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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기다리면 본다!(누가복음 2:25~3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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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본다!

누가복음 2장 25~35절

서론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중에‘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희곡으로 등장인물은 5명, 무대 역시 낡아빠진 걸상과 나무 하나가 전부입니다.

한 배우가 무대에 올라와서 서성거립니다. 다른 배우가 등장해서 누구를 기다리느냐? 고도를 기다린다…. 그래? 같이 기다리자… 두 배우는 말다툼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고도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늦냐, 따지지만 처음 사람은 분명 고도는 온다고 합니다. 50년을 기다리게 해놓고 나중에야 전령 소년이 와서 고도는 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은 올 수 없지만 내일은 꼭 온다고 합니다. 얼마나 맥빠지면서 얼빠진 희망제시입니까?

 

처음부터 기다리는 고도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고도를 50년을 기다리라니… 관객들도 끝까지 기다리게 하고… 끝내는 어? 이게 뭐야? 우리는 무얼 기다린 거야? 맨붕에 빠지는, 그래서 부조리극입니다.

 

이 연극은 아무런 희망도 없으면서도 막연히 뭔가를 기다리는 현대인들의 부질없는 기다림을 고발합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농락이지요! 그래서 시인 황지우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하략)

 

그래요! 기다림처럼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기다림처럼 사기꾼도 드믈 것입니다. 정초가 되면 무언가를 정해놓고 기다립니다. 금년에는 이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12월, 기다림이 왔나요? 고도가 왔나요? 고도리만 왔다고요^^ 그러면서 내년을 기약하지요! 내년에는 꼭 올께! 내년에도 기다려봐~

 

기다림이라는 것! 희망이라는 것! 거기에 속으면서도 우리는 또 기다림에 중독됩니다. 그게 없으면 살아갈 희망자체가 없기에 희망이라는 이름에, 기다림이라는 단어에 속으면서도 또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대인의 심정을 너무도 잘 그렸기에 가장 재미없는 희곡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도 평생을 기다리며 살아온 한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이름은 시므온, 야곱의 둘째 아들과 동명으로 뜻은‘들으심’입니다. 남편에게 아이들 말로, ‘왕무시’당하고 동생 라헬에게‘개무시’ 당하던 레아부인이 아들만 생기면 남편이 마음을 주지 않겠나, 둘째만 생기면 라헬도 어쩔 수 없겠지… 그런 마음으로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주신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 기다림, 시므온이라고 한 거예요!

 

사람의 이름 속에 그의 운명이 있을까요? 시므온이 야곱의 둘째 아들과 동명의 이름을 갖는 순간에 시므온은 운명처럼 기다림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므온 노인의 일생은 중요한 두 단어로 요약됩니다. 첫 단어는 기다림! 25절,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고도를 기다렸듯이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림의 사람이지요!

 

두 번째 단어,

30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보았다… 만났다는 거예요. 기다림이 사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보았다! 성취되고 만났다! 기다림에 열매가 맺어진 것이지요! 

 

기다림은 미래적인 것이요‘보았다’는 것은 현재입니다. 시므온은 메시아를 평생 기다려왔고 이제는 성전에 온 아기 예수를 봄으로 기다림이 성취되는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기에 29절,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우리말로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기다림에 대한 만족감입니다. 완성도가 있는 기다림이라면 왜 못 기다리겠어요?

희망의 사기성을 말하는 것은 기다려도 보지 못하고 만남이 없기에 그런 것이지요! 굉장한 미래를 약속받았지만 약속의 성취, 보는 것! 만남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사기인 것입니다. 

1. 시므온은 오래 기다려‘보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우리 기다림이 왜 미완성으로 끝납니까? 많은 경우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오래 기다릴수록 더 사랑스럽고 아까운 것입니다. 

 

‘코끼리 믿음’의 저자 신시아 보이킨은 백과사전에서 임신기간을 조사했습니다. 인간은 250일~285일, 평균 임신기간은 267일입니다. 1년이 넘는 임신기간을 가진 포유류는 낙타(370∼440일), 기린(395∼425일), 코끼리(520∼730일)입니다.

짧은 임신기간을 지닌 동물은 대부분 쥐과에 속한 동물들입니다. 주머니쥐(12∼13일), 생쥐(18∼20일), 집쥐(21∼22일)였습니다. 공통점은 해로운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을 퍼뜨리고, 무엇이든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갉아대는 습성이 있습니다.

 

보이킨은 신앙적 관점에서‘쥐를 닮은 믿음의 사람’과 ‘코끼리를 닮은 믿음의 사람’으로 분류했습니다. 쥐 믿음은 빠르지만 작고 보잘것없고, 쓰레기를 뒤지며, 질병을 옮기는 믿음입니다. 코끼리 믿음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과는 매우 크고 중요하며 가치 있고 강합니다. 코끼리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재빠르거나 반짝거리지 않는 대신 늘 신실한 모습으로 예배드리고 온전한 예물을 드립니다. 자리에 연연하거나 직분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열매를 얻기까지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열매는 크고 강하며 굳건합니다.(이기철)

 

우리 기다림이 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져 버립니까? 기다리는 법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한국인의 특징은 은근, 끈기의 기다림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는 무정한 님조차 가시는 걸음처럼 돌아오라… 기다림으로 승화시키는 넓은 마음이 한국인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빨리빨리’로 표현되는‘조급함’입니다. 조급함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을 세계경제국 10위권에 올려놓았지만 지금 조급함의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빠른 것만을 추구하다보니 익히고 숙성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문명, 문화를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더 많이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다려 주었기에 그 좋은 목회자들이 만들어 진 것이고 기다려 주었기에 훌륭한 신자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장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베어 버렸다면 어떻게 오늘 이렇게 좋은 서로를 만날 수 있었겠어요?

2. 시므온은 바르게 기다려‘보는’축복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자유를 꿈꾸지 않는 사람! 풍족함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 고통에서 위로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모두 자유를 원하며 풍족함을 원하며 성공을 원하며 위로보다는 위로 받기를 원하는 것이 공통된 기다림입니다. 문제는 기다린다고 다‘보는’축복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수많은 유대인들 중에서 유독 시므온만이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위로를 볼 수 있었던 것은 25절,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율법에 충실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로마군대 장교 고넬료의 경건이 하나님의 기억하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경건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이방인 중에 첫 교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을 종합한다면 경건과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기다림과 요구나 아니라 ‘경건’과 ‘의로움’입니다. 경건하고 의로움으로 살면서 기다릴 때 기다림의 성취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다리고, 찾고, 구하고, 원하기만 했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한 자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이 선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과 분단 70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국통일의 기다림이 열매 맺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오랜 세월 통일기도회, 구국기도회… 통일을 기도해 왔지만 아직도 통일은 기다림의 미완성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살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에 의로움과 경건함이 결여된 것은 아닌가! 우리의 간구와 소원에 경건함과 의로움이 결여된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기다림이 눈앞에 나타나는 보임이 되려면 시므온처럼 고넬료처럼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경건된 의로움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시므온처럼 내가 보았다! 구원의 기다림을 보았다! 그렇게 웃는 날이 될 것입니다.     

3. 시므온은 성령과 함께 기다려‘보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시므온의 기다림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만을 놓고 일생동안 기다린 것이 아니라‘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는 메시아가 오셔서 베풀어주실 민족적 위로입니다. 나만의 위로가 아닙니다. 나와 너의 위로이며 이웃이 함께 누릴  위로입니다.

 

나 혼자 위로를 받고 나 혼자 축복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 생각이, 우리교회만 부흥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이 팽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시므온은 온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대제사장도 장로도 유명한 바리새파 사두개파… 서기관도 아닙니다. 돈도 없고 이름도 없는 무명의 노인입니다. 그러나 모두를 생각하는 아량과 도량이 넓은 노인입니다. 남을 위로하고 동포들이 위로 받는 날을 기대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위로를… 대한민국에! 교회에! 이런 어른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조국에 대한 기다림이 우리 눈에 들어오고 우리는 통일을 보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학자가 나무 아래 맛있는 과일 바구니를 두고 말했습니다.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다 먹어라.”

아이들은 모두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해 달렸습니다. 바구니 앞으로 달려간 아이들은 다 같이 즐겁게 과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1등한 사람에게 다 가지라고 했는데 왜 같이 갔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UBUNTU"

 

다른 아이 하나가 얼른 말했습니다.

“한 명만 기분 좋으면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 데요.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지요?

우분툴라!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는 의미입니다. 함께 있기에 모두가 있는 행복감이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기다림이 모두의 위로를 보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연로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평생을 주의 탄생을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메시야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이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25절 하반절,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성령님이 시므온을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기에 결코 외롭거나 막막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확신에 찬 기다림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며 그리스도의 영이 되어 그리스도와 생명적 관련을 맺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기다림의 방향을 지시하며 길을 보여주십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가르쳐 주시고 바른 길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며 만나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채워주십니다. 낙심하지 않도록 지치지 않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실패와 절망에서 위로해 주시는 위로의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도록 도우시며 꼭 만나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견디며 끝내는 보았고 만났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결코 사기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다림은 열매를 맺으면서 이제는 인류구원이라는 더 큰 구원을 만들어 냅니다.

 

30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절,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기다림이 완성으로 끝나면 진정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성취와 함께 더 큰 기다림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것이 시므온 노인의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이젠 대만족이다! 됐다! 그걸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 큰 기다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더 큰 것을 보게 되고 만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신학자 마틴 부버는“만남과 엇갈림”(meeting과 miss meeting)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마틴은 어린 시절 일찍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마틴을 외할아버지 댁에 남겨두고 도시로 돈 벌러 떠났습니다. 마틴은 언제나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힘들고 오려워도 엄마가 오면 된다는 생각에서 견딥니다.

어느 날 친구와 다투었는데 친구가 말합니다.   

“엄마는 오는 게 아니야! 너의 엄마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어! 너는 버림을 받은 거야.”

 

할아버지에게 물었더니, 사실입니다. 이 한 마디 말은 이 아이로 하여금 인생을 모두 알아버리게 만듭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외톨이가 됩니다. 모든 어른을 불신하고 어머니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마틴은 다행히 잘 컸습니다. 그는 유대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학의 이름은‘만남의 신학’입니다.

 

그는, “인생은 만남의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은 한가지 밖에 없다. 다른 모든 만남은 엇갈림이다. 만났다가 헤어진다.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영원한 만남이고 구원의 만남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적인 만남과 기다림은 모두 미스미팅-엇갈림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부로서의 만남은 죽으면 끊어지는 미스미팅-엇갈림이라는 거지요!

 

예수님 안에서의 기다림만이 우리를 보게 만듭니다. 비록 내 생각대로 현실화되는 봄은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모두의 위로를 위하는 기다림이라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기다림이라는 사기성에 속았어도 우리 시대의 시므온으로 살아가는 은총의 12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첫째 대지, 둘째 대지... 이런 식으로 설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설교하기 쉽게 정리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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