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교회 비빔밥교회
에베소서 2장 20~23절
서론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제도는 가정(家庭)입니다. 가정은 성전보다 학교보다…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만큼 가정은 사회나 국가를 지탱하는 지반(地盤)입니다. 로마를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이 망한 것은 가정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오늘 가정주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건강한 교회인가요? 가정과 같은 교회입니다.
현대 교회는 점점 기업화가 되고 있습니다. 목회자도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라 사장 마인드입니다. 그래서 목회경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교인들을 비즈니스 차원의 사원(社員)으로, 지역주민들은 고객개념으로 이해합니다. 다른 종교보다 앞선 종교 마케팅(?)으로 일찍 부흥했지만…, 이제 세상이 내막을 알아버렸습니다. 나를 부흥의 수단화하는 교회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요하고… 자신을 성장시킬 종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이 부흥하고 사찰로 몰립니다. 교회는 헌금해서 열심히 세상에 퍼다 주고 좋은 일은 다하면서도 외면당합니다. 봉사 자체가 순수하게 보이지 않고 교세불리기의 마케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따뜻함과 힘이 있는 가정 같은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정도 콩가루집안이 있습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 네 식구가 비행기에서 떨어졌는데 다 살았습니다. 아빠는 제비족, 엄마는 치맛바람에다 덜 떨어진 여자, 아들은 비행청소년, 딸은 날라리… 그래서 훨훨 날아 살았다는 콩가루 집안 이야기… 왜 형편없는 가정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까요?
콩가루는 가벼운데다가 서로 달라붙는 액체의 끈끈한 성질, 즉 점성(黏性)이 없기에 작은 바람에도 흩어지고 날아갑니다. 가족 간의 유대감도 사랑도 없고 질서도 없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복잡한 집안을 빗대는 말이 “콩가루 집안”입니다. 콩가루 집안이 있으면 콩가루교회도 있겠지요. 한 가족이라는 유대감보다는 한 교회 교인 개념, 서로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개인
주의 풍토가 콩가루교회입니다. 콩가루교회는 콩가루교인들이 만들어 냅니다.
늘빛교회. 어떻게 하면 콩가루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 가족들이 비빔밥처럼 잘 섞여지면서 모두가 행복하게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까요?
비빔밥교회는 상호의존으로 잘 섞입니다.
콩가루집안은 누구 잘못에 앞서 일단은 가장(家長)의 리더십문제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유교문화 가부장제도의 아버지 영향을 받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뭐라고 의견을 표현하면 “시꺼!”. 한마디로 3초 안에 사태를 평정하는 강압적 권위자입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아버지를 카피합니다. 결혼해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남편이 되는 훈련도 받지 못했고 아버지 훈련도 받은 게 없어요. 받은 것이라곤 “시꺼!” 3초 만에 어떤 의견도 묵살해버리는 강압적인 권위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돌팔이 남편, 돌팔이 아빠가 되고 이런 아버지 남편이 돌팔이 가정을 만들고 가장(家長)이 되면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교회도 그래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교회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배워야 합니다. 교회 속성을 모르니 교인노릇도 몰라요. 그냥 교회 나오면 교인 되고 교회를 봉사 단체나 인권단체…로 알고 직분을 이해 못하니까 당회를 이사회(理事會) 정도로 생각합니다.
좋은 교회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한두 해 다니다 그만둘 교회라면 노력할 것도 없어요. 대형교회는 개인적 성향이나 취향이 별로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소형교회는 달라요. 특히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중직들은 달라요. 개인의 성향과 기질이 교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인격이 성숙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개인이 성숙하지 못하면 의존성이 강합니다. 의존성은 독립적이지 못하고 행복, 만족, 성공… 등을 항상 남과 비교합니다. 사장이 김부장에게 휴가비로 100만원을 주며 말합니다.
“수고했어. 100만원 주는 거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게.”
김부장은 엄청 사장님을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0분 후에 이부장을 만났습니다. 이부장은 150만원을 받았답니다. 20분 만에 감사와 행복 끝! 분노와 시기심을 느낍니다.
“사장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이부장보다 뭐가 못해서…”
왜 그럴까요? 자기만족과 행복을 타인에게서 영향을 받는 의존성 때문입니다. 김부장은 기쁨과 불평을 지나치게 남에게 의존합니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서 유능한 사원이 못됩니다.
-의존성의 특징은 항상 남들이 잘 되면 시기합니다. 남들이 잘못되면 은근히 좋아합니다.
-의존성은 긍정적인 시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모든 걸 나쁘게만 보려고 합니다.
-의존성의 또 하나의 특징은 칭찬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격려할 줄을 모릅니다.
교회가 이처럼 의존성향의 교인들이거나 중직이 되면 교회공동체가 힘들어집니다. 매사에 내 행복과 불행을 타인에게 의존합니다. 종교의 역기능으로 황폐한 그리스도인을 만듭니다.
의존적 인간형의 반대가 독립성입니다. 인격성숙도가 높아 독립적이기에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이부장이 나보다 50만원을 더 받았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수고를 더했구나… 이렇게 마음먹으면서 사장님을 이해하고 이부장을 이해합니다. 그러면 100만원의 휴가비가 계속 감사가 되고 회사생활이 행복합니다. 높은 자존감입니다.
독립성은 자기가 상황을 주도하며 긍정적인 대응능력을 갖게 합니다.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1823~1915)는 어떤 자극에 개는 즉각 반응을 일으키지만 사람은 생각하고 어떤 쪽을 선택하는 자유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능(本能)과 이성(理性)의 차이점입니다.
내가 기분 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즉시로 자극적인 반응을 하는 것은 대응적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응적으로 함부로 말을 해놓고 엄청 후회합니다. 그래서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 상처를 남긴다.”고 합니다. 몸의 상처는 1,2개월이면 회복됩니다. 말로 받은 상처는 30년이 되어도 치유되지 않습니다.
교회공동체생활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극에 대한 반응을 주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독립적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고통과 분노는 누가 만듭니까? 의존성 인간은 상황이 만들고 남이 만듭니다. 독립성인간은 고통과 분노의 상황을 내가 주도합니다. 나도 남의 말을 하지 않는가? 나도 남을 힘들게 한 적이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못합니다. 고통과 분노는 결국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물은 맑음도 더러움도 없는데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엘리노 루즈벨트는 “아무도 당신 동의 없이는 당신에게 고통을 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면 힘듭니다. 생각지도 않는 설교에 상처를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피해의식입니다. 피해의식에 머물고 있으면 자기성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피해의식은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짐승처럼 반응하는 의존성인간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보고 바르게 반응하는 독립성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서로간에 보호 받고, 서로 보호해주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나를 성장시켜 주며 22절 함께 건축할 할 교회입니다.
비밤밥교회는 애정으로 잘 섞입니다.
가정은 어떤 곳입니까? 잠을 자는 집의 개념? 결혼해서 자식을 낳은 생산공장? 한글사전은,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공동생활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가족구성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물었더니, 가족은 서로 인격을 존중한다, 양보한다, 대화를 많이 나눈다, 아껴준다, 순종한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화가 나더라도 참고 대화로 해결 한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는 답이 올라왔습니다.
가족은 결국 말(言語)입니다. 사랑의 대화, 격려 대화, 용서하는 대화… 이런 것은 가정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이런 표현이 없기에 외톨이가 되고 콩가루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어디입니까? 교인들이 그냥 있자 목사님은 썰렁해(海)! 하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입니까? 다시 질문했습니다. 이번에도 가만히 있자 “사랑해(海)!”라고 답했습니다.
여집사님이 너무 재미있고 의미도 있어서 주일날 집지킴이 과묵한 남편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여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어디게?” 남편이 “몰라!” 퉁명스럽게 끝냅니다. “당신 정말 썰렁해!~” 남편이 알아듣지 못해요. 또 물어요.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게?” 남편이 머믓거리자 “당신이 내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 그러자 남편이 얼굴을 붉히면서 “정말 열~바다!” 애정표현이 없거나 서로 간에 열 받게 하면 콩가루집안입니다.
가정은 표현하는 곳이고 가족은 표현하는 대상들입니다. 누가 먼저 표현해야 합니까? 위에서 아래로 내리표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격이 안 된다고요? 아닙니다. 배운 것이 그것밖에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상호의존적이 되시며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기자기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구속이 나오고 교회가 태동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사랑은 표현된 사랑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교회를 출산시키고 사랑의 공동체롤 만들었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이런 사랑으로 불타올라야 합니다. 넙죽넙죽 표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눈동자 속에 말속에 행동 속에 목회자에 대해… 정말 사랑하는 모습들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럼에도 안 되는 것은 교회공동체의 속성을 이해 못하는 것이고 내가 왜 사랑을 표현할까, 필요를 못 느껴서입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 그것이고… 내가 교회 안에서 표현할 줄 몰랐던 엄격 신자 부모님에게서 교회생활을 카피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설교자 필립스 부룩스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한 것이 아니라 일에 맞는 능력을 구했다.”라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기질과 성향과 관계없이 성령의 교회이기에 성령을 구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이기에 사랑을 구했고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능력으로 시작된 교회이기에 능력으로 섬기기 위해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교회의 필요에 의해 내가 구했고 하나님의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순종했던 것입니다.
뒝벌(bumblebee), 활동성이 높아 '윙윙거린다'는 의미에서 영어로는 'bumble bee'라고 합니다. 벌 종류에서 곰처럼 크다고 웅봉(熊蜂)이라고도 합니다.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몸체는 크고 날개는 작아서 생물학적으로는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뒝벌은 납니다. 날아야 하기 때문에 납니다. 먹고 살기위해서 날아야 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나는 것입니다.
닭은 날지 못합니다. 생물학자들은 닭이 날지 못하는 이유를 도무지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날개가 엄청 큰 닭은 조건으로는 충분히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날지 못합니다. 왜? 날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먹이에 만족하며 살기 때문에 나는 능력을 포기한 것입니다. 조건보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그래요! 나는 원래 무뚝뚝해서… 그러나 놀 때보면 표현을 못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효도관광에서 노래할 때보면… 족구할 때보면… 손자들 하고 놀 때보면 무뚝뚝하고 차가운 분들이 아닙니다. 필요를 못 느껴서 그렇습니다.
교회는 따뜻하고 편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따듯한 분위기는 사랑과 격려와 칭찬으로 표현될 때 나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마슬로우는, 인간에게는 자기를 표현하는 욕구와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인정받고 싶은 최상의 방법이 칭찬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좋은 칭찬 한 마디에 두 달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따뜻함으로 21절,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연결은 콩가루가 아니라 최고의 점성-시멘트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조합이 친정집입니다. 그래서 친정집은 항상 웃음이 있고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비빔밥교회는 롤모델 중심으로 잘 섞입니다.
롤 모델(Role model)은 어떤 한 사람을 정해, 그 사람을 표본으로 정하여 성숙할 때까지 모델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닮고 싶거나 영향을 받고 싶은 사람이 롤모델입니다.
초대교회는 20절,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돌-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12제자를 비롯해서 바울과 제자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 역할 모델들이 많았습니다. 이때 교회 2천년 역사에 가장 단기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군(群)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실력파나 엘리트가 아닙니다. 사상은 십자가와 부활이었고 능력은 학벌이나 직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중심을 이루었고 그들이 롤모델이 되어 수많은 키즈들이 일어나면서 안디옥교회에 인물들이 일어났고 가는 곳마다 지역교회들이 일어나면서 초대교회는 엄청난 부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성장 같지만 사실은 한 명이 불이 붙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을 붙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역사는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골프왕국입니다. 엊그제 최경주 선수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좋았고, 상금이 20억쯤 됩니다. 와~ 우리교회 교인이었으면 2억은 십일조…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최경주를 비롯한 한국 골프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박세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의 한국 여자선수는 박세리 1명이었습니다. 박세리가 우승하면서 박세리 키즈(kids)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2009년에는 45명이나 됩니다. 지금 한국축구의 스타들도 사실은 차범근 키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네기멜론대학교의 데이비드 뱅크스는 <천재과잉의 문제>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거기서 그는 천재들이 여러 시대에 여러 장소에 널려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와 장소에 몰려 있음을 지적합니다. 19세기에 작곡가들이 몰려나왔습니다. 멘델스전 바그너 리스트는 친구사이입니다. 고흐와 밀레, 고갱, 쿠르베… 등의 훌륭한 화가들이 군(群)을 이루었습니다.
2009년 경북 영양의 일월산에서 등산객이 산삼 48뿌리를 캤습니다. 도합 3억원의 액수입니다. 산삼도 몰려서 군(群)을 이룹니다. 갈릴리바다에서 자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몰려서 자랐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롤모델이 되었을 때 촌동네 사람들이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불붙은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늘빛교회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가 되려면 롤모델이 많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상황에 영향 받는 의존성이 아니라 어떤 자극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독립적 사람, 거기다 상호의존적인 사람… 가슴이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 목사의 일에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협조하고 타인들도 협조자로 영향력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 그런 롤모델이 일어날 때 상호의존성의 키즈(kids)들이 일어날 것이며 영향력 있는 우리 늘빛교회가 될 것입니다.
결론
미국(美國) 가든 그로브의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가정은 작은 마을이며, 가정은 작은 도시며, 가정은 조그만 나라이다. 아버지는 왕이고 어머니는 왕비이며 아들은 왕자이고 딸은 왕녀다. 가정마다 고귀한 왕궁이다.”
우리교회는 더 위대해 질 수 있는 교회입니다. 더 성장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이제 필요만 느낀다면 됩니다. 의존성을 버리고 독립성이 되고 상호의존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사랑을 한없이 표현해야 한다는 것,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가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필요만 느낀다면 작은 날개를 갖고서도 뒝벌처럼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가정과 같은 교회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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