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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하나님의 역(逆) 발상(이사야 53:7~9)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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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逆) 발상

이사야 53장 7~9절

 서론

역(逆) 발상이라는 말 아시지요?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가 되는 생각을 해내는 것을 역발상이라고 합니다. 물은 식후에 먹는다? 역발상은 물을 먼저 먹어야 밥을 덜 먹게 되고 살찌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역발상입니다. 린스는 샴푸 후에 쓴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지만 반대로 린스 후에 샴푸를 쓰니 유연성도 보장되고 머리카락이 가벼워져 볼륨감이 돋보인다는 것이 역발상입니다.

 

어떻게 보면 본문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발상입니다. 인류의 죄를 사하시려 하나님께서 생각해내신 방법이 역발상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굴에서 호랑이를 유인해 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발상인데 역발상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천사들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으로 출생하시어 사람의 죄를 없애는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역발상입니다.

1. 유대인, 하나님의 역발상을 거절하다. 

일반적인 구원의 발상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일반인의 발상:권선징악. 상선벌악의 구원관 내지는 천국관입니다. 착하면 천국가고 악인은 지옥 간다!는 개념입니다. 

 

-불교의 구원 발상:윤회를 거듭하다 해탈-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구원 발상: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스스로 의인이 될 때, 아니면 선민이면 구원을 받는 자격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의 구원의 길은,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행위구원과 열심히 구원을 빌면 신이 구원해 준다는 기복주의가 있습니다.

 

메시아에 관한 유대인의 발상은 무엇인가요? 그들이 기대하는 예언의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왕으로서의 품위와 위엄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지상왕국을 일으킬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완전히 반대되는 메시아를 예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후(前後)에 활동했던 남방 유다 선지자입니다. 메시아 예언을 많이 했기에 메시아 전문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던 구원과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메시아관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완전한 역(逆)발상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구원관과 메시아관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구원관을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오신다.

 

-하나님이 박해를 받으시고 사람의 죄들을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죄들을 그에게 덮어씌운다.

 

-메시아는 죄와 함께 죽는다.

 

-부활하심으로 죄의 문제를 처리하신다.

 

이게 이사야의 구원관입니다. 유대인 메시아관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초능력자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아관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역발상입니다. 이사야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수난을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관을 예언합니다.

무고하게 핍박을 받으나 참으시는 메시아, 그들을 한 칼에 베일 수 있으나 그 힘을 자제하는 메시아… 

 

왜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일까요? 5절은 메시아가 고난을 받는 이유를 말합니다.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허물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들, 국가의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인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불효의 죄를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죽음이란 요구가 메시아에게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에 대리하여 찔리고… 상하고…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찔리다 상하다…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말합니다.

 

그 결과? 5절 하반절,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날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가 평화를 얻습니다. 평화는 죄사함으로 오는 양심의 기쁨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하나님과 화해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 예언입니까?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런 메시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이 그들을 의인으로 만들기에 죄인을 위한 복음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거절한 것입니다.

2. 이방인, 하나님의 역발상을 받아들이다.

수난 당하는 메시아사상을 받아들인 이들은 이방인들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8장에는 이 말씀을 받아들여 인생에서 대박 난 사람이 나옵니다.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재무관.‘왕의 남자’입니다. 왕의 남자라면 권세와 재물을 함께 겸비한 성공남(男), 세상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자입니다. 여기 왕의 남자는‘여왕의 남자’입니다(27절). 여왕의 남자라면, 남성이 거세된 내시입니다. 권세와 재물을 손에 거머쥐었지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매일매일이 따분한 일중독이고 살맛 없는 허전한 남자입니다.

고자에게 희망일 될 종교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 길 예루살렘까지 예배나들이를 한 것입니다. 여호와 종교는 고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할 종교였던 것입니다.

 

내시는 예루살렘 종교에서 구원을 발견했을까요? 고자(鼓子)라는 고민을 해결하고 인생의 평안을 찾았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를 맞은 것은 냉대와 차별과 경멸입니다. 유대율법에,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신 23:1). 유월절 같은 공식적 예배의식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세상이 다 아는 거세된 남성입니다. 제대로 성전참배도 못하고 자신의 기구한 운명 앞에 돌아섭니다. 종교도 그를 버린 것입니다. 종교로 받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을 붙잡고 읽은 말씀이 하필이면 이사야 53장 7절 이하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예언하는 장(章)입니다.

“그가 도살장으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내시에게는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을 보내주셨습니다. 빌립이 말씀을 해석해 줍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 죄악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 성전은 당신을 이방인이라, 고자라 멸시하고 박대했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오셨다, 예수님도 당신처럼 성전에서 버림받고 조롱당했지만 승리했다! 이 사실을 믿거든 세례 받고 새사람이 되라… 내시는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38절).

 

내시는 빌립과 헤어진 후에도 계속 읽었고 56장까지 이어졌을 것입니다. 3절에서 열광을 넘어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고자들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4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고자들에게는! 5절,“내가 내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 

 

내시는 그 말씀에 펑펑 울었을 거예요! 고자라면 생산할 수 없고 자식 없으면 대가 끊기잖아요? 부귀영화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자손이 있다는 거예요! 교회 모든 여인이 내 자매고 내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내 돈과 권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왜 내시가 되었는지 그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를 받고 눈물바다 만드는 것! 복음의 능력입니다!

 

내시는 두 가지가 변했습니다. 자존감 회복.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성전에서는 거절당하고 무시당했지만 고자도 축복의 자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자기 구원하시려고 빌립을 동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도 사랑하시는구나, 높은 자존감에 기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 사명감. 사람들은 자기 남성을 거세했지만 소망을 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알게 해주셨습니다. 나를 거세한 사람, 나를 멸시하는 궁중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국복음화를 이룰 것입니다. 내 돈이 어디를 향해야 하고 권력이 누구에게 쓰여야 하며 내가 왜 그 자리에 있는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성전을 떠나오면서 흘렸던 한 사람의 눈물이 에티오피아에 2천년동안 교회가 존재하게 만듭니다. 1974년 공산화가 되기 전까지 에티오피아는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지금도 북아프리카 국가 중 예외적으로 기독교 인구가 63%에 이릅니다(중앙일보 2011. 7. 12). 

인간적으로는 쓸모없는 한 고자(鼓子)의 헌신이 조국복음화를 이룬 것입니다. 할렐루야! 

 

교회 때문에 실망하고 돌아가지 마십시오!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말씀 안에서 해석을 찾으세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실망을 주지만 하나님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고, 지금은 저 사람이 이해가 안 되어도 말씀 붙들고 계속 살면 축복이 될거라고 달래는 빌립의 생애를 살기를 기원합니다!

 

[성찬예식과 관계없이 다시 만들었습니다. 성찬예식에 올린 설교를 준비했다가 주일 당일에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작성한 것입니다. 절기설교에 나온 것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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