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생사관(生死觀)
사무엘하 12장 15~23절
서론
세월호(號). 우리가 그렇게 기도했던 구조자 숫자는 174명에서 끔쩍도 하지 않고 희생자 숫자만 늘어났습니다. 더 이상은 기대도 없고 낙담도 분노할만한 힘조차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세월호만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호(號)가 가라앉아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대형참사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닙니다. 삼풍백화점, 씨랜드 화재 참사, 대구 지하철, 성수대교 붕괴… 등을 겪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192명, 성수대교는 32명, 씨랜드는 23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502명이라는 사망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부상자들도 엄청 났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이렇게 전국민 집단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왜냐? 시간-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구조되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세월호는, 사고 나던 16일 수요일에서 오늘까지 11일 동안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무기력증으로 애통-조바심-분노-낙담-패닉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번 참사의 특징이 있어요! 다른 사고에는 늙은 부모들이 울고불고 했는데 이번에는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젊은 부모들이 오열하니, 국민들이 더 가슴이 미어지는 것입니다.
1. 다윗과 아들의 고통
세월호 침몰을 보면서 어느 분이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고 신문에 썼어요!
“하나님,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세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까?”
필립 얀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얀시는 사고 현장을 많이 방문했습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총격 사건, 거대한 쓰나미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일본, 전쟁 상처가 남아 있는 발칸반도 사라예보,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테러 현장, 텍사스 비료공장 폭발사건, 중국의 지진과 방글라데시의 건물 붕괴, 오클라호마에 닥친 치명적인 토네이도, 비극적 현장을 찾아본 얀시는 이번에 그 비극적인 질문을 모아 책 한 권을 썼어요.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왜 이러세요? 고통의 의미를 묻는 것이지요. 모든 사건 사고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15절, …심히 앓는지라….
심히 앓았다는 것은 살아날 가망이 없는 중병입니다. 그 병에 원인이 있지요. 여호와께서 치시매… 하나님께서 공연히 치셨겠어요? 부모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우리야의 아내는 우리야에게서 자식을 낳아야 하는데 왜 다윗에게서 아들을 낳았습니까? 정상적인 관계에서 생긴 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치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죄로 병이 들고 죽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다윗 왕의 죄 때문입니다. 백성 밧세바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것이지요. 밧세바의 죄라면 너무 미인이고 목욕하던 장면이 다윗의 눈에 보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침상에서 내 수발을 들라… 어느 여인이 감히 왕의 명령을 어기겠어요?
본부인 미갈 왕비는 원채 정이 없어 웬수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해도 아비가일 같은 부인은 지적이고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여인입니다. 자식들도 많아요. 그런데 다윗이 부하장수의 아내, 그것도 전쟁터에 나간 장수의 아내를 범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행동을 11:27, 여호와께 악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을 심판하기 위해 불륜관계로 낳은 아들을 앓게 만들고 죽게 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아이가 아프고 죽은 원인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이 드러났다고 고통의 이유가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죄를 지었으면 부모가 당해야지요! 재미 보았으면 재미 본 사람이 당해야 하는데 왜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이 아프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아들이 훗날 천국에서 물을 수도 있겠지요?
“도대체 나는 왜 출생을 했던 거야?”
세월호 참사사건 왜 일어났나요? 당연히 어른들 때문입니다. 선장이라는 사람, 수백 명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하는… 이런 행태는 실수요 기술의 문제 이전에 도덕심-인격의 문제입니다. 선원들도 꼭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찌 그래요? 대한민국은 그들의 실수가 아니라 인격-도덕심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선박회사 청해진해운. 너무 무책임한 거예요! 꽃다운 아이들의 목숨이 있는데 어떻게 270만원 월급사장-임시선장을 고용하고 선원 교육도 없는 거예요? 사람을 화물로 알았던 거예요! 이런 악덕업주 때문에 꽃다운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구원파 교주 유병언. 부끄러워요! 오래전부터 한국교회가 이단이라 낙인찍었지만 텔레비전에서 구원파교회, 교회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라고 기독교 교단명으로 나올 때마다 부끄러워요! 자기 그림을 5천만원씩 강매하고 달력을 500만원씩 팔았다니….
어디 세월호 아이들을 죽인 사람들만 살인자들인가요? 대한민국이 세월호 아이들을 죽인 것입니다. 세월호 선장과 청해진해운, 유병언은 눈에 보이는 아이들을 직간접으로 죽였지만 텔레비전과 영화, 이념교육현장이 되어버린 학교… 가출학생들을 성노리개화(化)하는 업주, 성(性)을 사는 사람들, 극우익과 극좌익들… 세월호보다 더 많은 청소년들을 실고 가는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는 직간접 살인자들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철저히 분노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하나 잘못 걸리면 집중포화를 합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남들에게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요?
2. 다윗, 침묵과 회개
세월호처럼 부당하게 엄청난 일을 당하면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반발형(形)-하나님…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세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까? 다윗도 따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왕입니다. 왕이 이 정도도 못합니까? 아브라함도 여인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사사들도 부당하게 첩을 얻지 않았습니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내게만 이러십니까?
*책임전가형(形)-밧세바에게 책임 전가할 수 있지요. 제가 그러고 싶어 그랬나요? 밧세바가 나를 유혹했습니다. 왜 대낮에 내가 성문 위를 걸을 시간에 목욕하고, 여인이 알몸목욕 하는데 건강한 남자가… 그것도 일국의 왕이 여인을 데려다 잘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읍소형(形). 자책형이지요. 우리 어른들이 죄가 있지 저 어린 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발 우리를 책하시고 어린 것을 살려주세요…. 제발요…. 눈물 콧물 쏟으며 애걸복걸해요.
다윗은 1-3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의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변명도 회피도 하지 않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합니다.
16절,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다윗이 골방에서 7일 동안 금식기도를 드린 것은 자기 죄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를 하나님의 은총에 호소하여 살리기 위함입니다. 다윗이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구할 자격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만을 기다린 애절한 심정을 보여 줍니다. 다윗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며 아이의 생명을 놓고 금식기도를 하는지…
17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다윗은 아이가 아프고 죽어가는 것이 누구 탓인가, 알았습니다. 이런 일로 밧세바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아이 생사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대하며 금식하고 7일을 엎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바로 이런 거예요! 그는 죄를 안 지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변명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비와 긍휼을 기대하는 침묵과 자기성찰… 회개를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분노를 넘어서는 겁니다. 가해자 한 두 사람에게만 덮어씌우고‘이지매’같은 집단 분노를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의 책임을 전국민들이 함께 떠안고 반성하고 침묵하는 것입니다. 대통령부터 우리까지 이제는 누구를 공격하고 돌을 던지는 것보다… 그런 일들은 검찰과 경찰에 맡겨두고 모두 가슴을 치며 내 이기적인 행동, 정신적으로 남을 살인하고 공격하고 비난했던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 수학여행을 전면 중단하고 아예 없애자… 이런 근시안적 대안으로 흥분하고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모두가 내 책임이라는 자성과 함께 교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누구도 내 탓이다… 자성의 반성들이 없습니다. 우리는 꽃다운 아이들의 희생에서도 증오와 대립반목만 키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아이들의 희생을 건강한 대한민국 재탄생으로 에너지화(化) 하지 못하면 아이들을 헛되이 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3. 다윗, 다시 일어나다.
아이는 7일을 엄청 앓다가 죽었습니다. 불쌍한 아기입니다. 어른들의 죄탓에 죽은 거예요! 세월호 아이들은 17년 18년을 살다 죽었고 다윗의 아들은 몇 달도 살지 못해 죽었습니다.
아기왕자가 죽자 신하들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죽었다는 말을 하면 왕은 큰 슬픔에 빠질 것입니다. 아이만 아니라 내 죄로 아이가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왕은 고통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죽은 것을 왕이 모르게 한다면… 언제까지 속이겠어요?
이 일을 어쩌나… 다윗은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19절, “…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아이가 죽었느냐… 네, 죽었나이다… 그랬더니 별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0절,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절, 신하들이 묻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찌 됨이니이까…
22절, …아이가 살았을 때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했지만
23절,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금식한다고 돌아오겠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왕이자 무정한 아버지이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현실적인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아야 할 것은 다윗의 생사관입니다. 사람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 살았을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죽으면 남은 사람들을 헤아리고 챙겨야 한다는 것! 아이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내세관 천국관! 이런 믿음을 다윗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세월호 침몰사건, 이로 인해 3백명이 넘는 아이들과 가족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 자녀들… 당분간 그들이 대통령을 욕하든 총리에게 물을 끼얹든, 청와대까지 밀고 올라가도 비난하지 말고 그냥 보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무슨 말로 위로하겠어요? 언론도 그만 떠들어야 합니다. 차라리 대한민국 언론들이 유족과 가족을 생각한다면 국가재난방송인 kbs만 남겨놓고 2-3일이라도 방송 자체를 끄는 것이 오히려 위로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그러면서 자성하고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다윗은 금식하며 무얼 생각했을까요? 자기 죄, 무책임… 왕으로서 본이 되지 못한 지도자,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시킴에 대한 죄송함… 아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성군이 되는데 알게 모르게 도움 받았을 거예요. 이걸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번 세월호가 주는 교훈과 나름대로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국가 시스템전반에 대한 안전검증,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투자를 더 많이 늘리고 학교안전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구원파 계열 이단들에 대한 실태가 샅샅이 드러났습니다. 극동방송에서 설교목사로 활동하던 권신찬 구원파 계열에서 사고를 일으킨 유병언,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단들이 무너질 것입니다.
-자녀들 구원문제를 확인하며 기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에 남녀학생이 구명조끼로 서로를 꼭 묶은 시신(屍身)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내 자녀가 그런 사고를 당하면 공포에 떠는 아이들과 찬송 부를 수 있을까요? 천국 소망으로 다른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 아이들의 성공과 출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물어야 합니다. 내 아이들은 죽음 앞에서 어떤 의연함으로 천국 소망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 확신을 물어야 합니다.
결론
미국 시카고의 스패포드는 법의학교수이자 변호사로 딸 넷을 둔 행복한 가장입니다.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계획했는데 사정으로 아내와 딸들만 먼저 출발했습니다. 가족이 탄 배는 대서양에서 충돌사고로 침몰합니다. 부인만 구조 받았다는 청천벽력의 전보를 받게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스패포도는 딸들이 익사한 대서양으로 갔습니다. 배가 침몰한 해역에 도착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스패포도는 눈물을 흘리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스패포드는 딸들을 잃은 슬픔을 부활소망으로 견디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복음전도자의 생애를 삽니다. 찬송가 413장이 나오게 된 배경의 스토리입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으로 아들을 떠나보내며 슬픔을 떨치고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23절,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지금도 실종자 찾기는 계속되고 대한민국 비극의 역사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죽은 사람과 실종자로 처리되었던 사람들, 이제는 시신이라도 찾은 사람과 시신조차 찾지 못할까봐 슬퍼하는 사람들… 고통의 차이가 다릅니다. 세월이 흐르면 또 달라집니다. 천국으로 아이를 보낸 사람과 그 확신이 없이 죽음 너머로 아이들을 떠난 보낸 부모들… 천국으로 보낸 이들은 세월이 지나가면 슬픔에서도 이렇게 고백하며 위로받겠지요.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예수님께서 주시는 희망선물입니다.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내 아들에게 딸에게 나는 간다… 이런 고백으로 유족들이 일어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스승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3:12~15) (0) | 2023.08.07 |
---|---|
기술자 후람의 어머니사랑(역대하 2:11~16) (0) | 2023.08.07 |
하나님의 역(逆) 발상(이사야 53:7~9) (0) | 2023.08.06 |
십자가, 기독교의 아이콘(icon)(고린도전서 1:18~25) (0) | 2023.08.06 |
큰 사람이 됩시다!(요한복음 1:19~28) (0) | 2023.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