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웃음을 복으로 주셨다!
창세기 21장 1~7절
서론
금년 4월 16일 진도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되어 사망자 295명, 실종자 9명, 합 30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날 이후, 유족들은 물론 대한민국은 웃음을 잃었습니다. 세월호가 눈앞에 뒤집혀 있고 하루 이틀…이 지나는데도 단 한명을 구조하지 못하자 온 국민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무얼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멍한 상태였습니다. 몇 달이 지나면서 사업체나 관광업체는 장사가 되지 않아 웃음을 잃었고 안산시내 상인들은 산 사람도 굶어죽게 되었다며 세월호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했습니다. 지금은 잊혀가고 있지만 6.25동란 이후 대한민국이 가장 슬프고 분노하고 허탈했던 2014년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2015년에는 대한민국이 환~ 하게 웃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웃으려면 교회가 웃어야 해요. 문제는, 웃을 일 있어야 웃지요! 누구는 울고 싶어 우나요? 웃을 일은 없고 울 일만 있으니까 울지요! 경제는 세월호로 침몰하고 세월호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해요. 웃을 일이 없는거지요!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차별화가 있습니다. 세상은 웃을 일이 있어야 웃습니다. 승진하거나 월급이 올랐거나 장사가 잘 되거나 아이들이 시험에 척척 붙거나… 웃을 일이 있을 때 웃습니다.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울상이고 우울한 얼굴로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웃음은 다릅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 때문에 웃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설교제목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웃음을 복으로 주셨다! 6절,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 웃음을 나에게 복으로 주셨구나~”로 번역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으로 웃으며 사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웃음이 영혼의 성장을 가져옵니다. 세상의 웃음 기준으로만 웃는다면 영혼의 성장이 아니라 육신만 무성하게 성장하고 영혼은 메말라갑니다. 그건 짝퉁 웃음입니다.
1. 기다림이 웃음이다.
사라가 9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름은 3절, 이삭입니다. 뜻은 웃음입니다. 왜 하필이면 웃음이라는 이름인가? 이삭을 낳기 전(前) 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99세, 사라는 89세, 가임기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90노인의 아기출산은 말도 안 되고 너무 민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했습니다. 사라가 왜 웃는 거냐? 비웃는 거냐? 어이없는 웃음이냐? 나를 못 믿는 웃음이냐? 그 뜻이겠지요! 그러자 사라가 당황해서 얼른 대답합니다. 안 웃었는데요! 하나님도 지지 않습니다. 너 웃었잖아? 당시 사라에게는 심각했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저절로 미소가 나오게 하는 재미있는 광경입니다. 하나님도 참 유머가 넘치는 분입니다.
1년 후에 정말로 사라 할머니는 아기를 낳았습니다. 1, 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절,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했다!
이삭의 뜻은, 하나님께서 나를 웃기시는 줄 알았더니 정말로 웃는 복을 주셨다! 웃음을 복으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웃음의 복이라 한 것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오랜 기다림에서 왔습니다. 오랫동안 자식이 없고 웃을 일도 없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도 이런 객지가 없습니다. 대민족에 대한 약속 하나만을 믿고 가나안땅으로 이민 왔지만 20여년 이상을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뭐가 웃을 일이 있겠어요?
그래도 사라는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대민족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열국의 어미가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90세가 되어가자 체념도 했지만 너 왜 웃었냐? 내가 그렇게 해준다는데 너 왜 그렇게 실없게 웃냐? 라는 추궁에 저 안 웃었어요! 이제 웃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릴게요, 기다렸더니 정말 아기가 태어났고 웃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기다림이 만들어 낸 웃음입니다.
오래 기다린 사람들이 큰 웃음, 밝은 웃음, 영성의 웃음을 웃습니다. 작은 일에 연연하면 쉽게 웃고 쉽게 멈추고, 웃음이 쉽게 오고 쉽게 가버립니다. 영혼성장에 도움이 없는 웃음입니다.
모든 일을 멀리보세요! 사라처럼 멀리보세요!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웃음의 복을 주시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웃으며 사는 복된 웃음이 될 것입니다.
2. 웃음은 복이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사라의 웃음은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고 웃었습니다. 하갈도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웃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다림의 실패에서 나온 가짜 웃음입니다. 이스마엘 때문에 모자가 울었고 집안에 웃음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사라의 웃음신앙은 다릅니다. 사라는 아들을 낳고 너무 기뻐하면서 이삭이 나를 웃게 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신다! 웃음의 근원을 하나님에게로 둡니다.
만약 사라가 아들이 나를 웃게 한다! 고 했다면 얼마 가지 못해서 이삭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했을 때 “이 아들이 나를 울게 한다” “내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대성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 사람이 가장 많이 울게 합니다. 가장 나를 즐겁게 한 사람이 때로는 내 눈에서 피눈물을 냅니다. 이것이 세상사입니다. 사람으로 웃을 때 눈물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여조상 사라는 남편만큼이나 믿음이 좋았습니다. 아들을 품에 안고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로 웃게 하신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기쁨을 누리며 크게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사라는 이런 웃음을 평생 유지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라와 같은 믿음을 고백했던 또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한나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회막에 나가 울면서 기도하니 제사장이 왜 울고 있느냐? 묻습니다. 한나가 대답하지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인입니다. 회막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사무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때 한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삼상 2:1).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사무엘로 인하여 즐거워한다?
내 콧대가 사무엘로 인하여 높아졌다?
내가 사무엘로 인해 기뻐한다?
아닙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 콧대가 높아졌으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가 기뻐한다! 여호와가 나로 웃게 하신다! 사라와 같은 고백입니다.
사실은 한나가 이런 기쁨의 노래를 부를 처지가 아닙니다. 한나는 아들을 얻고 싶다는 염원 때문에 기도하다 덜커덕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성전에 바치겠나이다! 젖을 떼고 아들을 성전에 데려다주고 부르는 노래가 한나의 노래입니다. 젖을 뗀 아이를 생이별하면서 이렇게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쁨이 아들로 오는 것보다 하나님으로 오는 것이고 그의 웃음이 사무엘이 웃게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웃게 하시는 신앙의 웃음이었기에 생이별에서도 웃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본심을 묻습니다. 우리로 고생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입니까? 그러나 나중에 압니다. 우리로 고생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그래요,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창세기 1장, 창조의 날이 다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말로 마감합니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웃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가 환~하게 웃으면 하나님도 웃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웃고 싶으셔서 웃음의 복을 자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임대해 놓고 사는 우리는 무엇으로 이자를 내야할까요? 웃음입니다.
가난한 소녀가 사장님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갚으면 될까요? 이자를 내야지! 돈이 없어요! 이자는 웃음이야~ 웃음으로 이자를 내면 된 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자도 웃음입니다. 많이 웃는 것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합니다. 이자가 밀렸나요? 웃어서 갚으세요!
3. 남도 웃게 하라!
웃음은 복입니다. 아무나 웃은 것이 아닙니다. 웃는 복을 받아야 웃을 수 있습니다. 복 중에 아주 좋은 복이 웃음의 복입니다. 내가 웃으면 남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는 그 복을 나누라 하십니다. 웃음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독점하지 말고 세상에 유통시키라고 제사장 국가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구원을 독점하려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안 되겠다, 그 축복과 사명을 신앙공동체 혈통인 영적 이스라엘-교회에 넘겨야 했습니다.
우리 웃음이 단명이 아니라 장수무대로 오래 웃고 살려면 웃음을 남들과 나눠야 합니다. 내 기쁨을 나 혼자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식의 기쁨은 모두에게 웃음이 되어야 하고 내가 잘 되면 남들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이자 웃음입니다.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선물을 받을 때 참 기쁩니다. 왜? 지금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둘밖에 모를 텐데 그 기쁨 중에서도 나를 생각했다는 것! 먼 나라에 가서도 목사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선물을 고르면서 나를 생각했다는 것! 그게 참 기쁩니다.
아들 이삭, 웃음을 품에 안고 있는 사라가 말합니다.
6절,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다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내 웃음을 나눠주겠다는 것입니다.
웃음 나눔!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에서 웃지 못하면 어디에서 웃을 것입니까? 그러니 웃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남들에게 웃음을 공급받고 웃음을 나눠주는 일은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웃음이 남의 웃음이 되어야 그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웃음입니다.
현대산업개발 사보에, “실패하는 샐러리맨의 7가지 유형”이 실렸습니다. 누가 실패하는가?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 실패 1위입니다. 과거에는 황소 일꾼이 성공했지만 정보화시대는 황소처럼 일만 하면 골병들고 과로사하고 실적도 저조합니다. 또 하나는, “웃지 않는 사람”입니다. 웃으면서 일해야 창의력도 발휘되고 생산성도 높여주고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남자가 장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자들처럼 소리내어 웃거나 울지 않기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장수 노인들을 보면 대부분 농담도 잘 하고 웃음소리도 크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기다 남을 웃게 하는 이들은 더 건강하고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집안의 가장 아름다운 인테리어는 무엇일까요? 아내들의 웃음입니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면서 웃어주는 아내의 웃음소리, 퇴근, 하교할 때 소리 내어 웃는 아내와 어머니의 웃음소리는 집안의 최고의 인테리어입니다.
교회의 최고의 인테리어도 웃음입니다. 친절과 배려에서 나오는 환~ 한 웃음입니다. 그 웃음에 성도가 반하고 힐링이 되는 것이지 교회의 건물에 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웃는 사람들과 연대해서 웃는 사람이 되고 웃음을 나누세요. 항상 웃으세요. 쉬지 말고 웃으세요! 넋 빠진 사람처럼 웃고 다니세요. 그런 나를 보고 “저 사람 실성했나? 왜 저래?”하거든 빨끈하지 말고 “그래요, 나 미쳤나봐요, 왜 이렇게 기쁘지요? 너무 기뻐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네요!”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세요! 그 웃음에 당신의 점수가 10점 팍팍 오릅니다. 그러려면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성적인 불평자와 손잡고 가는 것보다 미소를 짓는 사람과 부딪치는 게 낫다.”. 웃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웃음이 전염됩니다.
미국의 빌 메모리얼 병원에는 “하루에 15초를 웃으면 이틀을 오래 산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한번 웃으면 에어로빅 5분하는 효과와 맞먹습니다. 10초 웃으면 3분 열심히 땀 흘려 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5분을 웃으면 5시간 운동하는 것과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웃기 시작할 때 230가지 이상의 근육이 움직입니다. 너무 웃으면 배가 아픕니다. 내장까지 격심하게 운동했다는 것입니다. 전신마사지의 효과가 있습니다.
웃음은 유산소운동이 됩니다. 폐에서 나쁜 공기가 빠져나가 신선한 공기로 바꿔주며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훌륭한 해독제가 됩니다. 웃는 것처럼 보약이 없습니다.
세상의 웃음은 웃음의 대용품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으로 기뻐하라! 이게 우리가 웃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기쁨(웃음) 때문에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기쁨(웃음)의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예수를 잘못 믿고 있습니다!
결론
1차 대전 때 처칠 수상이 전쟁터를 방문하니 병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처칠이 장교들에게 훈시했습니다.
“좀 웃으시오. 부하들에게도 웃음을 가르치시오. 웃을 줄 모른다면 최소한 빙글거리기라도 하시오. 만일 빙글거리지도 못한다면 그럴 수 있을 때까지 구석으로 물러나 있으시오!”
교회 중직들이 웃으세요. 찬양대가 웃어야 해요. 그래야 웃음이 터져 나오는 교회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번영은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프로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는 우스개 주장이 있습니다. 교회도 잘 웃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웃음은 하나님의 북 중에서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다. 환~ 하게 웃으므로 부흥합시다! 웃기만 해줘도 여러분은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멋진 분들입니다. 새해에 더 좋은 미소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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