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기독교의 아이콘(icon)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서론
옛날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면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성경책도 신문지에 싸들고 다니던 시절 여간한 용기 없이는 십자가 목걸이를 못했습니다. 십자가 목걸이 할 정도라면 대단한 믿음입니다. 요즘에는 십자가 목걸이로 거듭난 그리스도인가, 종교적 그리스도인가… 구분이 어려워요. 너도나도 상징적으로 걸기에 십자가는 믿음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연예인들도… 젊은이들도… 심지어 조폭들도 십자가 목걸이를 멋으로 착용합니다.
원래 십자가는 사형 틀입니다. 페르시아인에게 땅은 민족 신(神) 올무즈(Ormuzd)에게 바쳐진 신성한 대지(大地)입니다. 중범죄 죄인을 처형할 때 신성한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죄인의 시체를 땅에 닫지 않도록 십자가에 높이 올려 처형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자는 사람도 하늘도 받아주지 않는, 양쪽에서 버림 받은 비참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십자가 처형이 페르시아에서 북(北) 아프리카 카르타고로 건너갔고 로마로 수입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생각해낸 사형방법 중에 가장 잔인한 처형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사함을 누리고 부활로 의인의 신분을 얻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기독교의 두 축(軸)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한 축(軸)을 감당하기에 당연히 기독교의 상징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비(非)신자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할까요? 십자가는 어느 방면에서 보느냐, 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십자가를 오른쪽으로 꺾으면 독일 나치 갈고리 철십자 마크, 왼쪽으로 꺾으면 절(卍) 표시입니다. 가로세로 같이 하면 적십자, 구급 봉사기관 마크입니다. 십자가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불교는 무(無), 독일 나치정권은 학살, 적십자는 희생과 봉사… 십자가는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종교와 관계없이 착용하게 됩니다.
2천 년 전,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호감 비(非)호감이 있었습니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한 마디씩 하며 지나는 행인들…. 관리들은 비웃고… 군인들은 희롱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희롱하고 십자가 아래 여인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초대교기독교는 십자가를 앞세웁니다. 아니? 상징물이 그렇게도 없었나요? 당시 누가 보더라도 십자가는 흉물(凶物)입니다. 중형으로 다스릴 죄를 범한 사람… 요즘이라면 유괴범, 유아나 임산부… 등의 성폭행범, 살인자들… 부모 살인자, 자식 살인자들… 배우자 살인자들… 이런 자들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입니다. 그런 사람을 신(神)으로 구세주로 모시고 경배하며 따르다니… 한 마디로 미친 작자들입니다.
왜 안 그러겠어요? 성(性) 폭행범에게 재범방지를 위해 사용자 위치추적 장치 전자 팔찌를 채웁니다. 이런 사람과 한 동네 산다는 자체만으로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해 봐요. 누가 성폭행 전자 팔찌를 찬 채로 다시 폭행하고 살인했습니다. 그 사람을 사형시켰습니다. 추종자들이 일어나 그 사람을 구세주로 알고 그 사람이 찼던 전자 팔찌를 목에도 걸고 손에도 걸고 집회 장소에도 걸어놓고… 구세주라고…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세상에! 죄인 중에도 죄인 괴수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죄를 사해달라 빌고… 그 사람 믿어 구원을 얻으라니… 제 정신이에요, 제정신이 아니에요? (여기 제 정신없는 사람들 많네요?)
엊그제도 전자발찌 끊고 도주한 전과 16범 정모씨(31)가 경찰에 붙잡혔어요. 그런 사람 교주로 모시고 전자 팔찌를 목에 걸고 귀에 걸고 집회 장소에 걸고 기도한다 생각해봐요!
기독교 초창기에, 초대교회가 딱 그런거 아닙니까? 중범죄들이나 달리는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죄수를 구세주로 심지어는 신(神)으로 섬기니…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한 사람들이 로마제국만 3만 명 정도나 되었답니다. 대부분 정치범이나 흉악범입니다. 이렇게 숫자가 많은 것은 반역자들을 무더기로 처단했기 때문입니다.
한 해 3만 명이 십자가 처형으로 죽는데 나사렛 예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예수 따르던 사람들 고개 돌리면 그만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하던 사람들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단되면… 우리가 뭐에 씌었었나봐… 그러고 돌아서면 되는데 예수 추종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자랑하며 오히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요? 도둑이 되레 매를 들고 잘못한 놈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모양새입니다.
성폭행자가 전자 팔찌를 차고 다시 성폭행하고 살인했습니다. 사형 당했습니다. 그런데 추종자들이 피해자에게 야단칩니다. 짧은 치마 입고 다녀서 되나? 여자애가 밤중에 돌아다니다 당한 거야! 회개해! 죄송하다고 해!… 이런다면 이해됩니까? 당연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니 당시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초대기독교를 향하여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미련하다…. 지능이 떨어지는 저능아, 정신박약아를 뜻합니다. 세상에!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구세주로 믿다니 그것은 정신없는 바보천치들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어떻게 왕이 왕관도 쓰지 못해보고 죽냐? 신명기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데(21:23) 어떻게 구세주가 되냐?
헬라인. (지혜를 중시하는 헬라인) 세상에,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죽는 하나님도 있냐?
로마인. 일개 로마시민도 절대로 십자가 처형을 받지 않는데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구세주-황제라고? 미쳤어, 미쳤어…. 난센스도 이런 난센스가 없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그들 말처럼 미련한 바보 천치였을까요? 그래서 기독교를 홍보하는데 가장 나쁜 상징물, 가장 불쾌하고 매력 없는 아이콘(icon. 像)을 내세우고 있을까요? 유대인의 석학(碩學)이라던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바울이 이런 분위기를 모르겠어요? 이런 자가당착을 모르겠어요! 경건한 강간범… 부모에게 불효하는 효자… 앞뒤가 안 맞는 이런 아이러니를 전할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왜 모르겠어요? 그래서 23절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거리끼는 것… 헬라원어로는 ‘스칸달론’ 여기에서 스캔들이 나왔습니다. 스캔들(scandal)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으로 인기스타가 걸려 넘어지고 인기강사가 걸려 넘어지고… 인기목사가 스캔들,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에게는 십자가의 예수가 장애물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신의 아들이요 신과 동등한 존재라는 주장은 스캔들-장애물입니다. 율법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가르침을 받아왔던 그들에게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스캔들-장애물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사람들이 기독교를 왜 못 믿을까요? 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못 믿어요! 내게 무슨 원죄가 있다고? 아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설령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지가 지은 죄는 지가 용서를 구하고 사함을 받고… 내가 지은 죄는 내가 용서를 구하고 사함을 받으면 되는 것을 예수라는 사람이 내 인생에 왜 끼어 드냐? 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장렬하고 멋있는 순교자 죽음도 아니고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람… 그것도 내 죄를 위해서? 그리고 또 부활했다고? 이건 2천년 최고의 사기적인 스캔들이고 내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애물이 됩니다.
이런 것만 없으면 기독교가 얼마나 좋아요?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의 그 가르침은 얼마나 좋아요? 원수를 사랑하라! 비판하지 말라! 남을 먼저 섬겨라! 약자들을 도와주라… 주옥같은 교훈들입니다. 정말 훌륭한 예수 선생입니다. 얼마든지 추종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부활… 이게 거리끼는 스캔들이 되고 이것 때문에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십자가를 왜 기독교의 아이콘으로 정했을까요? 누가 들어도 불쾌하고 스캔들이 되고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십자가를 앞세웁니까?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방법은 이것밖에 없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십자가라는 아이콘이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입니다. 자신감이고 하나님께 주시는 미션입니다.
제자들이 만약 하나의 교단을 만들고… 그래서 바티칸을 만들고… 온갖 세속영광과 존경을 받으려고 했다면 결코 십자가를 앞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박애주의를 말하고 자선사업을 전하고 인간성 계발을 위한 도덕적 윤리적 가르침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의 참 근본은 십자가입니다. 그걸 걷어내면 기독교에는 철학이나 도덕윤리 외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없지요! 그래서 정신박약자로 오해를 받고 스캔들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십자가를 앞세우는 정면 돌파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하고자 한 것은 생명의 도(道), 구원입니다. 종교국가도 아니고 종교복지도 아닙니다. 인간구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암(癌) 환자가 좋은 일 하고 심성만 좋다고 살아납니까? 암(癌)을 없애야 살아납니다.
어떻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죄를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했으면 영벌(永罰) 지옥을 만들었겠어요? 지옥은 죄를 지은 사탄을 위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탄을 위해서는 죄의 해결법을 제시하지 않고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아담과 약속했습니다.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죄는 사람이 지었으니 사람이 대신 사람의 죄를 대신해 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죄가 없는 의인이 여자의 후손 중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사람 예수는 사람들의 죄를 모두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뒤집어쓰신 그 죄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 그 혐오스러움에 하나님께서는 눈을 돌리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100% 완벽하게 없애려고 아들을 완벽하게 죽이십니다. 3일 동안 인류의 죄들이 무덤에서 완벽하게 녹이 벗기듯 벗겨졌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모든 죄들은 싹 벗어놓고… 벗어놓을 정도만 아니라 죄를 완벽하게 처리해 놓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사람도 원죄에서 깨끗함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얻으며 자녀의 권세를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죄를 없애고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지혜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로마인도 모든 인간들도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구원지혜이기에 미련한 것으로 조롱하고 스캔들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라는 상품이 굉장한 브랜드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각색 병자를 고치심… 떡과 물고기로 5천 명 먹이심… 바다 위 걸으심,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세 명의 죽은 이들을 살리신 일… 하나만으로도 교단창립에 손색이 없습니다.
기독교 상징물을 물고기 모양도 되고 떡덩이도 되고… 각색 병자를 고치셨기에 적십자를 상징하는 열십자로 해도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가르치셨기에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모양도 되고 사람도 살렸기에 부활의 어떤 아이콘으로 기독교의 상징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필이면 왜 십자가입니까? 가장 숨기고 싶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백만 천만번이라도 숨기고 회피하고 싶을 텐데… 그 반역의 전자 팔찌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내세웠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미련하게 보이는 짓이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스캔들, 장애물이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을… 왜 그렇게도 지혜 없는 일을 했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알았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죄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지혜롭지 못한 처사이지만 제자들은 십자가만이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고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런 방법 외는 결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세상이 불쾌하게 생각하고 불편하게 여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내 걸고 정면승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다원주의로 흘러가는 이 시대에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정면승부의 진검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어쩌면 제자들은, 십자가를 앞세우는 정면 돌파를 하면서 주님께서 하셨던 가르침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뱀처럼 지혜롭게 살라…”
왜 하필이면 뱀을? 뱀은 음흉함의 아이콘이잖습니까? 거룩하고 신실한 제자들에게 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했을까요? 작년에 설교했지요?
뱀은 생명력이 강하고 엄청난 번식력이 있습니다. 특이한 뱀 중에는 두 개의 생식기로 1시간~72시간 교미를 통해 많게는 한꺼번에 150개의 알을 깹니다. 알 대신 새끼를 낳기도 합니다. 이 무서운 번식력과 생명력! 그러기에 사람들은 뱀을 혐오하면서도 뱀을 숭배합니다.
자기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드는 뱀의 능력… 초대교회는 이걸 해냈습니다. 뱀이 혐오의 대상에서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숭배의 대상을 만들어 버립니다.
초대교회 때 십자가는 최악의 형벌이고 혐오의 대상입니다. 십자가와 예수가 유대인에게는 꺼리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초대교회는 구원의 아이콘, 상징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로마인에게 기독교는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구세주로 믿는 우스운 종교였지만 로마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구원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결국 로마제국은 십자가를 혐오하면서 십자가를 숭배하는 기독교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2천년은 십자가를 자랑하고 앞세우는 능력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끝까지 붙잡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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