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코스닥에 상장하려면?
사사기 4장 4~10절
서론
중소기업가들의 목표는 주식을 코스닥에 상장하는 일입니다. 코스닥은 첨단벤처기업 중심 시장인 미국의 나스닥(Nasdaq) 시장을 본떠 만든 것으로 증권거래소 시장과는 다른 별도의 시장입니다. 증권거래소가 증권을 매매하기 위해 개설된 상설 유통시장이라면 전자거래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주식거래시장이 코스닥입니다. 코스닥 상장기업이 되면 장점이 많습니다.
-자금 조달이 원활. 유상증자 통해 필요자금을 쉽게 조달하며 사채 발행도 가능합니다.
-기업 인지도가 상승. 기업에 관한 각종 정보가 신문, TV… 등에 보도됩니다.
-법적 혜택이 많음.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주주 외 제3자 신주모집이 가능합니다.
-주가가 오르면 큰 이득을 주주에게 안겨줍니다.
그래서 중소기업들은 상장기업을 목표로 합니다. 단점도 있지만 일단은 혜택이 많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도 영적으로 상장된 교회… 늘 그런 교회를 꿈꿉니다. 그래서 제 목회는 빅사이즈 예배당도 아니고 대형교회 목회도 아니고… 유명한 목사도 아니고… 바로 여러분입니다. 큰 예배당, 대형교회 목회에 대한 바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이전에 항상 여러분을 성장시키고 성공시키면 우리교회가 행복 코스닥에 등록된 행복한 교회입니다.
천국 코스닥에 상장시키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원의 프로그램 체계에는 본인조차 일절 접근 못합니다. 그것은 100% 삼위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부께서는 나를 구원의 대상으로 선택하시고 성자는 선택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령은 십자가 보혈로 나를 씻기시며 믿음을 주십니다. 이런 프로그램 체계 속에서 내가 할 일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왜 있고 목사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목사의 일 중에서 우선되는 것은 구원 이후를 설계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일종의 구원 이후 설계사입니다. 구원 이후의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이 저에게 주신 목자의 사명입니다.
구원 이후, 그것이 영적으로 코스닥입니다. 구원을 받고서도 쩨쩨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행복 코스닥에 나를 상장시키려면 어떻게 합니까? 교회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고백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사람 관계가 좋으면 성공한 교인입니다. 인간관계가 서툴고 불편하면 불행합니다.
본문에 여선지자 드보라와 장수 바락이 등장합니다. 드보라는 여장부이고 바락은 졸장부입니다. 남녀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런 표현도 정상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대장부가 되어야 하고 여성들은 운명적으로 졸장부가 되어야 한다? 그건 아닙니다.
어떻거나 구약성경 <사사기>는 당시에 쓸 만한 남자들이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쓸 만한 남자들이 헌신하지 않고 자기소견대로 사니까 하나님께서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내세웁니다. 오른손 장애인 에훗, 소심한 남자 기드온, 첩의 아들 입다… 모두 정상적이지 못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비정상을 일으켜서 비정상의 이스라엘 사회를 정상으로 만들어 냅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면 정상을 써야 정상인데 하나님께서는 정상으로 돌려놓는데 오히려 비정상을 사용하십니다. 여기에서 주시는 메시지는, 너 없으면 내가 일을 못할 줄 아느냐? 나는 비정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정상화시킬 수 있다, 그러니 헌신하지 않는 너만 손해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성을 찾아냅니다. 지금에야 여성천하가 되었지만 3천 년 저쪽에서… 지금도 히잡을 써야만 바깥출입이 가능한 중동지방에서 여성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비정상도 한참 비정상입니다. 왜 비정상을 선택하시나? 쓸 만한 남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명색이 이스라엘 장군이라는 바락을 보세요! 6절을 읽읍시다~!
6절, “드보라가…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절,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
그랬더니 바락이? 8절,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바락, 대장부가 아니라 졸장부입니다. 남자는 남자로되 졸(卒)입니다. 그러니 남자 쪼다입니다. 쪼다는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남자구실을 못하는 남자입니다. 양아치와는 달라요. 쪼다는 한자로 조두아(鳥頭兒)의 변형으로 보입니다.‘조두아’는 말 그대로‘새대가리 애새끼’라는 말이니‘멍청한 놈’이란 뜻입니다. 머리가 나쁘면‘새 대가리’라고 불렀습니다.
고구려 20대 장수왕은 93세를 살아‘장수왕’입니다. 할아버지 광개토왕과 아버지 장수왕 이 대단한 업적을 남겼기에 아들 조다는 그냥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일찍 죽었기에 저런 바보~ 쪼다가 되고 말았답니다.(믿거나 말거나~)
바락이 쪼다입니다. 당신이 가면 나도 가겠고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 왜? 무서워서…. 그야말로 여인의 치맛자락이나 붙들고 있는 마마보이입니다. 일국의 장수라는 사람이 이 모양이니 일반 남자들은 오죽했겠어요? 하나님께서 쑬만한 남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면 드보라는 어찌해야 합니까? 아이고 이 쪼다… 그러면서 바락을 팽개치고 망신을 주어야 합니까? 그랬다면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을 망신 준 셈입니다. 남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사회! 그거 비정상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 남편… 사회도… 교회도 남자들이 바로 서야하고 남자들의 기(氣)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요즘 남자 대상의 풍자유머가 도를 넘었습니다. 남자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있는 세상! 힘이 있는 대한민국이 되겠습니까? 남자들이 여동생에게 눌리고 여동창들에게 밀리고… 아내에게 밀리고… 역할분담이 바뀌어 버린 세상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까? 남녀의 성적 차별을 말하는 것은 아니어도 창조의 질서가 있고 남자들의 포지션 여성들의 포지션이 다른 것입니다.
드브라는 어찌했습니까? 드보라는 쪼다 바락을 명장으로 성공시켜 자신도 성공합니다.
바락은 무서워서 가지 않겠다고 치마꼬리를 잡습니다. 당신이 가야만 가겠습니다…. 한심한 남자 아닙니까? 일반 병사도 아니고 장수입니다. 장수 체면이 뭐가 되고 이스라엘 남자들이 뭐가 됩니까? 이런 바락을 드보라는 조금도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9절,“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4절,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절, 전쟁에서는 바락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남자가 주도권을 잡도록 드보라는 후방에서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일선에 바락이 섰고 바락이 이김으로 이스라엘 남자들의 위신을 세워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누가 성공합니까? 드보라가 성공합니다. 이 전쟁을 바락의 전쟁으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싸우기는 바락이 싸웠는데 승장은 드보라가 됩니다. 남을 성공시켜 내가 성공하는 성공비결입니다.
성경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드온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마음은 좁쌀영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강한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자기만 성공했습니다. 자식들은 실패합니다. 삼손은 스스로에게서 강한 에너지가 나오는 용사입니다. 삼손은 나도 실패하고 이스라엘도 실패하게 만든 패장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성공시켜 드보라 자신이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남을 성공시킴으로 내가 성공하는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애니 셜리번은 헬런 켈러를 성공시켜 자기도 성공했습니다. 킴벨은 무디를 성공시켜 무디 이름과 함께 성공자의 삶을 삽니다. 히딩크는 태극전사들을 성공시켜 세계적 축구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서로를 성공시키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핼쓰클럽이 아니라 재활시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믿는 사람들을 보면 참 좋습니다. 그보다 더 보기 좋은 것은 나도 잘하지만 남도 잘하도록 돕는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내 잠재력을 계발하는 일에도 열심 해야지만 다른 사람들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굴하고 격려하고 함께 잘 하도록 돕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십니다. 내가 믿음생활, 교회생활 잘하도록 애쓰는 것과 함께 남들이 교회생활 잘 하도록 손뼉 치는 사람이 드보라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바락도 드보라도 성공 코스닥에 오른 것입니다.
5장은 드보라와 바락이 전쟁에서 이긴 기쁨을 노래로 표현합니다.
1절,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12절,“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이건 두 사람의 노래입니다. 승리가이고 행복한 노래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행복하게 만들어 자기가 행복합니다. 바락은 드보라가 있어 승리했고 행복합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었더니 같이 행복하고 온 이스라엘이 행복합니다.
31절, 그 땅이 40년 동안 평온했다…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행복하게 해주었더니 모두가 행복합니다. 이게 행복의 코스닥에 오르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행복 코스닥에 상장되려면 혼자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모두의 희생을 위해 자신의 의견을 거두어 들여야 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희생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면 내 행복도 없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IT산업에서는 천재요 전설적 존재였지만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냉혹한 기업 사냥꾼입니다. 경쟁상대(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빌 게이츠를, 뻔뻔하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훔친다고 공개 비난했습니다. 그런 인생이 남긴 마지막 말은 iSorry(미안해)입니다. 딸들에게 한 말이지만 그의 인생을 대변한 말이기도 합니다.
성공전략가 지그 지글러는 자수성가형 부자 10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모두 백만장자입니다. 자수성가를 한 사람 100명에게는 공동점이 있었습니다.
“행복하려면 타인을 행복하게 하라!”
이거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바락이 행복해 하니 드보라도 행복했습니다. 쪼다라고 팽개쳤으면 승자 바락은 없습니다. 바락이 시무룩하게 막사에 있고 병사들이 여성 지도자에게 꾸중이나 듣고 있다면 드보라가 노래할 마음이 나겠어요? 바락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노래가 나오고 하모니를 한 것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내가 행복 코스닥에 상장됩니다. 남들 힘들게 해놓고 내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탈무드에 하나님을 웃기려거든 홀로된 여인과 고아들을 웃겨라. 그 말은 그런 분들을 울리면 하나님도 울고… 하나님이 울면 내겐들 웃을 일을 주시겠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나님을 웃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웃게 해드리려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웃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행복합니다. 이것이 윈윈이요 상생의 크리스천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행복 코스닥에 상장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위해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쪼다입니다. 죄인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죄인은 혐오 대상 쪼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고 예배하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할 것이 없음에도 먼저 사랑했더니 우리가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의 향기가 나오고 그 사랑이 하나님께로 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 구원 이후, 행복 코스닥에 상장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드보라의 훌륭한 여성리더십이 있고 이걸 박근혜 여성대통령이 벤치마킹을 했으면 좋겠고 여집사님들 권사님들이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결론
일본을 근대화시킨 유명한 세 인물이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세 인물 모두 인간경영-사람을 잘 다스렸고 활용을 잘 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의 인간 경영은 따뜻한 “기다림”입니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오다 노부나가. 그의 인간경영은 냉혹한 카리스마 경영입니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 버린다.”
-임진왜란의 적장 도요토미 히데요시(豊申秀吉)의 인간경영은 양육입니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한다.”
드보라의 인간경영은 어느 쪽입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간경영법입니다. 드보라는 울지 않는 두견새 바락을 우는 두견새 바락으로 만들었습니다. 뒤로 빠지는 쪼다 바락을 앞장서서 싸우는 용장 바락으로 세웠습니다. 모든 공(功)을 바락에 돌립니다. 놀랍게도 히브리서 11장‘믿음의 전당’에는 드보라 대신에 바락이 오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바락은 감히 다윗, 사무엘, 선지자들의… 반열에 올랐더라는 것입니다. 드보라의 도움과 멘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락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보라를 기억하며 성경에 등장하는 최고의 여성 지도자 미리암과 같은 반열에 세웁니다. 남을 성공시켰더니 내가 성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했더니 내가 노래를 부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간경영’입니다. 예수님의 인간경영도 기다림과 북돋아줌입니다. 그런 북돋아줌이 있었기에 쪼다 베드로가 울고 ‘원수’ 바울이 주님에게로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이런 기독교 정신이 우리교회에서 많이 회복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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