두 부여받은 분이다, 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성경 역사에서 삼중직을 가지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선지자 직분은 있지만 왕직은 없습니다. 다윗은 왕이요 시편을 짓고 전했으니 넉넉하게 대접해서 선지자라 할 수도 있지만 제사장은 아닙니다. 누구도 왕-선지자-제사장 삼중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삼중직을 지닌 메시아-그리스도를 오랜 세월을 기대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감을 감안한 하나님께서는 성탄 아기이름을 그리스도라 하시면서 이 아이가 삼중직을 통해 너희를 구원해 줄 메시아다! 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1. 왕이신 성탄 아기

베들레헴 마구간에 아기가 출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종이지도가 있나요, 나침반이 있나요? 네비게이션이 있나요? 동방박사들은 오로지 별의 인도를 받고 왔는데 별이 예루살렘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100여호 남짓 마을이 아닙니다. 유월절 때는 100만 명이 몰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굉장한 고대도시요 이스라엘의 왕궁입니다.

 

그런데 박사들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왕궁으로 갑니다. 왜냐? 큰 별이 보여줄 정도이면 왕이고, 왕이라면 어디에서 출생하겠어요? 당연히 왕궁을 찾아서 2절, 묻지요.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박사들은 예루살렘 방문 목적이 왕을 알현(謁見)함이고 새 왕을 경배하려 11절, 선물을 갖고 왔다 합니다. 고대 동양풍습에서는 왕을 알현할 때 예물지참이 필수였습니다(창 43:1). 박사들은 성탄아기를 왕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왕관을 상징할 황금을 선물로 준비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천문학 박사나 점성가들입니다. 생업(生業)을 두고 왕을 경배하러 오면서 황금 선물을 지참하고 왔다는 것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23절 유대인의 왕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바사) 박사들로 봅니다. 페르시아인들은 바벨론보다 훨씬 인도적이고 너그러웠습니다. 유일신을 숭배했으므로 유대인들과 닮은 데가 많았습니다. 신상(神像)을 기피하는 점도 같았습니다. 페르시아 고레스 왕은 바벨론에 억류된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성전을 재건하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바벨론에 있을 때 유대인들과 페르시아박사들 사이에는 교제가 있었겠지요. 유대 메시아사상을 알았습니다. 메시아는 왕중의 왕! 유대 전승을 아는데 큰 별이 나타나니까 왕의 출현이다~ 유대인의 왕이자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왔구나~ 느낌이 있어 길을 떠난 것입니다.

이걸 헤롯 왕도 압니다. 그래서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 했을 때 헤롯이 대번에 제사장 서기관들에게 묻는 말이,

 

4절,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

 

박사들은 왕을 물었는데 헤롯은 그리스도를 물은 것입니다. 박사들이 찾는 왕은 보통 왕이 아니라 유대인이 대망하던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이처럼 성탄아기는 왕이었습니다. 그냥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배하는 성탄아기는 누구입니까? 구세주요 임마누엘 하나님이면서 왕이신 하나님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왕을 영접하면 황금으로 대접하면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경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정권교체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헤롯은 성탄아기를 왕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소동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의 탄생소식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이전에도 과대망상증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 5명의 장군들을 살해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성탄아기를 그리스도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으로는 알았지요.

 

5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그러면 가야잖아요?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왕궁에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마음에 왕을 바꿔야 합니다. 헤롯을 버리고 평화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그러나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황금유향몰약을 내놓기 싫은 것이지요! 기득권 때문에 거절합니다. 33년 후 '자기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비극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2천년동안 나라를 잃고 지금도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는 테러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얻으려면 성탄아기를 내 안의 그리스도! 왕 되신 그리스도로 모셔야 합니다. 마음의 마구간에 그 분을 왕으로 모셔드리고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내 인생에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멋진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성탄아기입니다. 

2. 선지자이신 성탄 아기

성탄아기의 두 번째 그리스도 직임은 선지자입니다. 유대에는 선지학교가 있었고 선지자로 세움 받을 때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안수기도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카리스마가 임합니다. 모세도 선지자이나(신 18:18) 선지자 직분은 사무엘에서부터 실제로 시작됩니다.

선지자는 미래를 보는 선견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카리스마가 임할 때 그들은 미래를 봅니다. 뛰어난 지혜로 멀리보고 예언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하늘과 땅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2세 때 이미 예루살렘 성전의 박사들과 율법과 모세오경을 논했습니다. 듣는 자가 그 대답과 지혜에 놀랐다고 했습니다(눅 2:47).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전했을 때, 그 가르침에 놀랍니다.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과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눅 7:29). 하나님의 지혜를 방불했다는 것입니다.

 

요 7: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수가성 여인,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유대인 남자로 봅니다(요4:9).

그러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자기가 다섯 남자와 살다 헤어졌다는 과거를 꿰뚫자,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19절). 결국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절)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유대남자-선지자-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이미 내가 그니라! 그리스도라고 밝힌바 있습니다(요 4:25, 26). 

 

선지자가 점쟁이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단순히 앞날을 예언한다고 선지자가 아닙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신 것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넣어주지 않은 것을 말하면 거짓 선지자요 짝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지자입니다. 아무도 하늘에서 내려온 선지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늘의 모든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며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며⋯ 천국입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의 지혜는 완벽했고 가르친 그대로 살았던 카리스마가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서기관들의 지식은 지식이로되 죽은 지식입니다. 5절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기록된바⋯ 이런 지식은 카리스마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는 지식입니다. 

 

세상 종교교주들 가르침은 인간수준에서는 훌륭합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바른생활표 신자가 될 것이냐,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그들은 선견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카리스마가 임하지 않는 선지자들이기에 죽음 이후를 보지 못합니다. 땅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아기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카리스마 선지자입니다. 그러기에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모두 알고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숙제를 푸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그걸 알려주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는 죽음 이후의 일까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해 깜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랑하며 믿을 때 우리는 천국 입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성탄입니까?

 

성탄아기는 이렇게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성탄아기는 천국지도를 갖고 오신 분입니다. 천국지도는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하시는 생명의 코드-참 지혜, 진리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시고 죽은 자에게서 생기를 내게 하는 참 예언자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는 유향을 그리스도에게 선물로 드렸을까요? 참 선지자 예수님에게 인생의 길을 맡기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대제사장이신 성탄 아기

그리스도라는 이름에는 대제사장의 사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회에서 대제사장은 종교업무를 보는 수장입니다. 대제사장의 사역은 두 가지입니다.

제사를 통한 속죄사역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한 짐승 희생 제사를 드리고 죄가 사해졌다 선언합니다. 백성들은 마음에 평화를 얻고 즐거워했습니다. 특히 1년 1차 대(大)속죄일에는 그해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레 16:34). 한 해의 모든 죄가 제사장의 속죄제로 사람을 받았습니다. 굉장한 카리스마 직분입니다.

 

다른 하나는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사역입니다. 성소로 들어가 향불을 피우며 하나님께 기도하면 백성들의 기도가 향의 연기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고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므로 열납되었다고 생각하며 백성들은 안도하고 이후에는 기도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대제사장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이런 능력, 특권은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카리스마입니다. 대제사장은 속죄와 중보라는 카리스마적 직임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이야말로 죄인들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라 합니다(히 5:5; 6:2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고 당신이 직접 제사장이 되어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희생을 통해 인류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하시는 대제사장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호를 받고 악에서 보전되는 것은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세 번째 몰약을 선물로 드렸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고, 몰약이 마취제가 되고 치료제가 되어 우리를 치유해줄 제사장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몰약을 선물했을까요? 우리가 성탄아기에게서 우리 죄가 사했다는 선포를 하는 대제사장!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 주시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을 중보로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응답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결론

워싱턴대학 토마스 홈스 교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당연히 배우자와의 사별.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이혼이 73, 임신이 40, 이사가 25였습니다. 뜻밖에도 성탄절은 12나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연말과 겹쳐 마음에 뭔가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백성들에게 묻습니다(마 27:17)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냐?(요1:19)

요한이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20절)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다(요3:2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누구냐?

시몬 베드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의 기록자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성탄아기 이름은 그리스도-우리의 참된 메시아입니다.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왕의 보호를 받고 선지자의 지혜를 얻으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중보적 기도의 대상이 될 때 우리의 구원은 날로날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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