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믿음
창세기 12장 5~9절
서론
2015년 새해입니다. 새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이가 한 살 먹는다는 의미가 전부일까요 그렇다면 중년 이후의 성도님들에게는 새해는 오지 않아도 좋을 불청객입니다. 새해라는 말은 1년이 더 늙었다는 통보이기 때문입니다. 늙은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브라질사람들은 1월 1일 0시를 넘어가는 순간 노란색 속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에콰도르에서는 새해 아침 지난해 가슴 아팠던 순간을 담은 사진을 불태웁니다. 터키에선 자선과 봉사활동을 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면 1년 내내 더 큰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지난해를 옛 것으로 규정하는 자에게만 새해가 됩니다. 옛 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옛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용서 할 것은 용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새로운 정신과 다짐으로 출발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해입니다.
평소 1년에 몇 번 교회 나가던 남편이 큰마음을 먹은 것처럼 부인에게 말합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술도 담배도 끊을 거야. 컴퓨터 포커도 끊을 거야. 교회도 잘 나갈게”
“어머~ 한꺼번에 끊어도 괜찮겠어요? 그러면 우리 재미난 일을 빨리 만들어요!”
“괜찮아!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재미가 하나 더 늘었으니까!”
이런 마음으로 새해 맞는다면 헛나이를 먹는 것이고 결국에는 나이 값을 못하는 철부지가 됩니다. 새해에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인간성이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평범했던 사람 아브라함, 그가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의 친구로 자랐을까요?
9절이 답입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걸어갔더라… 이동했더라… 나가갔더라….
1. 더 좋은 장소로 이동하기
아브라함은 이라크남부에 해당하는 슈메르출신입니다. 고대역사 최초의 제국으로 당시 20만 명이 살았습니다. 굉장히 큰 도시지요. 세계 최초의 서사시, 법전, 종교 잠언, 문자… 등을 탄생시켰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슈메르문서의 분량은 4만 행이 넘습니다. 성경의 분량이 2만 3천행임을 감안할 때 얼마나 방대한 문서의 분량인지 상상이 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문명이 발달했던 도시에서 태어나 문명이 주는 혜택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터닝 포인트’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문명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미지의 땅으로 나아갑니다. 두고 온 세상과 앞으로 나가는 세상! 두고 온 세상은 훨씬 매력적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9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좋은 쪽을 향해 계속 신앙의 순례를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성공과 출세와는 반대방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걸었던 지명들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우르(11:28, 31). 수메르문화의 중심지대로 살만했고 풍성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문화적인 혜택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땅입니다. 이 땅을 걸어 나왔습니다.
*하란(11:31). 기원전 2500년 건설된 도시로 앗수르제국이 바벨론에게 멸망(B.C. 609년경)할 때까지 수도였습니다. 세계최초의 대학의 터가 있고 천문대와 수리시설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우상숭배가 심했습니다(왕하 19:12). 아브라함은 부친이 죽자 즉시 하란을 떠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세겜(12:6). 예루살렘 북방 약 66km에 위치합니다. 풀이 좋아 목축에 그만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목민입니다. 그러나 풀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납니다.
*벧엘(12:8)-예루살렘에서 약 19㎞ 떨어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남방(12:9)-현재의 네게브 사막지대로 향료와 향신료를 거래하는 교역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좋은 목초지들을 놔두고 왜 자꾸 남방으로 이동합니까? 고생이 뻔한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역에는 나름대로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 땅에서의 풍요로움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워킹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성공과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목표로 이동합니다. 이런 원칙 있는 걸음이‘족장로’라는 유대인의 삶의 기준, 행동의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족장로는 높습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살았는데 해발 1200m입니다. 대관령이 800m, 예루살렘이 800m, 베들레헴도 족장로에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제단 실로도 해발 800m, 사무엘 집도 족장로에 있었고 그 길로 다녔습니다. 이처럼 족장들은 높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의 민족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가까운 곳입니다. 기도와 제단, 은혜를 받은 곳입니다. 평야에는 조건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 때는 언제나 시험이 왔습니다.
족장들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고 불편했지만 믿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육신적으로 물질로는 궁핍했지만 영적으로는 깊고 풍부했습니다. 산지에서 장막을 치고 살면서도 누구보다도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족장로를 경계로 그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도 다니는 길, 걷는 길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왕의 대로와는 다릅니다. 왕의 대로는 넓은 길, 성공의 길, 유행의 길입니다. 세상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런 길에서는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나누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편의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는 땅으로 이동합니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이 다녀갔다는 흔적의 제단입니다. 제단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나요? 아브라함의 부(富)와 명성을 본 것이 아니라 ‘제단을 쌓는 사람’‘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점점 남방으로 갔다는 그의 이동은 부동산이나 부유와 명예를 따른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 길입니다.
금년 한 해도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합시다! 떠나온 땅.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떠나온 땅의 실패와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새해 땅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제단의 흔적, 경건의 흔적,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길 것을 다짐하는 한 해가 되세요~
2. 더 좋은 인품으로 이동하기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아브람’,‘아버지여 높임을 받으소서’,‘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들의 성공과 출세를 바라보는 아버지 데라의 인본주의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입니다. 막연하지요. 거절하기에는 너무 강렬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 하고 따라나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살기위해 거짓말을 했고 기근을 만났을 때 인격을 연마할 기회를 포기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얻습니다. 모자(母子)를 무정하게 추방한 무책임한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조강지처 사라에게도 못할 짓을 했습니다. 인간적 실수, 허물, 판단 미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도덕적인 흠결에도 9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지역적 이동, 장소의 이동만이 아니라 인격의 이동-인격 향상입니다. 거짓말을 하다 들통이 나서 이방인들에게 핀잔을 받던 아브라함이 나중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내 친구”라는 칭호를 얻습니다(사 41:8).
하나님의 인정은 사역이나 업적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적도 없고 랍비처럼 가르침도 없습니다. 다만, 삶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인 그 삶의 영성에 하나님께서는 내 친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역을 보고 그런 칭호를 내리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인격이 향상되었을까요? 8절,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이 능력이고 위로이고 기쁨이고 그의 인격을 향상시켜 주는 힘이었습니다. 수치스러운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롯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자식을 주겠다고 했지만 25년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세월에도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호와의 영향권 하에 살았고 인격이 향상됩니다.
이름들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도, 성자라는 이름이 나오기까지에는 무수한 고통이 있고 죄로 얼룩지고 좌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패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할 때 거룩한 칭호가 주어집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성령의 충만을 입으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꾸 새어나갑니다!”
그러기에 새어버린 지난날의 성령 충만에 머물지 마세요. 새로운 성령 충만을 위해 계속 이동하십시오! 모든 것이 굳어지면 끝납니다.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인격으로 계속 걸어가십시오! 세상이 얹어주는 호칭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름을 얻고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더 좋은 인품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3. 더 좋은 소망으로 이동하기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했던 것은 굉장했습니다. 그 약속은?(2절)
땅을 준다! 큰 민족을 이룬다! 복의 근원이 된다! 누구에게나 혹할 제안입니다.
처음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며 점점 남방으로 이동합니다. 이제나 축복이 눈에 보이려나… 저제나 보이려나~ 그러나 20여년이 지나면서 세상적인 축복과 소원들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땅을 주신다 했지만 죽을 때까지 얻은 것은 아내를 묻은 막벨라 굴 주변지역이 전부입니다. 대민족을 보장하셨지만 사라에게서 낳은 아들 이삭은 독자입니다. 어느 세월에 대민족 이룹니까? 복의 근원? 이걸 복의 근원이라면 세상이 다 웃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갈대아 우르, 지금의 런던이나 뉴욕에서 연봉 10억씩 받으며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아프리카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하란을 지나 세겜으로 벧엘로 남방으로… 객지생활 25여년… 한 곳에 정착 못하고 계속 이동합니다. 손에 잡은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믿어서 인생이 본전도 못한 거지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의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롯은 삼촌을 떠나 세상 축복으로 일찍 떠나버렸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룻이 더 효율적인 선택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세상 소망이 사라진다 생각되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에 더 큰 소망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늘본향에 대한 소망이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입니다. 메시아가 내 혈통에서 자기 후손으로 오시는 더 큰 소망을 보았습니다. 당대의 소망이 아니라 먼 미래의 소망입니다. 그걸 보면서 기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예수님 오시기 2천년 전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의 계시 하에서 메시아 탄생을 알았기에 내 혈통에서 세상으로 들어올 메시아를 고대하며 큰 소망으로 기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영향력이 미칠 땅은 팔레스틴 가나안 땅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바라봅니다. 혈통으로 이어지는 대민족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영적 모든 후손들을 바라봅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이 번영된 국가를 이루게 될 이스라엘의 시조(始祖)로 제한했는데 온 세상에 메시아를 들여오게 할 메시아 혈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소망이 점점 성장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 11장에서,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절)이라고 합니다.
히브리기자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better ‘더욱’‘더 좋은’(1:4, 6:9) 12회 정도가 나옵니다. 다음은 perfect‘완전한’(2:10, 5:9 등)입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지역으로, 눈에 보이는 축복에서 보이지 않는 축복으로, 혈통의 자손에서 구원의 자손들로… 그의 소망은 점점 이동하며 더 성장합니다. 그것은 better, 더 좋은 소망이었고 perfect, 더 완전한 소망입니다. 그러니 당장 눈앞의 기도제목과 인생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조상이요 믿음의 달인, 우리에게는 믿음의 롤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그동안 한국교회가 참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동-성장면에서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는 신앙중심의 이동이 아니라 부동산 중심의 이동을 많이 했습니다.
-성품은 변하지 않고 믿음만 위에 얹었습니다. 그래서 고집 신앙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천국에 대한 본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세상 집을 짓느라 믿음의 공회전을 했습니다.
금년 한 해 우리 믿음을 리셋(reset)합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생애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더 많이 성장시켜 주실 줄 믿읍시다. 우리가 믿음이 점점 깨끗해지며 영성으로 성장하며 언젠가는 하나님의 친구다, 라는 칭호를 얻으며 우리교회가 본받고 싶은 롤모델… 그런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부를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금년 한 해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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