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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에덴동산의 성탄은…(창세기 3:14, 1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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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알아두면

에덴동산의 성탄은…

창세기 3장 14, 15절

서론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신앙심이 가장 좋은 최고의 교회입니다. 선교 130년, 지금은 약간 하락세를 보이지만 70-80% 이상이 주일성수, 십일조를 생활을 하는 교회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요즘 들어 성탄절문화가 약합니다.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최대의 명절인데도 12월 25일 하루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설날연휴-추석명절은 3~4일씩 연휴를 보냅니다. 명절연휴에 대한 휴가계획으로 설렙니다. 그런데 성탄은 25일! 딱 하루입니다. 그것도 예배하고 돌아와 텔레비전 보고… 성탄하루를 그렇게 보냅니다. 성탄 찬송은 12월 셋째주일과 성탄축하예배에 불러보면 끝입니다. 우리 믿음에 결함이 생긴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베들레헴 성탄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이라는 장소, 12월 25일이라는 갇혀진 사건으로만 이해하기에 연휴도 없이 하루 명절로 끝납니다.

 

성탄은 2천 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 사건이지만 사실은 에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에덴은 낙원, 즐거운 동산, 희락의 땅입니다. 에덴은 365일 기쁨이요, 하나님과 즐거운 친교를 나누는 명절연휴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에덴은 낙원을 잃고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성탄이라는 복된 소식을 전해준 것입니다. 

1. 에덴동산의 성탄은 원시복음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성품-의(義), 거룩, 사랑… 으로 죄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영생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생명과와 선악과를 주셨습니다. 생명과를 따먹으면서 영성의 생명이 점점 연장되면 에녹과 엘리야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을 거예요.

 

선악과는 생명과를 잘 따먹도록 유도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엑셀레이터가 있고 브레이크가 있듯! 사람과 자동차를 보호하도록 도로교통법이 있는 것처럼 선악과는 나보다 더 높은 분, 내가 명령을 받아야 할 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심벌입니다. 그래서 생명과를 따먹게 하는 순종을 도와줍니다.

 

생명과가 효능을 발휘하려면 자유의지적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에 남녀가 하나씩만 있다면 진짜 사랑인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두 여자가 있을 때… 그럼에도 한 여인만 사랑하면 진짜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여인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아내만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명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를 주시면서 먹으라! 권장명령을 내리셨고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금지명령을 내리십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생들에게 영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복음이요 축복입니다. 저들은 생명과를 따먹으며 하나님과 친교를 누리며 영혼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사단의 꾐에 빠져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따 먹게 되면?

 

2:17, 반드시 죽으리라! 아담은 무서워서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사단이요 죄의 도구입니다. 죄의 머리를 친다는 것은 여자의 후손이 죄를 도말한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죄로 당장 즉결처분의 사망에 이를 줄 알고 떨던 첫 사람에게 여자의 후손이 탄생해서 죄를 없애고 구원해 준다는 그 말씀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여자의 후손이 땅에 출현하기를 고대했습니다. 후회, 절망, 탄식, 괴로움, 고민… 이런 아담과 하와에게 성탄의 기쁨이 예고된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부터 매일 매일 성탄을 고대한 것입니다. 

 

그래요! 성탄은 베들레헴에 앞서 에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에덴의 성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입니다. 성탄은 죄인을 위한 복음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죄는 자기를 주인으로 삼는 것! 자기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위주의 본성은 스스로는 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죄를 끊고 우리를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탄맞이는 죄인됨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아왔던 날을 자백해야 합니다.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 예수님은 에덴에서 예고된 바로 그‘여인의 후손’입니다. 여인의 후손은 죄 없는 존재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탄절이 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의 마구간 같은 마음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고 도마처럼 의심을 버리고“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있을 때 제대로 된 성탄절이 되는 것입니다. 

2. 에덴동산의 성탄은 화해복음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부부는 완벽한 한 몸을 이룹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만났을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할 만큼 하나였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왜 자기자식을 애틋하게 여깁니까? 내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피붙이 아닙니까? 에덴동산에서 부부는 피붙이와 같은 일치된 마음입니다. 첫 사람이기에 부모도 자식도 시누이도… 아무도 없습니다. 돈 문제도 없고 남녀라고는 없기에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요인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한 몸, 하나입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죄는 하나를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죄는 항상 분열을 일으킵니다. 죄는 아담부부를 남남처럼 만들었습니다.‘내 뼈와 살’이‘여자’(12절)가 되고 부부사이는‘정신적인 이혼상태’의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한 지붕 두 가족, 남이 된 것입니다.

 

탈무드의 이야기입니다. 임종에 이른 아버지가 자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남은 나가거라!”

“남은 없어요?”

“네 어머니가 남이다”

“어머니가 왜 남입니까?”

“성이 다르잖냐?”

그래요, 같은 집에서 살고… 부부로 살아도 등을 돌리면 남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을 돌리면 남남입니다. 때로는 남보다 못합니다. 세상에서는 그냥 넘어갑니다. 그보다 더한 것도 넘어갑니다. 교회는 넘어가지 못합니다. 기대치들이 너무 높기에 한번 어그러지면 용서가 안 됩니다. 그러면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삽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우리 스스로도 부끄럽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5:23,24).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것은 성탄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만이 가능합니다. 성탄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여자의 후손이 너를 구원하리라!”

 

여자의 후손…. 아담은 그 말에서 아내의 소중성을 알게 됩니다. 아내는 자기를 망친 여인이면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어머니입니다. 그 자손에게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아내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아담은 아내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아내의 잘못을 용서하고 수용했습니다. 다시 아내와 하나가 됩니다. 아담은 아내 이름을‘하와’라 합니다. 하와는‘생명’입니다. 하와 안에서 사망도 열렸지만 생명의 길도 열린 것입니다. 생명을 후손들에게 전할 여자! 남자와 하나가 되어 세상에 생명을 퍼트릴 여자! 저주 받은 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돌봄을 받는 존재입니다. 아담은 아내의 존재를 다시 보게 됩니다. 하와를 통해 내려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하나가 되는 기쁨, 일치되는 기쁨, 사랑의 기쁨입니다.

 

마구간 성탄도 보세요. 요셉부부에게 마구간은 불평장소입니다. 호적은 왜 하라고? 황제에 대한 불만. 베들레헴 사람들의 무정함에 대한 불평입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도 있습니다.

 

요셉, 천사의 고지를 받았지만 한 구석에는 문득 아내에 대한 의구심이 있지요. 마리아에게 남편은 임산부 아내에게 몸 풀 장소도 제공하지 못하는 무능력자…, 아기 예수가 탄생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천사들의 찬송, 목자들의 경배, 박사들의 예물로 모든 오해가 풀립니다. 아기는 하나님의 독생자였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고 행복해 합니다.

 

성탄절은 오해가 풀리는 날입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이다! 사랑의 고백이 회복되는 날입니다. 예수님 탄생은 베들레헴 사건만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에 탄생하고 교회에 탄생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로 먼저 손을 내밀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진정한 성탄입니다. 

3. 에덴동산의 성탄은 회복복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에덴은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순종했다면 생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영생의 성질로 나아갈 것이고 에덴에 천국이 내려왔던지… 했을 것입니다. 죄는 모든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아담부부는 에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면류관이 벗겨진 것입니다.

 

23절,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의 근원은 원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이요 흙이여 육체인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사람은 짐승과는 달리 지성과 정신과 영혼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만도 황송한데 생명과를 통해 생명의 연장과 함께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는 영생의 생명을 주시려 했습니다. 이거야말로 특권 중의 특권이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아담부부는 죄에 감염되어 하나님 없는 세상을 원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영생할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선악과 안에 그 비결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들은 즐거운 친교의 대상에서 추방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23절,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 보내어…”

 

내 보냈다는 것은,‘내던지다’‘포기하다’는 뜻으로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 단절을 말합니다. 우리는 끝이다! 너희들과 나는 이제는 남남이다! 그런 강력한 의사표현입니다.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쫓아내시고….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밖으로 몰아내는 강제추방입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화가 나서“나가!”소리 지르지만 그게 참 마음입니까? 다음에는 그런 잘못을 않겠다는 다짐을 요구하는 겁니다. 하나님 역시도 타락한 부부를 황급히 에덴 밖으로 쫓아내심은 형벌보다는 심오한 구원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비참한 상태에서 인간이 에덴의 생명과실을 따먹는다면 어찌될까요? 22절,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죽음을 전제로 수백 년 수천 년을 수고와 고생이 계속될 것입니다. 거동할 수 없는 몸에도 죽으려야 죽지 못하는 인간 괴물! 벌 중에 벌이 아닙니까? 우리가 호흡만 살아 있으면서 200세 300세를 산다면… 그 장수무대는 인생의 대(大)저주입니다.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창조계획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올리고 영생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사람에게 침투하자 하나님께서는 부득이 죄 된 육체를 일단 죽게 한 후에 다시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속의 길! 구원의 길이요 천국에서의 회복입니다. 회복이야말로 에덴성탄에 들려온 복된 소식-복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분노로 에덴을 떠났을까요? 비록 막막함과 깊은 좌절감은 있었지만…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께서 입혀주신 가죽 옷을 입고 떠나며 하나님의 든든한 보호를 느꼈습니다. 가죽 옷은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고 피 흘림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그들이 지은 죄는 간과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에덴으로 회복될 것이고, 이번에는 천국에덴이라는 더 영원한 도성을 바라봅니다. 천국에 대한 회복신앙! 이것이 성탄절이 주는 희망입니다.

 

우리에게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회복의 믿음을 키우는 날입니다. 그래서 12월 말일 경에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열두 달 살면서 얼마나‘다운’되었습니까? 11월부터 목사는 신경이 예민합니다. 이것도 못해요, 저것도 못해요… 라는 통보 때문에! 왜 그런가요? 사정도 있겠지만 기력이 다운되어서 그래요! 이런 때 성탄절이 12월 말일 경에 있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성탄은 회복입니다. 회복탄력성을 받는 날이요 회복탄력성의 절기입니다.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가 <회복탄력성>을 썼어요!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원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되’튀어 오르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원래보다 더 좋은 행복이나 긍정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인지능력이 회복탄력성입니다.

 

회복탄력성지수 RQ(resilience quotient)가 높을수록 장애, 사업 실패, 가정불화, 타인으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 등을 딛고 일어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내 실수나 남들로부터 입은 상처를 계속 생각하지 않고 금방 잊고 원상태로 회복하는 회복탄력성이 있으면 교회 안의 갈등은 금방 잊어버리고 오히려 전보다 더 강력한 탄력성으로 단단해 질 수 있습니다.

 

아담부부가 바로 그 회복탄력성을 받은 것입니다. 비록 에덴동산을 뒤로 하고 추방당하는 심정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생명과에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가죽 옷으로 감쌈으로 죄를 간과-일시적으로 못 본척 하십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통해 다시 에덴을 약속하십니다. 다시 회복된다는 탄력성이 강한 채 에덴을 떠나기에 더 이상 서로를 탓하지 않았고 위기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끼리 손을 꼭 잡고 격려하며 위로하며 시련의 길로 떠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회복탄력성이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이 주는 회복탄력성입니다. 

결론

성탄! 예루살렘 마구간의 성탄도 중요하지만 에덴의 성탄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원시복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세주와 다시 인생을 설계하십시오!

 

-화해복음. 너는 나에게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다! 그런 우정들을 회복하십시오!

 

-회복복음. 지금 다운되어 있습니까? 우리에게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다시 일어나시고 바닥에서 튀어 오르십시오!

 

에덴의 성탄이 되어야 베들레헴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탄절기에 인생을 재 포맷(format), 혹은 리셋(reset)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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