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좋아지는 인생
요한복음 2장 1~11절
서론
몇 년 전(2005년) 캐나다에 거주하는 제럴드 머스웨이건이 2달러(약 1,800원) 복권을 구입했다가 90억원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남의 돈이라 별로 반응이 없네요! 한국 사람들, 사기꾼 나왔다 하면 수백, 수천억 원 잡수셨다는 보도에 간(肝)이 부어서 90억원은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나 90억원은 시골가면 2억짜리 집 45채를 살 수 있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머스웨이건은 인생역전의 꿈을 이룬 행운의 사나이가 된 것이지요. 당첨금으로 대저택, 고급승용차… 등을 구입하고 친구들과 밤마다 파티를 벌이며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으며, 목재회사를 설립했지만 파산하고 남의 농장에서 일꾼으로 전전하는 비참한 생활을 하다 부모 집 차고에서 목을 매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동서양 막론하고 거액 복권 당첨자들은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나빠지다 대부분 자살로 마감합니다.
머스웨이건의 생애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인생은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빠지는 것!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늙어가기 위함이고 죽음을 위한 출생입니다. 그러기에 점점 나빠지는 고리를 끊어놓지 못하면 인생은 실컷 살고 나서 솔로몬 왕처럼,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 탄식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도중에 그러면 기회라도 있는데….
우리 믿음은 지금, 현재만을 너무 목적 삼으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點)의 역사관입니다. 숨이 멎으면 내 인생 여기서 점(點)으로 끝나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는 선(線)의 역사관입니다. 어려워도 점표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좋은 일로 직선으로 나가고 죽음도 점표가 아니라 죽음을 지나 계속 직선으로 나아갑니다. 내 삶은 점점 나아지고 점점 좋아지고 점점 즐거워지는 인생이다, 이런 세계관으로 살아야 희망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1호 이적(異蹟)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믿도록 하려는 요한복음의 집필 목적을 가졌기에 곧장 이적(異蹟), 기적을 보입니다. 그래서 1호 이적이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급이 낮은 초급 이적입니다. 처음 선을 보이는 이적치고는 사이즈가 작아요. 사실 이 정도 이적은 모세에게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엘리야, 엘리사의 이적이 훨씬 큽니다. 하늘 천사들이 보면, 아이고, 왜 저런 시시한 이적을 하실까? 온 세계 바닷물을 설탕물로도 바꿀 수 있는 분인데… 의아해 할 거예요. 애굽 술사들조차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이적을 하지 않았던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첫 이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은 세상에서 하실 일을 이만큼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적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첫 이적은 내가 하는 일은 이처럼 사람을 변화시키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라는 메시지인 셈입니다.
1. 모든 인간은 2%의 모자람이 있다!
본문은 혼인잔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혼인잔치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흥겹습니다. 잔치잔치 열렸네~ 매우 흥겨워요. 잔칫날 흥겹지 않으면 뭔가 사연이 있지요. 싫은 사람과 결혼하거나 결혼 준비하면서 사돈들끼리 틀어졌거나…. 사연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결혼식이라면 잔치는 흥겨워야 합니다. 특히 신랑신부는 더 행복해야 합니다.
잔치는 풍족해야 합니다. 잔치의 흥겨움은 풍족함에서 나옵니다. 잔칫날만큼은 빚을 내더라도 풍족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 골병듭니다. 부모들은 골병들어도 잔치만큼은 풍족해야 합니다. 그게 부모의 최고 자식사랑이요 내 자식 기죽지 않고 보내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런 잔치의 원칙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 날 잔치는 3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개역성경은 모자란지라…. 어떻든 잔치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유목민으로 양고기가 주식입니다. 양고기에 반드시 곁들이는 필수음료가 포도주입니다. 잔치에 양고기는 있는데 포도주는 모자랐으니 주인이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또한 유대인 잔치는 한 주간을 계속합니다. 맨 정신으로는 못해요. 만약 포도주가 모자란다면, 잔치의 흥(興)은 깨어지고 잔칫집은 엉망이 됩니다. 법적소송의 이유도 됩니다. 그러면 결혼이 깨어질 수도 있고 가문의 수치로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고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집이 어려워도 포도주는 모자라서는 안되는 게 유대인 잔치의 필수입니다.
포도주가 왜 모자랐을까요? 하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왔거나, 처음부터 빠듯하게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주인에게 문제입니다. 누구의 문제도 아니라 이건 나의 문제입니다.
포도주가 모자랐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가장 풍성하고 풍부한 집안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처구니없다! 그 뜻은 아시지요? 옛날에는 맷돌 손잡이 부분을 어처구니라고 불렀답니다. 맷돌을 돌릴 때 손잡이가 없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그래서 곤란한 일을 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이없다는 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성한 잔칫날! 그 날은 부자나 가난한 집안이나 모자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두들 흥겹고 일생일대의 축복의 날에 모자람이 발생해서 잔치는 열리는데 흥(興)겨움과는 거리가 먼 우울한 축제가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좋은 일만 있고 모두 행복하고 풍족한 것만은 아닙니다. 집집마다 나름대로 부족함이 있습니다.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물질이든 개인적 상처든 자녀들로 오던 누구에게나 2% 부족, 2%의 모자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100% 만족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2%의 부족을 주십니다. 현대 정주영,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삼성의 이건희 딸이 결혼반대하는 부모로 자살했어요! 부모에게는 평생의 한(恨)이요 어떤 자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2% 부족의 공간입니다!
바로 이 2% 부족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인간의 한계점, 이것이 2%부족입니다. 주부들 아시지요? 삶은 계란은 비어있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작은 공간, 2%의 공간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비어있는 공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2% 비어있는 허전한 공간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지요.
우리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요? 내게서 2% 부족은 무엇인가요?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나의 2% 채우소서!”라는 부르짖음과 함께 하나님을 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2. 모자람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잔칫날에 참석하셨던 예수님, 주인이 포도주가 떨어져 절절 매는 것을 보시고 그거 참 안 됐다, 그래서 포도주를 채워주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이라도 어떤 체면 때문에, 자신을 과시하려 하나님의 권능을 사용하신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할 때만, 세상에 오신 목적을 위해서 꼭 필요할 때만 소유한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권능, 신분에 대해 공익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돈, 권력, 직분, 위치…, 공익(公益), 모두의 유익을 생각하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내 것들을 자기 이익만 위해 사용하면 그건 남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과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그냥 물아! 포도주가 되라! 그래서 이적이 일어났을까요?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물이 변하기 위해-주님을 알고 주님의 능력을 믿는 자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주님의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조차 요한의 추천장 하나만 갖고 스승을 따라왔습니다. 스승이 어떤 분이신가, 파악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가나 마을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아직까지 주님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주님은 평범한 30년을 보내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단조차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30년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잠재 능력을 아는 사람, 짐작하시겠지만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잉태로, 요한의 증거로, 양육하면서 예수가 보여주는 비범함 속에서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 능력을 믿었기에 포도주가 없다는 말을 듣고, 그 상황의 심각성을 듣고 예수님을 해결자로 보고 해결을 요청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리아의 믿음과 섬세함을 봅니다. 마리아는 주인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어요. 이런 상황에 예수님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기적은 이런 곳에서 일어납니다. 오늘의 변화, 한 인간의 변화는 이런 작은 섬세함에서, 주님이 누구인가를 알고 능력을 믿고, 그 능력이 필요한 대상, 뭔가 2%가 부족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살피는 배려심 가운데 일어납니다.
㉡ 물이 변하기 위해-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지시합니다. 마당 입구에 손과 발을 씻는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채우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연회장은 술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잔치의 모든 일정을 주장하는 연회장에게는 지금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 연회장에게 예수님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을 갖다 주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인들의 갈등입니다.
‘주인은 포도주를 원하는데 웬 물을?’
‘연회장의 말을 들어야 하나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하나?’
‘상식이냐 비상식이냐?’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이런 갈등으로 흔들렸지만 하인들은 순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비상식의 순종에서 이적은 일어납니다. 순종은 비상식에서 시작됩니다. 상식이라면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따르면 됩니다. 그걸 순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상식선에서만 순종하려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의 힘이 약화됩니다. 교회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아야 합니다. 돈 쌓아놓고 건축할 수 없고 선교할 수 없습니다. 믿습니다! 이적신앙은 비상식에서 일어납니다.
㉢ 물이 변하기 위해-과정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이 바쁜 와중에 얼마나 황당해요? 차라리 그 시간 마을에서 포도주를 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기적을 보여 주시려면, 없는 가운데서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인들, 잔칫집 주인에게는 한 시(時)가 급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과정을 원하십니다.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한국사회나 교회의 대형사고들은 인재(人災)입니다. 인재가 많이 터지는 것은 과정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을 그르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응답이 느려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의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다 어려움이 생깁니다. 기다리는 법, 과정을 좇아가는 법을 배울 때 우리 생애에도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는 끝이 좋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사자성어,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를 말합니다. 시작은 거창한데 마무리가 흐지부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시작하느냐? 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무리를 하느냐? 도 중요합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끝이 좋습니다. 오늘 잔치가 예수님 개입이 없다면 사미(蛇尾)였겠지요.
-흥겨움으로 시작했으나 근심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풍성함으로 시작했으나 모자람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 찼으나 흩어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부족함에… 근심함에… 잔치가 망쳐질 위기에 개입하셨습니다. 거기에 이적을 일으키십니다. 맹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사정을 알리가 없는 연회장은 신랑에게 말합니다.
10절,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유대사회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포도주를 담습니다. 20년산 19년산… 가장 오래 담은 것들로 대접합니다. 모두 취해서 제 맛을 알아볼 수 없을 때는 근래에 맛없는 것을 내놓습니다. 이미 잔득 취해버린 사람들은 그 맛이 그 맛이고… 모릅니다. 그러니 연회장은 압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나중에는 안 좋은 것을 내는데…. 이게 세상입니다. 세상은 눈을 속이고 맛을 속입니다. 세상은 용두사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점점 나빠지고 싫어집니다.
연회장의 눈에 이 집은 상식을 넘어섰습니다. 이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이기에 갈수록 더 좋은 포도주를 내는가…. 남들과는 다른 거예요! 그래서 놀라워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세계요 신앙의 세상입니다. 주님은 갈수록 좋은 것을 주십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며, 주님에게 제대로 순종하면 맹물과 같은 상황도 맛내는 포도주로 변합니다. 근심이 즐거움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인생임을 오늘 이적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입니다. 포도주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소산물입니다. 이것이 모자라면, 맛이 없으면, 떨어지면 사람들은 야단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물이 더 중요합니다. 물만 있으면 포도주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물은 예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포도주-돈이나 신분이나 젊음이나 소유가 모자라면 죽느니 사느니 하지만 믿음의 세계는 물-예수가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모자라는 것은 채워지고 부족한 것은 보충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요한복음을 관통합니다.
3장 니고데모는 세상적인 포도주가 있어도 물이 없어 밤에 갈급함으로 찾아왔습니다.
4장 사마리아 여인은 즐거움을 주는 남자들 있지만 목말랐습니다. 물이 필요했던 거예요.
5장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환자 역시도 2%의 물이 부족했고 예수님을 만나 채웠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내게로 오는 목마른 자들의 목을 다 채워주고 내게로 오는 부족한 자들 다 채워주었고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더 이상 목마르지 않는다는 복음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점점 채워지고 점점 변화되고… 그래서 다윗처럼 “(예수님이 내게 계시니)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예수님이 내게 계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면서 갈수록 더 행복하고 갈수록 더 풍성한 생애를 누리시는 늘빛가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굳이 첫째, 둘째... 이런 식으로 대지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줄줄 설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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