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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부활, 배달사고를 내지 말라!(000000누가복음 24:1~6(누가복음 24:1~6)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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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배달사고를 내지 말라!

누가복음 24장 1~6절

서론

해리 리머(Harry Rimmer) 박사는 <진화론과 과학사실>(번역 안 됨) 등의 책을 쓴 유명한 장로교 목사입니다. 독학으로 창조과학을 깨우쳤습니다. 그의 제자가 ICR(미국창조과학연구소) 설립자 헨리 모리스 박사입니다. 해리 목사가 이슬람신자인 이집트 고위관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해리:"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관리:"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해리:“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관리:“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해리:"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성경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믿습니다.“

관리:"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코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믿습니다.“

해리:"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믿습니다."

관리:"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 예언자 모하메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믿습니다."

해리:“우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관리: "우리도 모하메드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은 것을 믿습니다.“

해리:“우리는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기에 그 분의 말씀이 참인 줄로 믿습니다.”

관리:"우리는 죽은 이후의 우리 예언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요! 기독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에게 뿌리를 둔 종파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부활에 오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이 저들은 예언자 마호메트, 우리는 성경, 저들은 코란을 우리에는 부활이 있고 저들에게는 부활이 없습니다.  

 

어디 부활이 없는 종교가 저들뿐입니까? 세계의 종교들은 둘로 분류됩니다. 교주가 부활한 종교와 부활하지 못한 종교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나름대로 훌륭한 가르침을 전하고 기독교를 벤치마킹합니다. 경전도 벤치마킹하고 주일학교도 찬송가도 벤치마킹하지만 부활만큼은 벤치마킹을 못합니다. 교주가 부활하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입니다.

 

부활은 종교의 블루오션입니다. 블루오션(Blue Ocean)은 고기가 많이 있는 넓고 깊은 푸른 바다로, 어느 기업에서만 신기술의 신제품이 개발되어 팔리는 무경쟁시장입니다.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독보적 제품시장이 블루오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독보적인 블루오션 믿음을 가진 기독교신자입니다. 기독교 블루오션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죄의 문제를 처리합니다. 모든 종교들이 죄를 지적하지만 속죄는 제시하지 못합니다. 좋은 교훈은 전하지만 신체와 영혼의 부활을 말하지 못합니다. 교주가 부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모든 것을 벤치마킹해도 십자가와 부활은 못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4:12) 선언합니다.

 

그런데, 정작 오늘에 와서 기독교가 블루오션을 버리고, 붉은 바다 레드오션(red ocean)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레드오션은 그 제품에 대해 과열되게 경쟁자들이 생겨버린 기존의 모든 산업을 뜻합니다. 홀로 번창하는 블루오션과는 반대개념으로, 붉은(red)피를 흘려야 하는 경쟁시장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블루오션 십자가와 부활을 버리고 세계 인권시장에 봉사시장에 윤리와 도덕으로만 짜깁기하면서 기독교행세를 합니다. 이건 기독교신자가 할 임무이지 기독교 믿음 자체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절대적이고 다른 종교는 상대적이다! 이게 차별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새벽에 천사가 바로 블루오션의 기독교를 전해줍니다.

 

5,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죽은 자 가운데서 교주를 찾는 종교 교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이것은 레드오션입니다. 모두 선한 가르침을 갖기위해 자기 종교를 믿으라고 서로 경쟁하면서 레드-붉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블루오션이라고 합니다.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살아나셨다! 이게 블루오션입니다. 다른 종교, 다른 교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예수님의 부활! 이런 블루오션을 놔두고 어떤 신학자, 목사들은 부활을 부인합니다. 부활 같은 것 믿지 말고 예수님의 좋은 가르침을 전해 좋은 세상을 만들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 천사들에게서, 사도들에게서 전해온 복음이 아닙니다. 레드오션의 기독교는 배달사고난 기독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례식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한다. 바울은 어떤 물품-진리를 바르게 인수하고 바르게 배달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가 배달받고 배달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25)

 

그런데 기독교가 세상과 눈높이를 하기 위해 자꾸 배달사고를 냅니다. 인본주의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이것은 기독교 스스로가 블루오션을 레드오션으로! 절대적인 기독교를 상대적인 기독교로 하향평준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요! 천사에게서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누군가에 의한 벌어진 배달사고들입니다.  

천사가 뭐라고 말합니까? “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인들이 지금 누구를 찾아왔나요? 예수! 어떤 예수를 찾아왔나요? 죽은 예수!

 

1,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향품은 살아있는 예수님에게 바르려는 것입니까? 죽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려는 것입니까?

3,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니라 뭐를 찾았어요? 시체, 시신을 찾은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부활해서 무덤에서 나왔는데 여인들은 정작 죽은 시체! 죽은 예수를 찾고 있습니다.

4, 이로 인해 근심할 때에 뭐를 근심합니까? 마태복음 27:64, 예수의 시체를 누가 가져간 것이 아닌가, 그걸 근심합니다. 그 시체 찾아서 뭐를 하려고요? 향을 발라드리려고요?

 

만약 예수님이 시신으로 누워있다면 예수는 비싼 향품을 발라드릴 대상이 됩니까? 예수님 스스로 3일 만에 부활한다고 세 번이나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 누워있으면 어떻게 되요? 사기꾼이지요! 예수님이 남긴 아무리 좋은 교훈도 막판에 부활하지 못하면 사기꾼의 달콤한 교훈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발라드리려고 향품을 갖고 왔다는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이런 난센스가 통하는 곳이 사이비기독교이고 이단입니다. 이런 난센스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부인하는 신신학자들이고 인본주의 자유주의신학자들입니다. 블루오션을 받아 레드오션으로 바꿔치기를 하는 배달사고를 내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인도 총리를 지냈던 네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천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도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나 교회가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는 기독교의 힘을 부활에서 찾고 있는데 정작 교회는 부활과 십자가를 버리고 도덕과 윤리와 인권에 매달립니다. 기독교의 구원을 영혼구원에 두지 않고 집 짓고 먹을 것 주고 인권이나 복지향상에 두고 있습니다. 이거 배달사고입니다.

 

왜 이런 배달사고가 일어날까요? 기독교를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산다는 부활보다는 사랑하라! 용서하라! 남을 대접하라 이런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결과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좋은 사람, 좋은 세상, 복지 세상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할 일이지 교회 세우신 예수님의 근본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단을 멸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육신과 가난에서의 구원보다 더 귀한 것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사단을 멸하시려는 것은 세상의 구조악()을 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죽은 예수의 가르침이나 따르고 있다면 다른 종교와 다름이 뭐가 있겠어요? 우리 도덕이 타종교보다 나으면 얼마나 낫고 불교도보다 우리 행동이 나으면 얼마나 낫겠어요? 목사들의 수양과 인격이 불교 고승들보다 나으면 얼마나 낫겠어요? 오히려 그분들보다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기독교는 결코 종교의 블루오션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하는 것이지 교훈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은 교주의 인격이 아니라 교주의 가르침에 뿌리를 내립니다.

 

석가모니는 죽을 때 "나는 죽으나 내 가르침은 영원히 남는다"고 했습니다. 불교는 석가를 따르는 종교가 아니라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입니다. 석가는 2500년 전 인물, 지금은 죽어서 뼈도 흔적조차 없습니다. 죽은 석가를 만날 수 없으니 남긴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까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교훈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을 따르며 교제를 나누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보다 복음입니다.

 

천사들이 말합니다.

5,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니까 살아있는 분을 죽은 자들 중에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 살아있는 예수님의 인격과 교제를 나누지 그 가르침에만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르침보다 인격입니다.

 

이슬람국가 터키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님이 기독교를 전합니다.

"나는 여행하다 두 갈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길을 물으려는데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 하나는 죽어있는 시체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합니까? 살아있는 사람입니까? 죽은 시체에 길을 물어야 합니까?"

터키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요?"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찌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께 길을 묻지 않고 죽어버린 마호메트에게 인생의 길을 묻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인생의 길을 묻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전에 예수님의 인격을 만나야 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의인의 신분을 만들어 주시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격에 신앙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따르고 있다면 아직도 종교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한 예수의 제자요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들이고 죽은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과 교통하며 그 분에게 어려움을 아뢰면서 그 분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레드오션이 아니라 블루오션의 기독교복음의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이 부활절을 맞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결론

이 설교를 준비하던 금요일에 어느 집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딸이 7,8년 전에 암()이 발생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제 나았다 안심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 다시 암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재발이 아니라 다시 발생입니다. 아직 미혼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10초 정도를 저는 숨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뭐라고 하겠어요? 기도합시다! 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입니다.

 

이런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겠습니까? 사랑하세요! 겸손하세요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은 힘이 되지 않습니다. 살 수 있는 힘을 상실했는데 무슨 힘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릅니까? 고난을 이기는 힘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에서 나옵니다. 내 죄와 병을 위해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 내 곁에 내 안에 계시면서,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마, 약속하신 예수님만이 그 자매와 우리 집사님 가족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따르는 종교인이 아니라 지금 살아계셔서 나를 보호하시며 힘을 공급해 주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에게 길을 물으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너는 죽은 내게 길을 묻겠느냐? 살아있는 내게 길을 묻겠느냐?'

 

"너는 죽은 자들에게 길을 물으며 가고 있느냐, 살아있는 내게 길을 물으며 맡기며 가고 있느냐?"

 

여러분들이 평생 물으며 대답하며 살아야 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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