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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송년] 돌베개에서 꿈베개로(창세기 28:10~1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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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에서 꿈베개로

창세기 28장 10~19절

서론

2014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한민국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는 무엇일까요?

대학교수들은 청마(靑馬)의 해를 마감하면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사자성어로 택했습니다.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일부러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상황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옵니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태자 부소를 죽이고 둘째 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반대파를 가려내려 왕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입니다”라고 합니다. 어린 황제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느냐”며 중신들의 의견을 묻습니다. 조고를 두려워한 신하들은 대부분 “말이 맞다” 했는데 일부만 “사슴”이라고 답합니다. 조고는 사슴이라 말한 충신에게 온갖 죄를 씌워 처단합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슴을 가리켜 말입니다! 하는 형국을 비꼬는 사자성어입니다.

 

직장인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다사다망’으로 꼽았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음을 뜻하는 ‘다사다망’이지만, 제게는 대한민국이 다 죽고 다 망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중소기업인들의 사자성어는 ‘기진맥진’입니다. 열심히 사업했지만 얻은 것이 없어 이젠 기운도 의욕도 다 빠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는 금년도 대한민국 사자성어는, 다사다사(多事多死), 사건도 많고 죽기도 많이 하고… 세월호 아이들, 다사다사… 다 죽고 다 죽었다!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자괴감의 표현입니다.

금년도 여러분의 사자성어는 무엇일까요?

 

본문은 야곱 생애에 획을 긋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마감과 새 출발! 아버지 집을 떠나는 한 시대의 마감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새출발입니다. 야곱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부모들의 열렬한 후원과 기대를 모으면서 당당히 집을 떠나고 있나요? 야반도주 수준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대가(代價)입니다. 형이 속은 줄 알고 팔딱팔딱 뜁니다.

 

27:42,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야곱은 서글서글한 형이 그렇게까지 방방 뛰며 분노할 줄은 몰랐습니다. 형의 분노에 야곱은 당황합니다. 형은 사냥꾼으로 살상에 익숙했기에 잡히면 칼부림 납니다. 그래서 줄행랑을 칩니다. 새 출발하려면 계획과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데 짐 보따리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졸지에 집을 떠나 도망자가 된 야곱! 가야할 길은 장장 350Km. 막막합니다. 정처 없이 광야와 같은 들판을 며칠을 걸었을까요, 어디까지 왔을까요.

 

11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야곱은 허허벌판에 잠을 청합니다. 돌 하나를 주워 베개를 삼아 누웠는데 잠이 올 리가 없지요. 이리뒤치락 저리뒤치락… 잠이 안 옵니다.

 

‘눈 먼 아버지를 내가 어찌 속였을까?’ 아버지에 대한 불효입니다.

 

‘어리석지만 ’아쌀‘한 형을 내가 왜 속였을까?’ 형제의 우정을 깨버린 자신에 대한 환멸….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뒷감당을 할까?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그리움…. 에서는 들판을 무대로 살았지만 야곱은 장막에서 지내던 내성적 성격입니다. 그런 사람이 정처없는 들판에서 홀로 밤을 만났으니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겠어요? 돌베개 자체가 고생스런 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때요? 지금 편안하게 좋은 의자, 좋은 침대에서 편하게 잘 보내며 연말을 맞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이자 행운이지요! 아니면 여러분도 돌베개를 한 것처럼 불편하고 잠이 안 드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나…

 

2015년에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인생이 착잡하고 외롭습니까? 끊었던 담배생각이 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시대의 야곱인 셈입니다.

 

야곱을 더욱 낭패하게 만든 것은 언약의 집안을 떠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두려움입니다. 아버지를 속여 집안의 축복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그 효력에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상속자로 인정하실까?… 이것은 단순한 사기극에 불과한가? 그러면 나는 내 꾐에 빠져 인생을 망치고 만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에 남아 상속권의 효력 여부를 알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상대하시나, 아니면 형을 상대하시나,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내 마음대로 얻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축복의 주도권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것입니다. 주도권을 가지신 분의 의중(意中)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하나님 곁도 떠나게 되는 것이니… 그러면 하나님의 의중(意中)과 그 결과를 어찌 알 수 있겠어요?

 

당시만 해도 야곱집안은 우주적 하나님보다는 지역적 하나님으로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가문을 중심으로 역사하시는 가족신(神)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가족과의 결별은 하나님과의 결별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면 언약에서도 멀어지고 그러면 내가 속이면서 얻으려고 했던 장자권의 축복은 영영 내게서 떠나고 개고생(?)만 하게 되었다는 후회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들판에서 노숙(路宿) 하니 노숙자가 따로 있습니까? 그가 노숙자지요!

 

지금 야곱의 나이가 청소년이 아닙니다. 9절, 에서는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쌍둥입니다. 지금은 결혼할 나이지 도망갈 나이는 아닙니다. 장자권 축복권을 팔아넘긴 쌍둥이 형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잘 사는데 노숙자 신세가 된 야곱~ 잠을 설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외가 댁! 야곱은 기약 없는 앞날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2015년에 대한 전망! 중소기업인들은 내년 중소기업 경영환경을 나타내는 두 번째 사자성어로 거주양난(去住兩難)을 꼽았습니다. ‘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 하나님은 언약의 집안에만 머물고 계시다! 그건 야곱만 아니라 당시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더욱 처량하고 당황스럽습니다.

 

교우 여러분! 야곱이 누워있는 자리에 나를 눕혀보세요! 잠이 잘 오고 있습니까? 걱정 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까? 날은 어둡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내 기도와 소원들은 이루어질까? 내 계획들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거주양난(去住兩難), 이 땅에 머물러야 할지 앞을 향해 나가야 할지… 걱정을 해결할 수 없으니 술에 취해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회피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런저런 복합적인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 꿈을 꿉니다. 족장시대에 꿈은 하나님의 계시방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꿈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다니엘, 요셉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마리아의 정혼자 요셉에게 나타났고 동방박사들에게도 꿈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꿈은 하나님의 계시수단이 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계시가 종결되었습니다. 꿈을 통한 계시에 의존하다가는 사단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꿈 이야기를 자주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좋은 꿈을 꾸면 기분 좋은 것으로 끝나고 나쁜 꿈이면 반대로 해석하고 그냥 흘러버리면 됩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12절, 사닥다리를 봅니다. 사닥다리를 계단으로 삼아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야곱의 교제가 공식적으로 선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교제를 트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교제가 단절되어 있는 야곱! 아버지와 형은 속였으니 당연히 단절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머니까지 교제가 단절되고 홀로 남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교제하기 위해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아브라함, 이삭… 그 다음에는 야곱이 아닌가요? 하나님은 드디어 야곱의 상속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보세요!

 

13절,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야곱은 드디어 장자에게로 계대 되는 언약축복이 자기에게로 넘어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희열입니다. 위대한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구나~ 나의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시는구나! 이 상황에도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성공자 옆에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도망자들 실패자들, 루저들 옆에는 안 계시는 줄 알았던 거예요! 환자들… 실직자들… 실패자들… 그들 옆에 계시지 않기에 고난을 당한다, 우환이 왔다… 생각하고 더 슬프고 외로웠는데 하나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거예요!

 

어디 그뿐입니까? 야곱의 장자권을 인정해 주시고 앞으로 장자에게 이어지는 모든 아브라함의 축복을 야곱에게로 몰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었는데 그래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야곱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너무도 황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수용합니다. 황급히 베개 했던 돌을 세워 기름을 부으며 언약의 증표로 삼았습니다. 그 땅 이름을 벧엘이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성읍입니다. 원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을 기념하여 벧엘로 명한 것입니다.

 

벧엘은 그 이후에 야곱의 생애 속에 성지(聖地)가 됩니다. 야곱은 위기의식이 있을 때마다 늘 벧엘을 생각했고 비록 먼 훗날이기는 해도 벧엘을 찾아 하나님께 예배하며 신심(信心)을 새롭게 하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세 가지 서원을 드렸습니다. (20, 21절)

 

-여호와만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곳이 여호와의 전이 될 것입니다!

 

-십의 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십일조까지 들먹였을 만큼, 그의 사정은 절박했습니다. 기도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이면서도 집요하게, 있는 논리, 없는 설득, 이것도 할게요, 저것도 할게요, 가능한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그 밤이 지나자 야곱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는 정처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족장의 신분이 되고 족장의 반열로 조상 아브라함 할아버지에게 주신 3대 축복의 계숭자가 되어 당당히 새로운 개척의 길! 축복의 길! 족장의 길을 출발합니다. 온 몸에 힘이 생긴 것입니다.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게 바로 구약에 임했던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시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임마누엘! 바로 그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는 상황은 우리 인생에도 발생합니다. 길 떠나는 사람이면 짐보따리라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걸로 베개 삼을 수 있잖아요? 그것마저 없어 돌베개를 했으니 골치만 아니라 머리까지 아픕니다. 너무 급하게 떠나느라 맨 몸으로 보냈고 도망을 나왔던 거예요! 내 인생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의지할 것은 돌멩이 하나밖에 없다…. 그런 심정들인가요?

 

그런 때에도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이 기도입니다. 돌베개는 무릎입니다. 내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을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 하나님 발견하는 꿈~ 내가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따라다니신다는 꿈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아하~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시구나~ ‘돌베개 탄식’에서 ‘돌베개 깨달음’으로 회복탄력성이 생기고 그래야 죽었던 꿈들이 살고 다시 새출발 하게 됩니다. 돌베개가 꿈베개가 되고 복베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광야 인생에도 돌베개 탄식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돈을 주었어요! 학벌을 주었어요! 보험도 들었지요! 그러나 때때로 내 자녀들은 인생의 황량한 들판에서 진짜를 챙겨주지 못한 어머니를 원망하며 야곱처럼 돌베개를 하며 제 엄마를! 제 아빠를 아쉬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이 부모 집을 떠나고 부모 도움에서 벗어난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돌베개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돌베개의 상황이 꿈베개가 되고 복베개가 될 줄 믿습니다.

결론

2014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는 어떤가요? 지금 황량한 광야에 서 있는 느낌인가요? 돌베개를 배고 있는 처량하고 불안한 상황인가요? 그래서 누구를 원망하고 누가 미운가요? 아니면 모든 일들이 잘 되어 복베개를 배고 있는 기분 좋은 마감인가요?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각자는 자기 인생의 PD라고 합니다. 드라마는 배우들이 중심을 이루지만 배후에는 PD들의 실력이 드라마를 성공작으로 만듭니다.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어떻게 잘 편집하느냐에 따라 좋은 영화, 드라마가 됩니다. 악마의 편집을 하면 악인이 등장하고 천사의 편집을 하면 착한 사람이 등장하듯이 2014년에는 천사의 편집을 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악마의 편집을 하면 분노와 냉소로 가득 찬 한 해가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기억에 안 좋은 일들, 악마의 편집은 내버리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고마웠던 천사의 편집을 합시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로 분노하는 악마의 편집을 버리고 나를 도와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천사의 편집을 합시다! 그럴 때 2014년 우리의 사자성어는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함께 하셨다! 신수성가!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성공시켰다! 그런 꿈베개 복베개의 생애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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