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은 없다!
갈라디아서 1장 1~6절
서론
오늘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497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 성경에서 떠난 교리들… 면죄부를 팔아 베드로 대성당건축 비용으로 충당하려는 교황청의 비성경적 모습에 크게 의분(義憤)을 느낀 독일 사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자신이 봉직하던 비텐베르그대학 정문에 교황청의 쇄신을 요구하며 95개조항의 대자보를 붙임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오늘로 5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를 개신교, 개혁교회라 합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다, 사람도 완전하지 못하고 교회조차도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니 날마다 매일 고치면서 초대기독교, 예루살렘교회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입니다.
그로부터 500년 쇄신운동을 펼쳤던 교황청은 변했을까요? 마리아숭배, 성상숭배, 행위구원, 교황의 신적존재…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견고해졌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으로 유턴했어요.
로마교황청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음에도 가장 인기 있고 존경 받는 종교로 부흥하고 있습니다. 교황이라는 최고의 CEO를 활용한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미디어를 통해 화장을 잘합니다. 우리에게는 위장으로 보이는데 세상이 보기에는 화장입니다. 그러니 예뻐보입니다.
기독교는 화장조차 못합니다. 그래서 민낯으로 싸우고 비난하고… 언론은 나쁜 것만 자꾸 드러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목사님과 아들의 비행… 나쁜 뉴스는 내도 순복음교회 1200명이 안산시장에서 물건 사주고 돕는 것은 어쩌다 내줍니다. 그러다보니 잘하면 제 교회 부흥시키느라 저렇다 하고, 잘못하면 저러니 교회가 나쁘다, 하고… 불리한 시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갔습니다. 한국사회가 왜 교황에게 열광했나요? 경운기 타신 것도 아니고 ‘소올’ 탄 것이 그렇게 대단해요? 무지개 차를 타고 손 흔들며 가다 악수해주고 기도해주는 행위가 그렇게 위대한가요? 로마교회 선전과 홍보를 위해 방한한 종교 수장에 미디어가 달라붙어 덩달아 흥분했던 것은 아닐까요?
교황의 존재는 착시였어요! 제주도 도깨비도로는 착시현상 때문에 내려가는 도로가 올라가는 도로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물이 아래로 흐르는데 올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착시지요!
교황이 대한민국의 갈등을 치유해 줄 해결사로 열광했습니다. 대한민국이 통합되었나요? 천주교 부흥을 위해 방한하신 분을 평화의 해결사라는 착시현상에 호들갑 떨었던 것 같아요.
교황 방한 뒤끝에 누가 물어요! 로마가톨릭이 우리와 같은 형제냐고… 아니면 이단이냐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곤혹스럽고 민감한 질문이지요! 로마가톨릭이 성경에서 너무도 동떨어졌음에도 이단이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로마가톨릭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천주교… 그렇게 한 형제라는 생각도 안 들고… 왜 그럴까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혁교회 사이에는 ‘같은 점’이 있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단 같은데 ‘같은 점’ 때문에 이단이라 쉽게 말할 수 없고 예수님 안에서 형제교단이 되어야 하는데 달라도 너무 ‘다른 점’ 때문에 한 형제자매라는 친근감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면 로마가톨릭과 개혁교회 사이에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같은 점
가톨릭은 개혁교회와 공유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님, 아브라함,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예루살렘교회…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에 같은 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 삼위일체
서로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근간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무너지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자 바빙크는,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심장이다”, 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봉합니다. 삼위일체의 한 위를 부인하면 단호히 이단입니다. 초대교회에 가장 먼저 시작된 이단은 예수님 인성을 부인한 이단입니다.(요일 1:3)
기독교 얼굴을 하면서도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교파가 있습니다. 안식교, 여호와증인, 통일교… 등입니다. 그래서 이런 짝퉁교회들을 단연코 이단이라고 못 박습니다.
로마가톨릭은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문제는, 천주교가 삼위일체를 믿으면서도 성모 마리아 숭배사상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눈에는 삼위일체가 아니라 성부-성모-성자-성령 하나님… 사위일체(四位一體) 종교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 사도신경
기독교나 천주교나 ‘사도신경’이라는 같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신앙이 믿어야 할 기본적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요약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그리스도-성령 삼위(三位)에 대한 구체적 신앙고백, 예수님의 신성(神性)-수난-부활-심판 등을 중심으로 기독교교리를 압축시켜 놓은 ‘엑기스’ 고백입니다. 기독교는 이단이 대두될 때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느냐 부인하느냐, 를 기준으로 이단이냐 정통이냐 여부를 가렸습니다.
㈂ 기독론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공유합니다. 물론 로마교회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격은 개혁교회와 같지만 사역-역할은 절대적인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개혁교회는 구원자, 중보자, 죄사함을 얻는 수단으로서의 예수님이 유일합니다.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 구세주가 되지만 로마교회는 마리아를 더 효율적 중보자로 둡니다. 여러 성인(聖人)들을 세웁니다. 이런 면에서 양 교파는 다릅니다.
㈃ 성경
구약의 외경을 제외하고는 같은 성경을 사용합니다. 개혁교회는 66권외에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로마가톨릭은 73권의 성경입니다. 7권을 기독교는 외경이라 합니다.
이상이 기독교와 로마 가톨릭의 같은 점입니다. 물론 교리를 공유한다고 100%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같은 점들이 있기에 쉽게 이단이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점
㈀ 교황무오설
로마교회는 교황을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사도권을 계승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봅니다. 따라서 교황 자신의 무오가 아니라 교황의 선포에는 오류가 없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개혁교회는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권을 이은 후계자라는 해석(마 15:16-19)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직 성경’에 권위를 두는 종교개혁 정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황무오설은 논리적으로도 옳지 않습니다. 이번에 프란치스코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지침을 통과시키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118명이 찬성했고, 62명이 반대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동성애에 대해 철저히 반대했습니다. 로마교회 신자들은 교황의 무오설을 믿으며 하늘처럼 떠받들지만 정작 바티칸에서는 전임교황과 신임교황세력 간에 암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절대 무오하신 분들이라면 세상 정치가들이나 하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요?
㈁ 마리아 숭배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마리아 종신처녀설, 무죄잉태설, 승천설 을 주장하며 ‘중보자’로 인정해 마리아를 통해 기도할 때에 더 효과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20세기 교황 베네딕토 15세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녀 자신이 인류를 대속하였다고 정당히 말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 로마천주교의 마리아론을 다시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로마교회의 주장에 대해 성경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우상숭배의 위험이 있다 지적합니다. 2천년을 땅속에서 잠자던 마리아가 1950년 교황의 말 한마디로 부활-승천했다는 것은 상식 밖인데도 그들은 믿고 있으니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 구원관
가톨릭은 믿음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선행(공덕)을 쌓아야 하며, 구원은 영세를 통해서 오며, 다른 종교를 믿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종을 강제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세례가 구원의 수단이라는 언급이 성경에 없기에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 죄사함의 과정
가톨릭에서는 원죄는 영세를 통해, 그 이후 지은 죄는 고해성사를 통해 사함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대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 가지만 소죄를 지었거나 죄에 대한 벌을 다 치르지 못한 영혼은 연옥에서 죄를 씻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사제가 사죄권을 가지고 있다는 고해성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공로로 모두 하나님 앞에 직접 죄를 고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연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성례
가톨릭은 세례-견진-성체-고해-혼인-신품, 병자성사를 7대성사로 여기지만 개혁교회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만 성례로 인정합니다. 가톨릭은 성찬 때에 빵과 포도주가 실제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믿으나 개혁교회는 대개 ‘기념설’을 따릅니다.
로마교회는 베드로 중심의 예식 중심, 개혁교회는 바울 중심의 말씀 선포 중심… 로마교회는 바티칸, 개혁교회는 예루살렘 중심입니다. 너무 달라 같은 기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복음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짝퉁 복음을 경고합니다. 짝퉁 복음을 ‘다른 복음’이라 합니다. 다른 복음…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6절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8절 다른 복음을 전하면…9절 다른 복음을 전하며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다른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만 온전히 구원을 이룬다는 복음에 율법행위를 첨가해서 믿음+행위=구원이라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행위구원을 만들어 내고 만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죄사함도 구원도 없다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다른 복음’을 ‘다른 메시지’ 교회 안에 들어온 ‘이질적인 메시지’ ‘메시지라고도 할 수 없는’ 메시지라 해석합니다. 로마교회를 이단보다는 다른복음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사상은 솔라(Solas)라는 단어로 집약됩니다. 솔라는 ‘오직’입니다. 구원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로마교황청에서 발급하는 면죄부와 같은 것이 전혀 필요가 없고 ‘솔라’-‘오직’ 이것만이 필요합니다, 다섯 가지 ‘오직’(솔라)입니다.
㈀ Sola Scriptura(오직 성경)
진리에 대한 최종적 권위는 오직 신구약성경에 있다! 성경만이 유일한 기독교 교리이며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된다!
㈁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방법은 전혀 없다! 오직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를 씻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입는 길 밖에 없다!
㈂ Sola Gratia(오직 은혜)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난 조건적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마찬가지다! "믿음"은 구원의 은총을 입는 하나의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에 대한 대가나 보상이 아니다!
㈃ Sola Fide(오직 믿음)
은혜는 믿음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다른 요구나 대가는 필요없다!
㈄ Soli Deo Gloria(오직 주께 영광)
영광은 오직 주께만! 사람에게는 은총이 있을 뿐이다!
오늘의 종교개혁의 의미
여기까지 보면 개혁교회가 단연 성경적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기뻐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성경적 기독교는 외면하고, 종교적 허세로 치장한 로마교회에 대해 열광하며 신뢰하고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하나는 시대의 문제입니다. 지금 시대가 신보다는 인간을 중시하는, 신권보다 인권 중시의 시대입니다. 로마교회는 사람 편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인권을 강조합니다. 동성애에 대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나?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성적 소수이기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 그들로 인해 야기되는 도덕이나 윤리, 가정보다는 인권만이 강조됩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 편을 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나? 동성애는 순리가 아니라 역리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 자체를 죄로 봅니다. 동성애를 인권문제가 아니라 보건문제로 봅니다. 그래서 동성애 합법보다는 그들을 동정하며 치유하고 확산을 막으려 애를 씁니다. 그러다보니 일단은 동성애 자체를 옹호하는 인권단체나 로마교회가 상당히 평등과 박애로 보이고 인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부흥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세상은 교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삶-생활을 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이신득의’의 좋은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합니다. 너무 쉽게 죄를 짓고 회개하고 생활을 등한시합니다. 로마가톨릭은 행위가 첨가되어 의롭게 되고 구원의 도움을 받는다는 이행득의라는 나쁜 교리가 있습니다.
그 대신 행동으로 구원이 첨가되기에 행동을 강조하니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말로 교인임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믿으니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잘못해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좋은 선행을 할 때만 드러나니 로마가톨릭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나쁜 교회와 착한 이단‘ 중에 어디를 택하겠느냐? 모르는 사람은 착한 이단을 택합니다. 그런 논리로 로마교는 부흥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교리로 부흥하려면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결론
릭 웨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두 번째 종교개혁을 기대하고 있다. 5백 년 전 교회의 첫 번째 종교개혁은 신앙에 관계되었다. 이번의 종교개혁은 행동에 관계될 것이다. 교회가 ‘믿는 것’이 아니라 ‘행하고’ 있는 것에 관계될 것이다.”
미국 <60분>이라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연출자 존 마크스도 말합니다.
“믿음은 더 이상 언어를 통하여 돌아다니지 않고 행동을 통해 움직인다.”
500년 전의 개혁이 교리적인 개혁이라면 이제 한국교회의 개혁은 생활개혁이어야 합니다. 교황청에 개혁을 요구할 자격도 없고 교단에 개혁을 요구해야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들의 세속화에 대한 개혁, 행동이 수반되지 못하는 말로만의 믿음에 개혁드라이브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교개혁은 완성되어 가고 우리는 자랑스런 개혁교회 교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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